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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21-03-21 (일) 08:32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요한복음3강-1.hwp (33KB) (Down: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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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3강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님
2021년 요한복음 제3강                                     김반석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님
말씀 / 요한복음 2:1-25
요절 / 요한복음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시대는 4차산업혁명으로 직업 세계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 유망하던 직업들이 어느 날 사라지고, 듣지도 못했던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런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행에서 과감하게 탈피하고,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듯이 영적인 세계에서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죄에서 구원으로,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육신적인 삶에서 거룩한 삶으로, 영원한 심판에서 영생으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영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로서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오직 변화의 능력자이신 예수님만이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변화의 능력자 예수님(1~11)
 예수님이 빌립과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신 날로부터 사흘째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참석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에서는 1주일 동안 결혼 축하연이 열렸는데, 이 기간에는 모든 슬픈 행사가 금지되고, 금식과 같은 모든 종교적인 의무도 면제되었습니다. 혼주는 결혼을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최고 요리사들이 준비한 영양 만점의 음식들과 오랫동안 숙성시킨 고급 포도주를 넉넉하게 갖추었습니다. 저녁 프로그램으로는 경성오케스트라와 귀 호강의 끝판 왕 팬텀싱어들의 무대를 넣었습니다. 마지막 날 밤에는 결혼 축하연의 대미를 장식할 불꽃놀이를 준비했습니다. 신랑 신부는 물론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춤을 추면서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창설하신 제도로서 에덴 중의 에덴입니다. 예수님이 결혼식에 참석하신 것은 인간의 행복과 기쁨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첫째, 마리아의 기도와 믿음(3~6)
 3절을 보십시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결혼 잔치에서 포도주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고 즐거움을 넘치게 하는 필수품입니다. 랍비들은 포도주가 없으면 기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공짜 술이라고 너무 많이 마셨는지 예상보다 일찍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잔치의 흥이 깨지고, 신랑의 부모는 하객들로부터 인색하다며 비난을 받게 될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을 알아차린 사람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는 손님으로 대접받기보다 주인의식을 갖고, 무엇이 부족한가를 살피며 섬기고자 했습니다. 이때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심각한 문제를 신랑의 부모나 연회장에게 알립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들고 나가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시급한 문제는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포도주가 없다는 사실을 예수님께 아뢰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나에게 부족한 것, 우리 모임에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문제를 발견하셨나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먼저 책임 소재를 따집니다. 결국 문제를 더 확대시켜 복잡하게 하고 꼬이게 만듭니다. 원망, 불평, 판단하는 자세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부족한 것이나 어려운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을 때 마리아와 같이 주님께 들고 나아가 은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주님이 일하시고 그때부터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부르셨습니다. 무례한 말처럼 들리지만 원어로는 왕이 황후를 부를 때 쓰는 존칭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과 마리아의 관계는 혈육으로 맺어진 모자 관계였습니다. 이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역을 감당하실 것을 공적으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이 말씀은 얼핏 들으면 어머니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아니 상관이 없다니? 우리가 남이가!”하며 섭섭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요구대로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어머니라도 메시야의 사역을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때’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일하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누이들의 전갈을 받고, 바로 가서 고쳐주지 않으셨습니다. 의도적으로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이로 인해 나사로는 죽어 누이들의 원망을 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후에 무덤으로 가셔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의 주님이 심을 믿게 하셨습니다.(요11:1~45)
 5절을 보십시오. 마리아는 때가 되면 반드시 역사하실 것을 믿고, 예수님이 일하실 수 있는 환경을 예비했습니다. 먼저 하인들에게 가서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도록 준비시켰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때에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면 낙심하거나 불신에 빠져 다시는 기도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더군다나 기도를 들어줄 능력이 없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인생 가운데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시는 분으로서, 때가 되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또한 양들이나 자녀들을 양육할 때도 조급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밀어붙이다가 역효과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와 같이 때가 되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믿고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내가 믿음을 갖고 영적인 환경을 예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둘째, 하인들의 순종(7~10)
 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6개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항아리들은 유대인들이 외출했다가 돌아왔을 때 손발을 씻는 결례용 물을 담아두는 것들입니다. 두세 통 들어가는 돌항아리 1개의 용량은 약 77~115리터에 해당하므로 6개는 상당히 많은 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잔칫집에서 하인들은 할 일이 제일 많고 바쁜 사람들입니다. 이웃 동네에 가서 포도주를 빌려오라고 하면 몰라도 포도주가 아닌 맹물을 채우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인들은 자신의 생각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돌항아리에 물을 채웠습니다. 그것도 적당히 채우지 않고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이는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100% 순종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더 순종하기 힘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인들의 입장에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결례용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다가는 심하게 책망받을 것이 뻔합니다. 하지만 하인들은 위험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다 함께 9,1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보통 좋은 포도주를 먼저 주고, 사람들이 술에 취한 후에는 물을 많이 탄 질이 떨어진 포도주를 내놓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포도주는 로마네 콩티라는 레드 와인인데 2018년 기준으로 1병에 약 6억 3,200만 원입니다. 야쿠르트 1병 정도의 와인 1잔에 3,200만 원 정도하는 거죠. 예수님이 만드신 천국산 포도주는 이 포도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맛이 좋았습니다. 연회장은 하인들이 건네준 이 포도주를 맛보고 술이 확 깼습니다. 그윽한 향이 코에 맴돌고, 깊고 부드러운 맛이 혀끝을 자극하며 목을 넘어갈 때 황홀감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포도주를 돌 항아리 6개에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잔치의 흥은 더해지고 사람들의 기쁨은 배가되었습니다.
 그런데 연회장이나 신랑은 포도주의 맛의 근원을 몰랐고, 물 떠온 하인들은 알았습니다. 이 두 그룹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포도주의 출처, 기쁨의 근원은 하인들과 같이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맛본 포도주의 맛은 결혼식장을 떠나면 사라져 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하인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한 그 감격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연회장과 같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인과 같은 사람입니까? 연회장과 같은 사람은 교회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찬양이나 예배의 분위기 등에 취하여 잠시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회개와 믿음과 순종이 없어 교회 밖을 나가면 세상사에 휘말려 곧 기쁨을 잃어버리고, 육체의 본성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다시 교회에 와서 일시적인 기쁨을 누리는 일을 반복합니다. 반면 하인과 같은 사람은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과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지속적인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됩니다. ‘연회장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우리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체험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하인의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일을 시켜보면 3가지 부류로 드러납니다. 첫째는 적당히 대충 순종하는 사람으로 그저 그런 열매를 맺습니다. 둘째는 순종하는 척하다가 안 하는 사람으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셋째는 아귀까지 채우는 순종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1개를 시켰는데 2개, 3개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습니다. 아귀까지 차고 넘치는 복을 받습니다. 부패한 인간의 마음에는 아담의 불순종과 가인의 반발심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순종보다는 불순종을 잘합니다. 아무런 불평도 없이 순종하면 왠지 좀 어리숙한 사람처럼 생각되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면 이런저런 이유를 달면서 못하겠다고 반발부터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성의 한계에 갇혀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배울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악한 본성이 변화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는 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신 후 훈련을 통해서 연단하시고, 순종의 사람으로 빚으신 후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이 그러했고, 모세나 다윗의 인생이 그러했습니다. 믿음의 순종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처음 입학하는 학교가 바로 하나님의 순종의 학교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성 프랜시스에게 젊은 청년 두 명이 찾아와 제자가 되고 싶으니 수도원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프랜시스는 그들에게 배추를 주면서 뿌리는 하늘로 향하게 하고 배춧잎은 땅속에 심으라고 한 후 자리를 비웠습니다. 배추는 뿌리를 땅에 심어야 자라는데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두 청년은 갈등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청년은 이해가 안 되었지만 프랜시스의 말 대로 거꾸로 심었습니다. 하지만 한 청년은 프랜시스가 믿음과 인격은 훌륭하지만 농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것으로 생각하고 뿌리를 흙 속에 심었습니다. 나중에 프랜시스가 와서 배추를 거꾸로 심은 청년은 받아주었습니다. 다른 청년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는 합당하지 않다며 돌려보냈습니다. 농사법대로 뿌리를 흙 속에 심은 청년은 합리적이고 똑똑해 보이지만 이성과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다르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머리로 이해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식과 경험에 기초한 합리적인 생각을 부인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훈련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8,9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몸소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서 완전하게 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순종을 배우므로 영적인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이 쓰실 만한 믿음의 사람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다 함께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여기서 ‘첫 표적’이란 가장 먼저 행하신 표적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표적, 가장 중요한 표적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첫 표적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장 근본적으로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결례용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번째 표적을 통해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의 영광’이란 예수님의 신적인 정체와 본질을 나타내는 영광이란 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입니다. 제자들은 이 표적을 통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을 통해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참된 행복과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행복을 소유 지향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재산이 많고,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남보다 능력이 많아야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혼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처럼 세상의 것들은 언젠가는 떨어지고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소유로 행복을 채우려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입니다. 파스칼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영혼의 빈 곳을 주셨는데, 그 공간은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 채우려고 해도 채울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들어가셔야만 채워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소유만으로는 결코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에게 참 행복과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불신자들을 구분 짓는 차이점이 많이 있겠지만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큰 차이는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나를 사고 잡고 있던 죄와 사망 권세 등 어둠의 요소가 사라지고, 위로부터 기쁨이 임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금욕적이고 고리타분한 생활이 아니라 결혼처럼 기쁘고 행복한 생활입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살 때 강 같은 평화가 흘러넘쳐 얼굴은 해같이 빛이 납니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 영생의 기쁨이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아나므로 입가에는 기쁨의 웃음이 가득하게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살기 때문에 세상의 저급한 즐거움을 좇아 살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여 신자로서 좋은 영향력을 끼칩니다. 반면 신앙 생활하면서도 늘 얼굴이 어둡고 딱딱하여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초상집처럼 우울하고 어두워서는 안 됩니다. 잔칫집과 같이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해야 합니다. 이때 양들이 몰려와 은혜를 받고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므로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변화의 능력자이십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물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화학적인 변화로 물질의 구성 성분이 본질적으로 바뀐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결례용 물로 손발을 씻음으로 깨끗하게 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돌 항아리의 물로 아무리 많이 씻어도 그 내면은 씻을 수 없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만스러운 점을 바꿔보려고 많은 시도를 합니다. 성형 미인이 되고자 의술의 힘을 빌려 여기저기 고쳐도 봅니다. 하지만 마음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제도나 교육도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라도 변하여 새사람 되게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은 물과 같은 인생에서 포도주와 같은 인생으로 놀랍게 변화됩니다. 고후5: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은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을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요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고 그냥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사람들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참된 경배의 대상을 만나지 못해 영적인 목마름으로 방황하던 사마리아 여인이 영생수를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 생명력이 넘치는 전도인의 삶을 사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요4:28~30) 38년 동안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 걷는 자립적인 존재로 변화되었습니다.(요5:3,8) 맹인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눈을 떠서 밝은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요9:7)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사라질 어부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사도들로 변화되었습니다. 교회를 잔멸하려고 다메섹에까지 가서 성도들을 결박하려던 핍박자요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기등등했던 바울이 복음 전파 사명에 생명을 바치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외에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소망을 가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되어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예수님 안에서는 누구든지 변화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절망을 희망으로, 불평을 감사로, 미움을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불순종의 사람을 순종의 사람으로,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사람을 영적이고 경건한 사람으로, 이기적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로, 교만한 자를 겸손한 자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좀처럼 변화되지 않은 자신에 대해서, 양들에 대해서, 자녀에 대해서 절망하거나 포기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나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 안에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과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이시오 참된 희망이 되십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 변화의 능력자이신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Ⅱ.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12~25)
 12,13절을 보십시오. 결혼식이 끝난 후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가셨다가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유대 성인 남자들은 3대 명절인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1년에 세 번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자신을 보여야 했기 때문입니다.(출23:17)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곳은 성전 바깥쪽에 있는 이방인의 뜰로서 하나님을 믿지만 아직 할례받지 않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장사꾼들과 결탁하여 이곳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어 착복했습니다. 먼 곳에서 온 경건한 이방인들이 예배해야 할 곳을 장사하는 사람들과 짐승들이 점령해 버렸습니다. 성전은 상인들의 소리와 짐승들의 울음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어 도저히 예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 함께 15,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결혼 잔치에서의 예수님은 은혜가 충만한 분이셨는데 여기서는 정반대로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섬기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구원을 베푸는 곳,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인 것들은 사라지고 형식적인 제사만 드렸습니다. 내면이 부패하여 성전의 기능과 역할을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을 성전답게 회복시키고자 하는 열정으로 심히 분노하시고, 성전을 정화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 당국자들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는 일에 대한 권세를 증명하기 위해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면 사흘 동안에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19) 당시 헤롯 성전은 46년 동안이나 짓고 있었기 때문에 성전을 사흘 안에 짓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을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헐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말씀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친히 성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피로 영원하고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이로써 죄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사죄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23~2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성전을 정화하신 후에도 예루살렘에 계시면서 여러 가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표적을 보고 믿는 자들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여 언제 실족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돌변한 것처럼 불리한 상황에 부닥치면 배신하게 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감찰하는 분이시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중고교 시절 죽음에 대한 공포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학에 들어가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고자 애를 썼지만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몰라 내면은 어둡고 공허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잔재미와 쾌락을 좇아 살기도 했지만 기쁨과 평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제대 후 말씀 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삶을 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그토록 좋아하던 술이 저절로 끊어지는 신비한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충만하니 세상 잔재미와 쾌락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평강이 임하니 누우면 바로 잠이 들어 숙면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혈기와 감정으로 충만한 내면이 서서히 변화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게 되었습니다. 아기자기하고 소시민적인 삶을 살던 자가 주와 복음역사에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던 자를 어디에서든지 남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사람들은 “장로님이세요? 목사님이세요?”하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좀처럼 변화되기 힘든 자를 오래 참으시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 찬송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마음의 성전을 정화하기 위해 기도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돌 항아리와 같은 캠퍼스 지성인들의 심령에 말씀을 가득 채워 포도주와 같은 자들로 변화되는 역사에 쓰임 받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첫 표적을 결혼식에서 행하시므로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은혜가 충만한 분으로 우리에게 참된 행복과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물과 같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포도주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하는 변화의 능력자이십니다. 또한 부패한 성전을 정화하시고, 십자가와 부활로 참 성전이 되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성결한 삶을 살게 하시는 진리가 충만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도와 믿음과 순종을 배워 예수님을 깊이 만나므로 죄악된 내면이 변화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고,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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