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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9-12 (토) 19:54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27강-1.hwp (28KB) (Dow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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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27강]용서하라
2020년 마태복음 제27강                                                한아브라함

                                 용서하라            
말씀: 마태복음 18장 15절- 35절                          
요절: 마태복음 18장 35절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오늘날 우리 사회는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요즘은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보다 더 심각한 내면의 병을 앓고 있는데 그것은 미움과 분노라는 병입니다. 이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도 전파력이 강하고 암 보다도 위중해 보이는 병입니다. 코로나는 언젠가는 잡히겠죠. 암도 치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병, 미움과 분노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며 해결책도 모르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국민은 살기 어렵다고 정부를 비난하고 정부는 코로나를 퍼뜨렸다고 교회를 비난하고 교회는 다른 교회를 비난합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교회에도 가정에도 우리 개개인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과연 이 중 병이 치료될 수 있을까요? 주님은 용서하라 하십니다. 주님은 용서하는 것만이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임을 말해 줍니다. 용서할 때 내가 사는 길임을 말해 줍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를 하십니다.

제1장,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15-20)

죄를 범한 형제를 어떻게 대하라 하십니까?  15절을 보십시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정죄하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기 전에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형제를 도와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죄를 범했다는 것은 형제 상호간에 범한 죄로서 심각한 죄를 범하고 회개치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재산상의 손해를 끼친 경우나 근거 없이 거짓말로 음해하는 것 간음 우상숭배 등등이 해당 됩니다. 지난 말씀에서 형제를 실족 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철저하게 다루도록 했다면 여기서는 형제가 죄를 범한 경우에는 신중하게 단계적으로 다루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권면하고 공개적으로 발표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소문이 나버리면 신앙생활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죄에 대하여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입니다. 단번에 해결을 보고자 서두르면 안 됩니다. 또 부담스럽다고 적당히 타협하고 내버려 두어도 안 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만일 듣지 않으면 한 두 사람과 같이 감으로 문제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볼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죄 범한 형제는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만일 그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객관적으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반발 하고 대적하면 문제를 크게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의 이름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형제가 회개함으로 죄에서 돌이켜서 어찌든지 살리려고 하는 노력인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만일 교회가 그를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권징 하면 하나님께서도 이방인과 세리처럼 취급 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형제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용서하여 줍니다. 교회는 다시 지체로서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교회의 결정을 인정하시고 그대로 받아 들이 십니다. 19절 20절을 보십시오. 이런 중요한 문제를 앞두고는 예수님은 먼저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합심하여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합심 기도를 통해서 형제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심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도우십니다. 그 형제를 얻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의 그릇이 이루어지고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고 이전보다 더 사랑하게 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

제 2장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21-35)

그때에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와 질문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 까지 하오리이까?” 베드로는 자신이 일곱 번 정도 용서하면 주님께 인정과 칭찬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용서하는 문제에서도 다른 제자들보다 기선을 제압하여 수제자로서 위치를 굳건히 다지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당시에 랍비들도 사람의 죄는 3번까지는 용서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말에도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자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22절을 보십시오. 7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할지니라. 490번 즉 무한 대로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옆의 형제를 한 번 용서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용서의 개념이 없는 제자들이 용서를 깨닫도록 주님은 알기 쉽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어떤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1만 달란트는 6천만 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 하루 일꾼 품삯이니 일당을 10만 원으로 치면 6조원에 해당되는 천문학적인 금액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분노한 주인은 다 팔아 갚게 하라 엄히 명했습니다. 어쩌다가 이 사람이 이런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임금 앞에 불려 와서 다 갚을 테니 불쌍히 여겨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빚을 갚기 위해 온 가족이 총동원 되었습니다. 새벽에는 우유 배달 낮에는 편의점 알바 밤에는 대리운전 아내와 가족들 모두 다 동원되었습니다. 그래도 턱없이 부족하자 급기야 장기 매매 눈 하나 신장 하나에 얼마나 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래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장기 하나 뗀다고 될 것도 아니고 종과 가족의 목숨을 다 내놓아야 할 엄청난 빚인 것이었습니다. 다 갚으려면 자자손손 노예가 되어야 했습니다. 임금은 목숨 값을 받을 수도 전 가족을 노예로 삼을 수도 있었습니다. 27절 보십시오.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빛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어찌든지 대가를 지불하고자 하는 모습을 불쌍히 여긴 임금은 통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내가 너의 모든 빚을 탕감하노라.’ 임금님은 빚을 탕감해주었을 뿐 아니라 완전 자유를 선포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28절에서 30절을 보십시오. 탕감 받은 사람이 자신에게 약간의 빚을 진 자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야 이놈아 잘 만났다. 내 돈 떼어먹고 잘 살 줄 알았냐. 어림없다 어림없어.” “여보게 친구 시간 좀 주시게 내 꼭 갚을게.” 안 갚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시간을 좀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외면하고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친구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31절 보십시오. 이를 본 동료들은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크게 노하여 그 악한 종을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의 용서치 않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무자비한 것입니까. 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 제일하기 어려운 것 두 가지를 들라면 그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과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를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송봉모 신부님이 쓴 상처와 용서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느 도시에 경쟁관계에 있던 장사꾼 두 사람이 있었다. 두 가게는 서로 마주 보고 있었는데 이들은 상대방을 어떻게 망하게 할까 하는데 신경을 썼다. 보다 못 한 하나님께서 어느 날 천사를 한쪽 상인에게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큰 선물을 내릴 것이오. 그대가 재물을 원하면 재물을 장수를 원하면 장수를 자녀를 원하면 자녀를 줄 것이요. 단 조건이 하나 있소. 그대가 무엇을 원하든 그대 경쟁자는 2배를 얻게 될 것이요. 금화 10개를 원하면 금화 20개를 얻게 될 것이오. 이제는 화해하시오.” 상인은 크게 숨을 쉬고는 결심한 듯이 말하였다. “그럼 제 한쪽 눈을 멀게 해 주십시오.” 우리 인간은 본성이 죄악 되어서 용서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용서하기보다 미움과 분노로 두 배로 갚아 줍니다. 우리 민족의 죄 문제입니다. 상대방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이웃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픕니다. 요즈음은 이런 우리 민족의 죄 문제가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가 서로 싸우고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욕하고 좌우가 서로 끝없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교회가 원망을 듣고 있습니다. 이런 영향을 받아서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갈등하고 부모와 자식이 갈등합니다. 교회에서는 구성원끼리 갈등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서 괴로워합니다. 어느덧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매년 낮아지고 있고 oecd국가중 자살률 1위 자리는 16년째 고수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주님은 용서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첫째, 주께 받은바 은혜를 붙들 때 용서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23절을 다시 보십시오. 여기서 임금은 하나님을 빚 진 종은 우리 인간을 상징합니다. 헬라어로 빚은 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는 일만 달란트 즉 나의 힘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입니다. 빚에 눌려 일생 고통 받고 신음하며 절망적인 인생을 살 자들이었습니다. 죽으면 죄의 대가로 심판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심판받을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하며 평생 은혜를 갚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잊은 채 주의 자녀로 산답시고 자기 의를 쌓으며 살아갑니다. 어느 순간 바리새인이 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동료를 용서할 줄 모르는 악한 종과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한마디로 받은 바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얼마나 악한 죄인인가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생 갚아도 못 갚을 빚을 진 자인데 이 모든 빚을 다 탕감 받았는데 나에게 조금 빚진 사람의 목을 잡고 흔들고 있습니다. 마땅히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다시 한번 가시 면류관 쓰시고 십자가에서 고통 받으시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다 이루었다” 하시며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에서 그 가시 면류관 쓰시며 피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다시금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의 용서의 사랑을 생각 할 때 용서 할 수 없는 사람이 누구란 말입니까. 은혜가 넘칠 때 우리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둘째, 용서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 결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5절 보십시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크신 용서의 사랑을 덧입은 자가 다른 형제를 마땅히 용서해야함을 말해 줍니다.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골로새서 3장 18절 ’주께서 너희를 용서 한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에베소서 4장 32절은 말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 마태복음 6장 15절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용서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나를 위하여 나의 가정을 위하여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나라를 위하여 용서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용서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셋째, 내가 살기 위해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본문의 악한 종처럼 내가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미움 시기 분노 절망이라는 감옥에 다시 갇히게 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용서 받지 못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길은 서로 망하는 길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병이 생깁니다. 이는 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찾아오는 환자 중에 가슴이 아프다 배가 아프다 소화가 안 된다 등등의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에 오는 환자를 검사해보면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는 아무리 약을 써 봐도 낫질 않습니다. 그럴 때 신경안정제나 항 우울제를 살짝 써 볼 때 드라마틱하게 환자가 나았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서 생긴 화병인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할 때 병이 생깁니다. 용서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생활을 하면 면역이 증가 되어 건강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샌디에고의 한 암 전문 의사는 말기 암 환자들만 전문적으로 치료해 왔습니다. 이분은 처음 환자를 만나면 “용서 하셨나요?” 라고 질문합니다. 환자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면 의사는 용서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혼이 아프면 몸도 아픕니다. 당신을 속인 친구를 용서하셨나요. 부모를 용서 하셨나요. 상속 문제로 형제와 다툰 적이 있나요.” 질문하고 이렇게 용서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용서 하도록 돕는다고 합니다. 그럴 때 용서를 통한 치료는 의외로 놀라운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용서 했을 때 몸의 면역력이 올라갔고 5년 생존이 무려 54%에 달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용서함으로 나음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용서함으로 영육 간에 건강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35절을 다시 보십시오. 여기서 주님은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 한다는 것은 어떤 용서를 하는 것일까요? 용서한다는 것은 말로만 용서했다고 하는 것 즉 값 싼 용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했다고 하면서 값싼 용서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에 대해서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한다.‘ 하면서 서운한 감정이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같은 상황이 되면 예전에 상처가 기억이 되살아나 더 크게 화를 내며 반응하게 됩니다. 이런 것은 값싼 용서입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에게 심한 말로 행동으로 상처를 깊이 받았습니다. 용서 할 수 없어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다가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용서했습니다. 자신은 용서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자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남편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두 배로 치밀어 올라 폭발합니다. 이것은 마음으로부터 용서 한 것이 아닙니다. 값싼 용서를 한 것이죠. 말로만 머리로만 용서를 한 것이죠. 값싼 용서가 아닌 값진 용서, 즉 마음으로부터 용서해야 합니다. 마음으로부터 용서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마음으로부터 용서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죄와 허물을 용서 하고 깨끗하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다시는 기억치 않는 것입니다. 잘못은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진정한 용서를 하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형제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값진 용서를 한 예를 요셉의 경우에서 봅니다. 요셉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요셉의 전반부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은 것 뿐 인데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결국 노예로 팔았습니다. 보디발 여사의 유혹을 뿌리쳤는데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서 어린 요셉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겠습니까. 총리가 된 후 무엇보다 제일 먼저 복수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덧입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보았을 때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45장 4,5절 “형님들 나를 팔았다고 근심 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앞서 이곳에 보낸 것입니다.” 창세기 50장 19-21절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염려하지 마세요. 복수는 처벌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요 나는 형님들을 용서했습니다.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요셉은 형들을 마음으로부터 용서했고 정착해서 살도록 도왔습니다. 요셉의 용서의 사랑이 기초가 되어 12지파가 굳게 서게 되었습니다. 또한 손 양원 목사님에게서 배웁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용서 했습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 직전에 있던 그를 살려 주었고 더 나아가 그를 양아들 삼았습니다. 하나님께 10가지 감사를 했습니다. 이처럼 값진 용서 참된 용서는 형제를 용서하고 축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로부터 축복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 값진 용서를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 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에게 상처 받은 사람에게 나아가 용서를 구해야 할 것 입니다. 누군가는 나로 인해 상처 받고 나를  용서 하지 못해서 힘들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잘 몰랐죠? 사실입니다. 나의 가까운데 있습니다. 나의 동역자 일수 있고 나의 자녀 일 수 있고 나의 양일 수 있습니다. 내 주변에 나로 인하여 상처받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합시다. 용서를 구하는 카톡을 보내도 좋을 것입니다. 저는 과거 외과 레지던트 하면서 평생 얻어먹을 욕을 그때 다 얻어먹었습니다. 욕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욕먹으며 하루를 마쳤습니다. 그때 저는 저를 유난히 괴롭힌 윤 씨 성을 가진 두 교수를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외과 레지던트를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저에게 윤 영란 자매님을 동역자로 보내 주셨습니다. 동역자의 위로와 권면으로 윤 씨 성을 가진 두 교수를 용서할 수 있었고 외과 수련을 끝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경희의대 외과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정치인들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국민들을 둘로 나뉘어 싸우게 하고 자신들은 이득을 취하는 행태에 미움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럴 때 영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용서해야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요셉처럼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저는 마음으로부터 용서 참된 용서를 하겠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너는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에게 상처 준 일이 없느냐? 하시는 주님의 질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제가 상처를 준 분 들께도 용서를 구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용서하라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용서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습니다. 용서는 힘이 있습니다. 용서하는 사람과 용서 받는 사람을 모두 치유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 용서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습니다. 우리 손에는 용서에 이르는 열쇠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 열쇠를 사용할지 안 할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 모두 용서함으로 내 안에 임하는 천국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서로 용서함으로 행복한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용서하고 축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값진 용서를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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