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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5-01 (토) 19:37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요한복음_제8강-1.hwp (29KB) (Down: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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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8강]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2021년 요한복음 제8강                                                          오정훈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말씀/요한복음 6:1-21
요절/요한복음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오늘 말씀은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는 네 번째 표적과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시는 다섯 번째 표적에 관한 말씀입니다. 특히 오병이어의 표적은 사 복음서에 전부다 나오는 중요한 표적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먹이시는 생명의 떡이 되심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인생 속에서 먹는 문제와 인생의 시련으로 곤란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원대로 먹이시고 풍성하게 하여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삶 가운데 풍족히 먹이시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깊이 만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이는 다른 복음서를 보면 전도여행 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제자들이 식사할 겨를도 없어 잠깐 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병자들에게 행하신 표적을 보고 따라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목자 없는 양 같이 불쌍히 여기시어 산에 오르사 해가 질 때까지 열심히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병들고 굶주린 그들에게 병을 고치시고 영접하여 주시는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성전이요 참된 희망이셨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가까웠지만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않고 예수님께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현재 예수님이 계신 곳은 갈릴리 건너편 벳새다 근처로 빌립의 고향이었으니 어디서 떡을 사서 먹일 수 있는가 빌립에게 물어보실 수 있으셨습니다. 만약 동대문에 사는 우리에게 물어보셨다면 아마 청량리 롯데마트나 동대문구청 옆 홈플러스 혹은 회기시장 떡집이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저자 요한은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코멘트하고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무리들을 먹이고자 작정하고 다 계획을 세워놓고 계셨습니다. 시쳇말로 ‘예수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빌립을 콕 집어 질문하신 것은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잘 풀려면 출제자의 의도를 잘 알아야 하는데 이 질문 속에는 어떤 의도가 들어가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디서’와 ‘먹이겠느냐’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배고픈 무리를 먹이겠다는 목적을 두고 질문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그러므로 어디서 곧 어떻게 하면 무리를 먹일 수 있는지 작은 가능성 찾고 해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가’에는 예수님도 포함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앞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고 38년 된 병자를 일으켜 세우시므로 변화의 능력자시오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떡을 사서 먹이겠느냐 물으실 때 예수님께서 능히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빌립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다 같이 7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이 생각할 때 이 많은 사람들이 떡 한 조각씩만 먹게 하려고 할지라도 노동자 8달치 월급,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현재 자신들이 가진 것이 하나도 없고 이곳은 시장이나 마트도 없는 빈들이니 이들을 먹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빌립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그 짧은 순간에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필요하다고 계산할 만큼 상황판단이 잘되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머리만 좋고 믿음이 없으면 매사에 부정적이 됩니다. 돈이 없어서 안 되고 시간이 부족해서 안 되고 사람이 모자라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 된다 불가능하다는 말이 입에 붙어 다닙니다. 그는 빠른 판단력으로 위대한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많았지만 어찌하든지 무리를 먹이고자 하는 목자의 심정과 책임감이 부족했습니다. 부모는 돈 있고 능력이 있어서 자식을 양육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없는 가운데서도 어찌하든지 자식들을 먹이고 교육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목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양들의 목자라는 정체성과 책임감이 있을 때 양들을 돌보고 먹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능력이 많은 사람보다 심정과 책임감과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빌립은 예수님의 시험에 일차 불합격이었습니다. 그는 믿음 test에서 재시험을 보아야 했는데 예수님은 이런 빌립의 약점을 잘 아시고 도와주고자 시험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빌립이 부정적인 대답으로 그 시험에서 불합격 하였을 때 어디론가 사라졌던 안드레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나타나 말했습니다. 8,9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당시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일반적인 음식이었고 부자들은 밀로 만든 것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의 물고기는 거친 보리떡이 목으로 잘 넘어가도록 함께 반찬으로 먹는 소금에 절인 작은 생선이었습니다. 당시에 이런 음식은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다니기에 적합했습니다. 한마디로 안드레는 아이가 간식으로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들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에게 물어보지도 않았고 뭘 시키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왜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가진 아이를 찾아서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일까요? 시쳇말로 그가 관종이었기 때문에 특이한 행동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자 함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무리들을 먹이고자 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어찌하든지 이들을 먹일만한 것을 두루 찾아다닌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 아기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예수님께 들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 얼마나 하찮은 것입니까? 이는 요즘 편의점 도시락보다 못한 참으로 빈약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찾아내었다는 것은 위대한 발견이요 이것을  예수님께 들고 나왔다는 것은 위대한 시도였습니다. 사실 오병이어 자체는 별 것 아닙니다. 한 사람분의 식사도 되지 않습니다. 안드레도 그것을 알았기에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께 들고 나올 때 얘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역사하시면 귀하고 놀랍게 쓰여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안드레는 참 엉뚱하고 상황파악 못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믿음의 사람이요 심정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 역사에 쓰십니다.

인도네시아 개척자인 정안드레 선교사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안드레처럼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늘 웃는 얼굴의 소유자입니다. 이 분은 중국선교사로 갔다가 중국 공안에게 붙잡혀 추방당해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고대생들을 피싱하였는데 어느날 도서관에서 밤늦게 고시공부하고 나오던 한 학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이 끝나는 밤 11시에 성경공부를 하니 목자와 양이 얼마나 졸렸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양이 늦은 밤에 하는 말씀공부를 통해 은혜를 받고 변화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안드레 선교사님이 인도네시아 개척을 하러 갈 때 따라가게 되었는데 이 분이 그 유명한 피터리 선교사님입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지금 인도네시아 6부가 개척되고 데폭 센터에만 120명이 넘는 주일예배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추방당한 한 평신도 목자의 밤늦은 도서관에서 한 양에게 한 전도가 오늘날과 같은 역사의 불씨가 되리라고 누가 기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작은 진심의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넘치도록 축복하사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빌립처럼 없는 것 안되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안드레처럼 내게 있는 오병이어를 찾아서 적극적으로 주님께 드리는 믿음과 심정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받은 한마디 말씀의 은혜, 내가 드린 한 번의 기도와 한 팀의 말씀공부 이것은 우리에게 있는 위대한 오병이어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작게 여기지 않고 믿음으로 주님께 드림으로 이 시대 많은 사람을 먹이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무리들을 앉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앉게 하라고 하신 것은 먹을 것을 책임지시겠다는 것인데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이실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사람 수를 세어보니 어른 남자만 오천 명 대략 만 명이 넘을지도 모르는 수였습니다. 제자들에게는 무리를 앉히는 과정에서도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어떻게 먹이십니까? 11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셨습니다. 이 작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셨고 안드레에게 이것을 들고 나올 믿음을 주신 것에 감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주시되 그들의 원대로 주셨습니다. 원대로 주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보통 학교에서 하듯이 빵 하나에 우유 하나 이런 식을 배식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빵이면 빵, 생선이면 생선을 마음껏 먹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사람들은 원 없이 먹어보는게 소원이라는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보통 한 가정에 5남매 7남매 저랑 같이 보건지소에서 근무했던 첫 번째 의사선생님은 9남매 중 4째라고 하였습니다. 자식들이 많아서 사람들은 배부르게 충분히 먹지 못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많으면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코로나 이전 관악3부에는 식사 배식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소시지를 3개 이상 가져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재작년까지 같이 식사하였는데 그때 가끔씩 간장 조림한 계란이 나왔던 것이 기억납니다. 사람들이 군침을 삼키며 계란을 쳐다보지만 사모님의 낭랑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마련입니다. “한 사람 당 계란 하나요!” 계란이 가득 쌓여 있지만 원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원대로 먹일 수 없습니다. 원대로 해주려면 돈이 무한정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원대로 주십니다. 간에 기별이나 갈 정도 겨우 주지 않으시고 배부르고 만족할 만큼 풍성하게 먹여주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은혜가 무한대임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토록 먹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는 무리들의 생각처럼 예수님을 붙잡으면 평생 빵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께 나오면 누구든지 풍성하게 말씀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요 이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원대로 주신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께서 하신 역사요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한 역사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원대로 주시는 예수님께 나가 풍성한 꼴을 얻어 생명력이 넘치는 복되고 기쁜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끔 집에 치킨이나 먹을 것이 있으면 동역자에게 이거 먹어도 되냐고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애들이 먹으려고 한 건데 제가 먹어버리면 안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동역자는 신경쓰지 말고 먹으라고 하는데 신경이 쓰입니다. 사실 제가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고 또 제 돈으로 산 것인데 왜 마음껏 먹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무리 돈이 많고 먹을 것이 세상에 넘쳐나도 매번 원대로 먹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도 코로나 사태 이후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말씀의 은혜를 풍성히 원대로 받기 어려워졌습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비대면 세계가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대면 예배를 늘리고 찬양 팀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며 좀 이른 감이 있지 않나 생각하였습니다. 잘못하면 바이러스가 한 번 더 유행할지 모르고 대면예배 한 번 더 드린다고 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역사가 있겠는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원하는 만큼 풍성한 말씀의 은혜를 누리기보다 생존할 만큼 최소한의 은혜만 받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빌립처럼 지금은 안 된다, 할 수 없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인에게 요즘 깨어서 열심히 투쟁하는 이마태오 형제를 통해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이 분은 경희사모님에게 넘겨지게 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듣고 난 뒤부터 회개하고 진지하게 말씀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잘 안 쓰던 소감도 절대적으로 감당하고 말씀을 깊이 있게 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같이 말씀공부하면서 제가 더 많은 은혜를 받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를 통해서 공부를 하는데도 말씀역사가 때를 따라 풍성해지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비대면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제가 가진 작은 말씀의 은혜를 오병이어로 들고 나올 때 이를 축사하사 원대로 먹여 주시는 은혜의 주님이 되십니다. 제가 이 주님을 바라보지 못해 비대면의 한계에 빠져 빌립처럼 먹일 수 없다 할 수 없다 부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을 깊이 회개합니다. 제가 가진 것이 별로 없지만 원대로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작은 말씀과 기도의 오병이어를 들고 나가므로 사람들을 풍성히 먹이고 살리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무리가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거두어 보니 열두 바구니에 차게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먹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신 것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은혜가 풍성할 때 그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귀하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빵이 계속해서 나오네 하며 빵으로 장난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의 은혜도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연히 희생하시고 죽으신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가볍게 여깁니다. 그러나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은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입니까? 무리들도 떡과 물고기가 없을 때 쫄쫄 굶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풍성히 먹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헛되이 버려지지 않도록 마음의 바구니에 담아야 합니다. 둘째로 제자들에게 믿음을 심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잘 까먹습니다. 잘 먹었네 하고 그냥 끝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남은 것을 거두어들일 때 이렇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다니, 풍성한 역사를 이루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생기고 감사가 피어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대개는 자기가 열심히 해서 된 것은 애착을 가지고 난리를 치는데 은혜로 된 것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너무나 쉽게 은혜의 체험, 믿음의 체험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항상 새로운 문제로 다가오게 됩니다. 물질문제를 해결해주셨는데 다시 물질문제에 부딪히면 처음 그런 문제에 부딪힌 사람처럼 두려워하고 힘들어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거두면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새로이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소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한 주간 예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버리는 것이 없이 잘 주어 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은혜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마음에 담음으로 늘 그 은혜가 살아있고 믿음이 살아있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였습니다. 이는 신명기 18장15절에 기록된 것으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그들 가운데 일으키실 것이라 하신 약속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를 가리키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으로 영접하고 억지로 잡아 임금을 삼고자 하였습니다. 아마 모세와 같은 능력과 사랑을 예수님에게 맛보고 예수님을 놓치지 않고자 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자 하였습니다.

16-21절은 다섯 번째 표적에 관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날은 어두웠고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게 되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노를 저어 십여 리쯤 힘겹게 가고 있었습니다. 십 여리니까 4-5km인데 갈릴리 바다의 가장 넓은 곳의 너비가 12km이고 길이가 20km인 것을 보면 제자들은 바다 한가운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고 배부르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는데 지금은 어둠과 파도가 몰아치는 시련과 고난에 처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바로 와서 도와주지 않으시고 십 여리 가도록 바람과 파도 가운데 가만히 내버려 두시는 것일까요?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해도 그때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시련과 고난 가운데 인내함으로 고난을 견디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함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힘을 덧입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환난 가운데 내버려 두지만 않으시고 항상 살피사 침몰 전에 오셔서 건져 주십니다. 19절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돕기 위해 물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은 중력의 법칙, 우리가 아는 삶의 법칙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 힘겹게 노를 저어가야 하는 현실로 인해 낙망하지 않고 믿음의 항해를 계속해서 할 수 있습니다. 20,21절입니다.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예수님이 오시니 제자들이 기쁨이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 배에 타시자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시자 배가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시편 107편 30절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아무리 풍랑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더라도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원하는 목적지로 반드시 인도함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온 세상이 혼란과 무질서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이 상황을 다스리시며 우리를 하나님이 뜻 두신 안전한 항구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 모임이, 우리 각 사람이 세상의 여러 풍파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두려워 절망에 빠지지 말고 물 위를 걸어오셔서 인도하시는 주님을 힘입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항해를 끝까지 감당해 나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코로나 시대에도 주님은 많은 사람들을 풍성히 먹이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기적의 비결은 대단한데 있지 않습니다. 여기 내게 있는 작은 가능성, 오병이어를 찾아서 주님께 드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빌립처럼 없는 이백 데나리온 타령만 하지 말고 안드레처럼 우리가운데 있는 작은 오병이어를 적극적으로 찾아 주님께 드리는 믿음의 사람 되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이를 축복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많은 사람을 먹이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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