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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9-26 (토) 13:21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29강-1(고영훈).hwp (32KB) (Down: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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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29강]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2020년 마태복음 제 29 강                                                      고영훈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말씀 / 마태복음 19:23-20:16
요절 / 마태복음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복음의 일꾼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하여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열심히 사명을 감당한 종들이 빠지기 쉬운 문제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깊이 감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의 일꾼의 자세를 확립하여 겸손하게 캠퍼스 포도원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3-30)
23,2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한마디로 부자가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무조건 돈도 벌지 말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취직도 하고 돈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고 가난한 자를 돕고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이삭도 농사를 지어 거부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야곱도 밧단 아람에서 부자가 되어 돌아 왔습니다. 다윗 왕은 엄청난 재물을 하나님의 성전 건축 역사에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의식주를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약속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재물에 대한 올바른 성서적 가치관입니다. 그것은 재물에 대한 청지기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주와 복음을 위해서 또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올바로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구원 받을 수 없다는 부자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부자들의 문제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돈을 자신의 주인으로,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돈에 소망을 두고 부자가 되려고 욕심을 부릴 때 빠지기 쉬운 위험성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 전서 6:9,10절에서 경고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을 사랑하고 욕심에 사로잡힐 때 결과적으로 그것이 시험과 올무에 빠지고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돈 때문에 시험에 들어 하나님을 버립니다. 그러므로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가 다 소망을 하나님 나라에 두어야 합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 많은 재물로 선한 일을 행하고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사용한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부자들이 그렇게 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재물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순수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캠퍼스 시절 동안 재물에 대한 분명한 영적 가치관을 잘 배우고 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고 심히 놀라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그들은 그 동안 주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기쁨으로 제자 훈련을 받으며 자진하여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부와 권세를 소유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운명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볼멘소리를 하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의 의지나 결단으로는 자기 소유를 결코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인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아무리 부자라도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합니다. 이기적이고 교만한 삶에서 베풀고 낮아져 섬기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으로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불러 주시고 함께 해 주시자 그의 마음이 열리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눅19:8)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도 세리로서 부자였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말씀하시자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에 과감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국 보화를 소유한 가장 큰 부자요, 영적으로 성공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이 말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베드로는 근심하며 돌아간 부자 청년을 보면서 그에 비하면 자기들은 얼마나 대견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이처럼 배와 부친과 모든 것을 버리고 이날까지 헌신하여 예수님을 따랐는데 무엇을 얻겠는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귀한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제자들은 열 두 보좌에 앉아 온 세상을 다스리는 영광을 덧입게 됩니다.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게 됩니다. 이것은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이 땅에 부와 권세는 언젠가는 다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권세는 영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서 누리게 될 축복도 약속하십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몇 배로 갚아 주십니다. 영생도 상속하고 이 땅의 삶도 책임져 주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된 자들에게 한 가지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3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 헌신적인 삶을 살아서 영적인 복을 받았다고 자족해서는 안됩니다. 변함없이 헌신하지 않으면 마음이 교만해져서 나중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겸손하게 예수님을 배우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때 항상 천국의 보화가 심령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II. 포도원 품꾼의 비유(20:1-16)
이 비유는 19장 30절과 연결된 말씀으로서 먼저 된 자가 어떻게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어떻게 먼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예수님은 천국은 품꾼을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천국이 어떤 곳인가 알기 위해서는 천국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깨달음이 있는 사람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고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하나님은 먼저 찾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1절에서 이 주인은 큰 포도원을 가진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주인은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포도원에 들여보낼 일꾼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일하는 부지런한 분이었습니다. 흔히 부자들은 거만하여서 일꾼들이 이력서를 써 가지고 와서 허리를 굽히며 ‘제발 저를 채용해 주십시오’ 라고 아쉬운 소리를 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나 이 주인은 정반대로 일꾼을 초청하기 위해서 먼저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장터에 가서 일자리가 없어 놀고 서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인격적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품꾼은 복음의 일꾼을, 포도원은 하나님께서 복음 역사를 감당하도록 맡겨주신 사명의 땅을 의미합니다. 넓게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고, 좁게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캠퍼스 포도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담 이후 인간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 하여 멸망의 길을 갔습니다. 실업자들이 직장을 애타게 찾듯이 죄 많은 인간들이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교만과 자존심과 영적 무지로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이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사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포도원 주인은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씩 약속하고 포도원으로 들여보내며 드넓은 포도원에서 마음껏 일하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았기 때문에 일거리가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오늘날도 고용되지 못한 청년 실업문제가 심각합니다. 사람이 할 일이 없다는 것처럼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의욕을 상실하고 인생의 무의미에 시달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안일과 방탕한 생활로 폐인이 됩니다. 사람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일생을 투자해도 절대로 아깝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사명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할 일이 없이 빈둥빈둥 놀고 있던 우리에게 고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드려서 일생을 바칠 수 있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예수님께 인도하는 목자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젊은 날부터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캠퍼스 포도원에서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사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셋째, 하나님은 자비가 풍성하신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주인은 제 삼시에도 장터에 나가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제 육시와 제 구시와 제 십일시에도 그와 같이 하였습니다. 삼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이고, 육시는 낮 12시, 구시는 오후 3시, 십일시는 오후 5시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오후 5시가 되어서 장터에 나갔는데도 그곳에는 서서 종일토록 놀고 있는 품꾼들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있는가 묻자 품꾼들은 쓰는 이가 없어서 하루 종일 놀고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흔히 일꾼들을 모집할 때 몸이 건장하고 인상이 좋고 기술이 좋으며 성실한 사람들을 먼저 뽑습니다. 반면에 왜소하고 병약하여서 일을 잘 할 수 없는 사람, 게을러서 늦게까지 잠을 자다가 나온 사람들은 품꾼으로 써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늦게까지 남아 있는 사람일수록 쓸모없는 사람들이거나 빈둥빈둥 놀면서 죄를 짓다가 늦은 시간에 나온 사람들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포도원에 데려가도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늦게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도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심지어 한 시간 밖에 일할 수 없는 사람까지도 불렀습니다. 이를 볼 때 주인이 품꾼을 부르는 목적은 단순히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 부른 것이 아니라 일할 기회를 주고, 열심히 일함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부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주인은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품꾼을 불렀습니다. 우리는 내가 잘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닌가, 나를 써먹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와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내가 행복하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살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일할 자격이 없는 죄인들이지만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26-29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주와 복음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은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넓게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후 6시 마감시간이 되면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결산을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포도원 주인은 청지기에게 나중 온 품꾼들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청지기는 먼저 오후 5시에 온 자들에게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으므로 십분의 일 데나리온만 주어도 됩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들의 가족을 생각해서 하루 품삯을 주었습니다. 이 삯은 일한 대가라기보다 온전한 은혜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에게는 누구나 공평하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겨우 한 시간 일한 품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씩을 주는 것을 본 품꾼들은 큰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특히나 이른 아침부터 포도원에 와서 일했던 품꾼들은 열배 이상 일했기 때문에 열 데나리온을 받을 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청지기는 늦게 온 사람들이나 일찍 온 사람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씩을 지급했습니다. 이것은 경제학적으로 불공평하고 비효율적으로 생각됩니다. 주인은 많이 일한 품꾼에게는 많은 삯을 주고, 적게 일한 품꾼에게는 적게 삯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품꾼들이 많은 삯을 바라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일한 만큼 삯을 주어야 사람들에게 일할 의욕을 갖게 하고, 일한 만큼 삯을 받기 때문에 불평불만이 없습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주자 이른 아침에 와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그들의 원망은 타당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옳고 주인이 잘못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들의 원망은 잘못 된 것이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잘못 된 것입니까?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지불된 삯은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것으로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품꾼들은 자신들에게 포도원에서 일하게 해 주시고 삯까지 주신 주인의 은혜를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기보다 자신들이 수고한 대가만큼 삯을 주지 않는다고 원망을 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에 일찍부터 포도원에 와서 종일토록 수고하고 더위를 무릅쓴 자들이라는 자기 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이 일하였기 때문에 늦게 온 자들보다 더 많은 삯을 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가 있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도 이런 자기 의와 보상 심리에 빠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동안 주님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충성을 했는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주님께 드렸으며 얼마나 많은 헌금을 하였는가,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나에게 베푸신 보상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하였고, 더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의와 보상 심리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처럼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잘 깨닫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결코 원망하거나 불평할 수가 없고 다만 하나님께서 비천한 죄인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람들이 비교하고 시기하며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잘 모르기 때문이요, 깊은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복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들이 원망하는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똑같은 품삯을 받을 거면 실컷 죄 지으면서 방황하다가 늦게 부르심 받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큰 아들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축복으로 생각하지 않고 중노동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영적인 가치관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거룩한 소원이 없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신입생 때부터, 그것도 합격자 발표 날부터 목자님을 만나 성경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이것이 때로는 자기 의가 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미팅도 한번 못해봤다는 손해의식도 있습니다. 특히 소감을 쓸 때는 쓸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반면에 세상에서 죄를 많이 짓다가 늦게 말씀공부를 시작한 형제자매를 보면 소감도 은혜롭고, 신앙생활도 뜨겁게 잘하는 것 같습니다. 목자님들도 이런 사람들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줍니다. 이런 자들을 보면 공연히 시기심이 생겨나고 너무 일찍 부르심을 받아 세상 재미도 못 보고 손해 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는 축복이 얼마나 큽니까? 일찍부터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게 되면 금쪽같은 인생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선한 일을 통해서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청지기로서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고 많은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10절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인생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셋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선한 주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주인은 일하기 전에 약속한 대로 품삯을 주었기 때문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하나님은 주권자로서 자기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늦게 온 자에게도 똑 같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주권대로 역사하신다면 왠지 하나님은 독재자인 것처럼 여겨지고 반감이 듭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 주권을 선하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을 사용하시되 진리에 기초해서 사용하시고, 생명을 살리시고, 은혜를 베푸는데 쓰시기 때문에 그의 주권은 항상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영접할 때 우리는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을 때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에 대해 깨닫지 못할 때 자연히 먼저 온 자처럼 신앙생활에 기쁨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불평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일을 경계하며 말씀하십니다. 1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 비유에서 먼저 된 자들은 먼저 부르심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복음역사에 개척자들에 해당합니다. 이들이 나중 된 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감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나중 온 자는 아무 내세울 것이 없었기에 부르심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여 감지덕지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먼저 온 자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여 대낮에 고생스럽게 땀 흘리며 일하다 보니 자기 의가 생겨나 부르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의가 생겨날 때 감사 대신에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처음에는 주인의 부르심에 깊이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일꾼들이 새롭게 들어오면서 포도원에 들어온 시간을 비교하며, 수고하고 흘린 땀의 양을 비교하였고 결국에는 주인과 약속한 품삯을 비교하였습니다. 개척자들이 끝까지 은혜를 감당치 못하고 힘들어지는 것은 부르심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비교의식으로 인한 불평과 반발심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개척자로서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는데 나중 온 자와 똑 같이 취급할 수 있느냐 하며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을 불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은혜를 베풀기 원하시는 것처럼 나중 온 자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와 비교의식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좋은 관계성을 맺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먼저냐 나중이냐 순서 없이 모두 먼저 된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먼저 된 자’ ‘나중 된 자’는 시간문제가 아니라 누가 하나님과 더 좋은 관계에 있는가 하는 관계성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았으나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질 때 나중 된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가운데 하나님 안에서 먼저 된 자가 받은 복을 겸손히 잘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불신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영적으로 전혀 무지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경희 치대를 들어와 캠퍼스에서 인생의 의미를 몰라 방황하며 죄만 짓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일찍 저를 캠퍼스 포도원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저는 아무 자격 없는 자를 일방적으로 불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서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꾸준히 성경을 공부하며 회개와 감사의 생활을 반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치대의 조상이라는 벅찬 은혜와 특권을 베푸시며 영육간에 많은 열매를 맺는 사명인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월이 38년이나 많이 흐르다 보니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여 주시고 사명인으로 불러 주신 은혜에 감사함이 사라지고 무덤덤하게 신앙생활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쓰임 받을 만한 능력이 있어서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교만과 자기 의가 있음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구원 받은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더라면 세상에서 소시민적으로 살며 죄악의 열매만을 맺으며 멸망의 길로 가는 추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캠퍼스 시절 이른 시기에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하나님과 교제 나누며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한 사명인의 삶을 살아 왔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 찬송 드립니다. 제가 먼저 온 자로서 하나님께서 제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은혜에 깊이 감사하고 앞으로도 겸손하게 베푸신 은혜를 감당하며 캠퍼스 지성인들이 다 구원받고 부르심 받을 그날을 희망하며 기도하는 수고를 감당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포도원에 이른 아침에 온 사람입니까, 아니면 오후 5시에 온 사람입니까? 우리가 어느 때에 부르심을 받았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행복하게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가지고 아름다운 캠퍼스 포도원에서 열심히 사명을 감당함으로 마음에 천국을 소유한 복 있는 자요, 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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