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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4-19 (일) 12:31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부활절마태28장-1.hwp (28KB) (Down: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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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부활절 특강]그가 살아나셨느니라
2020년 부활절 특강
말씀 / 마태복음 28:1-20
요절 / 마태복음 28:6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한 후 첫 번째 부활절 예배입니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코로나를 종교개혁이나 산업혁명 혹은 세계 대전같은 역사적 분기점으로 전망합니다.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역사의 분기점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죽음이 왕노릇하던 시대를 끝내고 생명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인류역사에서도 BC와 AD를 나누었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수님 부활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봄으로써 부활의 증인들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안식 후 첫날의 새벽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지 사흘째였으며, 고통과 어둠으로 끝없이 추락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도망쳐 숨어있는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님 무덤으로 향하였습니다. 여인들은 수제자 베드로보다, 애제자 요한보다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시체에 향품을 발라드리며 목 놓아 통곡이라도 하면서 마지막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그들의 진심을 슬픈 사랑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차라리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아니 예수님을 적당히 따랐더라면 이리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이 컸던 것만큼, 죽음은 치명적인 상처로 와 닿았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덤 가까이에 왔을 때였습니다. 땅에서는 지진이 일어나고 하늘에서는 천사가 내려와서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는 것이었습니다.(2) 천사의 형상은 번개처럼 빛이 났고 그 옷은 눈같이 희었습니다.(3)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은 너무 무서워서 죽은 자처럼 꼼짝도 못하게 되었습니다.(4) 그런데 이는 여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인들 또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5) 지금 여인들이 찾고 있는 예수님은 승리와 영광의 주님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임당한 예수님, 고통의 주님, 슬픔과 무기력의 주님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악이 선보다 강하며, 세상의 어둠이 빛보다 강함을 말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저 이론일 뿐, 현실은 어둠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남고 맙니다. 죽음 그 이상의 세계를 생각할 수 없다면, 세상의 어떠한 영광이나 가치도 그 빛을 잃어버립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중풍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통해 죽음의 강력함을 느꼈습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아버지의 눈물을 통해 죽음 앞에 인간의 연약한 한계를 보았습니다. 군병원에 배치되어 응급실 위생병으로 근무하면서 눈앞에서 두 명의 청년들이 숨을 거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들의 시신을 보기 위해 엉엉 울며 영안실로 가는 죽은 병사의 어머니를 보며 깊은 슬픔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꽃다운 청년의 때에 세상을 등진 양을 보았습니다. 예기치 못한 죽음이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올 때, 죽음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다면, 불신자이든 믿는 자이든 한없이 당황하고 슬프고 무서울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만 찾는다면 절망과 두려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천사는 그러한 여인들을 향해 놀라운 메시지를 전합니다.(6)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여기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천사는 예수님의 부활을 지극히 당연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대로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난받고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은 반복하여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 부활을 예고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것만 해도 최소 세 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고했습니다. 부활은 어느 날 뜬금없이 이루어진 기적의 역사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예고되었으며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빈무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고대세계에서 세상의 권력자들은 무덤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진시황의 지하무덤이 대표적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홍릉, 의릉, 태릉, 강릉, 수많은 왕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무덤의 크기는 살아생전에 누렸던 권력과 업적을 상징합니다. ‘나, 이런 사람이야!, 나 이 정도 했어’, 무덤 안에 온갖 것을 채우고 겉은 크고 웅장하게 꾸밉니다. 이 땅의 영광을 놔두고 한 줌 흙으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와서 그렇게 기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무덤을 찾지 않습니다. 천사는 빈무덤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가 죽으셨던 곳이 아니라 누우셨던 곳, 부활의 현장을 보라고 했습니다. 천사의 메시지 그대로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빌라도 총독의 명령으로 큰 돌로 인봉하고 100여명이 넘은 군대를 동원하여 지켰던 무덤이었는데도 비어 있었습니다. 빈 무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부활의 역사를 증거합니다. 또한 빈 무덤은 이 땅이 아닌 영생하는 하나님 나라만이 참된 소망임을 말씀합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빨리 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라고 말합니다.(7) 7절을 보십시오.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여인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천사를 본 것도 놀라운데, 천사의 메시지는 여인들을 더욱 놀라게 했을 것입니다. 여인들은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8절을 다시 보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달려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는데도 무엇을 무서워하고 있는 것입니까! 9절을 보면 여인들은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평안하냐” 놀라지말고 무서워하지 말고 평안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들이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합니다. 그런데 10절 말씀을 보면 여인들은 여전히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 무서움은 무엇입니까? 그만큼 죽음이 우리의 이성과 경험을 사로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인들은 끔찍하게 죽임당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처절하게 피를 흘리며 죽으신 예수님이 정말 다시 살아나신 것일까? 혹시 유령이 아닐까? 그런데 예수님의 발을 붙잡아보니 유령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무엇일까? 우리가 십자가에서 보았던 그 분은  예수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던 것일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머리가 뒤죽박죽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부인할 수 없는 팩트는 살아나신 예수님이 여인들 앞에 계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뭐가 뭐인줄 몰라 혼란스럽고 무서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자들조차 그러했으니, 그렇지 않는 자들은 어떠하겠습니까!

11-15절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기보다 가짜 뉴스를 만드는 자들이 나옵니다. 여자들이 부활을 증거하러 갈 때, 경비병들은 성에 들어가서 무덤에서 일어난 전후사정을 보고했습니다.(11)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모여 신속하게 대책회의를 펼칩니다.(12) 그들이 내어놓은 해법은 회개가 아니라 돈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하는데, 그들은 군병들에게 뇌물을 먹이고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소문을 내라고 지시합니다.(13) 만일 총독의 귀에 들어가 문책을 당하게 된다면 자기들이 책임지겠다며 안심시킵니다.(14) 그러자 군인들은 돈을 받고 예수님의 시체를 도난당했다며 거짓 소문을 냅니다.(15)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수많은 증인들을 갖고 있습니다. 고전15:5-7절은 말씀합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군인들은 그러한 증인들보다 가장 먼저, 가장 생생하게 부활의 현장을 목격했기에 누구보다도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돈사랑 때문에 부활을 은폐하고 거짓을 조작하는 악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인류 최대의 사건,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하게 와 닿지 않습니다. 영생이 아닌 이 땅의 유익과 영광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부활을 부인하는 목소리에 더 마음이 끌립니다. “시체도둑설, 기절설, 대신죽음설, 유령설, 제자조작설 ...”을 만들어냅니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죽기를 무서워하여 도망쳤던 열두 사도들이 주와 복음을 위해 그리 용감하게 순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열두 사도만 그리한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 가짜라면, 그들은 거짓 신념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바울은 끝까지 박해자로 살다가 인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의 책이 아니라 인간의 희망사항을 그럴 듯하게 담아낸 동화책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부활의 메시지를 들은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님이 지시하신 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했습니다.(17) 하지만 그들중에는 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경배하든지 의심하든지,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전의 모습과 차원이 다른 모습이 되었습니다. 겉모습만 변형이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전 예수님은 가난하고 볼품없고 항상 낮은 자리에 서서 섬기셨습니다. 세상 권력자의 채찍에 맞고 조롱을 당하고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으로서 능력과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하늘의 권세는 천사들과 생명들과 죽음과 지옥과 영적 세계의 모든 권세입니다. 땅의 권세는 자연과 질병과 역사와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주권으로 코로나같은 질병을 영원히 사라지게 할 수도 있고 매년마다 창궐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고 우리 인간의 지혜는 아무 것도 야닙니다. 일 년 전 이맘 때, 우리가운데 누가 코로나가 세상을 흔드는 이런 날을 상상이나 했습니까! 사람들이 자랑하고 신뢰하는 것들은 한순간이며, 봄날의 황사처럼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우리의 반석이며, 참된 소망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 우리의 안식처가 되십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로 제자들을 향해 명령하십니다. 19,2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명령은 한마디로 ‘제자 삼으라’입니다. 원문을 분석해보면 한 개의 동사, ‘제자삼으라’와 세 개의 분사, ‘가서, 세례를 베풀고, 지키게 하면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유대인도 제자 삼고 헬라인도 제자 삼는 것입니다. 중풍 족속도 제자 삼고 세리 족속도 제자삼고 니고데모족속, 사마리아 족속도 제자 삼는 것입니다. 부활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복음, 희망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에볼라 치료제인 렘데시비르가 코로나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미국 주식이 잠시 폭등했습니다. 전 세계가 치료제가 나왔다는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렘데시비르는 잠시 코로나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십니다.

죽음은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 혹은 우리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이든 아니면 먼 훗날이든, 원하든 원치 않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몇십 년 후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코로나19같은 전염병으로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은데,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 우리 인생이 그러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9,20절에서 고백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복음, 부활의 복음은 모든 인생들에게 참된 희망을 줍니다. 그러므로 지역을 뛰어넘어, 세대를 뛰어넘어, 민족을 뛰어넘어 예수님의 제자 삼아야 합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를 삼으려면 첫째로 가야 합니다. 누구에게 가야 합니까? 경희대 후문은 굳게 닫혀 있으며 캠퍼스 양들의 마음 또한 낯선 사람에 대해 굳게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습니다. 가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우리에게는 코로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잠시 보류해야 할 말씀, 지금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열한 제자들은 당시 극심한 박해 대상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인 것처럼 제자들을 찾아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고지를 향해 돌격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대라 할지라도 가서 도와야 할 사람들에게 가라는 명령입니다. 이리와 늑대 같은 사나운 박해자들만 있는 것 같지만, 그런 와중에도 양들이 있습니다. 아니, 힘든 시대일수록 더 힘들고 더 간절하고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양들이 있습니다. 목자는 힘든 생각, 어두운 생각으로 고개를 숙이지 말고 머리를 들고 눈을 열어 찾아가야 할 사람들을 보아야 합니다. 찾아보면 가야할 사람들이 보입니다. 친구도 있고 자녀도 있고 가족도 있고 오래 전 방치한 양도 있습니다. 심방도 갈 수 있고 SNS으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위기는 위험하면서도 기회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바쁜 일상에 끌려가던 고리가 느슨해지고 어느 때보다 대면 대면할 기회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금이 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믿음을 주사 찾아가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성부의 이름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창조신앙, 성자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신앙, 성령의 이름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신앙을 상징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와 권능 앞에 경외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성부의 이름으로 세례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희생과 한없는 은혜를 영접하고 무릎을 꿇도록 하는 것이 성자의 이름으로 세례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함께 하시며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주는 것입니다. 창조신앙 잆이 회개할 수 없고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죄사함이 없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어느 하나 땔래야 떼어낼 수 없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죄를 고백하고 긍휼을 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일 때, 죽음아래 있던 자들이 생명을 얻고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천성을 향한 거룩한 순례자가 됩니다.  

셋째,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20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한마디로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는 단지 성경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그 배운 바 말씀대로 순종하기까지 돕는 것이 성경공부의 근본 목적입니다. 머리는 커져가는데 삶에서의 순종이 없다면, 아직 제자삼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지식을 전달할 뿐 아니라 가르친 말씀대로 살아가기까지 도와야 합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정을 부인하고 책망도 해야 하고 반발을 각오하고 싸우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뒷감당을 하며 이해하고 품고 간절히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인내할 때, 제자를 낳게 되고 그 제자는 또 다른 제자를 낳게 됩니다. 물론 누군가를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누구나에게 쉽지 않습니다. 갈등하는 시간, 잠못 이루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가르치고 지키도록 섬길 때, 손해보고 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고 축복을 얻고 승리를 얻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복음역사가 계승이 되고 발전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됩니다. 예수님은 제자 삼는 역사를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비전을 가지셨습니다. 그 비전대로 제자가 제자를 삼아 지금 우리에게까지 내려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 삼는 이 길에 끝까지 남아있을 때, 부활과 생명의 역사는 우리를 통하여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로 흘러갈 것이며, 결국 다시 오실 예수님과 연결될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역사는 우리 힘과 의지만으로 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1장에서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로 시작된 복음역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완성됩니다. 세상 끝날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날까지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날에도 함께 하시고 고난의 날에도 함께 하십니다. 용기 가득한 날에도 함께 하시고 연약한 날에도 함께 하십니다. 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연단을 주시고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부활의 증인으로써 제자 삼는 이 길을 가야겠습니다.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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