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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21-05-22 (토) 18:47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요한복음_제11강-1.hwp (30KB) (Down: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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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11강]정죄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2021년 요한복음 제11강 (고 영 훈)
                정죄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7:53-8:20
요절/ 요한복음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7장부터 이어지는 초막절과 연관된 사건입니다. 초막절의 두 큰 행사는 실로암 물을 떠다가 성전 제단에 붓는 물의 축제와 성전에서 등불을 들고 행진하는 불의 축제였습니다. 이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한 여인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율법과 초막절이란 절기가 근본적으로 어두움 곧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만이 죄의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율법이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를 예수님은 어떻게 해결해 주시는가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 받은 다음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잘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I. 죄인을 정죄하지 않으시는 예수님(7:53-8:11)

초막절 행사가 모두 끝나자 사람들은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 쉬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초막절 기간 동안 적대적 분위기 가운데서 상한 심정으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도 얼마간의 휴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심으로 모든 피곤을 극복하시고 영적 쉼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심으로 새롭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영력을 덧입으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백성들은 초막절 행사 후 내면에 공허함을 더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아침부터 영적으로 갈급한 이들에게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을 섬기는 것이 예수님의 일상생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한창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였습니다. 이를 방해하는 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한 여인을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은혜롭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험악해지고 사람들의 시선은 끌려온 여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사실 율법을 잘 아는 그들은 이렇게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신명기 22장 22절에 기록된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결혼했거나 정혼한 여인이 다른 남자와 간음하다가 잡히면 남녀 모두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 여인을 여기까지 끌고 올 필요도 없이 현장에서 돌로 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연약한 여인만 끌고 와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점에서 예수님에게 시험이 되는 것입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돌로 치라 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에 어긋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3:17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돌로 치라 하시면 당시 사형 권한이 없었던 유대인으로서 살인을 조장했다 하여 로마법에 저촉됩니다. 그러나 만일 돌로 치지 말라 할 경우 간음죄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모세의 율법을 어기게 되어 종교상의 고소 조건이 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백성들의 목자로서 양 무리들을 말씀으로 섬기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기심의 노예가 되어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릴 궁리를 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6b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예수님은 이 절박한 상황에 땅 바닥에다 무엇을 쓰셨을까요? 말씀에 무엇을 쓰셨는지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쓴 내용보다 다른 뜻이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무엇을 쓰시는 동안 고소하러 온 종교지도자들과 흥분한 무리들을 진정시키고 관심을 예수님께로 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조용히 자신들을 돌아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체하시자 종교지도자들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그쳐 물었습니다.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이 때 예수님께서 일어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얼마나 지혜로운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한마디 말씀으로 그들을 통쾌하게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남을 정죄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라 말씀하심으로 먼저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돌로 치는데 대한 분명한 책임을 지도록 하셨습니다. 정말 자신이 죄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는 자만이 먼저 돌 던질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죄 없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모든 사람은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하신 것은 의인된 심정으로 여인을 정죄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다 같은 죄인임을 인식시켜 주시는 예수님의 살아 있는 메시지였습니다.

둘째로, 간음한 여인에게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라는 말씀을 하신 다음 “돌로 치라”하심으로 여인이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인임을 인정하셨습니다. 율법에는 분명히 간음의 죄를 살인이나 우상숭배의 죄와 같이 엄격하게 다룹니다. 그만큼 간음죄는 파괴력이 크고 악영향이 심각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정욕의 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가볍게 여깁니다. 살인이나 절도는 엄격하게 죄로 인정하지만 정욕은 상업화되고 문화로 여길 정도로 죄의식이 없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2015년에 간통죄가 폐지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개인의 사생활과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죄악된 문화가 알게 모르게 한 사람의 인격을 파괴시키고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정욕의 죄에 대해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언 6장 32,33절은 말씀합니다.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본문의 여인도 간음을 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는 율법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밀히 정욕을 즐기면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현장에서 잡히게 되고 그 죄가 온전히 드러나서 예수님이 돌로 치라 하셨을 때 이 여인은 심한 수치심과 죽음과 심판의 두려움으로 이미 돌에 맞은 것이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을 쓰셨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은 모두 양심에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돌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를 피해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죽었던 양심의 기능을 회복시켜 죄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일어나셨을 때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는 여인을 정죄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는 분으로서 본체가 하나님이시고 심판하는 권세를 가진 분이십니다(요5:22). 이제 여인의 운명은 예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재판장이신 예수님께서 정죄하시면 정죄를 받게 되고, 사면을 내리시면 무죄 석방이 되는 것입니다. 여인은 모든 것을 체념한 채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예수님은 이 죄 많은 여인을 “여자여”라고 애정이 담긴 호칭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지금까지 여인을 정죄하던 자들이 아무도 없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여인은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없나이다” 여인은 자신을 정죄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고 그곳에는 오직 온유하신 예수님만이 계심을 보았습니다.

이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최종판결이 무엇입니까? 11b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유일한 재판장 예수님마저도 정죄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이 말씀은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사죄의 선포입니다. 주님의 용서는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여인에게 두려움과 죄의식과 수치심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평강과 기쁨과 소망이 가득 넘치게 하였습니다. 이는 여인에게 임한 놀라운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은 이 여인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까? 아무나 말로 용서한다고 해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그 값을 철저히 요구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6:23). 그러므로 진정한 용서에는 상대방의 죄 값을 죽음으로써 대신 치르는 희생과 아픔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용서받을 꼬투리가 전혀 없는 이 여인도 지극히 사랑하셔서 죄의 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이 여인을 정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정죄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 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이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 받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1,2절에서 담대히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제 믿는 우리에게는 정죄의 법에서 용서의 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법은 최종 재판장이신 예수님께서 죄의 값을 다 지불하신 후 내리신 최종 판결이기 때문에 누구도 번복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판결은 집행유예의 판결이 아니라 완전 무죄의 판결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어떤 죄인이든지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은 우리를 강하게 얽어매고 있던 죄의 사슬을 일시에 풀고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게 합니다. 율법의 세계에서 은혜의 세계로, 영원한 심판에서 영생으로 옮겨지게 합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은 죄인을 변하여 새 사람 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진실로 죄를 깨닫고 회개한 자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만이 죄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살리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됩니다. 어떠한 인간적인 노력도, 사람들의 죄를 규제하기 위해 만든 율법도 인간 내면에 깊이 박혀 있는 죄의 소욕을 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만이 죄의 소욕을 이기고 죄로부터 자유를 줍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여인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신 후 새로운 삶의 방향을 주셨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은 죄를 용서받은 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과거에는 죄의 종이 되어 죄를 즐기는 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죄와 피 흘리기 까지 싸우는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은 사랑하시지만 죄는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여인으로서 아름다움을 회복하고 순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내면에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고귀한 하나님의 딸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 이 여인은 받은바 구원의 은혜를 기초로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며 죄악된 세상과 구별된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를 감당하는 생활입니다. 만일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도 옛 생활로 돌아가 죄의 낙을 즐기는 생활을 한다면 이는 구원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어 연약하여 때로 원치 않게 죄를 범하고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고 죄와 싸우는 성결한 생활을 하고, 적극적으로 우리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롬6:13). 우리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II. 나는 세상의 빛이니(12-20)

우리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1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는 방금 용서 받은 여인이나 그를 돌로 치려하였던 종교지도자들 모두에게 해당합니다. 초막절 행사에서 과거 생수를 주시므로 광야의 목마름을 해결하여 주신 은혜와 함께 끝없이 펼쳐져 있는 사막에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갈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았습니다. 이를 위해 성전 안에 여인의 뜰에 있는 네 개의 금 촛대에 촛불을 밝혔습니다. 광야에서 조상들을 인도한 불기둥은 바로 온 인류를 생명으로 인도하실 예수님을 상징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전 뜰의 금 촛대는 처음에 환하게 어두움을 밝혀주다가 점점 가물가물 빛을 잃고 꺼져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어두움을 밝혀주는 세상의 빛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이 빛을 생명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생명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광활한 사막을 통과하려면 물만큼이나 길을 아는 인도자가 필요합니다. 인도자가 없이는 결코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없고, 잘못된 인도자를 만나면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앞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따라 갔을 때 무사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도 광야와 같습니다.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세상의 빛이신 주님의 인도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이나 교수님이나 선배가 인도자가 되기도 합니다. 앞서간 성인을 인도자로 삼기도 합니다. 믿을 것은 나 밖에 없다 하며 자신을 인도자로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홀로 사막 길을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신 있게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런 와중에도 정신 줄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길을 찾았습니다. 한참을 찾다가 마침내 사람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얼씨구 좋다 춤을 추며 그 발자국을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그 발자국은 다름 아닌 헤매고 있는 자기 발자국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참된 인도자가 없어서 죄를 지으며 끊임없이 방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젊은 시절부터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 참 인도자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할 일이요,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예수님은 유일하게 세상의 빛이 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다시는 어두움인 죄를 짓지 않고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자 네가 네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이 참되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증언이 참된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1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으로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을 아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길을 찾는 구도자였지 길 그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 자체가 되십니다(요14:6). 1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육체를 따라 판단한다”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외적인 것만 보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인지 아닌지 하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도 갈릴리 나사렛 사람이다, 제대로 랍비 교육을 받지 않았다, 목수의 아들이다 등 외적인 것만 보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사람들을 판단할 자격이 있는 분이시지만 인생들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메시야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율법에 비추어 볼 때도 참되십니다. 율법에는 두 사람이 증언하면 참되다고 인정하였는데 예수님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증언하시기 때문에 참되십니다. 문제는 그들이 예수님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가 문제였습니다(19).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전의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으므로 아무도 예수님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20).

저도 본문의 여인처럼 죄를 짓고 돌에 맞아 죽을 자였지만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덧입고 살아난 자임을 깨닫고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불신자 집안에서 나고 자라 어떤 것이 죄인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대학에 들어 와서도 죄악된 치과대학의 분위기에 따라 육신적인 삶을 살다가 지쳐서 헤매일 때 목자님을 통한 성경공부와 여름 수양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님 앞에 소감발표를 하며 저의 추악한 죄들을 진실되게 회개하였을 때 저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목자님들도 저를 사랑으로 격려하여 주시고 죄악된 치대가운데 목자로 살도록 기도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죄 사함 받고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지만 치대내에 믿음의 선배도 없고, 앞으로 예상되는 불신자 집안의 핍박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꾸준한 말씀공부와 예수님의 제자훈련을 열심히 받고 저의 인생을 예수님께 온전히 맡겼습니다.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빛되신 예수님은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저의 참된 인도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졸업하여 경희 의료원 치과 보존과 수련의로 남게 하여 목자 생활을 잘하게 하셨고,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불신자 집안의 핍박을 이기고 믿음의 결혼을 하게 하셔서 본격적으로 사명인의 삶을 살 게 하셨습니다. 학사 목자로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세상 좋아 보이는 것에 마음이 흔들렸던 저에게 2010년 말 신년수양회 말씀 사무엘상 7장 3절 말씀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깊이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이 후로 새벽기도를 절대적으로 감당하고자 굳게 결단하고 세상으로 향한 모든 마음을 끊고 새롭게 영적 투쟁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가 더 이상 어두운 죄 가운데 다니지 않고 죄의 소욕을 다스리며 빛되고 생명력 충만한 신앙생활 하도록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가장 best의 길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제가 앞으로도 세상의 빛되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고 하늘나라의 산 소망을 붙들고 사명인의 삶을 잘 살아 갈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범죄한 우리 인생들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다시는 죄악된 생활을 하지 않도록 빛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엄청난 용서의 사랑을 받은 자들로서 우리가 힘써 은혜를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빛되신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따르며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로써 죄의 소욕을 이길 뿐 아니라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의 증거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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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6강]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1-06-27 209
704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4강]나는 선한 목자라 휴화산 2021-06-19 227
703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3강]세상의 빛 예수님 관리자 2021-06-13 205
702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2강]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관리자 2021-06-05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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