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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0-25 (일) 18:07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33강-1.hwp (30KB) (Dow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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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33강]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
2020년 마태복음 제 33강 (최동진)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

말씀: 마태복음 22:1-14
요절: 마태복음 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오늘 말씀에는 모든 사람들이 천국 잔치에 참여하여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권위에 반발하는 종교지도자들의 문제와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한 자들이 받게 될 심판이 어떠한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 “내가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우리를 간절한 마음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기쁨으로 응답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세상에서 죄로 더러워진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예복을 입음으로 하나님의 구원 잔치에 참여하는 은혜와 기쁨을 충만히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시간에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의 완악한 마음을 깨우쳐 주기 위해 두 아들의 비유와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전혀 회개할 마음이 없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세 번째 비유로 그들의 완악함을 깨우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천국은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와 같습니다. 세상에서 혼인 잔치만큼 기쁘고 즐거운 잔치는 없습니다. 주인공인 신랑 신부는 말할 것도 없고 고된 노동과 율법의 짐을 지고 하루하루 지치고 피곤한 삶을 이어가던 백성들에게는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일주일 동안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금식하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임금은 아들의 결혼식이 있는 그 주간을 특별히 임시 공휴일로 선포하고 온 나라 백성들이 함께 마음껏 즐기게 하였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준비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철없던 자식이 어느덧 장성하여 결혼하는 것을 보면서 벅차오르는 감격과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황태자의 혼인 잔치는 그 나라의 미래와 백성들의 행복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었습니다. 신부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며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을 것입니다. 신부는 장차 왕비로서 모든 백성을 품고 섬기는 국모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택했을 것입니다. 신부의 가장 첫째 조건은 믿음이 좋아야 했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먼저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는 기도의 여인이요, 넓은 마음과 온화함과 덕을 갖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까다로운 심사와 검증을 거쳐 신앙과 지성과 미모와 내면성을 두루 갖춘 일등 신부감을 골라 혼인 잔치를 성대하게 준비했습니다. 경성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브람스 왈츠 15번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일류 셰프들이 만든 코스 요리에 프랑스산 와인을 곁들여 마시면서 귀족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별 순서로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능가하는 팬텀싱어의 축하 공연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아름다운 불꽃놀이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였습니다. 임금은 기쁜 마음으로 1년 전부터 세계 각국의 축하사절단과 국내외 귀빈들을 엄선하여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혼인 잔칫날이 임박해서는 종들을 보내어 청한 사람들을 모셔 오도록 하였습니다. 이 혼인 잔치에 참석한다는 것은 선택받은 VVIP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축복이었습니다. 이런 자리에 초청받는다면 만사 제쳐놓고 참석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그들은 오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1년 전 초청에 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풍습에 처음 초청을 수락한 후에 두 번째 초청을 거절하는 것은 주인에 대한 모욕으로 여겨졌습니다. 더구나 임금의 초청을 거절한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왕의 권위를 무시하는 처사였습니다.

  비유에서 임금은 하나님, 황태자는 예수님,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 넓게는 인생 모두를 가리킵니다. 천국은 마치 신랑되신 예수님의 혼인 잔치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혼인 잔치를 성대하게 준비하시고 우리 인생들을 초청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9절에서 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구원의 잔치요 생명의 잔치입니다. 은혜와 사랑의 잔치요, 기쁨과 소망의 잔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잔치에 가장 먼저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국 잔치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보통 임금이라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당장에 특별법을 만들어 처벌하거나 옥에 가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임금은 달랐습니다. 임금은 깊은 이해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초청하였습니다. 종들의 태도가 무례해서 화가 나서 오기를 싫어한 모양이라 생각하고 이번에는 잘 훈련된 다른 종들을 보내어 더욱 정중하고도 간곡하게 초청하였습니다.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4)” 사실 임금은 조금도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권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끌고 와서 참석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겉으로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치고 앉아 있지만 마음으로는 불평, 불만과 반발심으로 가득 차서 은혜와 가쁨이 없는 어색하고 냉랭한 잔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임금은 그런 잔치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은 이들이 마음으로부터 기뻐하며 축복된 잔치를 즐기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까지 인격적으로 정중하게 초청했습니다. 임금은 참으로 겸손하고 온유하며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선지자들을 보내어 메시야 탄생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약속대로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로 병든 인생들을 섬기시고 모든 인류의 죄짐을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생들을 괴롭히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때마다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을 허락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메마르지 않게 하시고 생명의 열매 맺는 복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축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혼인 잔치에 참석하기만 하면 영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첫째로, 무관심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들은 황태자의 혼인 잔치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밭’, ‘자기 사업’ 등 ‘자기 일’에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누가복음 14장 18-20절에는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노아 시대와 같이 영적인 것에는 무관심하였고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시집 가고 장가 가는 세상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 일을 더 앞세웠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요즘 사람들의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아파트 가격은 부동산에 대한 관심의 열기를 실감하게 합니다. 연일 쏟아지는 각종 규제로 부동산 투자가 어려워지면서 동학개미라고 불리는 이들의 주식투자 열풍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캠퍼스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학과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성경공부 할 시간을 내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불확실한 장래에 대비하여 주식을 공부하고 영어공부와 각종 스펙을 쌓기 위해 온 힘을 쏟으며, 취직시험 준비로 바빠서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쏟을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이들의 근본문제는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복음을 듣고 천국 잔치에 참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복음에 대한 무관심은 구원 잔치에서 멀어지게 하고 결국에는 자기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둘째로, 적극적으로 대적하며 악을 행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그들은 악한 감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종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한 것입니까? 종들이 혼인잔치에 오도록 끈질기게 간청하자 귀찮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이유로 그랬든지 이는 명백히 임금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들은 인자하고 이해심 많은 임금을 우습게 여기고 만만하게 생각했습니다. 초청을 거부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결과에 대해서 반드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임금은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분이시지만 언제까지 참고만 있는 무골호인이 아니십니다.

  임금은 그들을 어떻게 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임금은 공의로운 분으로서 때가 되면 반드시 죄를 심판하십니다. 초청을 무시하고 자기 밭으로, 자기 사업하러 간 것까지는 참으셨지만 임금의 종들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참지 않으셨습니다. 임금은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라 버렸습니다. 임금이 이때까지 참은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배려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의 은혜와 특권을 저버리고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 때 그 결국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A.D.70년 로마 군대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심으로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하기까지 약 1900년 동안 세계 각 나라에 흩어져서 온갖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한 자에게 임한 진노의 심판이었습니다.

  청한 사람들의 거절로 인해 흥겨워야 할 혼인 잔치가 살인자들을 진멸하는 심판의 잔치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혼인 잔치는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잔치를 결코 포기하거나 연기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은 종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주었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네거리 길에 있는 자들은 VIP들이 아닙니다. 네거리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할 일 없이 서성이는 사람들, 죄 가운데 방황하는 사람들, 몸이 성하지 못한 사람들, 가난한 자들, 부랑자들, 건달들 등 대부분 황태자의 혼인 잔치에 들어오기에는 부적절한 비천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임금은 이런 자들을 모두 데려오라고 명했습니다. 누가복음 14장23절에서는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하였습니다. 임금은 잔칫집을 손님들로 가득 채워서 혼인 잔치를 성대하게 이루기를 원하였습니다. 여기서 ‘네거리 길’은 ‘세계 각 나라’를 ‘만나는 사람들’은 세상 만민을 가리킵니다. 택한 백성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함으로 구원의 축복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결과적으로 구원의 문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방황하던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활짝 열렸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허락하시고 천국 잔치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본래 이방인들로서 네거리 길에서 방황하던 자들이었는데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초청받고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종들은 임금의 명령에 순종하여 선악에 상관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혼인 잔치에 데려 왔습니다. 종들은 사람의 외모나 사회적 신분이나 도덕성을 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만나는 대로 초청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세리와 창기와 강도도 있었습니다. 게으름뱅이, 허랑방탕한 자도 있었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천국 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종들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네거리 길에 나가서 각종 죄인들을 혼인 잔치에 초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초청을 많이 할수록 욕도 많이 먹고 무시도 많이 당합니다. 네 거리에 나가지 않으면 욕먹을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종들은 자기 생각이나 체면, 자존심은 땅에 내려놓고 임금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은 임금을 사랑하고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의 충성심으로 말미암아 성대한 혼인 잔치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런 충성된 종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전도하기 매우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천국 잔치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실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 되는 가운데 온라인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온라인 1대1이나 GBS는 일상이 되었고 그 외에도 각종 모임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은 그 범위에도 제약이 없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님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강의도 듣고 함께 토론도 하고 은혜를 나누는 모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일들이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현실화 되어 진일보된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도전하는 자들을 통해 새 역사를 이루어나가십니다. 저희가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양들을 천국잔치에 초청함으로 우리 가운데 풍성한 생명 구원의 잔치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구원의 문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지만 천국 잔치를 누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요구되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복을 입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모임에도 드레스코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어울리도록 옷의 스타일이나 격식, 모양, 색상 따위를 정해놓은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모임에 초청할 때에 초청장에 드레스코드를 명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풍습에는 혼인 예식에 입장하는 하객들에게 예복을 나눠주었습니다. 경건한 혼인 예식을 위해서 반드시 이 예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임금의 아들의 혼인잔치인 만큼 이는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었을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혼인 잔치에 사람이 가득 찼을 때에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왔습니다. 예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합당한 예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잔치 집에 들어오기는 했으나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복을 입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복은 몸에 잘 맞지도 않고 어색하고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는 최신 유행 스타일의 자기 옷이 더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예복을 입는 것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예복을 받고도 입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그가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은 임금의 권위를 무시하고 임금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것이요, 황태자의 혼인 잔치를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12,13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임금이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왔는지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천국 잔치에 들어왔으나 천국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쫓겨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이 과거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천국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반드시 예복을 입는 것입니다. 이 예복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의의 옷을 가리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은 후 수치심으로 스스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지만 이는 그들의 죄를 온전히 가려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희생시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 가죽 옷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가릴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살과 피를 희생하셔서 우리의 죄를 가려주셨습니다. 로마서 13장 14절은 말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또 갈라디아서 2장 16절은 말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 옷을 입으려면 세상에서 입고 있던 자기 옷을 벗어야 합니다. 교만과 정욕으로 더럽혀진 옷, 불신과 불순종과 반발심으로 얼룩진 옷, 율법과 자기 의로 딱딱해진 옷을 벗어버리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진실되게 고백하고 회개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나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의의 옷, 구원의 예복을 입혀주십니다. 이 예복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가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자만이 영광스러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예하여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자기 일로 바빠 천국잔치를 맛 볼 수 없던 저를 학창시절 주님의 종들을 통해 간절하고 끈질기게 초청하여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기심과 인본주의와 세상 욕심의 죄로 더러워진 옷을 벗고 예수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기까지 말씀과 중보기도로 섬겨주심으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고 영육간에 풍성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이 길어지면서 저의 관심은 현실에 매이고 하나님의 역사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저 병원을 찾아와준 환자가 고맙기는 하여도 내일은 어떨지 두려움으로 맞이해야 했습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히포크라테스형을 아무리 불러 봐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구원의 잔치를 베풀고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제가 날마다 현실에 얽매이는 마음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초청의 음성에 응답함으로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저를 통해 누구든지 구원의 잔치에 초청하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먼저 초청받은 자로서의 특권만 누리려 하기보다 죄로 병들고 세상에서 지친 영혼들을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으로 초청하여 구원의 잔치를 이루는 데에 쓰임 받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청함을 받았지만 택함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두 부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초청을 받았지만 오기를 거절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먼저 천국 잔치에 초청 받았지만 자기 일에 마음을 빼앗겨 참석하기를 거절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는 초청에는 응했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는 교회에는 들어왔으나 세상 죄를 회개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교제하고 성경공부 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말씀 앞에서 회개함으로 죄로 더러워진 나의 옷을 벗고 예수님의 의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천국잔치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택함을 입은 자가 적다는 것은 단순히 현상만을 언급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택함을 입은 자들이 많아지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코로나로 인한 현실의 어려움으로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갖기가 더욱 어려워진 이 시대에도 풍성한 구원의 잔치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대면 모임을 이루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으로 어떤 모양으로든지 양들을 초청하여 구원의 잔치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온라인 1대1을 적극적으로 이루고 중보기도로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초청받은 모든 사람들이 죄로 오염된 자기 옷을 벗고 정결한 그리스도의 옷을 입음으로 천국잔치에 택함 받은 자로서 구원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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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5강]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관리자 2020-08-30 180
66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4강]주는 그리스도 관리자 2020-08-22 181
65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3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관리자 2020-08-16 184
658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5강]내 안에 거하라 관리자 2020-08-09 150
657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길, 진리, 생명 관리자 2020-08-08 88
656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다 이루었다 관리자 2020-08-08 89
655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2강]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관리자 2020-08-08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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