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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28 (목) 15:19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1년_마태복음_제42강-1.hwp (31KB) (Down: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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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마태복음 제42강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2021년 마태복음 제42강 (고 영훈)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말씀 / 마태복음 28:1-20
요절 / 마태복음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진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할 때 그 신앙은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부활의 진리위에 견고히 놓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또한 부활신앙을 가진 자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잘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1-15)
1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부활’의 새벽이요, ‘승리’의 새벽이었습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어두움의 밤은 물러가고 예수님이 다스리는 부활의 빛이 가득한 새벽이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은 슬픔과 절망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라 드리기 위해 무덤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이르렀을 때 여인들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큰 지진이 나고 무덤을 막은 큰 돌이 굴러갔다는 사실은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임했음을 말해줍니다. 돌아가신 예수님은 아리마대 부자 요셉의 새 무덤에 안장되었습니다. 당시 부자들의 무덤은 돌무덤이었는데, 무덤 문을 막은 돌은 장정 3-4명이 굴려야 움직일 수 있는 큰 돌이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돌을 인봉하고 파수꾼을 세워 무덤을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덤을 지켜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할 때 인간의 모든 노력이 허사였습니다. 돌문은 순식간에 열려졌습니다. 그리고 지키던 파수꾼들은 너무 놀라서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놀라운 모습을 한 천사가 돌 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천사는 번개 같은 모습을 하고 눈 같이 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이기는 자에게 흰 옷을 입혀 준다고 하였습니다(계3:5). 이처럼 무덤을 막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아 있는 천사의 모습은 승리자와 정복자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는 또한 죽음을 정복하고 사탄에게 승리하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했습니다. 만약 천사가 돌아가신 예수님께 조의를 표하기 위해서 왔다면 검은 옷을 입고 슬픈 기색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메신저답게 그 모습은 승리자의 위엄이 가득하였습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전한 놀라운 소식은 무엇입니까? 5,6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여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수치스럽고 비참하게 돌아가신 고난의 주요 슬픔의 주였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배척과 멸시를 받으시고 비방의 표적이 되신 분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악에게 패배 당하신 분이요, 선하시지만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신 분이셨습니다. 여인들은 이 예수님을 생각하면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들의 심령에는 슬픈 운명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원래 일곱 귀신 들렸다가 예수님께로부터 구원을 받은 구원의 은혜가 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은혜에 감사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는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이 여인들과 같이 신앙 생활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구원의 은혜도 분명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충성합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이 없기 때문에 이 여인들과 같이 조금만 슬픈 일이 있어도 눈물을 잘 흘립니다. 또 자기는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와 운명주의에 시달리며 한숨을 잘 쉽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할 때 우리는 슬프고 운명적이고 패배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을 때 죄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한 죽음이 주는 허무와 슬픔과 운명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부활하셨습니다. 6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천사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2가지로 증거해 줍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그가 여기 계시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천사의 말대로 예수님의 시신은 무덤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의 직접적인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거나 아니면 시신을 누가 훔쳐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누가 훔쳐간 경우라면 제자들이 훔쳐갔을 텐데 제자들이 훔쳐갈 만한 용기가 있었습니까? 제자들은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잡혀서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방문을 모두 잠그고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철통같이 군병들이 지키고 있는데 훔쳐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설사 훔쳐갔다 하더라도 그 시체가 부활했다고 목숨을 내놓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의 빈 무덤 안에는 세마포가 놓여 있었고 머리를 쌌던 수건이 개켜져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요20:6,7). 누가 훔쳐 갔다면 시체를 둘러쌓던 세마포를 벗겨놓고 시체만을 가져갈 리가 없습니다. 또한 수건을 벗겨서 단정하게 개어 놓고 갈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말씀이 이를 확실히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당하기 전에 여러 번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마16:21, 17:23, 20:19, 26:32). ‘요나의 표적’과 ‘무너진 성전을 사흘 만에 일으켜 세우겠다’는 말씀도 예수님의 부활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생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 에 부활할 것이다’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계셨음을 말해 줍니다. 또한 예수님은 영어 성경을 통해 보면, ‘must'라는 단어로 표현 되듯이 반드시 죽으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메시아로서 겪어야 할 과정이라는 것을 성경을 풀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눅24:26,27).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에 이미 예언된 것이었습니다(시16:8-10). 예수님은 어쩌다 우연히 부활한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과 자신이 분명히 예언한 대로,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이상에서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서 생명의 주가 되시고 죽음을 이기신 승리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문제는 결국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가 애써 쌓아 놓은 모든 것을 무로 돌리고 행복을 앗아가 버립니다. 죽음은 참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태연하려고 해도 태연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합니다. 죽음은 죽는 그 순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를 지배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주위에서 죽음의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가족 또는 친한 친구가 죽을 때는 그 죽음이 바로 나의 죽음으로 실감 있게 받아 들여지게 됩니다. 그 때 죽음은 나에게 깊은 허무와 절망을 심어 주어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고 무기력한 인생을 살게 합니다. 죽음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이와 같이 부활도 이론이 아니라 실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나의 부활로 영접할 때 부활의 생명력이 내 속에 역사하여 모든 어두움의 요소들, 죽음의 요소들, 운명적인 요소들을 물리치고 밝고 힘찬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 때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두려움이 변하여 용기가 됩니다. 부정적인 자가 변하여 긍정적인 자가 되고 운명적인 자가 변하여 섭리에 기초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산 소망을 줍니다. 사도 베드로는 박해로 말미암아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3,4) 사람들이 인생을 살다가 절망하는 것은 결국 썩고 쇠하고 없어질 이 땅의 것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둘 때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꾸리고 이기적이 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소망을 둘 때 이 땅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 있게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삶의 가치관과 삶의 스타일과 희망을 바꾸어 놓습니다. 우리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습니다. 인간적인 사람을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시켜 놓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영접할 때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나의 부활로 영접할 때 우리는 한계를 모르는 능력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으로 절망하고 있는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7절을 보십시오.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과 아울러 사명을 주었습니다. 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천사는 여인들에게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부활의 소식은 시급히 증거 되어야 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부활의 소식을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은 사망권세에 시달리며 살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므로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죽어 가는 응급환자를 의사가 빨리 가서 치료함으로써 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여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자 달려갔습니다. 그녀들은 무덤에 올 때는 슬피 울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왔었습니다. 그러나 부활 소식을 들은 후 어느새 눈물은 걷히고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터지고 가슴속에서도 환희의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여인들은 너무 기뻐서 깡충깡충 뛰면서 힘차게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가는 도중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을 사랑하사 그들에게 부활의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친히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안하냐” “샬롬” 하며 아침 인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전이나 부활하신 후나 조금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13:8). 여인들은 너무 기뻐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습니다. 경배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우리 인생들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천사가 말한 것과 동일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말씀하신대로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야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담대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경배드릴 때 기쁨이 충만하고 능력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11-15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은폐하려는 종교지도자들의 악한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은 경비병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긴급회의를 열어 어떻게 은폐할 것인가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군병들에게 뇌물을 써서 그의 제자들이 밤에 도둑질하여 갔다고 거짓말을 퍼뜨리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 유언비어가 오늘날까지 유대인가운데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아무리 은폐하려고 하여도 은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오히려 역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II.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16-20)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열 한 제자들은 즉시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이 명하시던 산에 이르렀습니다. 갈릴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처음 만났던 장소입니다. 제자들은 이곳에서 죄 사함을 받았고, 죄악 된 삶이 회복되었습니다. 매일 물고기를 잡으면서 무의미한 인생을 살던 어부들이 제자로 부름 받았던 곳입니다. 그리고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보냈던 곳입니다. 갈릴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신앙적 고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제자들과 다시 만나고자 하셨습니다. 여기서 믿음을 잃어버렸던 그들을 다시 살리시고,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친 그들과 깨어진 관계성을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이 되는 중대한 사명을 전해주고자 하셨습니다. 이 곳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정식으로 경배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관계성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이제는 예수님을 창조주요 왕으로서 영접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18-20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마태복음의 결론이자 예수님의 지상 명령, 즉 The Great Commission 이라 불립니다. 그러면 이 명령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이전의 예수님의 모습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가난하고 볼품이 없으셨습니다. 항상 낮은 위치에서 병든 자들과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영광스러운 왕이 되셨습니다.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으로서 능력과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이 권세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본래부터 가졌던 권세로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그 권세를 수행할 전권을 위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늘과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예수님의 권세로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의 명령(19,20a)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하십니다. “가라”는 명령은 “안주하지 말고 떠나라, 끝없이 전진하라, 개척하라”는 뜻입니다. 그 동안 제자들의 관심은 주로 갈릴리와 유다 지역으로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때까지 한 번도 이스라엘을 떠난 적이 없고 또 이방나라를 멸시하는 강한 유다이즘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후진국 청년들로서 대부분이 가난하고 외국어 하나도 구사할 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자나 깨나 이스라엘 회복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좁은 세계에 살고 있는 이들이 이제 이스라엘 복음 전파는 경한 일이요, 전 세계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 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 명령은 이 시대에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 받은 우리에게도 해당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들도 세상 사람들에게 가야 합니다. 캠퍼스로 가야합니다. 오대양 육대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말씀 공부만 하고 기도만 하는 것으로는 구원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죄와 사망권세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대면 시대에도 가는 길은 많이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 심지어 전 세계 곳곳 어디든 만나서 말씀을 주고 복음을 증거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구체적인 행동이 있을 때 죽어 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살릴 수 있습니다. ‘가라’는 명령은 전권을 위임받으신 우리의 최고 사령관이신 주님의 진격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자는 주님과 함께 영광과 존귀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가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이 제자양성은 단순히 복음만 전하고 무책임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자립적으로 예수님을 배우고 성장하여 또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제자가 될 때까지 책임성 있게 키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는 또 다른 제자들을 낳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복음역사는 계승 발전되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 양성의 역사는 예수님의 복음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 사람을 제자로 삼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세례란 예수님과의 연합을 뜻합니다. 과거 죄 가운데 살던 옛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함께 달려서 죽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함께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례는 양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는 것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우리는 양들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도록 잘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모든 말씀을 그대로 가르쳐주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말씀공부는 단지 말씀을 알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고 말씀을 배웠으면 그 배운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가르친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 양성을 통하여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비젼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비젼 가운데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명령하셨습니다. 부활신앙을 갖게 된 우리는 이 명령의 말씀이 분명한 삶의 방향이요, 목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수행할 능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겨우 부활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런 연약한 자들이 어떻게 이 엄청난 지상명령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그들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예수님은 그들에게 꼭 필요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20b 보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제자들과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음이 굳건하여 스피릿이 충만할 때도 함께하시고, 반면에 우리가 연약하여서 힘들어 할 때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실제적으로 도와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외치며 주님이 지시하신 지상 명령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은 주님의 복음 사역을 주님께서 앞장서서 이루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에 순종하여 잘 동역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점점 마음이 어둡고 우울하였습니다. 날마다 비좁은 치과에서 힘든 환자들과 씨름해야 했고, 퇴근하면 집에 들어가 조용히 있다가 다시 출근하면서 삶에 기쁨과 활력이 사라지고 무기력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내면에는 언제 어떻게 코로나에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한치 앞도 모르는 장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였습니다. 뉴스에서는 백신과 치료제가 조만간 우리나라에 들어온다고 하였지만 백신도 잘 못 맞으면 죽는 경우도 발생하여 쉽게 믿음이 가질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탄이 심어주는 사망권세와 어두운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저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의 믿음을 새롭게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곧 나의 부활로 받아들였을 때 코로나와 여러 힘든 문제로 짓눌려 있던 심령이 뻥 뚫리며 모든 사망권세가 사라지고, 기쁨이 샘솟으며, 새로운 영적 힘과 스피릿이 생겨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신 지상명령인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사명에 충성하고자 방향 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장에 세계 선교를 위해 해외로 나가지는 못하지만 앞장서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더 열심히 중보 기도하고 관심 갖고 섬길 수가 있습니다. 또한 비 대면으로 인해 양들과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가고자 하면 어디든 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날마다 이 부활신앙으로 코로나로 힘든 이 시기를 믿음으로 극복하고 하늘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붙들고 주어진 사명에 충성하며 확신에 찬 신앙생활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 됩니다. 코로나로 사망권세와 어두움에 갇혀 지낼 것이 아니라 이 부활의 예수님을 심령 깊이 영접하여 담대하게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하신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여 이 사명을 날마다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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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 디모데후서 [2021년 디모데후서 제1강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관리자 2021-02-14 106
684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4강]주께 하듯 하라 휴화산 2021-02-07 107
683 마태복음 [2021년 마태복음 제42강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관리자 2021-01-28 139
682 마태복음 [2021년 마태복음 제40강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관리자 2021-01-24 114
681 마태복음 [2021년 마태복음 39강 ]언약의 피 관리자 2021-01-17 119
680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3강]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관리자 2021-01-09 169
679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2강]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 관리자 2021-01-03 162
678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1강]만물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관리자 2020-12-27 180
677 누가복음 [2020년 성탄 제2강]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관리자 2020-12-20 142
676 누가복음 [2020년 성탄 제1강]영원한 왕, 무궁한 나라 관리자 2020-12-13 159
67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8강]양과 염소의 비유 관리자 2020-12-06 162
67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7강]착하고 충성된 종 관리자 2020-11-29 172
67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6강]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관리자 2020-11-21 194
672 하박국 [2020년 추수감사절 특강]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관리자 2020-11-15 200
67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5강]화 있을진저 관리자 2020-11-08 182
67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4강]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관리자 2020-10-31 221
66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3강]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 관리자 2020-10-25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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