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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5-17 (일) 18:48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11강-1.hwp (29KB) (Dow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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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11강]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2020년 마태복음 제 11강              
말씀 / 마태복음 7:13-29
요절 /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어느 목자가 중1의 산상수훈 소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말씀에 있는 것들 못 지킬 거 같아요ㅎㅎ 뺨을 어떻게 내줄까요?” 한 줄 소감이었지만, 칭찬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생각했구나! 자기에게 적용해보려고 했구나!” 예수님의 말씀과 나의 삶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습니다. 말씀 앞에 서보는 사람은 이 간극을 발견하며, 거룩하신 주님과 보잘 것 없는 자기 영혼을 발견합니다. 그런 과정이 진지할수록, 자기 의는 박살이 나고 영혼은 정죄당하는 것 같은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본성은 말씀앞에 자신을 세우기보다 다른 자랑거리를 찾거나 자기합리화를 하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그런 모습을 아시고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 좋은 나무, 반석위에 지은 집입니다. 그를 통해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고자 하십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말씀으로 와닿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13,14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흔히 ‘좁은 문’하면 입시 혹은 취업을 떠올립니다. 원하는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좁은 문을 들어가기 위해 어릴 때부터 치열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아예 자녀를 낳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청년 때에만 힘들면 그래도 좋은데, 나이를 먹어도 힘들다는 소리가 도처에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대학문보다 더 좁은 취업문이 있고, 취업문에 들어가면 그보다 더 좁은 승진문이 기다리고 있다’, ‘공부할 그때가 좋았지, 취업준비하려고 도서관에 있던 그때가 좋았어’ 그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세상의 좁은 문과 본문의 좁은 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세상의 좁은 문은 그 문을 통과하고 나면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보다 좀 더 편하고 좀 더 안정된 길이 열립니다. 문은 좁고 길은 넓습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이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이 찾습니다. 아니,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좁아진 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좁은 문은 문도 좁고 문을 통과한 후에 가야 하는 길도 협착합니다. 구원받는 것도 어렵고 구원 이후의 여정도 어렵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며,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을 가난하게 하고 애통하며 온유하며 청결하게 살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은밀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비판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고 우리 본성을 거슬러 올라가는 생활입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중세시대에는 산상수훈 말씀을 사제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으로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좁은 문의 비유를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조금 힘들거야, 그런데 익숙해지고 나면 점점 은혜와 기쁨이 풍성해질거야, 걱정하지마!’ 이렇게 긍정의 차원에서 말씀하셨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실제로 제자들의 힘으로만 신앙생활 하는 것, 아니잖아요! 성령께서 함께 하사 말씀을 주시고 기도의 응답을 하사 고난도 견디게 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손길로 끊임없이 새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길 가는 사람, 별로 없거든! 외롭고 힘들 수 있으니까 각오해야 할꺼야!’ 이렇게 마음 준비를 시키십니다. 힘들다는 이유로 확신을 잃지 말고 하나님앞에서 자기의 길을 가기에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찾는 이가 적기만 해도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저는 밤에 말씀공부를 끝내고 집에 갈 때, 경희대와 카이스트 뒷산으로 이어지는 하늘길을 따라 야경을 보며 걸어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높은 길에서 내려다보면, 지금의 문제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고 밤공기를 타고 은은히 풍겨오는 꽃향기가 쉼을 줍니다. 그런데 밤 11시가 되면 길 양쪽에서 비추어주는 가로등이 꺼집니다. 툭! 하고 꺼지면 순간적으로 나 홀로 서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조금 전까지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갑자기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불이 꺼지든 말든 상관없는데..., 나 혼자 가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움이 되어 그 길을 가는 즐거움과 여유를 빼앗아 버립니다.
제자생활도 그러할 수 있습니다. 나를 봐주고 나와 함께 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기쁨을 잃고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없음으로 인해 손해의식이나 회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문은 좁고 길은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제자의 길은 사람들의 박수받는 길이 아니며, 우리의 죄악된 본성과 어긋나는 길입니다. 나의 체질에 맞기 때문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가는 길입니다. 모임이나 사람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나와 하나님사이의 개인신앙으로 가는 길입니다. 성공과 유익을 약속해주기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야 할 믿음의 코스이기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 좁은 길을 가는 좋은 본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만민구원역사를 이루고자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그런 길을 가려고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절대로 그런 길을 가면 안된다고 앞장 서서 말렸습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은 대속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임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조롱과 멸시를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박수소리가 없을지라도 믿음으로 그 길을 끝까지 갔을 때,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을 얻으셨습니다. 만민구원역사를 완성했습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의 인정과 요구에 휘둘리다보면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생명력을 상실하는 것은 상황이 어려워졌거나 악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많은 십자가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을 크게 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좁고 협착한 것만 생각하고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믿음을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쉽고 편한 길을 찾아 움직이면 좋을 것 같은데, 오히려 생명이 없습니다. 그 끝은 믿음을 잃고 소멸하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이 생명을 얻고 생명을 구원합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을 가는 자들이 체험하는 비밀입니다. 우리에게도 믿음 주시길 기도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에 힘쓰는 자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거짓 선지자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예수님은 ‘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다가와서 교묘한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여 의심과 다툼과 분열을 심습니다. 이리가 양들을 죽이듯이, 거짓선지자들은 성도들의 영적 생명을 빼앗습니다. 존 스토트 박사는 본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외적 차림새, 그의 매력, 학식, 심지어 교회적인 명예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너무도 고지식하게 그 사람이 철학박사인 것, 목회학 박사인 것 혹은 교수나 주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참된 종이라 가정해버린다. 우리는 그 외양의 이면에 있는 실체를 보야야 한다. 그 양가죽 아래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가?” 신천지 이단이 교묘하게 정체를 숨기고 나라 곳곳을 파고들었음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얼마나 교묘하게 파고드는지..., 신천지가 나쁘고 반드시 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사람이 신천지에 넘어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신천지 뿐만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른 거짓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들의 정체를 분별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열매로 분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16)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17)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18)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씀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로는 속일 수 있으나 삶으로는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잠깐의 과정은 헷갈릴지 모르지만 거짓과 속임수는 결국 드러나게 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시간속에서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반대로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그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헷갈리는 과정을 거칩니다. 마치 식물을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시금치 씨앗과 열무 씨앗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큰 줄 아십니까! 시금치 씨앗이 열무 씨앗보다 훨씬 큽니다. 씨앗의 크기만으로 얼마나 큰 식물이 자랄지 알 수 없습니다. 싹이 나오고 나무로 자라더라도 어느 것이 사과나무인지, 감나무인지 보통 사람은 헷갈립니다. 그러다가 사과 열매를 내면, ‘아! 이 녀석이 사과나무였구나’ 확실히 압니다. 그와 같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인지, 그렇지 않은지 처음에는 헷갈립니다. 청년의 때에는 말씀대로 회개하고 순종하는 것이 미련하고 답답한 인생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얼마나 놀고 싶고 즐기고 싶습니까! 그렇게 못하니까 고리타분한 인생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우울한 인생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배워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따라 회개하고 순종하는 생활이 없다면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나이를 먹어도 성숙해지지 않으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자기내면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른아이의 상태로 머물러 있게 됩니다.(19) 말씀앞에 회개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빛을 발합니다. 연약한 내면이 강해지기도 하고 상처와 실패를 뛰어넘기도 합니다.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이전에는 짜증을 내고 독한 말을 하며 다녔는데, 언제부터인가 감사와 은혜를 끼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속이고 빼앗는 세리같은 사람이었는데 진실하고 희생적인 목자로 살고 있습니까! 말씀을 제대로 알고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믿을만한 사람, 배울만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주여! 주여! 입으로 외치는 모든 자들이 천국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21) 말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강력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충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자신에 대해 좋은 열매를 맺은 나무로 생각한 것입니다. 심판의 날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와서 그와 같이 주장합니다.(22) 어떤 이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로 살았다고 자랑합니다. 어떤 이는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을 자랑합니다. 어떤 이는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것을 자랑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메시지를 전하고 기도하여 응답받고 전도하여 많은 제자를 키운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23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저들이 열매라고 내세웠던 것들이 전혀 주님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열매로 제시하는 것들이 주님에게는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보통 학생들은 높은 성적, 직장인들은 늘어가는 통장의 액수를 자랑합니다. 목자들은 양들을 제자로 키웠음을 자랑합니다. 보통의 수고와 능력만으로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없으니, 그들의 열정과 수고는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리 탁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천국 문 앞에서 박대당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죄로부터 건졌으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으며, 많은 업적을 이루었으나 하나님의 법대로 행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패트릭 민즈는 ‘남자들의 은밀한 전쟁’에서 성적 유혹에 노출된 남자들의 이야기를 실제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어떤 목사가 목회의 스트레스에 짓눌리다가 탈출구로 성인안마소에 갑니다. 그러다가 유혹에 넘어가서 성매매를 하게 됩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목사가 회개하고 난 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죄를 짓고 나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나는 죄를 지었는데 교회는 더욱 부흥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진짜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보석처럼 빛나는 영혼으로 빚고자 하십니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은 시동이 걸리고 잘 달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세차하여 더러움을 닦아내고 왁스를 발라 광을 잃지 않게 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의 영혼 자체에 주목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빛나는 영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를 위해 말씀을 주시고 기도의 응답을 하시며 필요하면 고난이나 아픔을 통해 그 영혼 깊은 곳에 숨겨진 어둠을 드러내시고 깨끗해지도록 도와주십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가며 늘 새로워지며 성숙해갑니다. 우리는 성공의 자리, 박수받는 자리에 올라갈수록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어떠한가?, 나는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고 하는가?’ 되물어야 합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하늘 백성의 믿음, 하늘 백성의 가치관, 하늘 백성의 내면성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반석위에 지은 집을 비유하십니다. 24,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위에 놓은 까닭이요” 예수님이 살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여름이 건기이며 겨울이 우기입니다. 한 해 동안 거의 비가 내리지 않다가 겨울이 되면 폭우가 내린다고 합니다. 어느 날 보통의 예상을 뛰어넘어 마구마구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서 개천을 넘어서면, 거센 물줄기가 집의 기초에 부딪혀 흔들어 무너지게 합니다. 그때 무너지지 않는 집이 있는데, 반석위에 주추를 놓은 집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비와 창수와 바람은 예상치 못한 질병이나 사건 사고같은 위기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언젠가 위기의 때가 올 수 있음을 예상하고, 그때 흔들리지 않고자 부지런히 장래를 대비합니다. 보험을 듭니다.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더 늙기 전에 부지런히 돈을 벌고자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대비책을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반대로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사람,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26) 그들의 인생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부는 날, 환난의 날에 심하게 무너지고 말 것이라 경고하십니다.(27)
듣고 행하느냐, 듣고 행하지 않느냐,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별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성경박사인데, 마음은 말씀대로 회개하지 못하고 말씀앞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씀 따로, 생활 따로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대로 행하려면, 건축공사에서 기초를 파고들어가듯이 숨겨진 내 영혼 깊숙이 파고 들어가는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초공사를 하다 보면 별의별 것들이 나옵니다. 오래전 파묻어놓은 쓰레기들이 나오기도 하고 크고 단단한 바위가 나오기도 하고 진흙같은 뻘이 나오기도 합니다. 어떤 건축현장에서는 이것저것 뒤죽박죽인 토질로 인해 오랜 시간과 많은 자금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면 사람 마음 깊숙이 숨겨졌던 불신과 부딪히게 됩니다. 오래전 묻어놓았던 상처나 실패를 캐내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둡고 부정적인 내면을 극복하고 단순히 순종하는 믿음을 갖기 위해 오랜 노력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꽁꽁 숨겨놓은 정욕의 바위를 만나 고전하기도 하고 진흙탕 같은 탐심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말씀을 실제적으로 적용하기에 힘쓰는 생활은 반석위에 기초를 놓는 작업처럼 보이지 않는 영적 씨름이 필요합니다.
교육학자 문용린 교수는 “성공을 해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만 성공할 수 있으며, 행복의 중요요소중의 하나가 도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덕은 지식으로 쌓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 생활이나 습관의 결과물이라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직하자라는 도덕률이 정직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여 정직한 생활을 계속하면서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단단한 정직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지식만으로 영성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반복하여 행할 때, 그런 하나 하나가 모여 반석같은 믿음을 만들어냅니다.
그러한 믿음을 준비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평소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가 질병이나 고난, 심지어 죽음같은 인생의 위기가 다가오는 날, 그 가치를 드러냅니다. 인생 여정은 봄날처럼 기분 좋은 시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질병이나 사고, 뼈아픈 인간 갈등이 닥쳐와서 모든 것을 흔들어버리는 위기를 만나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 몰아닥친 코로나 광풍은 현대 문명의 기초를 사정없이 흔들고 있습니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날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 그날입니다. 그 날에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 누구입니까! 건물이야 무너지면 처음부터 다시 지으면 됩니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은 그럴 수 없습니다. ‘주님, 주님 뵈올 면목이 없습니다. 이렇게 살지 말았어야 하는데... 제가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이런 탄식을 내뱉게 된다면 얼마나 무섭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청년의 때를 보내는 날, 40대를 보내는 날, 50대를 보내고 60대를 넘어가는 날에, 이런 탄식을 내뱉는 인생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에 이르는 인생, 아름다운 인생, 무너지지 않는 인생의 비결은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한 말씀이라도 제대로 행하면 생명을 얻고 열매를 맺고 탄탄한 인생의 기초를 놓습니다. 매일의 일용할 양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진실하게 적용하는 한편의 소감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세상이 생존의 문제로 치열해질수록, 우리는 말씀대로 행하고자 치열해져야 합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양들을 붙잡아 말씀을 가르치고 순종하도록 도와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참된 성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이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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