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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21-03-26 (금) 18:24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요한복음_제4강-1.hwp (33KB) (Dow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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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4강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2021년 요한복음 제4강                                                       고 영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말씀 / 요한복음 3:1-36
요절 / 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조용한 밤에 당대 최고의 지성인인 니고데모와 거듭남의 진리에 대해서 나눈 대화입니다. 이 거듭남의 문제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요, 또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거듭나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왜 거듭나야 하며, 또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 하는 심오한 영적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복음사역의 핵심은 캠퍼스 지성인들을 거듭나게 하는 역사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거듭남의 진리를 깨닫고 이 귀한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거듭남과 하나님의 나라(1-21)
1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이 말씀은 니고데모의 종교적, 사회적 신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종교지도자였습니다. 바리새인이란 ‘분리된 자’ ‘구별된 자’란 뜻입니다. 이들은 이방 문화에 물들지 않고 선민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율법을 엄격하게 지킴으로 일반 대중과 구별된 생활을 했습니다. 니고데모도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엄격한 종교 규칙을 따라 살았습니다. 소득의 십일조도 어김없이 드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기도도 했습니다. 그는 육신의 소욕을 쳐 복종시키고 율법을 좇아 의롭게 살고자 피나는 투쟁을 하였습니다. 또 그는 유대인의 관원으로서 산헤드린이라 불리우는 소수의 선택된 권력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70명으로 구성된 유대 최고 통치 기구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인의 종교적 문제를 다스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형까지 선고할 정도로 그 권세는 대단하였습니다. 이러한 산헤드린 회원이 되려면 가문도 좋아야 하고 학문적으로도 뛰어나야 했습니다. 또 그는 10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백성들의 공적인 교사로서 유명한 선생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니고데모’라는 이름의 뜻은 ‘백성의 정복자’란 뜻입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육신의 소욕을 정복하고 학문을 정복하고 세상 권세와 명예를 정복하고 세상 모든 것을 정복한 승리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가장 이상적인 성공인을 대표하였습니다. 그는 최고의 지성과 권세와 명예와 부를 소유하였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가장 행복한 자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이상의 것, 곧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했습니다.
어느 봄 날 조용한 밤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왜 밤에 예수님께 왔을까요? 높은 지위와 고귀한 신분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낮에는 업무가 너무 바빴기 때문에 밤 밖에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러나 요한복음적으로 볼 때 밤은 어두움을 상징합니다. 이는 그의 내면이 밤과 같이 어둡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었지만 그의 내면은 참 만족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바라던 모든 것을 얻은 후에 오는 허탈감과 좌절감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가 왜 표적에 관심을 가졌을까요? 그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인생 문제를 기적적으로 해결 받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서 현재 심각한 민족의 위기 상황을 능력 많으신 예수님을 통해 기적적으로 해결 받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깊은 한계를 느끼고 무엇인가 초인간적인 능력을 예수님께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정말 잘한 일입니다. 우리도 어떤 문제 앞에서라도 먼저 예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해결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니고데모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한 눈에 그의 어두운 내면의 문제를 꿰뚫어 보시고 그의 근본문제가 거듭나지 못한 것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종교적인 열심과 사회적인 지위와 부와 권세와 명예가 그에게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함을 보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로 인해 심한 허탈과 절망감에 빠져 있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없음을 보셨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원하는 것을 다 얻어도 행복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그 마음에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려면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면 ‘거듭난다’ 뜻이 무엇입니까? 거듭난다는 것은 ‘위로부터 난다’ ‘새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위로부터 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아담 안에서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조건개선이나 개혁이나 정화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입니다. 이는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것이요(고후5:17),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요1:12).
그러면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아담의 죄의 본성을 타고나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에 있으며 본질상 진노의 자식입니다(엡2:1-3). 사는 날 동안에도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은 다음에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심판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받게 될 결과는 치명적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인간성이 훌륭하고 선한 일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영원한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받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라고 말씀하심으로 니고데모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다 거듭나야 함을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남의 문제는 인간 행 불행의 문제요, 생과 사의 중대한 문제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영적 생명만큼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할지라도 그 영혼이 영원한 파멸에 처한다면 이는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을 얻지 못한다 해도 그 이름이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된다면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아멘!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할 필연성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고 표적을 바라는 자기 기대에 합당한 말씀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늙은 자기 육신이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하여 불가능한 일로 여기는 영적으로 무지한 자였습니다. 그는 육의 세계에서는 이스라엘의 선생이 될 만한 지식을 가졌지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기본적인 거듭나는 진리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거듭나지 못해 고뇌에 찬 나날을 보내는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은 회개를 의미합니다(막1:4). 세례 요한은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회개의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물세례를 받는 것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죄 사함 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준비된 마음에 죄 사함의 역사가 일어나지만, 물세례를 받았다고 그 자체로 죄가 깨끗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새로운 마음을 주실 때만이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디도서 3:5은 말씀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거듭나는 역사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될 수가 없고 율법을 잘 지킨다고 되지 않으며, 전적으로 성령께 속한 일입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고 아무 자격이 없어도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나아가 죄를 깨닫고 애통하며 진실 되게 회개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새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거듭나는 역사는 니고데모가 기대하는 것처럼 특별한 기적이나 비상한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는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들에게 얼마나 은혜로운 축복입니까? 예수님은 계속하여 육적 탄생이 있듯이 영적인 탄생이 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6,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육으로 난 것은 아무리 교육을 많이 시켜도 여전히 육입니다. 그것은 세련된 육일 수도 있고, 이성적인 육일 수도 있고, 종교적인 육일 수도 있습니다. 육은 아무리 성장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육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난 것은 영으로서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사람이 육으로 태어날 때 그 부모의 본성을 이어 받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성령으로 태어나면 하나님의 본성을 부여 받게 되어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됩니다(벧후1:4). 이런 자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그 삶이 영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에게 바람을 비유로 들어 성령의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예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바람에 비유하신 것은 성령과 바람은 헬라어로 똑 같이 ‘프뉴마’라는 같은 단어이며 그 성격과 역사 방법도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 성령도 그 뜻대로 주권적으로 역사합니다.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이성으로 분석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바람이 분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도 눈으로 볼 수 없고 이성으로 분석할 수 없고 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그 과정은 알지 못하지만 거듭난 자의 말과 행동과 생활에서 나타난 결과를 통해 성령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예수님을 욕하고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자가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변화되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고 또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자가 됩니다. 또한 슬프고 운명적인 자가 밝고 환한 섭리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거듭난 자는 인생관과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바리새인인 나 고영훈입니다.

예수님은 이때까지 니고데모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탄식하며 반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책망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런 거듭남의 진리를 알고 백성들이 거듭나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듭남의 주체이신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였고 또 교만하여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예수님의 말씀을 안 받아들이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그가 영적으로 무지하게 된, 그의 내면의 죄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그는 지적인 교만과 말씀에 대한 불신에 갇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르면 배우려고 하기보다 “어찌” “어찌” 하며 반발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는 것과 본 것을 증언하시지만 그는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여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않는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시며 그의 믿지 않는 완악한 마음 자세를 책망하셨습니다. 땅의 일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거듭남의 역사로서 구원의 시작을 의미하며, 하늘의 일이란 몸이 영화롭게 되는 것과 같은 구원의 궁극적인 완성을 의미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만이 신비한 하늘 일들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13).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교만을 책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에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모든 허물과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높이 달리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4,1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은 니고데모도 잘 아는 모세오경 중 민수기 21:4-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믿음과 구원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잘 말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권능으로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는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인이 되었지만 오랜 노예 생활로 인해 노예근성이 몸에 배어 조금만 힘들어도 하나님과 목자를 원망하며 불평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한번은 그들이 광야 길을 가다가 길이 험하다고 또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불 뱀을 보내어 불평하는 입을 물게 했습니다. 독사에 물리게 되면 순식간에 온 몸에 독이 퍼져 죽게 됩니다. 백성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제발 살려달라고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게 하시고 누구든지 이를 쳐다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가르치신 것으로서 믿음으로 고개를 들어 놋 뱀을 쳐다보는 것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제시하신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독사에 물리는 즉시 독을 빨아내고 땅을 잘 살펴서 더 이상 뱀에게 물리지 않아야 할 것으로 생각 됩니다. 위를 쳐다보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로 생각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쳐다보면 살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쳐다본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성과 경험을 뛰어 넘어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놋 뱀이 장대에 높이 달린 사건은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실 사건을 예표합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죄로 인해 불 뱀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상 숭배의 불 뱀, 교만과 정욕과 세상 욕심의 불 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캠퍼스 양들도 사탄이 심는 두려움과 염려의 불 뱀, 열등감과 비교의식, 패배감의 불 뱀에 물려 고통하고 있습니다. 이 뱀에 물리면 어떤 처방도 효과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아무리 죄의 상처가 깊어도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십자가의 사랑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사랑만이 완악한 마음을 녹여 회개케 함으로 사람을 근본적으로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더 나아가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배반하고 대적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를 희생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이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가장 귀한 것을 내어주신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요한1서 4:10절은 말씀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게 해 줍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막힌 장벽을 허물어뜨립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모든 장벽을 헐고 참된 평화를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살립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것은 하나님 사랑의 극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이므로 이런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18).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치 않는 것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19). 악을 행하는 자는 빛을 미워하며 빛 가운데로 나아오기를 꺼려하지만, 진리를 사랑하는 자는 빛을 사랑하여 빛 가운데로 나아옵니다(20,21).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서 죄인들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또 나의 죄를 깨닫고 진실 되게 회개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시간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므로 회개하고 거듭나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받고 새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예수님에 관한 세례 요한의 증거(22-36)
그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때는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않은 때로서 구속 역사가 그에게서 예수님께로 넘어 가는 역사적 전환기였습니다. 요한은 한 때 대단한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그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갔습니다. 이 때 요한의 제자 중 하나가 한 유대인과 정결예식에 대해 변론을 하였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의 역사는 점점 줄어들고 반면에 예수님의 역사는 점점 왕성해지자 마음에 시기심과 경쟁심이 생겼는지 스승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27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한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역사가 흥왕하게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시기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시기심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더 나아가 신랑의 친구로서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신랑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신부는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신랑이 신부를 취할 때 신랑의 친구는 이를 크게 기뻐합니다. 이와 같이 백성들이 예수님께로 갈 때 그의 기쁨은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론적으로 말했습니다. 3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이것은 요한의 인생철학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해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질 때 슬프고 운명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숙한 내면성으로 그리스도께서 높임 받을 때 진정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소망이요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도 흥하여야 하리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죽고 자기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고 내가 쇠하여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높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의 진정한 기쁨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좀 더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신 분이십니다(31,32).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위로부터 오신 분이요 만물 위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요한은 땅에 속한 자로서 땅에 속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셨기 때문에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심을 알게 됩니다(33,34). 33절을 보십시오.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영접할 때, 우리의 영적 눈이 떠져서 하나님이 참되시고 예수님의 말씀도 참되심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만물이 예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35,36).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심판과 구원의 권세를 위임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영생이 있지만,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저는 친할머니가 독실한 불교 신자이신 제주도 고씨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집안의 분위기 가운데 자라났습니다. 고3 수능 시험전날에는 할머니가 스님들을 집에 초청하여 불공을 드리고 부적도 몸에 지니고 시험을 치뤘습니다. 경희대 치대에 들어 와서는 육신의 만족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죄악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1983년 예과 2학년 1학기 어느 봄날 캠퍼스로 성경선생님이신 목자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당시 육신적인 대학생활에 지쳐 어떤 돌파구를 찾던 갈급한 심령이 있었습니다. 저는 창세기 공부를 통해 조금씩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성령님께서는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해 단양 팔경 여름 수양회에 극적으로 참석하게 하시고 요한복음 4장 말씀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신 예수님” 말씀을 통하여 제가 영적으로 무지 하고 갈급한 죄인임을 깨닫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소감을 쓰며 회개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 수양회 이후 저는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다 길가에 나무나 돌을 보아도 새롭게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마음에는 참된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 후에 저의 삶은 완전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었던 테니스 써클, 의료 봉사 써클, 제주 향우회 모임을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결단하게 되었고 장차 제주도에서 고씨 집안의 장손으로 살고자 했던 소시민적인 삶의 꿈을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치대의 조상으로 주신 은혜를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으며 캠퍼스의 목자요 사명인의 삶을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하나님 안에서 거듭난 새 삶을 살게 하시고 영육 간에 많은 복을 받으며 승리하는 신앙생활 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믿음으로 산다고 많은 핍박을 하셨던 할머니가 나중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게 하셨습니다. 저의 인생 요절이 창세기 12장 1,2절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말씀인데 이 말씀대로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변화되어 세례를 받으셨는데 두 분의 세례명이 할아버지는 아브라함, 할머니는 사라였습니다. 이 분들이 돌아가실 때 장례식장에서는 목탁과 불경소리 대신 기도와 찬송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자격도 없는 저를 거듭나게 하사 이제는  제주도 고향집에서도 복의 근원이요, 캠퍼스 복음역사에도 복의 근원이 되어 하나님의 복을 나눠주는 복덩어리의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제가 캠퍼스 시절 말씀공부를 통한 성령님의 역사가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육의 세계에 갇혀 육신적이고 죄악 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는 비참한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캠퍼스 시절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왔던 것이 성령님의 역사로 거듭나게 되었고 완전히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어 하늘나라의 산 소망을 굳게 붙들고 천사도 흠모하는 목자요, 사명인의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육의 세계에 갇혀 있던 저를 불쌍히 여기사 성령님께서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 찬송 드립니다.
제가 앞으로도 계속하여 캠퍼스에서 이 귀한 거듭남의 진리를 니고데모와 같은 지성인들에게 나눠 주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와 권력을 얻는 것도 아니요, 명예나 인간의 사랑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이 영생을 얻는 길은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이 거듭나게 하는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캠퍼스의 니고데모와 같은 자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역사에 계속하여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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