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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9-01 (일) 12:47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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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24강]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2019년 창세기 제 24 강                                                             최동진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말씀 / 창세기 39:1-41:57
요절 / 창세기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3대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씨를 뿌려 맺은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시련의 때에나 영광의 때에나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과 함께 하셔서 승리의 인생을 살도록 하시고 그를 생명 구원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노예가 된 요셉(39:1-6a)
  39장 1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형들에 의해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린 요셉은 애굽왕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아들에서 낯선 이방 땅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형들로 인해 그렇게 된 요셉의 심정이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겠습니까? 그는 형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 아버지의 집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과 좌절, 장래에 대한 염려로 인해 정신 이상이 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노예를 거느려 본 보디발이 볼 때 요셉은 일반적인 노예들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과 동행 할 때 내면의 미움과 절망과 분노 등 어둠의 세력이 그를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으로 요셉이 하는 일마다 형통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불신자인 보디발이 볼 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형통’이란 모든 일이 잘 되어간다는 뜻으로서 보통 원하던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고 성공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편은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주인의 인정을 받아도 노예는 노예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당장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시기보다 그와 함께 하셔서 그의 주인에게 인정을 받고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그 집의 가정 총무가 되게 하시고 그 집의 모든 소유를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 집의 복덩어리가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아무 것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어떤 상황에서든지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II. 죄수가 된 요셉(39:6b-40:23)
  요셉이 주인의 인정을 받고 가정 총무로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요셉의 인생에 또 한 번의 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6b,7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보디발의 부인은 출세한 남편 덕에 넓고 큰 집에서 많은 종들을 거느리며 부잣집 마나님으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때마다 파티를 열어 고관대작들을 초대하여 교제하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즐기며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해 보이는 삶이 내적으로 허전함과 고독감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 집 안에 있는 잘생기고 젊은 청년의 매력에 사로잡혔습니다. 요셉이 섬기는 집 주인마님의 지위를 이용하여 틈만 나면 요셉의 곁에 다가가 묘한 눈빛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없는 사이에 동침을 청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있으면서 귀족 사회의 문란하고 퇴폐적인 모습을 자주 목격했던 요셉은 이를 상류 사회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응할 수도 있었습니다. 27세의 피 끓는 청년으로서 정욕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주인의 소유물로 취급되는 노예로서 보디발 여사의 유혹을 거부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지긋지긋한 노예생활 속에서 육신의 쾌락을 도피처로 삼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요셉이 이 유혹 앞에 무너진다면 순결을 잃고 더 비참한 죄의 노예로 사정없이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이 더 이상 그와 함께 하실 수 없게 됩니다. 요셉은 현재 육신의 정욕에 무릎을 꿇고 파멸의 길로 가느냐 아니면 이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의 길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는 청년 요셉에게 있어서 가장 큰 시련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힘든 유혹을 단호히 물리쳤습니다. 요셉이 어떻게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까? 8,9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첫째로, 요셉은 자기를 믿고 가정총무로 세워준 보디발의 신의를 배신 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불륜에 빠진다면 자기를 믿어준 주인의 호의를 배신하는 것이 되고 자기를 팔아버린 형들과 다를 바 없는 큰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요셉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인간의 의지만으로 보이지 않게 파고드는 정욕의 죄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 욕망의 올무에 걸려들면 하나님께 범죄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기에 그럴 수 없음을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정욕의 죄를 물리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패가 됩니다.
셋째로, 요셉은 여인과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보디발 여사의 유혹은 끈질기고 집요했습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도 죄악된 환경에서 죄의 세력에 꾸준히 노출되다 보면 죄에 대한 경각심이 무뎌지고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죄의 소욕은 불과 같습니다. 잠언 기자는 말합니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잠6:27,28)” 불에 데지 않으려면 불에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후서 2장22절에서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죄의 유혹을 싸워 물리칠 수 없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근래에 미투(Me too) 운동의 확산으로 세상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사람들이 몰락하는 경우를 종종 보면서 ‘펜스 룰’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펜스 룰’이란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미국의 펜스 부통령이 한 인터뷰에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절대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철학을 소개한 것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는 또 “보좌관을 반드시 남성으로 임명하며, 아내를 동반하지 않으면 술을 제공하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유로 “술을 마시고 느슨해지면, 그 방에서 가장 예쁜 갈색머리(여성)을 옆에 두고 싶어지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정치인이나 목회자들이 성추문에 휘말리거나 쓸데없는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성 간에는 절대 일대일로 만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요즈음에는 눈만 마주쳐도 성 추행범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거절당한 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더 담대하게 죄를 짓고자 하였습니다. 어느 날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일하러 들어갔는데 그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작심하고 종들을 다 내보낸 뒤 요셉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요셉의 옷자락을 단단히 붙잡고 막무가내로 자기 침실로 그를 이끌었습니다. 보디발 여사의 갑작스러운 육탄공격에 당황한 요셉은 황급히 손을 뿌리치며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녀의 손에 요셉의 옷이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계획이 실패에 그치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보디발 여사는 남편이 돌아오자 요셉의 옷을 보여주며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고자 하였다고 고소하였습니다. 아내의 말을 들은 보디발은 심히 노하여 요셉을 붙잡아 자기 집에 있는 왕실 죄수들을 가두는 옥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은 아내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내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장에 죽여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보디발은 요셉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또 평소 아내의 품행을 익히 알고 있던 보디발은 요셉을 자기 집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아내의 체면도 살려주고 사건을 마무리 하고자 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으로 죄의 유혹을 물리쳤지만 성폭행미수범이라는 지저분한 죄목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죄악 되어서 진실되게 살고자 몸부림치는 요셉을 사정없이 짓밟아 버렸습니다. 요셉의 꿈은 지도자가 되는 것이었는데 상황은 점점 더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감옥살이를 하게 된 요셉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로부터 받는 오해와 비난이었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 힘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회의였을 것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진실되게 살고자 하는데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나?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가? 하나님은 선하신가? 필립 얀시는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Disappointment with God)」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보면 휘튼 대학 대학원에 재학 중인 리처드라는 신학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욥기에 대한 글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얀시에게 한번 읽어봐 달라고 원고를 보냅니다. 얀시는 비범한 통찰력과 깊이가 있는 그의 글을 인정하고 기쁘게 추천사를 써주기로 약속합니다. 그러나 얼마 후 리처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 위해 열심히 말씀보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았지만 취업의 기회들은 그를 비켜가고, 자신의 영적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약혼녀에게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파혼 당하고, 게다가 신체적인 어려움까지 겪으면서 하나님께 실망하고 불신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요셉도 자꾸만 꼬여가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의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신분과 환경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그의 몸을 구속할 수 있었지만 그의 믿음까지 구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과 함께 하시고 도와주셨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셔서 억울한 누명을 참고 견딜 수 있는 내적 힘을 주셨습니다. 추락하는 과정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붙들므로 감옥이라는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변함없이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간수장은 이런 요셉을 좋게 보고 그의 손에 옥 중 죄수를 맡기고 제반 사무를 처리하도록 하였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한 죄수가 되었습니다.
  40장 1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왕에게 범죄하여 요셉이 있는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그들을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요셉이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보통 자기가 고난을 당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문제가 보이지 않습니다. 요셉도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의 신분으로서 다른 사람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를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근심의 빛을 발견했다는 것은 요셉이 그들을 형식적으로 섬긴 것이 아니라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진심을 다해 섬겼다는 증거입니다. 과거 요셉은 아버지 집에서 왕자로 살면서 형들의 내면의 상처나 고통을 전혀 헤아릴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분노의 눈빛을 눈치 채지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꿈 이야기를 하다가 더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렸고, 죄수의 자리까지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수많은 죄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높은 자리에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다가 직권 남용으로 걸려 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살인죄를 저지르고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편의점에서 빵을 훔치다 잡혀온 좀도둑도 있었고, 지하철에서 몰카를 찍다 잡혀온 잡범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본질적으로 그 내면이 죄의 다스림을 받으며 고통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들을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심정과 믿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들어온 요셉이 감옥에서 죄인의 모습으로 다른 죄인들과 함께 하며 섬기는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육신을 입고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 받으심으로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을 이해하고 감당해주셨습니다. 요셉의 감옥생활은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의 그림자라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후에 형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그들을 회개시켜 회복시키는 목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예수님을 닮은 영적 지도자로 키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길을 가고 싶지만 그 길이 험난하고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의 뜻이 영접이 안되고, 신앙에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과 항상 함께 하셔서 각자 처한 삶의 현장에서 형통하게 하십니다.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알게 하시고 죄인들을 이해하고 회복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연단하고 키우십니다. 이 하나님을 알 때 고난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희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연단을 잘 받아서 구원 역사에 쓰임 받을 만한 자로 빚어지고, 하나님 안에서 형통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요셉은 바로의 신하들에게 어찌하여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는지 물었습니다.(7) 그들은 하룻밤에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꿈을 꾸고 무슨 뜻인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요셉이 말했습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8b)”요셉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를 내세우기보다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요셉은 먼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사흘 후에 전직이 회복될 것이라는 길몽이었습니다. 요셉은 그에게 전직이 회복되면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해석의 길함을 보고 떡 굽는 관원장이 자기의 꿈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악몽이었습니다. 요셉은 조금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가 사흘 안에 사형 당할 것이라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사흘 후에 모든 것이 요셉의 꿈 해석대로 되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이 회복되었지만 너무 기뻐 술을 많이 마셨는지 요셉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일이 아니면 쉽게 잊어버립니다.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날아감으로 요셉은 다시 한 번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경험했습니다. 요셉은 깊은 실망감을 안고 기약 없는 감옥 생활을 계속 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때로 쉽게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요셉도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연단의 기간이 조금 더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지기를 원하십니다.

III. 총리가 된 요셉(41:1-57)
 1절을 보십시오. 만 2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바로가 나일 강가에 서 있는데 아름답고 살진 암소가 강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어버렸습니다. 바로는 깜짝 놀라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또 꿈을 꾸었습니다. 이번에는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버렸습니다. 바로는 비슷한 내용의 꿈을 두 번 꾸고 마음이 번민하여 애굽의 내로라하는 점술가들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의 꿈을 말하였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술 맡은 관원장이 2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바로에게 요셉을 소개했습니다. 요셉은 곧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보자마자 “듣자 하니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하더라” 하며 요셉을 칭찬하였습니다. 이때 요셉은 자기의 운명을 쥐고 있는 바로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듣기 좋은 말을 하며 애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요셉은 바로의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운명이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바로의 꿈은 장차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알려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의 지혜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행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유능한 성경선생이요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의 꿈 이야기를 들은 요셉은 애굽 온 땅에 일곱 해 동안 풍년이 있을 것과 그 후에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어서 그 이전의 풍년은 다 잊어버리고 기근으로 온 땅이 망하게 될 것이라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나아가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지혜 있는 사람을 세워 풍년의 때에 양식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 창고에 저장함으로 이후에 임할 일곱 해 흉년을 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말을 들은 바로가 감탄하여 신하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38).” 그리고 즉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요셉은 하루아침에 죄수에서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실권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그 때 요셉의 나이는 30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지도자가 되는 꿈을 주시고 13년의 긴 연단 끝에 마침내 그 꿈을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갑자기 최고 권력을 움켜쥐게 된 요셉은 축복의 때에 하나님을 잊고 교만해지기 쉬웠습니다. 그는 권세를 이용하여 피의 보복을 자행할 수도 있었습니다. 먼저 보디발 여사부터 감옥에 집어넣고 형들에게 자신이 받은 고난을 되갚아줄 계획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고난의 때에나 축복의 때에나 조금도 변함없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맡은 일에 충성하였습니다. 요셉은 첫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으로서 산모가 새 생명을 낳은 기쁨으로 지난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듯이 과거 형들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그 동안 당한 모든 고난을 잊도록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아들을 ‘에브라임’이라 함으로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로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는 매사에 하나님이 주어이고 자기는 목적어였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인정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평신도들이 사모하는 성공적인 신앙인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요셉에게 배워야 할 것은 단순히 그의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진정으로 형통한 삶은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과거 세상 성공을 꿈꾸며 자기만을 위해 살던 자를 학창시절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캠퍼스 시절부터 여러 모양으로 훈련하시고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을 만한 자로 빚으셨습니다. 학창시절 바쁜 학과 공부 가운데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믿음의 기초를 놓게 하셨습니다. 수련의 시절에는 한 교수님에게 무시당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인정만 바라는 믿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개업 후 창세기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말씀으로 비전 가운데 가대 개척역사 방향을 주시고 가대 캠퍼스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며 말씀으로 먹이고 섬기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안 좋아지는 영적 환경 속에서 뭇별은 고사하고 양 한 사람 감당하는 것도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OECD 국가 중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소아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소아청소년과에 직격탄으로 되고 있습니다. 요즈음 환자가 많이 줄어들면서 남는 시간에 유투브를 보다 보면 정치, 경제, 외교, 안보, 교육 할 것 없이 총체적인 난국을 맞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로 인해 암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은 열심히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고 있었지만 현실 문제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마음이 좁아져 양들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역사에 마음을 드리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저에게 유럽 수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를 보며 은혜 받게 하셨습니다. 지난 50년간 척박한 유럽 땅에서 문화적 충격을 이기고 묵묵히 믿음으로 헌신하며 복음의 씨를 뿌리신 선교사님들의 헌신을 통해 현지 목자들이 서게 하시고 이제는 2세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자라나 믿음의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어진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한 믿음과 지혜와 힘을 주시고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장에 눈에 보이는 성공을 주시기보다 훈련을 통해 먼저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믿음의 사람으로 빚으시길 원하십니다. 현재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더라도 실망하거나 조급하지 않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나를 이 시대 목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고 이 땅까지 낮아져 오신 예수님의 삶을 배우기에 힘쓰고 죄 가운데 고통하며 죽어가는 양들을 살리는 구원역사에 쓰임 받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형통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요셉은 노예생활을 할 때나 감옥살이를 할 때나 총리생활을 할 때도 그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감옥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천국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환경을 이기고 연약함을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교만을 이기고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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