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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4-17 (토) 20:37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요한복음_제6강-1.hwp (30KB) (Down: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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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6강]말씀을 믿고 가더니
2021년 요한복음 제6강                                  (김반석)
말씀을 믿고 가더니
말씀/ 요한복음 4:27~54
요절/ 요한복음 4: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오늘 말씀은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을 다룹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로 동네 사람들이 구원받은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참된 위로와 힘을 얻으시고, 희어져 추수하게 된 사마리아를 구원코자 하시는 비전에 불타셨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병들어 죽어가던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일입니다. 이를 통해 표적을 구하는 왕의 신하를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눈을 떠서 희어져 추수하게 된 세상을 바라보고, 말씀을 믿는 믿음에 신앙의 기초를 쌓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양식(27~34)
 제자들이 수가 마트에 가서 컵라면과 삼각 김밥을 사 들고 돌아왔을 때,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참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인은 참 경배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 배에서 영생의 샘물이 솟아나자 물동이를 집어던지고 동네로 달려가서 외쳤습니다.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여러분!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와서 보세요!” 여인의 변화된 모습에 감동을 받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확신있게 증거할 때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제자들은 동네에서 사 온 음식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31) 하지만 예수님은 음식에는 관심이 없으시고,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32) 제자들은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지? 우리 몰래 비상식량이라도 챙겨 드셨나?’ 생각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참된 양식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가기 전의 예수님은 심히 피곤하셨습니다.(6) 그런데 지금은 힘이 넘치시고, 기쁨이 충만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을 양식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양식이란 사람이 생존하기 위하여 필요한 먹을거리를 말합니다. 양식을 잘 먹어야 건강합니다. 현대인들은 건강에 관심이 많습니다. TV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요리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거기에서 방영된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야곱의 우물물과 같아서 먹을 때는 맛있지만 음식 재료 준비하고 만드느라 힘이 빠지고, 장거리 운전으로 피로만 쌓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영의 양식은 이것들보다 차원이 높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뤄드리는 것을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은 복음 전파를 통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하시고자 태양이 이글거리는 뜨거운 정오에도 불구하고 우물가에서 1대1 말씀으로 섬겨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을 때, 목마름과 배고픔을 잊으시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9:10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가는 곳마다 쉬지 않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영혼들을 치료해주셨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많은 십자가를 감당하시면서도 힘있게 복음 역사를 섬기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일 자체가 힘을 얻는 양식이요, 쉼이요,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서 힘과 영혼의 만족과 쉼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분주합니다. 공부할 양이 너무 많아 밥 먹고 잠을 잘 시간조차 부족한 학생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정신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뭔가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남는 것이 없어 허전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약4:14)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벧전1:24,25) 세상에서 한 일 중에서 영원히 남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영혼 구원하는 일이야말로 참된 양식임을 믿고(6:27a),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한 팀의 1대1 성경 공부를 하더라도 맛있게, 즐겁게, 기쁨으로 감당하여 양도 살리고, 나도 사는 사명인의 인생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비전(35~42)
 3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팔레스타인에서 보리는 12월에 씨를 뿌리고 넉 달 후 4월에 추수를 합니다. 밀은 보리보다 한 달 정도 늦은 1월에 뿌리고 5월에 추수를 합니다. 제자들은 파릇파릇하게 돋아난 싹을 보면서 아직 추수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영적인 추수를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우상숭배가 만연한 사마리아는 아직 추수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선민으로서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동네에 들어가 음식은 사면서도 복음을 전파하려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의 변화로 많은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시고, 사마리아를 영적으로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으로 보셨습니다. 이제 사마리아 사람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될 비전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눈을 들어 희어져 추수하게 된 사마리아를 보라고 하십니다. 눈을 들라는 것은 눈을 뜨라(open your eyes)는 것입니다. 현실 문제 해결에만 급급해하던 것으로부터 영적인 눈을 떠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고정 관념에 갇혀 있지 말고, 예수님의 관점으로 목자 없이 유리방황하는 양들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면 척박한 사마리아 땅에도 메시아를 소망하며 복음을 영접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도 눈을 들어 희어져 추수하게 된 캠퍼스를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도전할 수 없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학과 공부와 취업 준비로 너무 바빠서 영적인 소원이 없어요,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커서 힘들어요.’ 이렇게 부정적인 눈으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캠퍼스가 삭막해 보여도 내면 문제, 인생 문제로 고민하는 양들은 있어 성경 선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목자님, 속히 와서 나를 도와주세요. 제발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주세요’ 양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비전을 덧입고 영적인 눈을 떠서 이런 양들을 추수하는 일꾼으로 쓰임 받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36절을 보십시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거두는 자’는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제자들이 비전을 덧입고 나가기만 하면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두는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이때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추수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농사에서는 씨를 뿌린 자가 거둡니다. 그러나 영적인 추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열심히 말씀의 씨를 뿌렸는데 거두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이때 헛수고만 했다며 손해 의식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뿌린 씨는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이런 확신을 가질 때 순수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말씀의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37,38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통계적으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까지 7번의 전도를 받는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이 전도하지만 여섯 번이나 거절한다는 얘기죠. 이로 인해 전도자들은 수없이 거절을 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낙심하고, 전도하고 싶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캠퍼스에서 나가 전도를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합니다. 하지만 6번의 거절을 당하는 과정이 없으면 예수님께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절을 당할 때마다 “6번만 거절을 당하면 저 사람도 예수님을 믿겠구나!” 하는 소망을 갖고, 믿음으로 도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전도해서 받아들이면 “누군가 이 사람에게 6번이나 거절을 당했구나!”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처럼 한 사람이 심고 한 사람이 거두는 동역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나 혼자 심고, 내가 다 거두고자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거두었다고 해서 자랑하거나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누군가가 뿌린 것을 때가 되어 거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씨를 뿌린 사람은 지역 교회의 친구들이었지만, 거둔 것은 우리 모임입니다. 지역 교회에서 뿌린 씨가 우리모임에서 열매를 거두어 목자로, 선교사로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모임에서 씨를 뿌렸는데 지역 교회에서 거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 모임에서 말씀 공부하고 훈련받은 분들이 신학자, 목사, 평신도가 되어 한국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뿌리면서 거두기도 하고, 거두면서 뿌리기도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에게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상을 주십니다.(고전3:6~8)

 39절을 보십시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여인의 증언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물러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시고, 이틀이나 함께 하시며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는데 정말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그들이 처음에는 여인의 간증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믿음과 말씀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디다. 믿음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 생성됩니다. 롬10: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잘 들을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말씀에 기초한 자립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내가 만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증언할 뿐만 아니라 교회로 나온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말씀을 연구해서 잘 가르쳐야 합니다.
 셋째, 말씀을 믿는 믿음(43~54)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면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인간적인 편견과 선입견으로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릴리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명절 기간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표적을 갈릴리에서도 행하시기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에 기초한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첫 번째 표적을 행하셨던 갈릴리 가나에 다시 가셨습니다. 이때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신하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았습니다. 그에게는 병들어 거의 죽어가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에 대해 듣고, 예수님이라면 능히 아들의 병을 고치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아비의 심정으로 가버나움에서 이곳까지 30km가 넘는 길을 단숨에 달려와 간구했습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4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적과 기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왕의 신하도 예수님이 죽어가는 아들에게 표적을 행하시기를 바라면서 집으로 모셔가고자 했습니다. 그는 다급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재촉했습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그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가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아들의 병은 고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50a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예수님은 직접 가서 고쳐주지 않으시고, 왕의 신하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직접 가서 안수하여 고쳐주시면 많은 사람이 믿게 될 텐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30km가 넘는 거리가 부담스러우셔서 그러셨을까요? 아닙니다. 표적에 기초한 신앙을 말씀에 기초한 신앙으로 바꿔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죽어가는 아들도 능히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가라는 것입니다. 표적을 보아야만 믿는 신앙은 초보적인 신앙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문제를 기적적으로 해결해 주시기만을 바랍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불신하고 원망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하기 전에는 10가지 재앙, 출애굽 후에는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일, 광야 40년간 매일 아침 하늘에서 만나를 공급받는 일 등 엄청난 표적들을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만 힘든 일을 만나도 하나님이 과연 자신들과 함께하시는지 불신하고 원망하기를 밥 먹듯이 했습니다. 이처럼 표적 신앙을 가진 사람은 결코 믿음의 깊은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도마를 찾아오셔서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20:19~29) 표적을 보지 않아도 말씀을 순수하게 믿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왕의 신하는 어떻게 했습니까? 50b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그는 먼 길을 왔는데 그냥 가라고 하시는 말씀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는 예수님을 말씀을 믿고 순종해서 갔습니다. 처음에 예수님께 나올 때는 표적을 기대하고 왔는데, 돌아갈 때는 예수님의 말씀 자체를 믿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히11:1) 보아야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왕의 신하가 말씀을 믿고 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51,52절을 보십시오.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왕의 신하의 ‘순종의 믿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에 종들을 만났는데 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들이 언제 낫기 시작했는지 시간을 계산해 보니 어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 즉 오후 1시경이었습니다. 와! 예수님이 줌을 사용해서 원격 진료를 하신 것도 아닌데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단순히 말씀을 믿고 순종했더니 아들이 살아나는 표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표적보다 말씀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와 온 집안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7가지 표적이 나오는데,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사건과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신 사건만 첫 번째 표적과 두 번째 표적이라고 특별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두 가지 표적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말씀이시오, 생명이시오, 하나님이심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능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요5:25) 예수님의 말씀은 죄로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여 온전하게 합니다. 38년 동안 누워 있던 사람을 일어나 걸어가게 했습니다(5:5,8)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된 나사로도 살렸습니다.(11:43,44) 예수님의 말씀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2천여 년 전에 왕의 신하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지금 우리가 듣고 믿을 때, 성령께서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게 하셔서 우리의 영혼을 소생하게 하십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함을 배웁니다. 물론 어떤 기적이나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믿게 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희미한 단계의 믿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표적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모래 위에 지은 집 같아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무너지고 맙니다.(마7:26,27) 하지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 위에 서게 됩니다. 말씀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열매 맺게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를 통해 그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첫 번째 표적에서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을 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오늘 두 번째 표적에서도 왕의 신하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갔을 때, 죽어가던 아들의 병이 낫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믿음대로 이뤄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저하지 않고, 약속의 말씀을 좇아갔습니다.(창12:1~4a) 상속자 문제로 힘들 때도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창15:5~6)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불같은 시험을 받았을 때도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고, 순종하여 이삭을 드렸습니다.(창22:2~10,히11:17~19)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연약하여 실수할 때가 많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았을 때,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표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단순히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역 교회를 다닐 때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지지 않아 서원기도를 통해서 또는 금식 기도원에 가서 방언이나 신유의 표적을 구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여러 표적 체험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믿음을 잃어버리고 다시 표적을 구했습니다. 이렇게 표적을 따를 때 세상 유혹에 쉽게 넘어가 죄의 열매만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임에 와서 말씀을 공부하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영적인 깊은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분명한 영적인 가치관과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구원역사에 쓰임 받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비전을 주시고, 말씀 전파에 힘쓰므로 생명의 열매 맺는 삶을 살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복음 역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서 적극적으로 말씀 역사를 섬기기보다 현실에 자족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번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의 씨를 뿌리고 거두는 수고도 없이 구원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표적 신앙에 머물러 있던 것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려운 현실에 얽매였던 데서 눈을 들어 희어져 추수하게 된 캠퍼스를 바라봅니다. 추수하는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참된 양식으로 삼겠습니다. 제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사람을 살리는 말씀의 능력을 믿고,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제자들을 세우는 역사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결론입니다. 참된 양식은 말씀을 전파하여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밤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단12:3b) 우리가 눈을 들어 희어져 추수하게 된 캠퍼스를 바라보고, 말씀의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그 말씀대로 이뤄지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따르므로 참된 기쁨, 위로, 자유,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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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 창세기 [2021년 여름수양회 제2강]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관리자 2021-07-24 121
710 누가복음 [2021년 여름수양회 제1강]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관리자 2021-07-23 109
709 다니엘 [2021년 여름수양회 특강]다니엘서 특강 관리자 2021-07-22 79
708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9강]내가 곧 길이요 관리자 2021-07-18 270
707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8강]서로 사랑하라 관리자 2021-07-10 177
706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7강]한 알의 밀 관리자 2021-07-03 211
705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6강]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1-06-27 208
704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4강]나는 선한 목자라 휴화산 2021-06-19 226
703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3강]세상의 빛 예수님 관리자 2021-06-13 204
702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2강]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관리자 2021-06-05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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