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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1-29 (일) 09:57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37강-1.hwp (32KB) (Dow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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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37강]착하고 충성된 종
2020년 마태복음 제37강                                                                                                  이 인구

                                                             착하고 충성된 종

말씀/마태복음 25;1-30
요절/마태복음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예수님은 인류최후 심판의 날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신자들이 어떤 사람인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비유들은 신자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슬기로운 자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비밀을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장. 열 처녀 비유(1-13)

열 처녀 비유는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결혼은 대단한 경사로 온 마을이 총 출동하여 신혼부부를 새 가정으로 보내는데, 가는 중에 많은 사람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 가장 긴 길을 통해 간다고 합니다. 유대격언에 ‘여섯 살부터 60세 노인까지 결혼 행진곡에 발맞춘다’ 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결혼은 신랑이 신부 집으로 와서 결혼식을 하고 일주일동안 잔치를 하였습니다. 결혼식은 보통 해가 진후 저녁부터 시작되었는데 신랑이 신부 집으로 올 때 신부의 친구들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신부의 친구 열 처녀는 신랑을 신부 집으로 인도하고 같이 성대한 결혼잔치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열 처녀 중 5명은 슬기로웠지만 5명은 미련했습니다. 슬기로운 5명은 등과 함께 만일의 사태를 위해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였지만 미련한 5명은 등은 준비하였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랑이 빨리 올 것이라 생각했든지 아니면 결혼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기름까지 준비하는 수고와 희생을 하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릅니다.
비유의 말씀에서 신랑은 재림하실 예수님을, 열 처녀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다시 오실 때 신자들은 간절히 기다리던 예수님을 맞이하여 천국으로 인도되지만 신자 중 어떤 이들은 구원의 문에 들어서지 못합니다. 그들은 비유의 미련한 처녀들처럼 늦게 오는 신랑을 위해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등’은 신자들의 외형적인 신앙의 모습(교회출석, 봉사, 헌금등)을 상징하고 ‘기름’은 이를 유지시키는 성령 즉 예수님과의 내적 관계성, 믿음을 상징합니다. 미련한 처녀들처럼 등은 준비했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못한 이들은 외적으로는 교회에 다니고 봉사도 하며 심지어 헌금을 할 때도 있지만, 말씀을 사모하며 순종해 살지 않는 신자들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깊은 내적관계성,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신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딤후3;5) 또 처음에는 뜨거운 열정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련한 처녀와 같이 그 신앙의 열정이 식어 마침내는 예수님을 맞기에 합당하지 못한 인본주의 신자나 세속주의 신자들로 타락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날 때부터 슬기로운 신자, 미련한 신자로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본문 비유처럼 50%나, 어느 이단주장처럼 144000명으로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얼마나 말씀을 좇고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평상시 교회 내에서 같이 섞여 있지만 마지막 날 진짜와 가짜가(알곡과 가라지가) 확실히 구별됩니다.

아름다운 신부를 보기 위해 초저녁부터 올 줄 알았던 신랑은 저녁이 지나 자정이 가까이 와도 오지 않았습니다. 처녀들은 슬기로운 자나 미련한 자나 기다리다 졸기 시작했고 등이 희미해지며 어떤 이는 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신랑은 약속대로 다시 왔고 신랑이 왔다는 외침소리에 슬기로운 5처녀들은 미리 준비한 기름으로 다시 밝히며 신랑을 맞았지만 미련한 5명은 준비한 기름이 없어 허둥대기 시작했습니다. 체면을 무릅쓰고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나눠줄 것을 요청했지만 자신들의 쓸 것도 부족하니 기름장사에게 가라 핀잔만 얻었습니다. 그들이 사러간 사이에 신랑은 왔고 슬기로운 처녀들과 같이 혼인잔치에 들어간 후 문은 닫혔습니다. 나중 미련한 처녀들이 와서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이미 닫혀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미련한 처녀뿐 아니라 슬기로운 처녀도 졸았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질수록 신자들은 믿음의 도전을 받습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육신의 연약함으로 죄에 빠질 수 있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살았던 이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바로 회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 말씀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 습관적으로 살던 자들은 위기의 때 혼돈에 빠집니다. 인생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서 전진하라는 건지 아니면 돌아가라는 건지 분간하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홍해의 위기처럼 믿음으로 앞으로 전진하라는건지 아니면 여리고성처럼 믿음으로 돌아가라는건지 깨닫지 못합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위기 속에서 꾀를 내어 기름을 빌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성령(믿음)은 나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신자 각자가 받는 것입니다.(요14;16,17) 하나님은 자녀는 있지만 손자는 없다고 합니다. 신자는 각자의 믿음으로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지만 믿음 있는 신자를 부모로 두었다 해도 저절로 하나님의 손자가 되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부모가 불신 자녀를 위해, 믿음의 친구가 불신친구를 위해 기도하며 말씀으로 인도할 수는 있지만 최종 구원은 결국 그 사람의 의지와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한 사람의 자유의지를 임의로 주관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현재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가 온 세상을 바꾸는 전대미문의 코로나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코로나 전파를 통해 신천지라는 거짓이단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점차적으로 교회에 많은 확진자들이 나오면서 교회가 큰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많은 정치인들뿐 아니라 불신자들이 교회를 판단하면서 교회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혼돈의 시대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신자들 가운데 알곡과 가라지(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려고 하시는 것을 깨닫습니다. 미련한 처녀들같이 성령을 좇지 않고 믿음 없는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환난가운데 참 신자들은 말씀 앞에서 회개하며 더욱 굳건한 믿음가운데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마치면서 간절히 당부하셨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12) 깨어 있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깨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잠을 안자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각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가운데 임재하시고 기도가운데 말씀하십니다. 간절한 심정으로 말씀 속에서 길을 찾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깨어있는 삶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묘사한 ‘솥 안의 개구리(Frog in the kettle)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구리를 솥 안의 끓는 물에 넣으면 놀라 뛰쳐나갑니다. 하지만 솥 안의 찬물에 넣고 서서히 열을 가하면 개구리는 따뜻하고 포근함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몽롱해져서 잠을 자다가 결국 푹 삶아져서 죽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깨어있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이 시대의 죄의 문화에 점점 동화되어 사망의 잠을 자기 쉽습니다. 최근 아이나 어른이나 심지어 노인까지 가장 가까이 있고 가장 친하게 느껴지는 내 손안의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많은 정보와 즐거움을 줍니다. 하지만 너무 손에 오래 붙들고 있으면 어느새 미련한 처녀들처럼 세상 안일과 쾌락과 방탕의 죄에 빠져 솥 안의 개구리처럼 영적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오는 죄악된 시대 우리가 말씀과 기도가운데 깨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한 깨어 있는 것은 준비하는 삶입니다. 높은 지위와 권세를 가진 부자가 자기 집에서 일하는 종이 착하지만 너무 바보 같아서 불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종에게 지팡이 하나만 주며 쫓아내면서 말했습니다. “너보다 더 큰 바보를 만나면 주어라.” 몇 년 후 부자가 몸이 아파 죽게 되었을 때 바보 종이 세상 어디에도 자기보다 더 큰 바보가 없다며 돌아왔습니다. 귀족은 힘없이 말했습니다. “나는 곧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나라로 떠나야 되!” “주인님, 그곳에 가기 위해 많이 준비하셨습니까?” “준비라고? 그동안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어 아직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어!” “정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셨어요? 그럼 이 지팡이를 가지고 가세요. 비록 저는 바보지만 주인님 같은 바보는 보지 못했습니다.” 현재 지나가는 일들에 바빠서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것처럼 큰 바보는 없습니다. 깨어 있는 것은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삶입니다. 그럼 현실가운데 어떻게 사는 것이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입니까?

 
2장. 달란트 비유(14-30)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기 전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기면서 각각 그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눅19;13) 명하고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맡은 종은 바로 가서 장사하여 100%의 이윤을 남겼는데 웬일인지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묻어버렸습니다. 달란트는 당시 가장 큰 단위의 돈으로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이므로 6000데나리온은 노동자 20년 연봉이고 만약 그가 주5일 근무했으면 23년 연봉에 해당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달란트는 재능(talent)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각각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모든 이들에게 평등(equality)하게 같은 달란트를 주시지 않고 차별을 두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역사상 평등의 문제는 항상 해결되지 않은 딜레마였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평등과 자유는 서로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자유를 허용하면 능력 많은 이들이 능력 없는 이들을 지배해 평등이 무너지고, 공산주의처럼 평등을 강조하다보면 자유가 사라집니다. 얼마 전 한 재벌회장의 상속세가 큰 화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획을 그은 그는 엄청난 재산을 유산으로 남겼는데 그 재산의 60%인 10조가 넘는 상속세가 화재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상속세가 너무한 것 아닌가 분노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자녀들은 그동안 물려받은 것 외에 어머니와 함께 8조이상의 재산을 물러 받게 됩니다. 반면 어떤 이는 부모의 빚을 물려받고 평생 뛰어도 적자인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타고난 재능의 차이는 그 사람의 인생성과로 이어지고 그 혜택을 물려받은 자녀들은 시작부터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되는데 날 때부터 다른 달란트를 주신 하나님이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의심합니다. 어쩌면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불공평함 때문에 ‘에이, 겨우 한 달란트!’ 하며 땅에 묻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공평(equity)하신 하나님이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나보다 더 잘 나를 아시고 내 인생을 통해 내가 감당할만한 가장 합당한 달란트를 주십니다. 사람들은 각각의 재능과 의지와 가능성을 무시하고 똑같은 선상에 놓는 것을 공평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재산을 나눠주고 똑같은 기회를 주면 천국이 올 것이라는 공산주의는 허구로 드러나 무너졌습니다. 만약 정치적 달란트가 없는 이에게 큰 권세를 준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됩니다. 인간이 아무리 객관적이고 거시적으로 본다 해도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위에서 통찰하시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체 역사를 보실 뿐 아니라 지으신 모든 이들의 성품을 낱낱이 아십니다. 한 부모가 형제의 특성을 잘 알고 사랑으로 각각 가장 좋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형제는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서로의 선물을 부러워하며 부모가 불공평하다고 불평합니다. 그런 철없는 자식들처럼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각에 기초해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받은 것을 기억하며 감사하지 않고 내가 받지 못한 것만을 기억하고 불평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한 사람의 인생 평가를 그 사람이 남긴 외적 달란트(성과)의 양만 놓고 평가하면 불공평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지 외적 열매가 아닌 그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과 내적 동기를 보시고 그 사람을 평가하십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오랜 후에 마침내 멀리 떠났던 주인이 돌아와 종들과 결산하였습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를 맡겼는데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을 크게 칭찬했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1) 그리고 두 달란트 맡겼는데 또 두 달란트 남긴 종도 크게 칭찬하였습니다. “잘하였도다! 나머지 문장은 첫번째 종과 이하동문”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똑같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3) 주인은 종들이 남긴 달란트의 외적 양을 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그 종들이 적은 일에 충성한 것을 기뻐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맡기신 달란트를 귀히 여기고 일생 적은 일에 충성한 그 마음을 축복하십니다. 충성이 무엇입니까? 저는 과거 충성이란 말을 들으면 군대용어로 여겨 복종, 강압, 맹목적이란 이미지가 생각나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충성은 헬라어로 ‘피스토스’입니다. ‘피스토스’는 충성(loyalty)이란 뜻 이외에도 믿음도 있습니다. 충성은 강하고 높은 지위의 상관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나를 신뢰함으로 큰 달란트를 맡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적은 일에 충성할 수 있습니다. 또한 ‘피스토스’은 신실함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신실하다는 말은 하나님께 사용됩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신명기7;9)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으로 우리에게 각자 감당할만한 가장 합당한 달란트를 맡겨주시고 충성하였을 때 크게 칭찬하시고 축복해주십니다. 우리의 충성의 근거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나를 사랑하신 신실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적은 일이라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큰 일이 아닌 적은 일에 충성한 것을 기뻐하셨습니까? 그들이 인생전체를 바쳐 100% 수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적은 일에 충성하지 않고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운이 좋아서 한 번의 모험으로 벼락부자가 된 이들도 있지만 인생전체를 놓고 보면 결국 그렇게 얻은 열매는 오래못가 벼락같이 없어지고 맙니다. 현재 내가 맡고 있는 적은 것에 충성할 때 그 경험이 쌓여 큰 것도 감당할만한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인은 두 종들의 충성을 칭찬하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사람들이 많은 달란트(재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 달란트로 모든 이들이 구하는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돈도 벌고 결혼도 하고 지위도 얻고 지식을 쌓습니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해보면 행복은 돈이나 지위나 물질이나 지식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난하고 장애인으로 태어났어도 행복할 수 있고 천하를 다 얻은 사람이라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적은 일에 충성한 종들이 결국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으로 감당할 때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즐거움과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이 나의 꿈이 되어 지길 소망한다.’ 한 자매의 카톡에 있는 글입니다. 진정 그가 받은 성악의 달란트를 하나님영광을 위해 사용함으로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맡은 종은 달랐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24,25) 그는 한 달란트만 주신 것에 불공평하다고 분노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는 결코 적은 돈(재능)이 아닙니다. 노동자 20년 연봉이요 긴 인생의 시간이요 젊음이요 기회입니다. 만약 그가 다른 종처럼 적은 일에 충성했다면 주인이 결산 후 더 큰 것을 맡기실 것이고 무엇보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림으로 주인에게 받은 능력과 시간과 인생을 허비하였습니다. 그는 주인이 두려워 잃을까봐 땅에 감추었다했는데 만약 정말 두려워했다면 받은 달란트를 은행에 맡겨 이자라도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작은 수고조차 주인을 위해 하기 싫었습니다. 오히려 주인이 종들의 인생과 노력을 착취하는 자라고 원망하며 자기욕구대로 살았습니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주인에 대한 불신입니다. 그의 불신은 단지 주인에 대한 오해가 아니라 감사치 않는 악한 죄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많은 달란트를 받았음에도 악하고 게을러 땅에 묻어 버립니다. 그것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함으로 감사하지 않고 자신의 본성대로 살고자 하는 죄 때문입니다.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로 적은 것에 충성한 종들을 크게 축복하시지만 하나님을 미워하고 달란트를 낭비한 종들에게는 크게 분노하여 심판하십니다. 그것이 진정한 공평이요 공의입니다.
뇌성마비 송명희 시인은 한 달란트도 아닌 반 달란트를 가지고 세상에 왔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으로 집안이 가난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고 한 글자를 쓰기 위해 온 몸을 비틀며 수고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로 하나님영광을 위해 온전히 충성하여 시를 씀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생명을 주고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였습니다. 송명희 시인이 쓴 ‘나’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우리는 재능이라는 달란트뿐 아니라 생명과 젊음과 인생이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달란트를 맡아 장사해야 되는 청지기들입니다. 나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을 자책하거나 미워하거나 자학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달란트를 내 것이라 생각하고 허무하게 낭비한다면 그것은 큰 죄입니다. 나의 재능과 생명과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고 하면 서운해 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나의 인생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고 자유함 가운데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만약 내 재능으로 나만을 위해서만 장사한다면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두렵고 피곤하고 허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말한 ‘더 큰 바보 이론’이 있습니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자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올라 거품이 생기는데도 사람들은 탐욕으로 계속 사들입니다. 안 사면 뒤처질 것 같고 또 나중에 이 자산을 더 높은 가격에 사들일 사람, 즉 더 큰 바보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싼 가격에 사들인 자산이 올라 더 비싸게 판 사람은 봉을 잡게 되지만, 최고점에서 자산을 산 후 폭락한다면 그 사람은 더 큰 바보가 됩니다. 많은 이들이 영혼까지 끌어 모아 장사를 하는데 실상 그들은 더 큰 바보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라는 믿음이 있으면 열매에 집착하지 않고 탐욕과 두려움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영광을 위해 적은 일에 충성할 수 있습니다. 설사 잠깐 잃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외적 열매가 아닌 적은 일에 충성하는 믿음을 보시기 때문에 담대하게 도전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대로 지으신 유일무이한 최고의 창조물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주신 달란트를 찾아 인생동안 장사하여 하나님께 열매를 남겨야 하는 사명을 맡은 종들입니다. 특히 우리는 복음장사를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고 듣는 자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는 귀한 복음을 맡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귀한 달란트를 일생동안 충성된 믿음으로 장사하여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저의 둘째가 기흉수술 후 건강을 되찾자마자 막내 동생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쓰러졌습니다. 종합병원에서 많은 검사를 하고 치료를 해도 증상이 갈수록 악화되어 결국 운영하던 치과의원을 처분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양도의사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올해 자녀문제 속에서 병원직원문제와 환자문제까지 겹치며 고생하다가 간신히 해결했는데 또 동생문제까지 터지자 제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됐습니다. 그런 중에 주일예배메시지 순서까지 돌아오면서 포기할까했지만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 속에서 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동안 몇 달란트를 맡기셨는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새 생명과 인생의 달란트를 주신 하나님영광을 위해 지금 맡은 적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동생과 동생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큰 어둠이 몰려오지만 과거 극한 어둠속에 있었던 제 인생에 권능의 빛을 비춰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지금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소망과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매일 퇴근 후 한시간거리의 김포까지 다니며 양도할 사람들을 만났지만 지치고 피곤하지 않을 수 있었고 결국 양도를 내 놓은지 2주 만에 양도선생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치과 양도가 잘 진행되면서 동생 병이 죽을 병이 아니라 이를 통해 하나님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믿게 됐습니다. 과거 제가 학생 때 인생 연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동생들을 전도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현실의 안일함속에서 깨어있지 못하고 동생들에게 무관심하며 조금씩 관계성도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오히려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신자로서 어두운 현실에 억매이지 않고 말씀과 기도가운데 깨어서 지금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적은 일에 충성하는 종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2가지 비유를 통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설사 우리가 죽기 전까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구나 죽음이라는 인생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기 때문에 항상 깨어 마지막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언제 재림이 올 것인가 찾는 삶이 아닌 어떻게 재림을 맞을 것인가 준비하는 삶입니다. 그것은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말씀과 기도를 붙들며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요, 착하고 충성된 종처럼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로 적은 일에 충성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과 기도가운데 성령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로 적은 일에 충성함으로 마지막 날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신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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