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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9-06 (일) 09:21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26강-1(오정훈).hwp (29KB) (Down: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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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26강]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2020년 마태복음 제26강                                                        오정훈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말씀/ 마태복음 17:22-18:14
요절/ 마태복음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는 큰 자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 위대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위대함이 무엇인지 몰라 사람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 안에서 진정으로 위대한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진정으로 위대한 인생이 무엇인지 배우므로 하나님 안에서 위대한 삶 살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7장22,23절을 보십시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이는 두 번째 수난 예고로서 제자들로서는 별로 듣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길 진리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듣기 싫고 부담스러워도 이것을 반드시 듣고 영접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첫 번째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렸는데 재차 말씀하시자 마음에 심히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피한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반드시 받아들이고 마주쳐야 할 현실임을 조금씩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하면 계속 말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도 여러 번 하면 듣기 싫은데 하물며 듣기 싫은 소리는 얼마나 부담스러울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타협하지 않으시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들에게 고난과 죽음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우리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은 듣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씀 부담스러운 말씀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관한 말씀은 꼭 들어야 하고 마음에 영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길만이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주는 진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17장2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이르시자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와서 물었습니다.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반 세겔은 출애굽기 30:13-16기록된 속죄를 위해 성전에 매년 한 번씩 내는 성전세를 가리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로 드리는 것으로 20세 이상 남자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공히 반 세겔을 드려야 했습니다. 반 세겔은 두 드라크마 곧 두 데나리온으로서 노동자 이틀 치 품삯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성전을 유지하고 예배를 섬기는데 쓰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받으러 다니는 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성전세를 내지 않던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무슨 사정이 있으셨던지 아직 내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채근을 받은 베드로가 내신다하고 집으로 들어가자 예수님이 먼저 이를 아시고 물으셨습니다. 25절입니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당연히 세상 임금들은 타인에게 세금을 받지 아들들에게 세금을 받지 않습니다. 동일한 이유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위해 반 세겔의 세금을 내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겠다고 하십니다. 이를 위해 베드로에게 바다에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의 입을 열면 한 세겔이 있을 것이니 그것으로 베드로와 당신의 성전세를 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세상을 향한 행동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많은 특권과 자유가 있으십니다. 세례를 받으실 필요도 없고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내실 필요도 없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또 사람들이 오해하고 실족하지 않기 위해 이를 다 행하고자 하십니다.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모여서 식사하고 교제 나누고 찬송하고 기도할 자유가 있습니다.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실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하다고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다고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고전10:23) 신자는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하고 덕을 세우는 것에 민감해야 합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확신이 심상치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교회에서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여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상황이 엄중하여 모든 것을 비대면으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앙을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바이러스의 확신을 막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덕을 세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앞장서야 합니다.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므로 나 한 사람 편한 대로 살지 않고 세상에 덕을 세우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 백성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8장1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와서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가복음9장33,34절을 보면 그들이 길에서 누가 크냐 하는 것으로 논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구원역사를 완성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고 계신데 제자들의 관심은 누가 크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딱 봐도 대단한 가문에 엄청난 학벌을 가진 사람도 없는데 왜 그렇게 누가 큰가에 목을 메는 것일까요? 썩어도 준치라고 별 볼일 제자들 사이에서 자신이 제일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 역사가 급격히 베드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제자들이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갈 때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가시고 성전세에 대해 말씀하실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 세금까지 같이 내게 하신 것을 보고 제자들은 베드로를 완전히 수제자로 정하셨구나 위기의식을 느낀 게 분명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다 끝날 텐데 그 전에 확실히 서열을 정해서 어찌하든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된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평소 밥 먹을 때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저 나를 무시하지 말라며 눈을 부라리고 나왔습니다. 천국에서 누가 큽니까? 제자들의 이 질문은 실상은 우리 중에 누가 가장 큽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누가 크냐 하는 것은 제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인정받고 군림하는 위치에 서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셋만 모이면 반드시 서열을 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이를 묻는 게 실례임에도 서슴없이 나이를 물어 서열을 정합니다. 때로는 키나 주먹으로 심지어는 학벌이나 직장으로 서열을 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안을 때도 나이 순서대로 키순서대로 직급 순서대로 앉습니다. 이는 사람들 속에 남보다 더 높아지고 군림하고 싶은 욕망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타임지에서 발표한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100인의 인물 중 우리나라에서 방탄소년단이 뽑혔습니다. 밝은 리듬 활발한 안무 뛰어난 화음이 사람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준다는 이유였습니다. 우리는 방탄 소년단은 안되더라도 우리 안에서 그래도 좀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위대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8:2,3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누가 더 크냐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예수님은 그들이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아예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도대체 어린 아이가 뭐가 대단하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어린 아이들의 장점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위대한 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린 아이들이 순진하고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온 것은 다 믿고 영접합니다. 천지창조와 홍해가 갈라진 것을 믿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고 두려운 마음을 갖습니다. 반면 어른들은 어떠합니까? 아니 어떻게 바다가 갈라지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의심하고 불신합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 천지창조, 죽은 자의 부활과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믿고 안 믿고는 자유지만 믿지 않으면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천국의 축복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변화되는 것으로 경험이나 이성의 판단을 통해 들어오는 불신과 회의를 버리고 순수하게 하나님 말씀을 믿고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사야서 55:8,9은 말씀합니다. “이는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세상에 찌들어 순수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신과 회의에서 돌이키면 주께서 우리 마음을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하여 모든 성경 말씀을 믿고 영접하게 하여 주십니다.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불신이 더욱 심해지는 시대에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되어 어린 아이같이 순수해지므로 하나님 나라를 보는 은혜가 더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18장4절을 다시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첫째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위대한 자입니다. 어린 아이는 아는 것이 별로 없고 내세울 것도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겸손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겸손히 배우려고 계속 질문합니다. 그래서 가끔 엄마 아빠들의 인내심의 한계가 올 때가 있습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히 자기를 낮추는 이런 어린 아이 같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반면 자기가 뭐나 되는 줄 알고 거드름을 피우고 핏대를 세우는 사람은 낮아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거만한 자를 넘어뜨리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세상 권세자들처럼 높아져서 호령하고 자기 임의대로 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어떤 재벌2세처럼 기내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땅콩을 집어던지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이런 그들에게 낮아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경쟁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 때도 발냄새가 진동하였지만 낮아져서 발을 씻어주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위대함은 낮아짐에 있습니다. 낮아짐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자신으로서 자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말씀 앞에서 자신을 깊이 발견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는 결코 자기를 낮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죄악되고 부족하고 고질병으로 내세울 수 없는 죄인이며 허물이 많은 자인가 깨달을 때 겸손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율법 앞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였을 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죄인 중의 괴수가 되어 생명을 헤치는 죄악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자아발견 하였을 때 겸손히 낮아져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시고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지만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겸손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낮아 오시어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생각할 때 누가 크냐하고 높아지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천국, 하나님 나라, 제자 공동체는 누가 크냐 하며 경쟁하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서로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배우는 곳입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신자의 제일 큰 미덕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입니다. 사단이 교만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만들고 지옥의 자식이 되게 한다면 겸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며 자신을 진정으로 큰 자, 위대한 자가 되게 합니다. 현재 우리는 어떠합니까? 선배와 교수, 원장과 직장상사로서 큰소리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높아지고 군림하고 싶은 본성을 회개하고 어린 아이와 같이 낮아짐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쓰시는 진정으로 위대한 삶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로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18장 5절입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어린 아이는 순수하고 겸손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굉장히 자기중심적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보채고 졸라대고 징징거립니다. 가끔 대형마트에서 장난감 사달라고 바닥에 누워 뒹굴고 떼쓰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자기밖에 모르고 떼쓰고 졸라대는 아이들 감당하는 것 부담스럽습니다. 아무 도움도 안되는데 문제만 일으키고 요구만 많으니 짜증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아이 같이 심히도 자기중심적인 자들 감당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말씀공부 언제 할 수 있냐고 문자 보내면 답을 안하다가 축구하러 나오라면 곧 바로 ‘네, 알겠습니다’ 답장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소감 좀 써오라고 하면 읽어보지도 않다가 밥 먹자고 하면 ‘네 바로 가겠습니다’ 답장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건 정말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이켜서 내가 변화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당할 내면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정말 세상 엄마들은 위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징징거리고 보채고 졸라대는 아이들을 소리 지르고 등짝을 때리기도 하지만 어찌하든지 감당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위대한 삶을 사는 첫 걸음은 바로 이런 어린 아이 같이 자기중심적인 자를 영접하고 감당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타일이 아닌 사람, 너무나 자기중심적이어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신 사람으로 영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종처럼 낮아져 각종 죄인들을 섬기시고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한 사람의 위대함은 이처럼 지위나 학벌에 있지 않고 겸손히 낮아져 섬기는 내면성에 있지 습니다. 그러므로 큰 자가 되고자 사람들과 피곤하게 비교하고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발견하여 겸손히 낮아져 어린 아이 같은 사람을 영접하고 섬기면 진정으로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높아지고 군림하고자 하는 죄악된 본성을 회개하고 내게 보내신 한 사람을 영접하고 겸손히 낮아져 섬김으로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위대한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8장6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믿음을 잃게 한다’, ‘죄를 짓게 한다’는 뜻으로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 한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악영향을 끼치는 행동으로 작은 자 한 사람이 실족하게 됩니다. 나도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족하게 하는 것으로 인해 세상에 화가 있고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몰라서 그랬다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한 사람을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을 메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데 실족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먼저 죄와 철저하게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8장 8,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내 손과 발이 또 내 눈이 죄에 빠지게 하면 찍어 내버리고 빼어 내버리라고 하십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손으로 죄를 짓고 눈으로 죄를 짓는데 그때마다 찍어 버리고 뽑아버리면 손과 발 눈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두 손과 두 발 두 눈을 가지고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다리 저는 자로 또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하십니다. 이는 어떤 상태로 사는가 보다는 어디로 가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라면 손과 발 그리고 눈을 찍어 버리고 빼어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꼭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간절함과 처절함으로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간절함으로 죄와 싸우는 삶을 살 때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실족시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18장10절 보십시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어른들은 아이들을 어리다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합니다. ‘애들이 뭘 알아 저리가’ 소리칩니다. 그러나 이렇게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다가는 그들의 수호천사가 하늘의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다 일러바칠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미칠 화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부족하고 어려도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 격려하고 믿음을 도와야 합니다. 소감이 아직 부족해도 잘 썼다고 박수치고 엄지척 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잃은 양 한 마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찾도록 찾으십니다. 그리고 찾으면 그 한 마리로 인해 기뻐하고 또 기뻐하십니다.

저도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위대한 인생,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자 애를 썼습니다. 고전을 읽어 교양을 쌓고 말과 행동을 삼가므로 품위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말을 교양있게 한다고 제 내면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운전대만 잡으면 성격이 난폭해져서 운전 못하는 사람을 보면 욕을 하고 거칠게 차를 몰아 옆에 탄 동역자가 불안해하였습니다. 또 어린아이를 영접하고 감당하지 못하여 치과에 오는 아이들로 인해 자주 화를 냈습니다. 특히 치료 전부터 징징대거나 입을 벌리지 않고 치료도 시작 안했는데 토하는 아이를 보면 한 대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과잉보호하는 엄마들을 보면 그 어미에 그 아들이구나 속으로 욕을 하였습니다. 영적으로도 어린 아이 같이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을 마음으로 영접하지 못하였습니다. 축구하거나 식사할 때는 제깍 답장을 보내다가도 말씀공부 연락하면 답장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났습니다. 고상하고 우아하게 살아야 하는데 수준 떨어지는 사람들 때문에 제 성격만 버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보며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어린 아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요 겸손한 마음으로 이들을 영접하고 섬기는 사람임을 배우게 됩니다. 제가 제자들처럼 겉만 번지르르하여 자기를 높이고 실제적으로 어린 아이 한 사람을 영접하지 못하는 내면성 없음을 깊이 회개합니다. 제가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는 헛된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히 낮아져 보내신 사람들을 변함없이 영접하고 섬기므로 진정으로 위대한 삶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한 사람의 위대함은 타이틀이나 지위에 있지 않고 얼마나 겸손하게 낮아져 한 사람을 섬길 수 있는가 그 내면성에 있습니다. 우리가 높아져서 호령하고 권세부리고자 하는 죄악된 본성을 회개하고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낮아지므로 내게 보내신 어린 아이 같은 한 사람을 영접하고 섬기는 진정으로 위대한 삶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므로 선한 영향력을 끼쳐  형제를 세우는 역사에 쓰임받는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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