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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3-15 (일) 12:15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3강-1.hwp (29KB) (Dow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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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3강]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2020년 마태복음 제 3강
말씀 / 마태복음 3:1-17절
요절 / 마태복음 3:2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말씀으로 봄학기를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며 헬라어 성경을 자유자재로 인용할 만큼 똑똑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세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두 극단의 세계를 오갔습니다. 가장 종교적인 세계에서 태어나서 가장 세속적인 세계로 갔던 사람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인생의 굴곡을 겪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극단의 세계를 오갔다는 것은 자기 원대로 반드시 해봐야 하는 사람이었음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그가 이 땅에서 얻은 것은 깊은 절망과 돌이킬 수 없는 후회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나를 따르라’, 주저하지 않고 제자로 출발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이 땅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보았던 것입니다. 돈이 줄 수 없고 유대 전통에서 찾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천국이라는 단어를 즐겨쓰는 이유일 것입니다. 천국복음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입니다. 잃은 자를 찾아 하늘백성으로 삼으시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과 비교되지 않는 하늘 백성의 윤리와 가치관을 담고 있습니다. 상한 갈대와도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도 같은 사람까지도 제자로 이끌어가는 복음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말씀이 현실문제와 질병이 가득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생명을 공급해주는 복음으로 와닿기를 기도합니다. 이 땅의 어둠을 이기고 하늘 백성으로 살게 하시는 복음 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유대광야에서 외쳤습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란 원어로 ‘메타노에오’, ‘후에 알아차리다, 뉘우치다’라는 뜻입니다. 회개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회개을 외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라! 이는 이방인 혹은 문제많은 죄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으로만 여겼습니다. ‘이방인들? 당연히 회개해야지, 하나님도 안 믿고 할례도 안하고 안식일도 안 지키는데...’, ‘세례와 창녀들, 도둑이나 살인자들, 당연히 회개해야지’, 반면 할례도 행하고 안식일도 지키며 뚜렷하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보통의 유대인들은 특별히 회개할 것 없는 사람으로 인식했습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OO목자, 회개해야겠어”라고 말하면, ‘목자님, 왜 그러세요? 절 어떻게 보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고 말할까요? ‘그래요, 저를 제대로 보셨네요. 제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어요.’라고 말할까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회개의 메시지가 아닌 회복의 메시지를 원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로마의 식민지로서 전쟁과 기근의 고통을 겪었고 만만치 않은 현실문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로마로부터 해방되어 다윗왕국 시대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는 그런 메시지를 원했습니다. ‘그 날의 영광을 다시 찾게 되리라, 질병이 사라지고 경제가 속히 좋아지리라’

그런데 세례 요한은 힘들게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스라엘의 근본 문제는 경제문제, 정치문제, 상황문제가 아니라 ‘회개 없음이 문제다’라는 메시지입니다. 세례 요한은 종교적인 예식 이면에 감추어진 유대인들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돈에 목마르고 정욕에 목마르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회개가 없으면 회복이 없습니다. 죄를 짓고 어두운 생각에 빠지면  불신에 빠지게 되고, 또다시 죄를 짓고 더 큰 어둠에 빠지는 악순환을 겪게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은 끝없이 추락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이를 능히 알리요”(렘17:9) 파리바게뜨 파운드케익은 일주일을 놔두어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릅니다. 사람의 말 한마디에 하늘을 날기도 하고 땅 속으로 꺼지기도 합니다. 어느 때에는 천사의 마음이었다가 어느 때에는 악마처럼 나쁜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처음의 좋았던 마음을 그대로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서로사랑했던 남편과 아내의 마음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젊고 스피릿이 충만했을 때에는 나와 결혼해준 배우자가 구원자처럼 고맙고 감사했는데, 이제 나이를 먹고 시들어가는 꽃처럼 되어 가면, 내가 배우자를 구원해 준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마음도 그렇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감사와 희망으로 공부를 시작했던 학생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세계 어느 대학이라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공부하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했던 마음이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책을 보다보면 처음과 전혀 다른 마음으로 달라집니다. 억울하고 불쌍한 희생자처럼 스스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고 해방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고개 숙여 경배하며 감사했습니다. 홍해바다의 갈라진 길을 지나 더 이상 애굽 군대가 쫓아올 수 없는 광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온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런데 홍해를 지나고 3일이 지나 물이 떨어지자 불평합니다. 양식이 떨어지자 모세에게 죽일 듯이 달려가서 화를 냅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는가! 애굽의 노예로 살아도 고기를 구워먹던 그때가 정말 좋았어...”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엔트로피 법칙처럼, 인간의 마음을 가만히 놔두면 감사에서 불평으로, 겸손에서 교만으로, 희생과 섬김에서 욕심과 자기변명으로 흘러갑니다. 회개는 그렇게 변질되어버린 것을 알아차리고 뉘우치는 것이며,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 탓, 상황 탓하며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 아니하고 내가 연약하고 내가 불신하고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문제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정욕과 욕심의 유혹을 잘라내고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회개는 머리의 문제보다 마음 문제입니다. 몰라서 회개하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적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 회개하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물리의 세계 뿐만 아니라 인생여정에도 관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술에 중독된 사람은 술 때문에 망가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술을 끊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정욕이나 세상의 어떤 쾌락들은 낚시바늘처럼 영혼의 약한 부분을 파고듭니다. 살을 찢고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자 결단하지 않으면 낚시바늘을 빼어내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운명주의와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도전하고 개척하는 것을 죽는 것처럼 무서워합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공부 중에 물었습니다. “목자님, 회개하면 달라집니까?” 회개하면 달라집니다. 물론 사람이 뉘우치는 것으로만 달라지기를 기대한다면, 그런 회개는 우울증에 불러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회개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오르지 못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다가 절망을 가져옵니다. 요한은 회개하는 자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칩니다.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은 누구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김밥천국은 가까이 있지만 천국은 저 우주보다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나이 먹고 병들고 죽음이 다가오는 그때나 생각해야 할 주제처럼 생각합니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으로  끝나버린 사람이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14:17절은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천국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오심으로써 어떠한 죄인이든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회개와 천국은 한 세트입니다. 회개가 없으면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일 수 없고 예수님을 통해 주어지는 천국을 누리지 못합니다. 천국을 누릴 수 있도록 예수님이 오셨고, 그러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는 자들에게 죄사함을 주십니다. 성령을 보내어 주셔서 때마다 어둠에서 나오도록 인도하십니다. 고난과 시련을 이길 말씀과 용기를 얻게 하십니다. 은혜의 체험과 불같은 시련을 번갈아 주심으로 연단하시고 성장하게 하십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지난 주일 어떤 목자가 학생들과 운동하고 저녁을 손수 지어서 양들을 대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기에 무척 피곤할 터인데도 목자로 사는 기쁨과 감사가 충만했습니다. 어떤 분은 단군 이래 가장 힘든 불황으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로마서 말씀을 통해 구원의 은혜와 동역자들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어 감사가 충만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천국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봄날이 왔지만 세상은 칠흑같이 어둡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으며 WHO는 팬데믹을 선언했습니다. 우리나라와 세계 증시가 폭락했으며 전 세계적인 불황이 덮쳐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마음에 파고드는 어둠을 물리쳐야 합니다. 봄이 오면 사람들은 옷을 바꾸어 입습니다. 귀찮다고 하여 겨울옷 그대로 입고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와 같이 봄날 같은 천국을 누리려면 우리 마음의 옷도 부지런히 바꾸어야 합니다. 두려움과 염려의 옷을 벗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빛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세상이 힘들수록 사람들은 빛을 발하는 사람들을 찾습니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며 흔들임 없이 경건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찾습니다. 우리의 양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천국백성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시대가운데에도 새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는 세상이 안전하지 않으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만이 참된 소망임을 알게 합니다.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욕심을 회개하고 천국 백성으로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감추어진 악의 무리를 드러내고 멸하고자 맹렬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눈 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대로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경건에 힘쓰며 두려움에 빠진 자들을 일으키고 사랑으로 돌아보기에 힘써야 합니다. 어둠의 생각을 회개하고 이 싸움에 가장 앞장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통해 천국 복음이 힘 있게 증거되기를 기도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은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와서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킬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바벨론과 헬라와 로마에 의해 고통당했습니다. 그로 인한 상처가 골짜기처럼 패인 영혼을 만들어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선민의식과 교만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오는 것을 산처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왜곡된 그리스도관을 가진 자들도 있었습니다. 패인 상처를 메우고 교만을 깎아내고 비뚤어진 생각을 바로잡아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말라기 4:6절은 엘리야가 와서 그 일을 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이 낙타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은 이유입니다.(4) 자신을 엘리야로 인식하고 엘리야 패션을 하고 엘리야 스타일로 광야에서 섬긴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중요하게 기록했습니다. 1,2장과 4장 사이 한 장에 걸쳐 끼워 넣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정통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와 그리스도는 한 세트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면, 예수님 앞서 오는 엘리야가 있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엘리야의 사명을 감당하고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감당함으로 구원역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요즘 신천지 이단으로 인해 온 나라가 힘듭니다. 신천지가 이단인 줄 모르고 우리와 같은 교회로 아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커지고 있으며, 특히 그들이 우리 모임을 많이 벤치마킹하였기에 많이 당혹스럽습니다. 이단의 특징 중 하나는 교주들의 이야기가 때마다 달라지는 것입니다. 교주들 대부분 처음에는 스스로를 선지자 혹은 사도 정도로 소개하며 출발합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좀 더 모이면 엘리야 혹은 마지막 사도라고 명칭을 올립니다. 그러다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게임 등급을 올리듯이 그리스도로 등급을 올립니다. 그래도 더욱 인기를 끌면 불멸의 하나님으로 승급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철저히 그리스도를 높이며 엘리야의 길을 가고, 그리스도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대속제물의 길을 갑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기 본분을 끝까지 지키는 자들이 천국백성입니다. 불법이 횡행하고 개념이 사라지는 시대가 되어갈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본분을 지키기에 힘써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부르심과 사명을 따라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5) 그리고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6)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이 죄사함이었습니다. 7절을 보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까지 세례 베푸는 곳으로 왔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유대사회의 리더들입니다. 그러므로 덥썩 환영하기 쉬웠습니다. “귀하신 바리새인님이 오셨네요 아니, 사두개인님도 찾아와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들을 향해 충격적인 메시지를 날립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독사의 자식’이란 표현은 ‘dog baby'보다 훨씬 심한 표현입니다. 왜 이리 심한 말을 던지는 것입니까! 8,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겉으로는 세례를 받고 있지만, 속으로는 자기의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아브라함의 자손이잖아, 저런 죄인들과는 급이 다르지‘, 회개 같으면서도 회개 아닌 이상한 생각입니다. 그들은 위선과 형식주의의 독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의 자손다워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 있고 나그네를 섬기고 한 영혼을 돕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답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며 더 많이 회개해야 합니다. 인간은 타이틀을 자랑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그런 것들은 돌처럼 흔한 것들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습니다. 위기상황입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이면 찍혀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당장 찍어낼 수도 있고 점심 먹고 오후 4시에 찍어낼 수도 있습니다.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기회가 왔을 때 회개해야 합입니다. 사탄 마귀의 전략은 ‘회개하라 그러나 지금이 아닌 다음에 하라’입니다.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다음에 회개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어렵습니다. 회개할 마음을 갖는 그때가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때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과 불로써 세례를 베풀어주십니다.(11)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 성령이 찾아오십니다. 성령이 함께 하며 악하고 불순한 것을 태우고 소멸하여 열매를 맺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예수님은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결케 하는 농부와 같습니다.(12) 손으로 농사를 짓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농부들은 곡식을 추수하여 키질을 합니다. 하늘에 던졌다가 다시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가고 알곡만 남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 불에 태웁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겉보기에는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알곡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속이 차는 것이며, 쭉정이는 시간이 지나도 속이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쭉정이는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주력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 깊숙한 곳까지 말씀을 적용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하십니다. 요한이 당근 예수님을 말립니다.(14)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마땅할 터인데, 왜 제게 받으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 개인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요한에게 세례 받는 것은 불공정한 취급을 당하는 불의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모든 의’가 무엇입니까? 세례를 받음으로써 구약에서 세례 요한까지 내려온 하나님 역사를 계승하는 것입니다. 또한 죄인들의 대표로서 대속의 길을 가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례 받는 자리까지 내려오신 것은 완전한 회개의 모델입니다. 회개에도 저마다의 수준이 있습니다. 불법을 저지른 것을 회개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회개입니다. 도덕적인 회개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 사랑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사는 것을 뉘우치는 것입니다. 최고 수준의 회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사모하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회개입니다. 예수님은 만민구원역사를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아들의 자리에서 내려오셨고 죄인의 자리에 섰습니다. ‘그래 이번 한번만이다!’ 이를 악물고 잠시만 버티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이어집니다. 아무 죄가 없는 분이 흉악한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향해 외쳤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우리로 믿게 하라” 예수님은 그 모든 멸시와 조롱을 묵묵히 참으시고 끝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자,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였습니다.(16) 그리고 하늘로부터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17)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한 자리에 함께 하신 놀라운 장면입니다.
사람들은 높아지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칼날처럼 마음을 세웁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세상에서 대우받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리에는 하늘나라가 없습니다. 죄인의 마음을 녹이는 은혜가 없고 교만한 자들을 굴복시키는 진리의 힘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기 자리에서 내려오는 그 사람에게 성령의 평안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믿음과 확신을 갖게 합니다. 그들이 삶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세상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역사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날마다 회개함으로 하늘 백성으로 살고 하늘의 메시지를 남기는 사람들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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