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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14 (일) 08:46
분 류 디모데후서
첨부#1 2021디모데후서-1q-1.hwp (27KB) (Down: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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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디모데후서 제1강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2021년 디모데후서 제 1 강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말씀 / 디모데후서 1:1-18                                                
요절 /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

사도 바울은 AD 60에서 62년 경 로마 감옥에 1차로 감금 되었다가 풀려났습니다. 네로의 박해로 기독교 핍박이 심해지는 가운데 AD 64년 경 두번째로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첫 번째 투옥이 가택 연금 수준이었다면 이번에는 지하 감옥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면서 마지막 편지 디모데후서를 썼습니다. 디모데는 어린 나이에 당시 큰 교회였던 에베소교회에 책임 목자가 되었습니다. 나이든 사람들이 어린 디모데를 업신여겼습니다. 이단 사상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디모데는 몸이 약했습니다. 믿고 따르던 목자 바울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연약해진 디모데를 돕기 위해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썼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목회서신이요 유언적서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UBF의 기본 정신도 디모데후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디모데가 어떻게 자신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서신서 보다 자신을 더 길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하나님은 바울에게 생명을 주실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생명을 얻도록 돕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디모데도 바울을 통해 새 생명을 덧입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이 임명하신 사도라는 분명한 identity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 받고 하나님께로부터 성경 읽기 선교회 목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렇게 말이지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부르심으로 일방적인 은혜로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제자로 얻었습니다. 루스드라는 1차 전도여행 때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사람들이 성 밖으로 버린 곳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처럼 사랑했고 사역을 함께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은 복음 역사를 감당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선물로 주십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라.’ 감옥에 갇힌 바울이 감옥 밖에 있는 디모데를 위하여 밤낮 중보기도 하고 있습니다. 보통 감옥에 갇혀 있으면 감옥 에서 하루 빨리 나가는 것을 밤낮 간구 할 것 같은데 밤낮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중보기도 하고 있는 것이 놀랍습니다. 영적 성장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 중보기도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 왔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청결한 양심은 조상 때부터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마음을 다해 섬겼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쓸 무렵 로마에 있던 동역 자들이 바울을 떠났고 누가 만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처럼 외롭고 힘들 때 바울과 디모데는 보고 싶고 의지하며 기도해 주는 관계였습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바울이 두 번째  투옥 될 때 디모데가 흘린 눈물을 바울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디모데를 보기 원하였습니다. 디모데의 눈물은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서로 신뢰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디모데에게 바울은 영적스승 영적 멘토 였습니다. 영적 멘토 멘티 관계성이 중요합니다. 영적 스승 영적 멘토가 없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영적 스승이 없는 사람은 잘 되면 교만해지기 쉽고 잘 안 되면 믿음을 잃고 세상으로 쉽게 가 버리는 것을 봅니다. 저의 영적 멘토는 이 사무엘 선교사님과 서 제임스 목자님입니다. 이 사무엘 선교사님으로부터 복음 신앙과 고난에 대한 철학을 배웠고, 서 제임스 목자님으로부터는 모범적인 평신도 목자상과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충성된 청지기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성경에서의 롤 모델은 아브라함입니다. 나에게 영적 바울 영적 디모데가 누구입니까? 5절을 보십시오. 디모데의 거짓 없는 믿음 진실 된 믿음은 할머니 로이스 와 어머니 유니게 에게서 온 것입니다. 로이스와 유니게는 남편이 신앙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했습니다. 요즘 교회마다 주일학교가 없어지고 있다고 비상입니다. 결혼 출산율이 떨어져서 인구수가 주는 것도 있지만 이보다도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불신앙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땅 끝인 셈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수해 주어야 합니다.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더 나은 세대가 되도록, 사사기의 이스라엘 같이 되지 않도록, 자녀들의 신앙이 부모의 신앙 보다 더 뛰어나도록, 인간 조건이 뛰어나기보다 먼저 영적으로 훌륭하도록, 기도하고 도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청년들은 잘못된 교육과 좋지 못한 환경으로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죠. 맑고 깨끗한 청년들이, 진실 된 믿음의 사람들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에 디모데 같은 진실된 믿음의 청년들을 세워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겠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듯 하게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에 목회자로 세움 받을 때 영적 아버지인 바울이 아들인 디모데에게 안수 했습니다. 그때 디모데는 이미 조상들에게서 받은 은사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거짓 없는 믿음에 기초한 말씀을 가르치는 능력이었습니다. 이 은사를 불같이 타오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젊은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이끌고자 할 때 모든 어려움과 방해를 이기고 구원역사를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편지를 통한 바울의 권면의 말씀으로 디모데의 마음이 불타오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다른 은사가 있습니다. 찬양의 은사 섬김의 은사 등등이 있습니다. 우리 모임은 공통적으로 성경 선생, 말씀 읽고 말씀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매주 말씀을 받음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불로 나의 은사에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말씀 보는 은사 말씀 가르치는 은사를 불 일듯 사용함으로 코로나를 이기고 비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디모데는 육체적으로 약했고 목자 바울은 투옥 되었습니다. 이럴 때 디모데가 두려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히면 교회 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7절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두려워 하는 마음은 영어로 spirit of timidity 소심함 겁먹은 것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요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최대의 원수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무기력해져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배하게 됩니다. 두려움은 바이러스 같이 전염력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퍼져 나갑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미디안 군대와 싸울 때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두려움을 퍼트리기 때문이죠. 모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지도자로 세움 받은 여호수아 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수아 1장 9절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오늘날 현대인들은 두려움에 노예 되어 살아갑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건강에 대한 두려움 코로나로 인한 두려움 장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만들어 가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신자들도 똑같이 두려워한다면 비극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두려움 대신에 하나님은 첫째로 능력을 선물로 주십니다. 능력은 the spirit of power 입니다. 다이나마이트 같이 폭발적인 힘 탁월한 능력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곧 믿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능력을 주신 것을 믿고 사용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자녀를 기다리다가 장래에 대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람아 두려워 하지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 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를 믿었을 때 두려움을 이기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키가 2m 가 훨씬 넘는 거인 골리앗이 소리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때 다윗 한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물맷돌 던지는 실력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골리앗의 넓은 이마가 보였습니다. 평소에 양떼들을 돌볼 때 던지던 물맷돌을 믿음으로 골리앗에게 던졌을 때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블레셋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면 두려움이 없는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랑을 주십니다. 사랑은 the spirit of love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은 말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아가페의 압도적인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우리도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불난 집에 아기가 있다면 엄마는 아기를 구하러 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가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에는 두려움 따윈 없습니다. 사울이 다윗은 사랑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도 자기 사위인데. 다음 왕위를 물려주면 되잖아요. 사랑하지 못 하니까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다가 결국 자신을 죽인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두려움은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절제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the spirit of self control이 젊은 지도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내면성인지 모릅니다. 절제는 달리는 자동차에 브레이크 역할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절제 하지 못하고 오버 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청년의 정욕 수면욕 게으름 게임 물질에 대한 탐욕 미움 혈기 등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절제 즉 self control을 잘 해야 합니다. 능력과 사랑도 절제 위에서 빛을 발합니다. 절제가 중요한 줄 알지만 내 힘으로 잘 되지 않습니다. 잠언 16장 32절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절제는 마지막 열매입니다. 절제함으로써 모든 성령의 열매는 완성됩니다. 절제는 성령 충만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우리 몸을 거룩함으로 채울 때 정욕 탐욕 욕심이 다스려집니다. 빈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감사로 채울 때 섭섭함 억울함 미움 분노는 다스려집니다. 또한 절제는 절대 사명을 발견할 때 이루어집니다. 왜 일 년 계획을 세우고 작심삼일로 끝나죠? 왜 게으른 습관은 고쳐지지 않죠? 그런데 고 3 수험생들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합니다. 철저한 자기 절제를 하죠. 국가대표 선수들은 초인적인 훈련을 감래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절제할 수 있죠? 대입이라는 사명, 국가대표로서 금메달을 따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죠.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잠을 절제 하지 못해 학교에 자주 늦었습니다. 자기 절제가 잘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목표가 생겼을 때 절제가 되기 시작 하였습니다. 결혼 후 아기를 잘 돌보고자하는 사명감으로 불탈 때 자기 절제가 제대로 되는 믿음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감옥에 갇힌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바울이 두란노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또 변화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 매료되었고 목자 바울을 자랑스러워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핍박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피해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이제 감옥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일생 고생한 대가가 이런 것인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회의하기 쉬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요즘 교회가 코로나 전파자로 여겨지며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워 할 필요 없습니다. 교회는 여전히 세상을 구원할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받으라.’ 하면 사람들이 먼저 거부감을 표시합니다. 본능적으로 고난을 싫어하기 때문이죠. 양 시절에는 도움 받고 섬김 받는 것이 좋아서 남아 있다가 헌신 할 때가 되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면 고난 받기 싫다고 하며 고난을 강조하지 않는 곳으로 떠나갑니다. 그러면 꽃길만 걷게 될까요? 세상으로 가면 거기서 더 센 고난, 생고생을 하게 됩니다.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은 사람을 살리는 고난이지만 세상에서 받는 고난은 죽이는 고난 스트레스입니다. 바울의 삶은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삶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이 아니었으면 이처럼 고생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복음 전하다가 굶주리고 헐벗고 매 맞고 그야말로 사서 고생하는 삶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귀한 것을 위하여 땀을 흘리며 전력투구하는 삶을 삽니다. 어떤 재벌들은 잠도 안자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고생을 합니다. 김연아 박지성 선수의 영광 뒤엔 무지막지하게 혹사당한 발이 있었습니다. 사진에 나왔죠. 그러나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 고생하는 것은 그 어떤것 보다도 가장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같은 길을 갔고요. 우리도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좁은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만이 생명의 길이요 영광의 길인 것입니다. 용광로 속에서 순도 100프로의 금이 나오듯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의사가 많은 사람을 고치는 명의가 되듯이 말이죠.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고난의 짐을 기꺼이 지는 목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나라가 못 살 때는 복음과 함께 축복 받으라는 메시지가 통했습니다. 하지만 부자나라가 된 후에는 더 이상 이런 메시지는 통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이 길만이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 하실 뿐만 아니라 거룩한 소명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바울을 이방인들의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부르심 받았을 때 이들은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행위의 세계에서 율법의 세계에서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은혜로 말미암아 감옥에 갇힌 것을 은혜로 여기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파하시고 썩지 않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이 복음을 위하여 바울은 선포 자로서 앞장서서 복음 역사를 섬겼습니다. 사도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교사로서 가르쳤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고난을 받게 되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생의 끝은 영생이요 부활인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에게 거듭 확신을 심고 있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서 내게 들은 바 바른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이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바른말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일까요? 바른 말을 지키라는 것은 복음 신앙을 끝까지 사수하라는 뜻입니다. 복음 신앙은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이요 부활 소망 가운데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복음 전파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어가던 생명이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 받는 역사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이보다 더 빛나는 것은 없습니다. 왜 어려운 시대에는 이를 지키지 못하고 세상으로 가는 것일까요? 고난 받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축복 신앙 기복신앙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바른말 아름다운 것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유독 많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15 –16 절을 보십시오. 아시아의 모든 사람이 다 바울을 버렸습니다. 그중에서도 믿었던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떠난 것은 바울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들과 대조적으로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버리지 않고 남은 자입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바울을 찾아와서 격려하였습니다. 사슬에 매인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했습니다. 그가 주의 긍휼을 얻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때는 오히려 남은 자들이 뜨겁게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과거 두려움의 노예 되어 비참한 삶을 살던 자였습니다. 본과 1학년 2학기 어느 날 갑자기 두려움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그 이후 학과 공부에 대한 장래에 대한 불안 염려로 두려워 떠느라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성적은 떨어지고 매년 유급을 걱정하고 악몽을 꾸었습니다. 너무 괴로웠고 이를 계기로 주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바로 두려움이 없어지지는 않았고 시험 때가 되면 여전히 두려워 떨었습니다. 하지만 목자로 살면서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 언제부턴가 두려움이 줄어들더니 결국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내 안에 숨어 있던 은사가 능력이 발휘되었습니다. 능력을 발휘하는 인생 열매 맺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은 말씀을 놓고 살았습니다. 유튜브 보고 집에서 누워 지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결심 하였지만 절제가 잘 안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말씀 인도자, 메신저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할 때 자동 절제가 되었습니다. 요즘 저에게 저녁 시간은 온전히 말씀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 능력 사랑 절제 영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복음과 함께 고난 받으며 가르치는 은사를 불 일듯 일으켜 열매 맺는 인생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고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를 불 일듯 사용함으로 생명구원 역사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음으로 열매 맺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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