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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4-26 (일) 13:31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8강-1.hwp (29KB) (Dow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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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8강]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늘 아버지
2020년 마태복음 제 8 강
말씀 / 마태복음 6:1-18
요절 / 마태복음 6:6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늘 아버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을 때, 힘들어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많았는데, 지금은 ‘좋다’는 목소리가 더 많습니다. 오가는 시간 아끼고 편한 자세로 들을 수 있고 느릿한 강의는 2배속으로, 쓸데없는 신변잡기적 내용은 건너뛰기 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본질에 집중하게 되어 좋은 것입니다. 신앙생활 또한 본질에 집중하게 될수록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제, 기도, 금식의 세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구제는 이웃을 향해,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 금식은 자신을 향한 행동입니다. 누구를 향한 것이든지, 은밀하게 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의 상을 얻게 하는 비결입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말씀을 통해 신앙의 본질에 이르는 믿음을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처음부터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을 보고’ 신앙생활을 출발합니다. 목자의 변함없는 사랑을 보고, 신뢰할만한 믿음의 친구를 보며, 혹은 부모님의 믿음을 따라 신앙생활을 출발합니다. 나 홀로 ‘필’을 받아 신앙 여정을 출발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사람과의 관계가 그리 중요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절망하여 믿음을 떠나기도 하고 감동을 받고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인생을 터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인정과 칭찬을 얻기 위해 움직이게 된다면 하늘 아버지의 상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의 상과 하늘 아버지의 상 중에서 어느 것이 매력적입니까! 예를 들어 목자가 전심으로 한 사람을 도왔는데, 그는 전혀 고마워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나의 수고와 진심을 전혀 몰라주었으니, 하늘 아버지의 상을 더욱 많이 받는 일을 한 것입니다. 나는 하늘 아버지의 상을 예약하였기에 더욱 기뻐하며 섬겨야 합니까? 아니면 억울한 마음, 손해의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음부터는 수고한 티를 팍팍 내어야 하는 것입니까? 극단적인 예를 든 것이지만, 신앙생활에서 업다운하는 문제의 대부분이 이런 것입니다. 사람의 상과 하늘 아버지의 상을 같이 얻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경우는 드뭅니다.

예수님은 세가지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첫째, 구제입니다.(2-4절) 2절을 보십시오. 당시 외식하는 사람들은 구제할 때에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원래 구제시에 나팔을 불었던 이유는 도움 받을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칭찬을 구하는 자들은 누구를 도와야 할지 뻔히 알면서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들을 향해 존경과 칭찬의 박수를 보내었고, 저들은 그런 맛으로 더욱 신나게 구제했습니다. 저들의 구제가 안타까운 점은 사람의 칭찬을 받은 것으로 끝나버리고 하늘 아버지의 상을 얻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구제하라고 말씀하십니다.(3)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지난해 연말 전주에서는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금 6천여만원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 큰 뉴스가 되었습니다. 얼굴 없는 천사는 2000년 4월에 불우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글과 함께 58만4천원을 주민센타 인근에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19년 동안 총 6억 834만 660원을 기부했습니다. 범인들은 올해도 성탄절을 전후하여 주민센터 근처에 놓고 갈 것으로 예상하여 주민센터 근처에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기부자가 기부금을 주민센터 근처 나무 아래에 놓고 주민센터에 연락하였고, 그들은 그 사이에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그냥 주민센터에 들어가서 전달해도 되는데, 굳이 얼굴을 알리지 않으려다가 그리 되었습니다. ‘끝까지 순수하다. 만약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 찍어주겠다’라고 말하는 시민들이 그리 많은데도 여전히 얼굴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보다 더 좋은 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선교사들, 동역자들, 양들을 돕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분들이 있는데, 은밀하게 돕는 그 세계에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이 얼마나 얄퍅한 것입니까!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허무함과 함께 사람의 영혼을 병들이기까지 합니다. 반면 하늘 아버지로부터 오는 상은 우리 영혼을 살리는 생수가 되고 참된 만족과 기쁨을 줍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40절에서 말씀했습니다. “여기 있는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누군가를 도울 때, 나를 도우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돈 사랑, 쾌락사랑의 시대분위기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깊이 알게 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얻습니다. 잠언11:24절은 말씀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라”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손해보고 망할 것 같지만, 더욱 풍성히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합니다. 현실문제가 심각할 때, 자기중심적으로 오그라드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은 것입니다. 상황과 형편에 상관없이 사람을 돕다보면  상대방보다도 먼저 나를 살립니다. 하나님은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당장의 결과에 요동하지 말고 변함없이 사람을 돕고 살리는 그 일을 감당함으로써 하늘 아버지의 상을 얻는 사람들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기도입니다.(5-15절) 5-8절은 기도의 자세, 9-15절은 기도의 내용을 말씀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내적 교제입니다. 사람의 칭찬을 받고 싶은 욕망이 가장 은밀해야 할 기도의 세계까지 뚫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당시 외식하는 자들은 기도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본래 공공장소에서의 기도는 이방문화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결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벨론이나 헬라같은 이방세계가 이스라엘을 점령했을 때, 다니엘 같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정해진 시간이 되면 아무리 바쁘고 급한 일이 있어도 모든 것을 스톱하고 그 자리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길에서도 기도하고 공공장소에서도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믿음의 사람으로 살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이리 좋은 전통을 이용하여 기도시간이 되면 집에 있다가도 밖으로 뛰쳐나와 회당과 거리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기도의 용사, 우리 시대의 희망’이라며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비극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아버린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골방’이란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작은 방입니다. 우리시대에는 골방이 없고 폰방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들이 문을 닫고 조용히 있는 아이들 방을 살며시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보도된 뉴스에 의하며 청년들이 일과시간 이후의 80%를 유튜브로 보낸다는 통계수치도 있습니다. 점점 발달하는 각종 IT기기는 골방을 빼앗고 있습니다. 화장실, 지하철, 학교 운동장, 등산 심지어 기도실까지 파고들어 조용힌 시간, 하나님과 대면할 시간을 빼앗아 버립니다. 충전없는 핸드폰은 방전되어 버리듯이, 골방에서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스피릿이 방전되어 버립니다. 몸이 불을 끄고 잠을 자야 쉼을 얻고 재충전되듯이, 사람의 영혼 또한 세상의 소리를 끄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재충전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는 사람들마다 그러한 기도의 비밀을 갖고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키운 그의 어머니 수산나는 17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수산나는 경건과 기도의 여인이었지만, 북적대는 아이들로 인해 쉴 수 있는 공간도, 조용히 묵상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도무지 기도할 시간과 장소를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단호히 결단하고 자녀들에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부엌에서 앞치마로 얼굴을 덮고 있으면 하나님과 대화하는 줄 알고 방해하지 말아라!” 그녀는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돌볼 수 없었지만, 기도로써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키웠습니다. 스펄젼은 19세기 가장 위대한 말씀의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교회는 청중들로 가득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몰려와서 그의 성공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때 스펄젼은 그들을 데리고 교회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는 무릎을 꿇고 부르짖으며 중보 기도하는 수많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기도가 우리 교회 부흥의 비결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은밀한 기도생활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리저리 낭비되었던 시간들을 세이브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는 기도의 시간을 삼아야 겠습니다.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동료들을 위해 기도하고 양들을 위해 기도해야 겠습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기도소리를 다 듣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중보기도하고 있는 줄 모를지라도 그들을 위해 줄기차게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를 기뻐하시고 은밀한 가운데 갚아주십니다.

은밀하게 기도하되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지 말아야 합니다.(7) 중언부언이란 주문 외우듯이 반복하여 중얼대는 것입니다. 양으로 승부를 보려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그들처럼 기도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하늘 아버지께서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8)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어느 때에 이루어져야 좋은 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만약 기도가 생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한 기도여야 합니까!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십니다.
9-13절은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을 위한 세 가지 기도, 우리를 위한 세 가지 기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위한 기도는 그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위한 기도입니다.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땅에 있는 우상과 다르신 분이십니다. 땅의 우상들은 인간의 그릇된 욕망을 담아 만들어진 신에 불과합니다. 그리스 신화처럼 시기와 미움, 정욕과 어그러진 욕망으로 얽힌 땅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세상을 창조하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완전하신 공의, 완전하신 사랑을 가지신 거룩한 아버지이십니다. 그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받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유익과 필요를 채워달라는 기도를 첫 번째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제목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명예가 먹칠당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으로 드러나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0절에 나오는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소망하는 기도입니다. 내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내 가정과 학교와 직장으로 확장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지 않으면 누구나 죄와 죽음에 갇혀 살다가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똑똑한 천재라 할지라도, 취업을 하고 전문직에 종사할지라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는 것만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시급한 기도제목입니다.
나아가 자기 뜻을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욕심과 자기 영광을 못박는 기도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그 나라를 확장하시며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가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기도제목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위한 기도 또한 세가지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사람들은 충분히 양식을 쌓아놓고 아무 걱정 없이 살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특별한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인데도 장래 염려로 고민하는 이유가 그러합니다. 집 걱정, 자녀 교육걱정, 노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만큼 100년 양식을 쌓아놓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년용할 양식도 아니고 월용할 양식도 아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마치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옛날 옛적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로 나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일용할 양식을 구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광야에 나갈 때마다 ‘오늘은 만나가 내려왔을까?’ 하는 마음으로 나갔다가 ‘만나를 주셨구나!’ 하는 믿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늘 아버지를 체험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겠다는 기도입니다. 아울러 오늘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잊지 않는 기도입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두려움과 염려가 파고들수록, 위기의 때일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수고거리와 염려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세상에서 감사가 마르지 않고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깨달아가며 살게 됩니다.
양식문제와 함께 죄사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양식문제만큼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갈등문제, 죄 문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죄사함 받는 것과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들을 용서해주는 것을 연결시켜서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 아버지도 우리 잘못을 용서하십니다.(14) 만약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우리 잘못을 용서하지 않습니다.(15) 위로부터 용서는 옆으로의 용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잘못했으면서도 ‘잘못했다’라고 말하기를 힘들어하고,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데도 ‘괜찮다’라고 말하기를 어려워합니다. 우리는 용서받기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내 안의 상처와 쓴 뿌리, 냉랭함, 판단과 정죄를 털어내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각종 자격증 시험이나 대입, 취업시험보다 악의 시험을 통과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미세먼지처럼 소리 소문 없이 파고들어 영적 생명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죄성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악의 유혹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실문제 해결에만 목을 매고 기도할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악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간절하고도 필사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 싸움에서 패배하는 것은 능력이나 환경문제가 아니라 겸손히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뜻에서 아버지의 뜻으로, 내 이름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 영광에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름으로 시작한 기도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음을 고백함으로 마쳐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루 세 번 주기도문을 외웠다고 합니다. 하루 세 끼 밥 먹듯이. 영혼의 양식으로 암송한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세 번째 금식입니다.(16-18) 우리는 다이어트 목적 외에는 웬만해서는 금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유대인들은 구제 기도와 함께 금식을 경건생활의 3대 요소처럼 생각했습니다. 본래 율법은 일 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금식하도록 말씀했습니다. 혹은 전쟁이나 기근 같은 특별한 국가적 위기를 만날 때 금식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코로나 위기를 맞이한 지금이 금식을 해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금식은 부유하고 높아진 마음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절박함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절박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포로 귀환 이후에도 헬라나 로마제국의 지배를 당했습니다. 끔찍한 국가적 위기를 여러 번 겪게 되면서 금식의 날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금요일 24시간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외식의 유혹은 여기에도 찾아왔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금식하면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얼굴에 재를 바르고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금식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사람들!!, 경건맨!’ 찬사를 보내었습니다.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저들은 사람의 칭찬받는 맛으로 위로를 삼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17) 티를 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칭찬과 위로를 받다보면 애통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처음의 간절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람의 칭찬이 당장에는 좋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상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고 계십니다.(18) 하나님은 슬픈 자를 긍휼히 여기고 고통하는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슬프고 고통스런 날, 사람들의 위로를 구하고 스트레스를 풀만한 사람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닐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위로와 관심을 구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믿음을 붙들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 가난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각오하고 간절함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신앙생활의 본질은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집중하려면 은밀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일수록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마음을 경계하고 힘써 물리쳐야 합니다.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할수록 하나님에게 집중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칭찬을 구할수록 하나님과의 관계성은 점점 위기를 맞이합니다. 결국 사람만 남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메마르고 허무한 세계에 빠져버립니다. 1949년 중국본토에서 대만으로 쫓겨간 장개석 총통의 부하들 가운데 벽에 박힌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 자들이 있었습니다. 신기하게 생각한 그들은 철물점에 가서 수도꼭지를 사다가 벽에 박고 수도꼭지를 틀었습니다. 아무 것도 안 나오자, 화가 나서 철물점으로 돌아가서 ‘속았다’며 총질을 해대었다고 합니다. 진짜 어이없는 이런 이야기가 우리 신앙의 이야기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경건생활의 수도꼭지는 은밀함의 수도배관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될 때 참된 생명력을 가져다줍니다.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은밀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경건의 능력이며 신앙의 본질에 이르는 비밀입니다.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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