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0-04 (일) 10:12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30강-1.hwp (31KB) (Down:20)
ㆍ추천: 0  ㆍ조회: 116      
IP: 61.xxx.145
[2020년 마태복음 제30강]섬기러 오신 예수님
2020년 마태복음 제 30강                                                                                            이 인구
섬기러 오신 예수님
말씀/마태복음 20;17-34
요절/마태복음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12제자들에게 진정 큰 자가 어떤 자이고 어떻게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는가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위대한 삶의 비밀을 배우고 예수님을 따라 위대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3번째 앞으로 당하실 고난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18,19) 그전에도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지만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워올수록 십자가의 길이 뚜렷이 보이셨습니다. 반면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첫 번째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강하게 반발했다가 책망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심히 근심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실 때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아예 귀를 막고 듣지 않고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전에도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좋아하시는데 이번 십자가말씀도 비유일 것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3년 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아 온갖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또 수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왕처럼 환호하며 따르는데, 예수님께서 정말 십자가에 죽으신다니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 전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귀에 맴돌았습니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보좌에 앉아--’(19;28) 그들은 메시아 왕국이 건설되면 누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을 것인가에 온통 마음이 쏠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양의 눈을 하며 마음속으로만 야망을 불태우는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세베대의 아들들 즉 요한과 야고보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야망을 쟁취하고자 엄마찬스를 이용하였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했습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1)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살로매는 자매관계였습니다. 살로매는 육신으로는 예수님의 이모였습니다. 사실 요한과 야고보는 베드로와 함께 제자들 중에서도 수제자급, ‘인싸’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도 3제자만 데리고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또 그들은 다른 제자들이 산 밑에 있는 동안 베드로와 함께 변화산위에서 변형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자들 중에서도 이들의 입지는 견고했습니다. 하지만 자칭 원톱 수제자라는 베드로가 문제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후 천국열쇠를 약속받았습니다. 또 항상 모든 일에 앞장서서 원톱 수제자처럼 행동함으로 예수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요한도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베드로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고, 고민 끝에 엄마찬스를 이용하였습니다. 그들의 어머니는 아들들의 야망을 알고 기꺼이 예수님께 청탁하며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남이가!”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들이 구하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없이 낮은 십자가의 길을 향해 가시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한없이 높은 세상영광의 꼭대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문제를 아시고 질문하셨습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보통 ‘잔’은 영광의 잔을 의미할 때도 있지만(시23;5, 116;13) 하나님의 진노(사51;17, 렘25;15)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항상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았던 예수님이 마땅히 영광의 잔을 마실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수님의 표정에서 마시려는 잔이 고난의 쓴 잔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을 수만 있다면 아무리 쓴잔도 기꺼이 마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아 여기까지 왔는데 설마 죽기라도 하겠어?’생각하며 맹세했습니다. “할 수 있나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높이 되고자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동물들은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짐승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높이 올라가고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고 만족이 없습니다. 이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조차 배반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로마의 부르투스는 권력을 얻기 위해 아버지와 같이 따르던 케사르를 암살하였습니다. 김정은은 절대권력에 방해되는 이복형을 암살하고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처형했습니다. 세상권력을 목적(우상)으로 삼는 세상 사람들이야 그렇다 해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는 신자들이 이렇게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하나님영광을 위해 높은 자리에서 헌신하겠다고 하지만 실상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열심히 노력해 높아지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말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목적이 하나님영광이 아닌 자신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영광이 앞설 때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처럼 하나님을 떠나 사단의 종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고난의 잔을 기꺼이 마시겠다고 맹세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도망함으로 그들의 맹세는 헛맹세가 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고백을 하나님 앞에서 한 서원으로 받아주셨습니다.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23) 그들은 비록 자기영광을 위해 맹세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서원을 기초로 그들의 인생을 낮지만 진정 높은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고난의 잔을 마실지라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높은 자리에 앉아 성공했다는 이들은 흔히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자서전을 내며 자기영광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그 사람의 성공이유는 단지 그 사람의 능력과 의지나 열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성공한 이들의 자서전을 필독하며 그대로 따라하지만 거의 대부분 똑같이 성공하지 못합니다. 성공한 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찾으려 하지만 사실 그런 성공의 절대반지는 없습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는 자서전을 냈던 한 회장이 세상을 누비며 놀라운 성공신화를 쓴 것이 단지 그의 의지와 능력 때문만은 아닌 것처럼 그가 국가부도사태를 맞아 한순간에 폭삭 망한 것도 단지 그의 자질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나 의지위에(넘어) 인간이 움직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기회를 잘 타서 또는 운이 좋아서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세상을 지으시고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선하신 주권가운데 세울 자를 세우시고 폐할 자를 폐하십니다. 세상역사도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 역사 속에서 신자가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입니다.(롬9;15,16) 하나님은 하나님 역사가운데 가장 합당한 자를 가장 합당한 때에 세우십니다. 야곱의 편애를 받아 채색 옷을 입고 다녔던 요셉은 처음에는 한나라의 총리는커녕 한 가정의 총리가 될 그릇도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한 주권과 섭리대로 인생연단을 받은 후 요셉은 당시 최강대국 애굽의 총리로 설만한 지혜와 능력이 얻었고 또 죄악된 형제들을 감당할 믿음과 내면성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을 좇으며 하나님역사의 주역이 되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지만 아직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인간적인 야망을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따르며 낮아져 섬기면서 하나님의 비젼과 소망으로 바꾸길 원하셨습니다.
  요한과 야고보가 엄마까지 동원한 것을 보고 나머지 열 제자가 분노했습니다. 경쟁자 베드로뿐 아니라 예수님 좌우편에 앉을 소원도 없는 가룟유다까지 흥분하며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공평과 정의를 깨뜨리는 두 형제들의 탐욕과 반칙에 분노했지만 실상 본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세상의 위대함과 영적인 위대함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첫째, 세상의 위대함-권력(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25) 세상의 위대함의 기준은 권세(힘, 권력)입니다. 헬라인들은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지배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니체는 인간 행동의 동기를 ‘힘과 권력을 향한 의지’로 설명했습니다. AD 68년 네로 황제를 축출하고 로마황제가 된 갈바는 권력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황제가 되었으니 내가 원하는 것을 누구에게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누구에게도 할 수 있는 것이 권력입니다. 그는 부유한 명문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총독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최고의 권력을 잡고자 네로황제에 맞서 마침내 로마황제의 자리까지 오릅니다. 그러나 본인의 실정과 부하들의 비리로 인해 최고의 자리에 오른지 7개월 만에 암살당했습니다. 약육강식의 초원의 동물들처럼 권력을 잡은 이들은 약한 자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무력으로 권력을 얻었지만 현재는 물질(돈, 경제)이 권력입니다. 최근 ‘영끌’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됩니다. ‘영끌’은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뜻으로 영적인 소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친 듯이 오르는 서울시내 아파트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영혼까지 바쳐 돈을 끌어 모으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아파트는 너무 올라 많은 젊은이들이 영혼까지 끌어 모아 주식을 사고자 합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물질이 주는 권력을 갖고자 합니다. 물질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의 종이요 노예로 전락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혼까지 끌어 모으는 동안 영혼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영적인 위대함, 진정한 위대함은 무엇입니까?
둘째, 진정한 위대함-섬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자는 저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26,27)
어느 부자가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교회에 나가면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나가 서원했습니다. “목사님 제 병이 치료되어 생명이 연장된다면 제가 교회를 크게 건축하겠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님은 큰 기대를 가지고 모든 신도들을 동원하여 밤낮으로 합심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나 병이 깨끗이 나았고 그는 약속대로 큰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장로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수시로 장로님을 칭찬하면서 무엇을 하든 앞세워주고 왕처럼 섬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자신도 큰 교회에서 황제처럼 섬김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장로님은 죽어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식당에 갔는데 아무도 자신을 서빙하는 사람이 없어 한 종업원을 붙들고 물었습니다. “저 손님들은 깍듯이 섬기면서 왜 나는 물도 주지 않고 서빙도 안합니까? 어떻게 천국식당이 우리교회보다 못합니까?” 종업원이 하는 말 “저 분들은 지상에서 예수님처럼 항상 남을 섬기며 희생하며 살았기 때문에 여기서 섬김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분들은 셀프서비스입니다.” 장로가 물었습니다. “그럼 우리교회 목사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종업원이 말했습니다. “아! 그 목사님은 방금 전에 배달 나가셨어요.”
  진정 큰 자는 종처럼 낮아져 다른 이들을 섬기는 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나중에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섬김 받는다 해도 지금 종처럼 낮아져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 두 가지 중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구의 중심에서 끌어당기는 중력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에서 끌어당기는 이기심이라는 중력입니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존재라고 합니다.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결국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지배받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처럼 훌륭해 보이는 봉사와 충성에도 이기심이 숨어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를 갖기 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우리 영혼 속에 감추어진 거룩한 형상은 육신의 이기적 유전자에 분노하며 이기심을 절제하며 하나님영광을 위해 다른 이들을 섬기며 살게 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강한 추진력을 가진 비행기를 타면 중력에서 벗어나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본성으로는 할 수 없지만 나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따를 때 그 섬김의 길을 갈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8)
이 말씀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가장 잘 요약해주는 말씀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무엇을 위해 죽으셨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섬김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낮아져 섬길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며 위에서 군림하려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당신을 떠나 잃어버린 영혼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연약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임마누엘) 말구유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고 갈릴리 비천한 땅에서 비천한 어부들을 부르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적 욕망에 사로잡힌 그들을 끝까지 인도하시며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섬겨주셨습니다. 왜냐면 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이 사랑과 희생의 섬김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우리는 천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보장받았지만 이 땅에서는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을 위해 종처럼 낮아져 섬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권세 없고 힘없고 돈 없는 이들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종처럼 낮아져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낮아져 섬기면서 수치심과 굴욕감으로 이를 갈며 높아지겠다고 다짐합니다. 반면 권세 있고 힘 있는 이들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그 권세를 부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가진 권세와 힘이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지 뺏길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고 지금 누릴 수 있을 때 누리자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존재의 열등감과 이를 보상하고 극복하려는 권력에의 의지이다.”(열등감에 대한 보상욕구)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은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이 최고 권력에 대한 집착과 도전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열등콤플렉스)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자존감이 낮은 이들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처럼 낮아져 섬길수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희생의 섬김으로 신자는 이미 구원받아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세상권력에 집착하거나 억매일 필요없고 하나님영광을 위해 예수님처럼 낮아져 섬김으로 진정한 기쁨을 체험하고 생명의 열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헨리 나우웬(1932-1996)은 천재로 불리며 오르막길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심리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예일대를 거쳐 하버드대학교수로 명성 있는 작가요 지도자로 성공과 영광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찬사 속에서도 참된 기쁨과 만족을 찾지 못했고 50대가 되던 어느날 정신지체장애인 단체의 초청으로 잠시 봉사하게 됐습니다. 그곳에 아담이라는 장애인 청년을 섬기면서 알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아담은 정신지체 장애인이지만 깨끗하고 투명한 영혼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의 영혼과 부딪히면서 나우웬은 자신에게 붙어있던 찌꺼기, 거짓된 위선과 가면이 찢겨 나가며 자신의 영혼이 치유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낮아져 섬기면서 낮아져 오신 예수님이 그의 영혼을 치유하셨습니다. 그 체험 후 그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버드대를 떠나 장애인단체로 가면서 말했습니다. “오르막길 인생은 성공과 칭찬에 가려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낮은 곳에서 예수님을 만날 것 입니다.” 그 후 그는 10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장애인들을 섬기면서 마지막 생애를 마쳤습니다.
사람들은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을 베푸는 것이요 손해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섬김으로 신자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을 통해 그들뿐 아니라 자신이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는 가장 귀한 영생을 소유하고 성령의 인도함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사람들처럼 실체도 없는 세상권력을 좇으며 자기존재를 잊을 때가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신기루 같은 세상권력을 목말라 하면서 아직도 가난하고 배고프다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처럼 낮아질 때 자신 안에 있는 놀라운 보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생명과 사랑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생명과 사랑으로 낮아져 섬길 때 더욱 풍성해지고 부유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고 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다는 것, 내가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인생이요 진정으로 위대한 인생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가 실제적인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는데 그중 맹인 두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무리들이 다그치며 잠잠하라고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험한 분위기속에서도 맹인들은 더욱 소리 질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면 고통의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십자가의 고통과 치욕이 얼마나 큰지 아시기 때문에 두렵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중요한 순간 이름도 없는 비천한 맹인의 아우성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도 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의 눈을 만지셔서 치유해주셨습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그런 비천한 죄인들을 섬김으로 구원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소경을 섬긴 후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결국 모든 이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섬김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고 이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요사이 코로나 시대 대면접촉과 대면예배가 금지됨으로 서로간의 만남도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섬길 수 있는가 의심됩니다. 코로나 시대 자영업자들은 급감하는 수입 때문에, 청년들은 더욱 어려워진 취업 때문에, 학생들은 온라인수업으로 인한 학업문제 때문에 각자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는가 말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또 예수님의 섬김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 다른 이들에게 관심가지고 불쌍히 여기며 섬겨야 되는 책임이 있고 또 섬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코로나가 확산되는데 교회에서 많은 감염고리가 나와 정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신자들은 변명하고 숨기보다 예수님의 섬김의 사랑으로 주변 사람들에 관심 갖고 섬김으로 오히려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도 소경을 섬기신 예수님처럼 우리가 모두 힘든 이 시기 하나님의 자녀로써 주변 사람들을 낮아져 섬김으로 하나님영광을 드러낼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섬기는 양들도 직접 만나 섬겨주기 힘들어도 전화나 인터넷을 통한 말씀으로 또 간절한 기도로 섬김으로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큰 부담감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평소 섬김의 삶을 살지 않았고 또 얼마 전 자녀의 건강문제 때문에 마음이 닫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들이 기흉으로 수술하면서 큰 근심의 어둠에 빠지게 됐습니다. 3년 전 첫째 자녀가 고2일 때 기흉증상이 시작되어 몇 번이나 재발됐었고 그런 힘든 시간이 둘째도 되풀이 되는가 불신과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내 현실문제도 감당하기 힘든데 무슨 섬김인가? 소원도 없는 배부른 양들을 섬길 심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이 창궐하고 전공의까지 파업할 때 동역자와 둘째 아들이 병원에 10일 이상을 입원하면서 저와 첫째가 불안과 답답함 속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센터 사모님들이 돌아가면서 반찬을 섬겨주셨습니다. 특히 경희사모님은 수시로 동역자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고 기도해주시며 절망 속에서도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둘째 자녀가 퇴원한 후에도 장래문제로 힘든 첫째 자녀를 위해서 같이 대화하고 기도해주시며 섬겨주셨습니다. 사모님의 과거 인생의 고통은 낮아져 오신 예수님을 통해 치유됨으로 다른 많은 이들을 섬길 수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이 죄인들에게 큰 힘과 위로와 생명이 되는 이유는 예수님도 똑같이 죄인들처럼 낮아져 인생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겪고 공감하시고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자도 인생의 환난속에서 예수님의 섬김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고 또 그 체험을 통해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환란을 피할 수 없지만 신자이기 때문에 환란 속에서 예수님의 섬김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고 또 그 체험으로 다른 고통 받는 이들을 사랑과 믿음으로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섬김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대속물로 섬기고 희생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참된 권력은 섬김입니다.(프란시스코 교황) 지위가 올라가는 것은 더 많이 누리는 것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위가 올라간다는 것의 참된 의미는 섬겨야 될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영광을 위해 다른 이들을 낮아져 섬김으로 기쁨을 얻고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6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3강]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 관리자 2020-10-25 11
668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2강]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관리자 2020-10-18 92
667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1강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0-10-11 104
666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0강]섬기러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20-10-04 116
66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9강]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관리자 2020-09-26 127
66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8강]영생을 얻으려면 관리자 2020-09-20 126
66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7강]용서하라 관리자 2020-09-12 148
66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6강]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관리자 2020-09-06 154
66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5강]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관리자 2020-08-30 156
66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4강]주는 그리스도 관리자 2020-08-22 167
65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3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관리자 2020-08-16 170
658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5강]내 안에 거하라 관리자 2020-08-09 133
657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길, 진리, 생명 관리자 2020-08-08 72
656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다 이루었다 관리자 2020-08-08 75
655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2강]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관리자 2020-08-08 62
654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1강]빛 되신 예수님 관리자 2020-08-08 65
65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2강]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20-08-02 146
65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1강]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관리자 2020-07-26 176
65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0강]네 종류의 밭의 비유 관리자 2020-07-19 161
65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9 강]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관리자 2020-07-12 173
12345678910,,,3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