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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21-04-03 (토) 12:30
분 류 고린도전서
첨부#1 2021년_부활절수양회_제1강-1.hwp (37KB) (Dow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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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부활절수양회 제1강]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
2021년 부활절수양회 제1강                                              양노아 전영민 서홍일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 고린도전서 15:1-58
요절/ 고린도전서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Happy Easter! 코로나로 인해 온 세상이 사망권세에 사로잡혀 있는 세상에서도 어김없이 나뭇가지에는 새 움이 돋고 꽃봉오리가 맺히는 부활의 계절 봄이 왔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은 큰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 인생에 만일 겨울만 있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절망적일까요?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참 소망을 주고 또 죽음조차 이기는 진정한 승리를 줍니다. 부활은 우리의 제한된 생명을 영원한 생명에 접붙임하며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 심령에 새겨주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생명력이 충만한 인생을 살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제1장 예수님의 부활과 증인들(1-11)

1-11절 말씀을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한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바울은 복음의 핵심 내용과 부활의 증인들에 대해 말합니다.

첫째, 복음의 핵심, 부활
고린도는 상업과 무역의 요충지이며 헬라 철학이 발달했습니다. 또한 다신교가 성행하여 우상숭배가 넘쳐났고 성적문란이 극심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에서 1년 반 동안 온 힘을 다해 복음역사를 섬겼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고 마침내 죄악의 도시 고린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척자 바울이 떠난 후 교회 내에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그들이 받은 복음의 본질이 흔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고린도 성도들은 받은바 은혜를 잊어버리고 점점 세속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바울은 이러한 그들에게 다시 복음을 상기시킵니다. 이 복음은 이미 그들이 받은 것이요 그 가운데 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그들이 힘쓸 것은 무엇입니까? 2절을 다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이란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복잡한 이론을 연구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이미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 배운 단순한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붙잡고 매일 새롭게 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음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복음을 헛되이, 즉 적당히 대충 믿는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 진리를 사수하는 자세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복음 진리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다같이 3,4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첫째, 십자가의 복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오늘날은 질병 문제, 경제 문제, 정치 문제, 제도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로 인해 사람들은 아우성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이 죄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사는 것이 죄입니다. 이 죄로 인해 인간은 추하고 더럽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동물과 같이 본성대로 살고 있습니다. 감정과 정욕대로, 욕심과 이기심이 이끄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로 인해 세상에는 끔찍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부정부패가 판을 칩니다. 또한 인간 개개인은 마음의 평화를 상실하고 죄의식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죄의 삯으로 죽게 됩니다. 문제는 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데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요, 그 후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 하는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죄 문제가 선행이나 고행 등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죽음의 벼랑 끝에서 하루하루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이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로 인해 심판에 처할 운명이었지만 예수님께서 내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주십니다. 이 복음을 감사함으로 굳게 붙들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부활의 복음: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고 이 죽음은 인간들을 지배해왔습니다. 죽음으로 인해 인간은 두려움과 슬픔과 허무 가운데서 짧은 인생을 허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을 극복한 사람은 인류 역사상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폭군처럼 우리 위에 군림하던 사망 권세를 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의 죽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죄 사함의 완전한 확신을 줍니다. 이 부활을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사망 권세에 시달리지 않고 생명과 평화를 누리는 복 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이 “성경대로”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갑자기 이루어진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하나님께서 성경의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시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교묘하게 만들어낸 허구가 아니라 오랜 역사적 배경과 자료를 기초로 한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십자가와 부활을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둘째, 부활의 증인들 (5-11)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의 확실성을 보이기 위해 여러 증인들을 내세웁니다. 법정에서는 한명의 증인이 사건을 뒤집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은 수백 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게바에게 보이셨습니다. 후에 12제자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후에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으며 이들은 당시에 대다수가 살아있었습니다. 그 후에 야고보에게 마지막엔 바울에게 보이셨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긴가민가 하는 헛된 증인이 아니라 자기가 본 부활의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건 확실한 증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그들의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유대인이 무서워 숨어서 떨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후 박해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 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자들을 지독히 싫어해 이들을 잡아 죽여 씨를 말리고자 했던 무자비한 자였습니다. 이런 그가 신자들을 잡아오려 다메섹으로 가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대적하던 자신을 만나주신 부활의 예수님만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매도 수백 번 맞고 돌에 맞아 죽을 뻔하기도 했지만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는 자기 모든 인생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받은 구원의 은혜를 바울처럼 소중히 여기고 철석같이 붙드는 가운데 예수님의 증인의 인생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남에 대한 열등감과 미움으로 인생을 허비하던 자였습니다. 중고교시절 당한 괴로움으로 대학에 들어와도 악몽을 꾸며 이를 갈았습니다. 의대에서는 저를 때리는 사람은 없지만 상대적으로 저보다 우월하고 이기적인 동기들을 미워하고 더 큰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서 강의실에 들어갈 수조차 없어 휴학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목자님들을 통해 여름 수양회로 인도하셨습니다. 수양회 마지막 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저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였을 때 예수님은 저를 만나주시고 지금까지 저를 얽어매고 있던 이 죄에서 저를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지배하던 미움과 열등감, 염려의 죄악이 마음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예수님이 주신 기쁨과 평강이 채웠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저는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전까지는 사람을 제대로 쳐다 볼 수도 없던 제가 예수님의 사랑을 맛보았을 때 강의실에서, 캠퍼스에서 제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저를 무시하던 의대 동기들도 갑자기 변한 저의 인생에 놀라며 저를 장학금 대상자로 추천하여 난생 처음 장학금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저의 인생을 바꾸어 새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의 인생을 끝까지 살기를 기도합니다.

제2장. 죽은 자의 부활(12-34)

첫째 ,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12-19)
예수님의 부활은 수많은 증인들의 증거를 거쳐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불신을 갖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당시 고린도 성도들 중에도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헬라 사상의 영향을 받아, 영혼의 불멸은 믿었으나 육체의 부활은 믿지 않았습니다. 헬라 사상이란 영과 육을 나누어 생각하는 이원론으로, 불멸하는 영혼이 썩어 없어진 육신에 들어와 부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몹시 애석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대표적인 증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에게 뿐 아니라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모습을 나타내셨고, 의심이 많았던 도마에게는 친히 손을 넣어 만져보라 하시며 , 창에 찔리신 곳을 보이셨습니다. 요  20:27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제서야 도마도 의심을 거두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지 증거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도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부활한 예수님을 보았다 증언한 여인들과 제자들은 모두 거짓말을 한 셈이 됩니다. 2000 년이 더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성서한국과 세계선교를 외치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말씀공부를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고 거짓정보를 퍼뜨리고 있는 셈 입니다. 거짓을 믿고 전파했으니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믿음이란 것도 가치를 잃게 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만약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예수님 시신이 놓여있었던 돌무덤 그 주변을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던 수많은 병사들은 그 큰 돌이 굴려지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질 때까지 과연 무엇을 한 것이며, 그 이후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질했다고 거짓말을 시킨 종교지도자들의 움직임은 무엇일까요? 정말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대적하던 무리들이 애써 시신이 사라진 일을 감추려고 그리도 애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후 벌벌 떨며 다락방에 모여 문을 걸어 잠그고 숨죽이던 제자들이, 갑자기 각성하여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파한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또한 살기등등하게 예수 믿는 자들을 잡느라 혈안이 되었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과연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방인들에게 까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전했던 것일까요?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과거 제자들로부터 지금 여기계신 목자님들과 선교사님들과 양님들 모두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불쌍한 자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17 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예수님께서 도대체 무얼 위해 십자가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과 멸시를 당하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던 것입니까?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예언하신 것과 같이, 아담의 자손을 통해서 구속역사를 완성하시기 위해,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심을 통해 죄와 죽음을 이기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다시 사흘 만에 부활하셨으니, 이것을 믿는 자에게 의롭다하시며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 아니라 심판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할 때 그리스도의 부활도 부인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가 뿌리 채 흔들리고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보게 됩니다.

둘째, 만유의 회복 (20-28)
다같이  20 절을 부활의 증인된 심정으로 힘차게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러나 이제 ’ 이는 대전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도 매우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인데, 이 말씀에는 중요한 의미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첫 열매가 되셨다는 점입니다. 첫 열매라는 것은 앞으로 거두어들일 추수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첫 열매를 수확한 다음에 같은 열매를 계속해서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은 다음 열매로 나타날 우리의 부활이 어떠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2 절에서는 이런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처럼 부활 신앙이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뿐 아니라, 우리도 주님과 같이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만 부활하는 것이 아니고 믿는 모든 사람들도 부활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 예수님인데 , 이미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 다음차례는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때에 그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 이것은 생전에 끝까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고 이 땅에 잠들어 있는 분들입니다. 그 다음은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날까지 믿음을 지키고 남아있는 분들입니다. 그 날에는 믿는 자들이 모두 다 부활할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심판주로 오십니다. 오셔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실 것입니다. 그 날에는 그동안 이 땅에서 인생들을 괴롭히며 왕 노릇하던 복음의 원수들이 진정한 왕 되신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이미 부활하셔서 죽음을 이기신 주님은 그 날에 필히 사망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모든 만물을 자기 발 아래 복종시키신 주님은 마지막에 자신도 하나님 앞에 복종하심으로써 아담의 범죄 이후 망가진 창조 질서를 바로잡으시고 만유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셋째 , 깨어 의를 행하라 (29-34)
이제 바울은 부활을 믿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만약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떨까요? 참으로 허무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 죽으면 다 한 줌 흙이 버리는 것이고 , 그 이후에 심판 받아 영원한 불꽃에 던져지는 결말만 남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 으리으리한 집과 기괴하게 생긴 고성능 차와 세계 곳곳에서 공수해 온 좋고 맛있다는 진미들을 먹고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국은 죽을 것을 . 죽음이라는 결말이 있다고 하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영구적인 만족과 행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바울 당시에는 죽은 자들의 사후 구원을 위해 대신 세례를 받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가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도 없는 일에 그칩니다. 또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바울도 복음 전파를 위해 그렇게 위험을 무릎 쓸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죽기까지 맞고 성 밖에 버려진 뒤 주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났는데, 2 차 전도여행 때에 다시 그곳을 방문하는 것을 보면 그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목숨도 아끼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다시 그럴 이유가 없었습니다.

31 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 바울도 우리와 성정이 다른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죽노라 고백할 정도로 그의 삶에는 매순간 위기가 찾아 들어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가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만약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 그 역시 먹고 마시며 즐기겠다 했습니다. 그 당시 에베소에는 원형경기장에서 맹수들과 싸우는 검투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경기장에 온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맹수나 혹은 사람과 싸워야 했으니 항상 죽음을 의식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 하루살이와 같은 삶 속에서 먹고 마시는 것 외에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을 때 우리도 이들과 같이 먹고 마시는 쾌락을 탐닉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속지 말라 .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권면했습니다. 여기서 악한 동무들이란 부활신앙이 없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그럴 듯한 말로 우리를 꾀어냅니다. “신앙생활 너무 깊이 빠지지 마라.” “인생 뭐 있나 ?” “네 형편에 지금 그럴 때냐 ?” 경계의 말, 달콤한 말 등으로 회유하며 삶을 즐기자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부활신앙이 없는 자들로, 우리를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고, 타락시키는 자들입니다 . 때로는 그들의 말이 잘못된 것을 알지만 짐짓 모르는 척 넘어가 고난이 따르는 믿음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말씀과 기도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부활신앙에 기초하여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여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아버지의 건강문제와 경제적인 불편으로 인해 깊은 운명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든 인생회복을 위해 발버둥 치다가도 중풍병자와 같이 누워있길 잘 했습니다. 인생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으로 병든 저에게 주님은 찾아오셨고, 말씀을 통해 도무지 벗어날 수 없었던 인생의 쓴 뿌리를 걷어낼 수 있었습니다. 시험에서 떨어졌지만, 주님의 은혜로 곧 취업을 하고, 믿음의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얻는 등 좋은 일들, 웃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 그런데 작년 초부터 상사의 부재로 인해 업무가 폭증하면서 매일 늦은 밤에 때로는 자정을 넘겨서 들어오는 힘든 생활이  1 년을 넘게 이어졌고, 사람들의 암투와 갈등으로 영육 간에 몹시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처했습니다. 일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쓸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피해의식과 보상심리에 자주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허무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부활절 말씀은 저에게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세상일에 얽매이면서 세속주의에 많이 물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했으니 보상받고 싶고, 이 땅에서 안정적인 삶을 길게 누리고 싶은 생각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이런 것들은 결국은 썩어 없어질 것들이요, 잠시 지나가는 것임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썩지 아니하며 영광스러운 것 , 말씀을 전해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일만이 영원한 만족과 기쁨을 주고 , 하늘나라의 소망을 갖게 합니다. 가장 비참하던 시기에 상한 가지와 같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고 찾아오신 주님의 십자가 보혈이 헛되지 않도록,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목자의 삶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3장. 부활의 영광과 승리(35-58)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자의 부활을 예표하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성도들 중에는 육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혼의 불멸은 인정했지만 몸의 부활은 불가능하고 불편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땅에서 불만족스러웠던 육의 모습을 다시 덧입는다면 끔찍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는가 물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씨앗의 비유를 들어서 부활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36-38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씨앗은 땅에 심으면 자체는 썩어 없어지지만 대신 파릇한 새싹이 대지를 뚫고 나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죽은 사람의 육체도 땅에 묻히고 썩지만 그 썩은 육체 대신에 새로운 형체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호박씨를 심으면 노란 호박꽃이 피고 봉숭아씨를 심으면 빨간 봉숭아꽃이 핍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꽃 하나도 제각기 아름다운 모양과 색깔로 각각 입혀주시는 것처럼 부활의 때에도 각자에게 독특하고 아름다운 형체로 입혀주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가장 나다운 나로 입혀주십니다.

이 땅의 육체도 다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두 발과 두 손에 열 개의 손, 발가락을 주셔서 온갖 것을 다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땅에는 네 발로 달리는 짐승의 육체가 있으며 하늘의 새를 위해서는 날개를 주시고 바다의 물고기를 위해서는 지느러미를 다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몸들이 따로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의 영광이 다르고 땅에 속한 몸의 영광이 다릅니다. 해의 영광과 달의 영광과 별과 별들의 영광이 다릅니다.(38-41) 적색으로 빛나는 베털기우스의 광채가 있고 눈 시리도록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의 광채가 있습니다. 부활한 몸은 하늘의 수많은 별들의 영광처럼 각자의 광채를 발하는 몸으로 빛나게 됩니다.

부활의 때에 우리는 얼마나 영광스럽게 됩니까? 42-44절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 썩을 몸, 욕되고 약한 육의 몸, 흙으로 돌아가는 몸이 되었습니다. 살기가 나아져 수명은 늘었으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졌습니다. 젊은 날의 아름다움은 살같이 지나고 피부는 주름지고 뼛골은 성글어져 구멍이 생기고 관절은 닳고 아파 뛸 수도 없게 됩니다. 늙어지면 안 아프고 죽는 것이 소원이 됩니다. 육체를 자랑하는 젊은 날엔 육신의 소욕으로 씨름하다가 욕되고 추한 삶을 삽니다. 간만에 결심한 바가 있어 새벽기도 나가고자 마음은 원이로되 새벽이면 약한 육신이 배신을 합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몸은 어떻습니까?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나고, 강한 것으로 살아나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부활 때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몸, 질병과 노화가 없는 건강한 몸이 됩니다, 죄의 소욕이 사라지는 신령한 몸이 되고, 무엇을 해도 지치지 않는 강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온종일 찬송을 할 수 있으며 온종일 기도할 수 있으며 경성F.C는 온종일 공을 찰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약하고 썩고 죽는 이 땅의 몸이 죽지 않는 신령한 몸이 될 수가 있습니까? 45절을 보십시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아담은 생명과 영혼을 가진 인류의 첫 사람이자 조상입니다. 그는 살아있는 영이었으나 불순종과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이 되었습니다. 첫 사람은 육의 사람으로 땅에서 났습니다. 아담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흙에 속하여 흙으로 돌아갑니다. 반면에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습니다. 고급승용차도 기름을 공급받지 못하고는 달릴 수 없는 매장 전시품에 불과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의 영혼은 주유구가 막히고 엔진은 멈췄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던 생명이신 예수님은 생명의 공급자가 되어 영혼의 주유구를 여시고 성령의 기름을 공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을 살려주는 영이 되십니다. 그는 하늘에서 나셨으며 하늘에 속한 자들에게 하늘의 형상을 입게 해주십니다.

50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리라” 혈과 육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입고 있는 육신으로 육신을 자랑하고 육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세상을 정복한 자, 땅에서 땅으로 성공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영광, 땅의 영광이 없을지라도 살려주는 영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님의 생명에 접붙힘 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그러면 아직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그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납니까? 사도바울은 마지막 영광스러운 부활의 순간을 감격적으로 증거합니다. 51-53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회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지난 3월 25일은 우리나라 100년 이래 벚꽃이 가장 일찍 개화한 날입니다. 전날 한의원 창문 넘어 가지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맴도는 것을 보았는데 다음날 피어나 하얗게 수놓은 환상적인 꽃잎에 취해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가지에 홀연히 핀 꽃의 신비는 마지막 날 신비를 암시합니다. 사도바울은 땅의 육신의 몸이 마지막 나팔소리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는 놀라운 비밀을 공개합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던 자들이 살아나고 이 땅에 있던 신자들도 홀연히 신령한 형체로 변화됩니다. 그때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잠자던 목자님들과 선교사님들이 잠에서 깨어나 어제 본 듯 인사합니다. 그때에는 여기 모든 목자님들과 형제자매들은 벚꽃 피듯 영광스러운 몸으로 만개합니다. 그날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우리의 왕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의 날입니다. 우리에게 그 순간은 오래전부터 예비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고편입니다. 이제부터는 믿는 자들이 부활하는 본방송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것은 실로 신비중의 신비요 가슴 떨리는 소망입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그 영광의 순간을 사망이 사망 당할 날로 선언합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54-56)” 아담의 범죄이후 사망은 인류 위에 무자비하게 왕노릇 해 왔습니다. 세상을 정복한 권세자도 사망과 맞짱 뜨지 못하고 사망이 쏘는 독화살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사망은 산자와 살려고 하는 자의 행복을 앗아가고 삶의 소망을 짓밟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망이 쏘던 죄의 독화살은 부러졌습니다. 사망은 최후의 전쟁에서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율법의 정죄는 무력화되었고 부활하심으로 죽음권세는 정복당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죽음이 없습니다.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며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와 율법과 사망은 그리스도 안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최후의 승리를 약속받은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58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 땅은 믿음으로 사는 것을 선행하는 듯 인정하고 환영하며 지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믿음으로 살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두려움이 들게 합니다. 사회초년생들은 말씀으로 사는 것이 좋은 줄은 알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는 경쟁사회에서 낙오되고 털리고 말 것 같은 두려움에 믿음이 흔들립니다. 신앙연륜이 있는 목자님들은 지금까지 주의 일에 힘쓰는 삶을 걸었지만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헛수고했다는 생각이 들면 낙심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양들을 섬기기 위해 드린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헛되다고 말하고 나도 헛되어 보일지라도 우리 주님은 헛되다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도 환영만 받지 않고 배척을 받으셨으며 배반도 당하시고 죽음까지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희생과 사랑의 수고는 헛되지 아니하여 오늘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굴곡진 길에 눈물과 아픔이 있었을지라도 주님을 믿고 바라고 따르는 이 길이 최후의 승리에 이르는 길임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변함없이 주님의 일에 힘쓰는 주의 일꾼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난주에 팔이 아파서 침 맞으러 오신 할아버지의 가슴에 붉게 그리워진 십자가를 보고 여쭈었습니다. 말기 폐암으로 병원서 방사선 치료를 위한 표시라 합니다. 마음이 아파 할 말을 잊었습니다. 몇 주 전에는 침 맞으러 오시던 한의원 건물 주인이 급성감염성 폐질환으로 중환실로 들어간 후 예기치 못한 사망을 당했습니다. 고교시절 50대 초반이셨던 아버지가 간암으로 소천하였습니다. 학창시절 간염을 앓고 있었던 저는 아버지가 그랬듯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생각이 기저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의 세력은 두려움과 슬픔과 삶의 허무를 남깁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교만과 정욕과 허무로 죽은 자와 같았던 제게 찾아오시고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하늘의 소망을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언젠가 주님은 하늘로부터 오는 십자가의 광채로 간병을 치료해주셨음을 믿고 두려움이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관절은 닳고 시큰거리지만 50대 중반까지 잘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잔인한 4월, 그러나 죽음이 정복된 부활의 계절에 땅의 생존을 위해 꿈틀거리는 약한 몸을 벗고 언젠가 덧입게 될 하늘의 형체를 그려봅니다. 이 땅에서 자고나면 홀연히 핀 벚꽃처럼 만개할 부활의 영광입니다. 제가 땅의 소망에만 매달리지 않고 부활의 영광을 품어서 사망권세아래 쓸쓸히 죽어가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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