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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7-18 (일) 09:06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요한복음_제19강-1.hwp (31KB) (Down: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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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19강]내가 곧 길이요
2021년 요한복음 제19강                                      (김반석)
내가 곧 길이요
말씀 / 요한복음 14:1-31
요절 /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사람들은 인생을 흔히 ‘나그네 길’, ‘광야와 같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길이 없는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다가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나그네’라는 말은 ‘본향’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하지만 본향을 모르기 때문에 근심과 염려와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어 불안하고 우울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을 향하여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과 평안을 덧입고, 거룩한 순례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1~14)
1a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예수님은 12장에서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고, 13장 유월절 만찬에서는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어디론가 가시는데 지금은 제자들이 따라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13:36) 제자들은 계속되는 충격적인 말씀을 듣고 멘붕에 빠져 장래에 대한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배와 그물을 버리고, 혈육의 정도 끊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는 당장에 메시아 왕국이 건설될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없이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근심할 때가 많습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2일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했습니다. 선진국이 되면 잘 살아야 하는데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사람들은 여전히 장래 문제로 염려하고 불안해합니다. ‘원하는 곳에 취업할 수 있을까? 이상형을 만나 결혼할 수 있을까? 집값이 폭등하는데 내 집을 언제나 장만할 수 있을까? 노후대책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그런데 근심하고 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나요? 안 되죠. 예수님은 마6:27절에서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잠언에서는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고,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잠15:13,17:22) 실제로 위장 장애의 80~90%는 신경성인데 염려로 인해 생긴다고 합니다. 염려하면 위산이 많이 나와 위궤양이 생기고, 계속 자극이 가면 암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또한 염려하면 마음도 병들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로 염려하다가 나중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어도 염려합니다. 그래서 초조함과 두려움이 지속되고, 신체에도 이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두근거림, 가슴 답답함, 호흡곤란이 찾아오고, 손발이 차고 떨리며 감각이 무뎌지기도 하고, 두통이나 불면증, 우울증도 생긴다고 합니다. 근심과 염려에 빠지면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헌신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됩니다. 이처럼 근심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고, 못쓰게 만드는 사단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가 자립적인 하나님의 종이 되어 복음 역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심과 염려에서 해방되어 마음에 평안함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1b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근심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개인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믿었지만,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물질, 세상에서 인정해주는 타이틀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전적으로 의지할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셨고, 지금도 함께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도 믿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믿으라’는 말씀은 ‘trust’로서 ‘신뢰하라’, ‘맡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나의 장래를 맡기면 하나님이 나의 보호자가 되셔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시고, 나의 인생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친히 역사하실 것입니다.(롬8:28)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음으로 근심하지 말고, 승리에 대한 확신 가운데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아마 제자들의 가장 큰 근심은 집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이 영원히 거처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처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그들을 영접하여 예수님이 계신 곳에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천국을 가리킵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자녀 된 인생들이 돌아갈 본향이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돌아올 자녀들을 위하여 거할 곳을 많이 예비해 두셨습니다. 이곳은 미세먼지나 질병이 없는 청정지역입니다. 다시는 죽음도 없고, 우는 것도, 아픔도 없습니다.(계21:4) 그곳은 생명과 평화와 자유와 기쁨과 사랑이 충만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날이 옵니다. 사람들은 한 줌의 흙으로 끝날 인생 후회 없이 살자며 인생을 즐기고자 합니다. 요즘 같은 시국에도 거리두기 규제를 피해 과감하게 지방이나 해외로 원정 유흥을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기 때문에 이 땅의 것에 집착하게 되고, 그 결과 근심과 염려에서 떠날 날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는 썩어 없어지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 품에서 안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영원히 살 수 있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처럼 죽어서 들어가게 될 천국은 신자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소망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신 것은 단순히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가상적인 희망이 아니라 살아 있는 희망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희망을 분명히 심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약속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붙들고 살 때, 이 땅의 것들에 대한 근심에서 벗어나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 영광의 길에 대해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도 도마는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이는 참된 길을 알지 못해 방황하며 답답해하는 인생들을 대변하는 고뇌에 찬 하소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어떤 분이 되시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다 함께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연어는 회귀본능이 있어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나라 양양 남대천에서 태어난 연어는 바다로 나가 자란 뒤에 3~4년간 회유하다가 다시 자신이 태어난 남대천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습니다. 행동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에게도 회귀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자기가 범한 범죄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와서 본다고 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와 같이 집을 떠나 방황하던 자녀도 인생을 깨닫게 되면 결국 부모의 집을 찾아 돌아옵니다. 노인들도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갈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회귀해야 할 본향은 어디입니까? 그곳은 하나님이 계신 천국입니다. 히브리서11장 13~16절을 말씀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사람이 죽으면 별세했다고 합니다. 세상을 떠났다는 뜻이죠. 도대체 어디로 떠난다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인생을 방황하게 됩니다. 죽을 때도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도 불안해하고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향이 하나님 나라임을 믿는 사람들은 죽을 때도 평안히 숨을 거둡니다. 며칠 전에 황아브라함 선교사님과 이재풍 목자님이 부친상을 당하여 조문을 다녀왔는데, 두 분 모두 말씀을 듣고 기도 받으며 평안히 안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 하나님 나라임을 믿는 사람들은 인생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본향으로 돌아갈 희망 가운데 살아 있는 동안 주와 복음 역사를 힘써 섬깁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여러 개가 있듯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도 여러 개가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종교를 믿든지 성실하게 믿고 착하게 살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서식하는 ‘레밍’이라는 쥐들은 수년에 한 번씩 죽음의 질주를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우두머리 쥐가 뛰면 다른 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 뛰면서 대규모 집단을 이룹니다. 섬을 휘젓고 다니다가 절벽을 만나게 되는데, 앞에 가던 쥐들은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엄청난 힘에 밀려 멈출 수도 없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어 결국 바다로 떨어져 죽게 됩니다. 뒤를 따라오던 쥐들은 앞의 쥐들을 무작정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모두 익사하게 됩니다. 이것을 ‘레밍의 딜레마’라고 합니다. 레밍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남보다 앞서기 위해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습니다. 성공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되면 돈의 길, 명예의 길, 쾌락의 길 등을 가리지 않고 맹목적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그 길의 종착점은 사망입니다. 수많은 철학자, 종교가, 사상가들이 길을 찾았지만 확실한 구원의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께 인도하는 길은 없고, 오직 한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인생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히10:19,20) 행4:12절은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님만이 길 잃은 양과 같이 각기 제 길로 가다 멸망할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므로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인 천국으로 들어가 영생의 복을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유일한 진리가 되십니다. 진리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불변한 것이어야 합니다. 어디서 이런 진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대학은 진리 추구를 근본으로 삼는 곳입니다. 그래서 대학을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합니다. 진리는 라틴어로 ‘Veritas’인데, 대학교의 교훈에 가장 많이 들어간 단어라고 합니다. 해외에서는 하버드대, 예일대 등의 교훈이 진리이고, 국내에서는 서울대(Veritas lux mea. 진리는 나의 빛), 연세대(VERITAS VOS LIBERABIT.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고려대, 가톨릭대, 외대 등에서 ‘진리’를 교훈으로 삼고 있습니다. 대학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 편에 서고, 진리를 추구하며 진지한 마음으로 공부하는 곳입니다. 과거에는 대학생들이 민주화가 진리라고 생각하고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진리를 찾는 청년들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학도 진리의 상아탑이 아니라 취업의 상아탑으로 전락했습니다.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곳이 없습니다. 이단, 사이비 종교 등 거짓 진리가 난무합니다. 결국 인생의 근본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해 죄의 종된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을 향해 내가 바로 진리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분이시오,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이 되는 분으로서 진리 그 자체가 되십니다. (히3:8,계22:13) 이 예수님을 알 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을 알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17:3)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죄로부터 구원받아 진정으로 자유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8:31,32)
셋째, 예수님은 참 생명이 되십니다. 여기서, ‘생명’은 죄와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이 생명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1:4)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셨을 뿐 아니라 생명의 창조자로서 자신이 원하는 자에게 언제든지 그 생명을 줄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병자를 치료하셨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10:10) 누구든지 이 예수님은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 됩니다.(1:12,3:16,5:24)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은 내면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참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이 주신 생명을 소유한 사람은 생명력이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7~1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이 지난 3년여 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며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배웠으므로 하나님도 알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2:45절에서 나를 보는 자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도마에 이어 빌립도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은 질문을 하자 예수님은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신 것을 믿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스스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분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38년 동안 누워있던 병자를 일어나 걷게 하셨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으며, 죽은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계시고,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계신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께로 가면 제자들이 큰일도 할 것이라며 희망을 심어주셨습니다.(12) 예수님보다 큰일이란 질적인 면보다는 양이나 범위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다 함께 13,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기도를 하셨지만, 이제부터는 제자들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친히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기도에 힘썼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예수님처럼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3년간의 공생애 기간 120명의 제자를 세우셨지만, 사도들은 단기간에 3천 명과 5천 명을 회개시키는 역사를 이뤘습니다.(행2:41,4:4) 예수님은 주로 유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셨지만, 제자들은 유대와 사마리마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기도함으로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큰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능력 있는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기도하는 일에 헌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특권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해도 자기 뜻과 정욕을 이루고자 하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자 즉 예수님의 뜻대로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능력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므로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큰일을 친히 이뤄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Ⅱ. 보혜사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예수님(15~31)
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서로 사랑하는 계명을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제자들이 계명에 순종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때 어떤 약속을 하십니까? 16,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보혜사란 ‘진리의 영’으로 ‘곁에서 돕기 위해 부름을 받은 자’, ‘상담자’, ‘위로자’, ‘대변자’ 등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신 것은 자신이 이 땅에 계실 때도 ‘보혜사’로서 제자들을 돕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을 입고 있으시므로 제자들을 돕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승천하신 후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26a) 이 보혜사 성령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동시다발적으로 도우실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제자들 속에 계셔서 그들의 인도자가 되어주십니다. 그러면 보혜사 성령님은 제자들을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서는 16장에서 자세하게 배울 것이므로 여기서는 두 가지를 통해 은혜받고자 합니다. 첫째,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께서는 우리 곁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사 우리의 말할 바와 행할 바를 지도하시고, 가르치시며 돕고 권면하십니다. 또한 진리의 영으로서 하나님의 말씀 뜻을 깊이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고전2:10)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어도 잘 깨닫지 못했지만,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 학문은 노력한 만큼 자신의 지식으로 터득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덧입지 않으면 밤새워 성경을 읽어도 한 마디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공부해도 깨달음이 없어 소감을 써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참 평안을 주십니다. 다 함께 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평안은 히브리어로 ‘샬롬’인데, 하나님이 임재하신 결과로 나타난 충만한 평안의 상태를 묘사합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릅니다. 세상의 평안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합니다. 순간적이며 일시적인 것으로서 진정한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현대인들이 겪는 심리적 특징 중 하나는 마음에 ‘평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평안’이 없기 때문에 세상의 온갖 고민과 괴로움을 겪으면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한 선물로서 영원히 지속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므로 하나님과 불화 관계에 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므로 평안을 주셨습니다. 마치 바다의 표면은 풍랑이 조금만 일어나도 물결이 굼실거리지만, 심해의 저류는 태풍이 불어도 고요한 것과 같은 평안입니다. 이 평안을 소유한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어떤 가운데서도 요동하지 않고, 단잠을 잘 수 있니다.(막4:35~39) 우리가 비록 고난을 만나더라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소유할 때,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날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니다. 무엇을 하든지 먼저 기도로 성령님께 상담하고,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행합니다. 이때 보혜사 성령께서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주시고, 죄로 인해 병약한 자를 치유하사 생명력이 넘치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 가치관, 사고방식을 변화시키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하십니다.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성령이 함께하시지 않는 공동체는 동력이 끊어진 방앗간과도 같다. 철저하게 정통적이며, 또 성경에서 말하는 표준을 따르고 있는 교회라 할지라도 성령으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를 뿌리지 못하는 구름처럼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힘과 의지로 하고자 하는 자아를 내려놓고, 성령께서 나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저희가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 첫 시간에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기 위해 기도하고, 일용할 양식을 먹는 데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자립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성령의 9가지 열매(갈5:22,23)를 풍성히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유일한 진리이십니다. 무엇보다 보혜사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하사 기도에 응답하시고, 큰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을 때 근심과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참 평안과 위로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 가운데 주와 복음 역사에 헌신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죄와 사망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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