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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9-20 (일) 08:16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28강-1.hwp (33KB) (Down: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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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28강]영생을 얻으려면
2020년 마태복음 제28강                                        김반석
영생을 얻으려면
말씀 / 마태복음 19:1-22
요절 / 마태복음 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코로나19로 인해 ‘동학개미운동’, ‘주린이’, ‘부린이’ 등 돈과 관련된 신조어들이 생겼습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에도 돈, 주식 관련 책들이 10위권에 올라있습니다. 증권사 유튜브 채널의 인기도가 상승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돈에 쏠리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은 돈 버는 방법에 대해서는 연구를 많이 하지만 어떻게 돈을 가치 있는 곳에 쓸 것인가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이 별로 없습니다. 돈이 많으면 근심․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것 같지만 사실은 돈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코로나 이혼’이라는 신조어와 같이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도 합니다. 본문의 부자 청년처럼 돈 때문에 영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과 영생에 이르는 길을 잘 배워 감사와 기쁨과 생명력이 넘치는 복된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Ⅰ. 결혼의 진리(1~12)
예수님이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 건너편 유대 지방으로 가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서도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일일이 고쳐주셨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이혼에 관한 문제를 들고 나와 질문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3) 신 24장 1절에 보면, 아내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어 아내와 같이 살 마음이 없으면 이혼 증서를 써주고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질문이 어떤 점에서 예수님께 시험이 될까요? 만일 이혼하는 것이 옳다 하면 예수님도 연약한 여인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결과가 되므로 백성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특히 여인들이 분개할 것입니다. 만일 옳지 않다 하면 모세의 법을 어기게 됩니다. 어느 쪽으로 대답하시든지 예수님은 그들의 계략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의 악한 의도에 말려들지 않으시고, 창세기 2장 말씀에 기초하여 결혼의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 함께 4~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아담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과 피조물을 다스리는 사명을 주셨습니다.(창1:27,28) 그리고 아담이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여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결혼을 주례하시며,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려서 하거나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것으로 신성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려서부터 모세오경을 암송하고 있었지만 이런 결혼의 진리를 외면했습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이혼의 주도권을 손에 쥐고,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이혼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결혼의 진리를 가르쳐 주신 후 왜 이혼해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배우자의 부정이나 혼인을 지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 등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혼은 꿈에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혼은 한 몸을 찢는 것으로서 서로에게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어기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와 임의대로 결혼을 하기 때문에 이혼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과감하게 이혼하라고 부추기기도 합니다. 통계청의 ‘2019년 혼인‧이혼 통계’에 의하면 이혼 건수는 11만쌍 이상으로 전년도에 비해 2% 증가했다고 합니다. 평균 혼인 지속기간은 16년이고, 그 중 40대 중후반의 이혼율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특히 황혼 이혼이 전년보다 5.8%나 늘었다고 합니다. 백년해로할 소망 가운데 결혼을 했는데 ‘이혼’, ‘황혼 이혼’, ‘졸혼’ 등으로 파탄에 이르게 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혼하지 않고 행복한 가정을 이뤄갈 수 있을까요? 첫째, 성경적인 결혼관에 기초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설하신 결혼의 본래 목적대로 결혼하고자 하는 분명한 결혼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열심히 복음역사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위해 가장 적합한 동역자를 보내주십니다. 청년들 중에 믿음의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연애결혼을 하면 더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연애로 결혼한 커플과 맞선이나 중매로 결혼한 커플 중 어느 쪽이 이혼율이 더 높을까요? 연애 결혼한 커플이라고 합니다. 뜻밖의 결과죠. 하버드대 로버트 엡스타인 박사에 의하면 ‘결혼 후 5년이 지나면 중매결혼 부부의 애정이 연애결혼을 능가하고, 10년이 지나면 애정 강도가 연애결혼 부부보다 2배로 커진다’고 합니다. 연애할 때는 몰랐다가 결혼하면 단점들이 보이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 사이에 로맨스는 끝났다’고 판단해 쉽게 이혼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외모 등 인간적인 조건을 우선시하고 마음에 끌리는 상대와 결혼하면 얼마 못 가서 파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 안에서 영육간에 한 몸이 되는 연합의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결혼한 부부는 서로를 자신의 몸의 일부로 여기고, 교회가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또한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 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엡5:21~33)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 결혼할 때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부부가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합심 동역해야 합니다. 아브라함 가정과 같이 여러 민족의 아버지․어머니로서 양들을 섬길 때 은혜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무언가 부족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롯의 가정을 보십시오. 사명의 땅을 떠나 세상 풍조를 따라 살 때, 잘 될 것 같았지만 죄의 열매를 맺고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어떤 초등학생이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괴로움을 일기에 토로했습니다. “방학이 길어지자 엄마들이 괴수로 변했다. 그중에서도 우리 엄마가 가장 사납다. 그래서 나는 아주 두렵고 무섭다. 그래서 나는 아주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믿음이 없으면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과 아내, 자식들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힘쓰는 가정을 다스려 주십니다. 가정은 행복의 동산 에덴 중에서도 에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결혼의 진리를 영접하지 않고, 모세의 율법을 인용하여 여전히 이혼을 합리화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7) 예수님은 이들이 율법을 잘못 알고 있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8) 당시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은 재혼할 수도 없고, 스스로 자립할 수도 없었습니다. 모세는 무책임한 남자들로부터 여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수치되는 일이 있을 때에만 이혼 증서를 써주도록 한 것입니다. 이혼 증서를 받은 여인들은 남편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재혼할 수 있었습니다.(신24:1,2) 이처럼 남자의 완악함 때문에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 이혼을 허락한 것이지 이혼을 장려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결론이 어떠합니까? 다 함께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예수님은 음행한 이유 외에는 이혼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결혼해서 혹시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이혼도 못하고 평생 살 바에야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선천적이나 후천적인 성불구자 또는 사도바울 등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고자 헌신한 사람들은 독신으로 지내도 좋다고 하십니다.(11,12)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가정을 이룰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더욱 사랑하게 되고, 자녀들은 행복하고 건전하게 성장합니다. 감사가 넘치고 생명력이 충만한 가정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천국의 기쁨과 참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Ⅱ. 영생을 얻는 길(13~22)
예수님이 결혼의 진리를 가르치고 계실 때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안수하고 축복 기도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불과 얼마 전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아이들에 대한 교훈(마18:1~14)을 잊어버리고, 무시하고 꾸짖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 대해 분노하시고,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4) 사회적 약자라고 함부로 대하거나 인격을 무시하는 교만하고, 권위적이고, 세속적인 자들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고 순수한 믿음의 사람, 절대적으로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어떤 사람이 나아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 사람은 큰 부자요 관리였습니다.(눅18:18,23) 그는 청년의 때 부와 명예와 권세를 얻어 젊은이들의 롤모델이요 멘토로서 각종 메스컴과 SNS를 장악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종교적으로도 계명을 철저히 지키며 흠이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와~부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모든 것을 다 가진 그가 왜 예수님께 나왔을까요? 영생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소유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영생이 무엇이기에 영생 얻기를 그처럼 갈구한 것일까요? 본문에서 ‘영생을 얻는다’(16). ‘생명에 들어가다’(17), ‘구원을 얻다’는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십니다.(요3:16) 영생은 단순히 시간적으로만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는 이 땅에서도 참 기쁨과 자유를 누리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부자 청년은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상대적으로 선한 생활을 했지만 그의 삶에는 참 만족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채워지지 않는 공간으로 인해 허무했습니다. 그는 견디다 못해 체면을 무릅쓰고 예수님 앞에 나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노력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영생은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선한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17a)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선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부자 청년이 생각하는 선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을 바로 잡아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는 선을 도덕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고, 선을 행하면 그 대가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을 선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며 교만합니다. 그러나 롬3:10절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부자 청년이나 세리나 창기나 모두 죄인입니다.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계명 준수나 선행으로는 구원과 영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이 영생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b) 레위기 18장 5절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계명을 온전히 지키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타락한 인간이 계명을 온전히 지킬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피나는 노력으로 계명을 99.9% 지켰더라도, 계명 중 어느 한 조목을 어기면 계명 전부를 범한 것이 되므로, 그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레5:17,약2:10) 그러므로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는 말씀은 죄인으로서 자아 발견하고, 회개하고, 겸손히 계명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계명이라면 자신 있다는 듯이 “어느 계명입니까?” 물었습니다. 다 함께 18b, 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러자 청년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아직 저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순종하여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상처를 주는 말이나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간음하지 않기 위해 청년의 최대 유혹인 음란물도 보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물건이나 부모님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라도 훔치지 않았습니다. 편의점이나 문구점에서 물건을 슬쩍 주머니에 넣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부하러 간다고 거짓말하고 오락실에 가지 않았습니다. 사춘기 때도 부모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언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와~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는 그에게 무슨 방향을 주십니까? 다 함께 2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부자 청년은 계명을 다 지켰다고 생각했지만 치명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가 영생에 들어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가진 소유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계명을 지킨다고 했지만 계명의 근본정신은 모른채 문자적으로 하지 말라고 한 것에 맞추어 계명을 어기지 않도록 사람 앞에서 노력한 것뿐이었습니다. 계명을 문자적으로만 지키는 것은 자기 의를 쌓고 자기만족에 빠진 종교생활이 되기 쉽습니다. 십계명 중 제1~4계명은 하나님 사랑, 제5~10계명은 이웃 사랑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계명의 핵심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가 청년의 때에 성공하여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건강과 지혜와 재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주신 것들을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마땅합니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인 약자들, 가난한 자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보호하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데 재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부자 청년은 생색내기용으로 구제 헌금은 했는지 모르지만 적극적으로 소유를 팔아 나눠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모으려고 하는데, 피땀 흘려 모은 것을 남에게 주라니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약속하십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여기서, ‘하늘 보화’란 ‘영생’을 가리킵니다. 땅의 보화가 구원과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늘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붙들고, 자신의 소유를 팔아 나누고 베푸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세상의 것을 다 소유해도 영생을 얻지 못해 죽고 심판으로 끝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반면 세상의 것은 부족할지라도 영생을 소유하였다면 진정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영생은 모든 것을 다 팔아 살만큼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마13:44) 행복한 인생은 무엇을 얼마만큼 소유했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행20:35절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고 나눠줄 때 참된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석유왕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 미국의 최고 부자가 되고, 53세에는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53세에 불치병에 걸려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남이 갖지 못한 부와 명예를 손에 넣었지만, 부와 명예가 불치병과 죽음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죽을 것을 생각하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갔는데, 로비에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마음에 전율이 생기고,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잠시 후 딸의 입원비가 없어 울면서 애원하는 어머니와 병원측이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비서를 시켜 은밀하게 병원비를 지불했는데, 그후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자 얼마나 기뻤는지 자서전에서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나눔의 삶을 작정했고, 신기하게 그의 병도 나았습니다. 1년도 못 산다고 했는데 43년이나 생명이 연장되어 98세까지 살면서 주와 복음역사에 많은 물질을 드리고, 각종 재단을 설립하여 교육과 구제 등 이웃을 사랑하는 선한 일에도 힘썼습니다. 그는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지난 16일에는 미국의 면세점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찰리 척 핀리’가 9조 4천억원이나 되는 전 재산을 기부했다는 감동적인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는 개인 자선재단을 해체하고 교육․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 기부를 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빈털터리가 됐지만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생전에 목표를 이루게 돼 매우 만족스럽고 좋다.....내가 진짜 살아있는 동안 전 재산을 기부할지 궁금했던 사람들에게는 ‘해봐라, 정말 좋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의 영향을 받고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 살아 있는 동안 보유지분의 99%인 50조 이상 기부 예정) 등 미국의 억만장자들 수십 명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기 위해 기부서약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재산을 기부할 수 있는 것은 책임이 아니라 오히려 특권이며 행운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기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베풀고 나눠줄 때 더 풍성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나의 소유를 팔아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나눠주므로 영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베푸는 삶은 많은 재산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콩알 하나라도 나누어 먹을 수 있습니다. ‘나의 소유’는 물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능(은사), 건강, 지식, 직업 등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모든 것들입니다. 이것들을 자기만을 위해 쓰게 되면 부자 청년처럼 영생의 길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파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좇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부자 청년은 지금까지 세상 보화를 얻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영생이 없었습니다. 그가 영생에 들어가려면 소유를 팔아 나눠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17:3) 이론으로는 예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배우고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낮아져 섬기고, 베풀고, 헌신할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이런 자에게 하늘에서 보화가 주어집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 들은 청년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다 함께 2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는 영생을 갈구했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희생하기는 싫었습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며 영생도 얻고 싶었습니다. 결국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며 살다가 그가 선택한 최종선택지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투자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는 인색했습니다. 영생을 얻는 길을 찾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팔지 못했습니다. 그는 재물과 영생을 선택해야 할 때, 재물을 선택함으로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되므로 이것처럼 비참한 일은 없습니다. 그는 세상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는지 모르지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가장 어리석고 망령된 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 한 것 두 가지를 고른다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므로 구원과 영생을 받게 된 것과 믿음 있고 지혜로운 동역자와 믿음의 결혼을 한 것입니다. 물론 결혼 초기에는 다른 점이 많아 다툴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아기자기하고 소시민적으로 살고 싶은데, 동역자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거기에 성격, 취향 등 둘이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인본적인 저는 동역자가 하나님 역사에 올인하는 것이 정말 못마땅했습니다. 저는 주와 복음역사에 헌신하는 동역자를 격려하고 칭찬하기는커녕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여자는 집안 일에 충실해야 돼요! 퇴근하면 피곤한데 교회는 그만 좀 가고 좀 쉬어요! 돈도 없는데 헌금은 왜 그렇게 많이 해요!’ 등. 하지만 동역자는 제 요구에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신실한 자세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만일 동역자가 믿음이 약했다면 벌써 사명을 버렸을 것이고 계속 싸우다 이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혼 요절이 마19:6절,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말씀이기 때문에 이혼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붙들게 하셔서 하나님이 이루신 가정을 지키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저를 인내하시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 조금씩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가정을 오픈하여 양들과 동역자들을 초청하여 섬기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을 배우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쁨으로 마음은 점점 풍성해졌습니다. 제가 명퇴를 하고자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아내와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 싸움만 하게 되고, 집안이 평안하지 않으니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동역자에게는 남편하고 하루종일 같이 있는 게 정말 괜찮냐며 걱정스럽게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희 부부는 정말 잘 지내고 있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성경 읽고,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며 하나님을 섬길 때 은혜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또 운동도 같이 하고, 가사도 분담하고, 어디 다닐 때도 같이 다니고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합심동역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삶을 살 때,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는 진리를 깊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제 주위에는 이혼이나 졸혼을 한 친구나 지인들이 있습니다. 만일 제가 믿음의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세상 잔재미를 좇아 아기자기한 삶을 살다가 결국 죄의 열매만 맺고 영생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주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소유를 팔아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섬기고, 하나님 나라 가기까지 예수님을 좇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 가치관을 좇아 결혼하지 않고, 결혼의 진리에 기초해서 결혼해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계명을 문자적으로만 지키지 말고, 계명의 근본정신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에 힘쓰므로 구원과 영생에 이르는 진정으로 복된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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