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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3-08 (일) 13:35
분 류 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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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로마서 제19강] 복음의 동역자들

2020년 로마서 제 19강
말씀 : 로마서 16:1-27절
요절 : 로마서 16:3,4절

복음의 동역자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오늘 본문에는 바울 서신 중 가장 많은 이름들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인가’ 하나씩 찾다보면 많은 시간이 소모됩니다.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그런 수고를 쏟는 것보다 더 어려운 점은 ‘굳이 본문으로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입니다. 본문 말씀을 창세기나 출애굽기에 나오는 족보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말했습니다. ‘그냥 문안하자라고 하면 될 것을..., 차라리 이 시간에 로마서의 핵심을 다시 정리해주면 안되나요?’
우리의 심정은 그럴지라도 본문 이름의 주인공들은 천국에서 섭섭할 것입니다. 여기에 이름을 기록한 사도 바울 또한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거대한 세속도시 로마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신앙의 빛을 발한 사람들이며 헌신적으로 생명구원역사를 섬긴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기쁨과 감사로 가득했을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 믿었을 것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알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믿음으로 말씀을 증거하오니 우리 모두에게 기쁨으로 영접하는 말씀으로 와 닿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 뵈뵈 자매를 로마교회에 추천했습니다. 고린도와 로마를 오가며 장사를 했던 뵈뵈가 로마서를 전달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당시 사회는 여인들을 무시하고 비인격적으로 대우했습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여자도 사람인가’ 라는 주제로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논쟁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대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했습니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미국은 1920년에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습니다. 영국은 1928년, 일본은 1945년, 프랑스 1946년, 스위스는 놀랍게도 1971년이 되어서야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주었습니다. 따라서 뵈뵈가 로마서를 가지고 왔을지라도, 그녀를 무시하기 쉬웠습니다. 바울은 뵈뵈를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주기를 부탁합니다.(2) 이는 뵈뵈가 여러 사람들과 바울을 헌신적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별이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헌신적인 사람을 존경하고 소중히 대했습니다. 헌신된  사람을 존경하고 높이는 분위기에서 헌신된 사람들이 탄생합니다. 하나님은 헌신된 사람들을 존경하고 높이는 모임을 축복하여 주십니다.

바울은 3-16절까지 총 26명의 사람들에게 문안합니다. 가장 먼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문안합니다.(3) 로마? 하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바울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AD47년 로마황제의 추방령에 의해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내려왔다가 바울을 만납니다.(행18:2)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을 알아봅니다. 자기들의 양이 아닌데도 서로가 서로를 귀히 여기고 낮에는 같이 복음을 전하고 밤에는 같이 텐트를 만들어 팝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고린도에서 18개월동안 머물면서 바울의 고린도 개척에 큰 힘을 실어줍니다. 그들은 바울과 함께 개척역사의 고난과 아픔을 같이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갈 때에도 같이 동행합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을 죽이려고 폭동이 일어났을 때에도 목숨을 걸고 바울 편에 서서 바울을 지켰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헌신적으로 개척하고 모범적으로 동역한 가정교회의 모델입니다.(5a) 이는 남편이나 아내 어느 한쪽만 잘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남편도 영적이어야 하고 아내도 영적이어야 합니다. 탁월한 사람들일수록 자기를 굽히고 다른 이들과 동역하는 것을 어려워할 수 있습니다. 자기 나름의 소신과 체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도 바울처럼 제자들을 세우고 복음역사를 섬길 충분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구약성경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증할 수 있는 아볼로같은 탁월한 제자를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굽히고 동역하기보다 상대방을 판단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영적인 사람도 어느 순간 그런 어두운 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다른 쪽에서 방향을 잘 잡고 영적으로 균형을 잡아주면 동역의 과정에서 오는 고비 고비를 넘을 수 있습니다. ‘당신, 피곤한 것 같아서 신경 쓰지 않도록 그렇게 한 것 같아요. 평소에 당신을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좋은 마음으로 하고 있으니까 믿어주고 기도로 지원해요’ 성숙한 남편 뒤에는 성숙한 아내가 있습니다. 열심을 내는 아내 뒤에는 이를 귀하게 여기고 지원하는 남편의 외조가 있습니다. 그런 가정교회가 아름다운 동역을 만들어내고 풍성한 제자양성의 근원이 됩니다. 복음역사는 독불장군의 역사가 아닙니다. 일대일 목자 한 사람의 힘으로 제자를 키울 수 없습니다. 섬겨주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도 있고 박수쳐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선교사들이 서로 사랑하고 합심하는 선교현장에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반면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들이 모여도 동역하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를 담을 수 없습니다. 뛰어나기에 더 잘 싸우고 열매가 있기에 더 빨리 분열합니다. 동역하려면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자기 영광, 자기 유익을 내려놓는 자기 죽음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바울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의 동역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은 생명의 동역자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운데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처럼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자기를 비우고 동역하는 분들을 많이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려운 시대가운데에도 끊임없이 제자양성역사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숙한 믿음의 가정들을 계속하여 세워 가시기를 기도합니다.

5b절을 보십시오. 세 번째로 적힌 이름은 에배네도입니다. 그에 대한 바울의 소개는 아시아에서 전한 복음을 처음으로 영접하고 제자로 남은 사람, 아시아 개척역사의 조상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아무도 없는 가운데 가장 먼저 제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자기보다 앞서 본이 되어주는 선배나 동료가 있다면, 그 사람 하는 대로 하기만 하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지할만한 사람, 본이 될 만한 사람 아무도 없고 내가 처음이라면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원하든 원치 않든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 많은 청년들이 개척교회보다 대형교회로 몰려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조상으로 부르심을 받지만, 부담감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조상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떠나갑니다. 개척역사의 가장 큰 수고는 믿음의 조상 한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조상으로 세우기 위해 25년 넘게 씨름하셨습니다. 선교사들도 첫 제자를 세우기 위해 5년, 10년 수고합니다. 그런 수고와 헌신을 거쳐 한 사람이 세워지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힘과 비전이 생깁니다. 한 사람 믿음의 사람은 개척역사의 기초입니다. 에배네도는 바울에게 이방인 사도의 확신을 가져다 주었고 힘있게 선교사역을 감당할 힘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첫 열매인 에배네도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습니다. 복음전파가 어려운 시기에 에배네도같은 사람은 목자에게 황량한 시대를 섬기고 넘어서는 징검다리가 되어줍니다. 우리가운데 에배네도같은 믿음과 순종의 사람들을 세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네 번째 사람은 마리아입니다. 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여러 마리아가 있듯이, 당시에도 여러 마리아가 있었고 어떤 마리아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많이 수고한 마리아입니다.(6) 본문에는 마리아외에도 많이 수고한 여인들이 나옵니다. 12절의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자매들이 주 안에서 수고했습니다. 버시도 주 안에서 많이 수고했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26명의 이름 가운데 남자가 17명이고 여자가 9명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수고했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인들입니다. 복음역사를 보면 대체적으로 여인들이 더 희생적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제자들은 대부분 도망쳐 버렸는데, 여인들은 끝까지 남았습니다. 수고하는 여인들이 있는 곳에 양들이 모이고 제자들이 자라납니다. 우리 모임도 부지런하고 헌신적인 여인들로 인해 견고한 복음역사의 기초가 놓여졌습니다. 헌신적으로 수고하는 여인들을 계속하여 세워주시고, 우리 또한 그들을 존경하고 귀히 여기는 모임 되기를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바울의 친척이면서 바울과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있습니다. 이들은 바울보다 먼저 복음을 영접하고 사도들의 존중을 받을 만큼 신실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아마 바울의 회심과 헌신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나 홀로 결단과 나 홀로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한 사람 변화의 이면을 보면, 알게 모르게 울타리가 되어주고 샘플이 되어주고 지지자가 되어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가운데 믿음의 사람이 있으면 큰 힘과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가운데에도 이러한 역사가 있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각 사람이 서로에게 가족과 친척처럼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암블리아(8), 우르바노와 스다구가 어떤 사람들인지 남아있는 기록은 없습니다.(9) 다만 고대 문헌을 검색해보면 노예들에게 흔히 주어지는 이름이었습니다. 노예로 살고 있거나 노예로 살다가 해방된 사람들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10,11절을 보면 전혀 다른 신분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아벨레는 로마의 귀족이었습니다.(10) 그에 대해 ‘그리스도안에서 인정받았다’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단순히 예배에 출석하는 정도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귀족같지 않은 귀족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방탕한 쾌락 문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끊임없이 파고드는 모든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군림하고 주장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낮아지고 섬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아리스도불로는 헤롯대왕의 손자입니다.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이라면 왕족일 것입니다. 헤로디온은 ‘헤롯가문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바울의 친척이면서 헤롯가문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11) 나깃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측근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가족 중에서 누군가 로마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바울이 구체적으로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의 신분을 보호해주려는 의도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12절부터는 다시 노예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드루배나, 드루보사는 당시 부드럽고 섬세함을 가진 여자 노예들에게 주로 붙여지는 이름이었고, 버시는 ‘페르시아에서 끌려온 여자 노예’에게 붙여지는 이름이었습니다. 13절의 루포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 형틀을 지고 올라간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입니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의 아내와 아들까지 구원을 받았습니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은 적극적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14,15절은 공동체에 관한 인사입니다. 야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이라고 말씀합니다. 노예들끼리 모여 예배를 드리는 노예공동체, 노예선교회였습니다.(14) 15절의 빌롤로고와 율리아는 아빠 엄마를,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는 그들의 자녀였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가정교회였습니다. 로마에는 다양한 계층, 다양한 부류의 성도들이 있었고 노예교회나 가정 교회처럼 다양한 모습의 교회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름이 나열된 것을 보면 특정한 법칙이 없어 보입니다. 어떤 이가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쓴 것이 아닌가요?’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이 정답이라 생각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순서대로 안부를 묻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에게 안부를 물었다가 노예들에게 물었다가 귀족들에게 물었다가 다시 노예들에게 물었습니다. 바울이 살던 시대는 남자와 여자, 귀족과 노예의 신분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왕족이나 귀족에게 문안해야 좋을 것 같습니다. ‘로마 교회에는 이런 상류층 사람들도 나옵니다.’ 좋은 선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여자들 그리고 노예들 순으로 문안하는 것이 세상의 방식과 맞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인간적인 것을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문안인사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소중하고 누구든지 사랑스러운 동역자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노예이든지 귀족이든지 남자이든지 여자이든지 주 안에서 별처럼 빛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라는 말씀을 11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 밖에 있을 때에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유대인들만 빛나는 사람으로 알았고 이방인들은 기생충같은 인간들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영접하시고 사도로 삼아주신 주님의 은혜안에 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바울이 예수님 안에서 이방인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헬라인도 사랑하고 로마인도 사랑하고 땅끝 서바나 사람들도 사랑했습니다. 귀족도 소중하고 노예도 소중하고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소중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품에 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로마서에 기록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은 바울의 가슴속에서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느 자리에 있든지 택하신 자들을 천하보다 소중히 여기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동역자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러하실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교제를 하기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입맞춤은 당시 사회에서 인사할 때나 헤어질 때 평화와 우정의 표시였습니다. 세상은 같이 마시고 먹고 부르고 흔들면서 가까워집니다. 우리가운데 멍석만 깔아주면 정말 끝내주게 놀 수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친밀한 교제만 있고 거룩함이 없으면 자칫 인정과 정욕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거룩하게 입맞춤하라고 말씀합니다. 진실함과 순수함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서로 격려하는 교제입니다. 우리가운데 소감모임이 대표적인 거룩한 교제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소감쓰기가 쉽지 않아서 소감모임을 통해 교제하는 것인지, 고통받는 것인지 헷갈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말씀을 주제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회개를 나누고 예수님을 배우는 믿음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거룩한 교제입니다. 그런 교제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날수록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하나님의 기뻐하는 모임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일대일 성경공부도 목자와 양이 거룩하게 사귐을 갖는 영적 교제입니다. 요즘 밤 10시마다 기도제목을 가지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 또한 거룩한 입맞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마음을 쏟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야말로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교제입니다. 우리 모임이 거룩한 교제로 하나님의 뜻을 세워나가는 사람들로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여기에서는 지금까지의 분위기와 완전히 다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초대교회라고 해서 완벽한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사람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문제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운 교훈대로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불평과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치게 하는 자들’이란 ‘저 사람 때문에 신앙생활 안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을 살피고 쫓아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갈등을 만들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마다 쫓아버린다면 우리가운데 남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제까지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이 오늘 회개하고 훌륭한 동역자가 되기도 하고 오늘까지 훌륭한 동역자가 내일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바울은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들처럼 불순종의 사람이 되지 않고 그들처럼 분쟁을 일으키는 자가 되지 않도록 자기를 지키고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분쟁을 일으키는 근본 이유는 그리스도를 높이려고 하기보다 자기들의 배를 만족시키려는 것입니다.(18) 그를 위해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마음속 밑바닥을 숨기고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을 볼 것이 아니라 삶의 열매를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선한 일에는 지혜롭고 악한 일에는 미련해야 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성도들을 흔들어서 선한 일에 회의하고 악한 일에 충동을 받도록 도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평강의 하나님은 속히 사탄의 세력을 박살내시고 온전한 승리를 주실 것이니,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20) 우리에게 이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1-24절은 바울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로마교회를 향해 문안하는 내용입니다. ‘바울 외 8명’, 자기 외에 나머지는 도매금으로 넘기지 않고  하나 하나 소개하고 있습니다. 동역자 디모데,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21) 편지를 대신 기록하는 더디오, 교회의 실제적인 서포터인 가이오, 재정실무자 에라스도, 형제 구아도를 소개합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있는 동역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을 높이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이제 로마서를 끝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에 힘썼습니다.(25) 그것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예언된 것이었는데,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완전히 드러났습니다.(26) 하나님은 복음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견고하게 서게 하십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비밀을 우리에게 드러내어 주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 것입니다. 아멘!(27) 로마서 말씀으로 복음의 능력을 알게 하시고 복음의 제사장으로 세워 가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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