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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7-25 (일) 09:07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여름수양회_제4강-1.hwp (30KB) (Dow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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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수양회 제4강]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1년 여름수양회 제4강                                                    전영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말씀: 요한복음 20:1-31요절: 요한복음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여름 수양회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게 도우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잃은 자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어떠한 세상의 편견에도 영향받지 않으시고, 낫고자 변화하고자 하는 그 소원 한 가지를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선지자 중의 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창세기에서 약속한 말씀대로 사단의 머리를 밟아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실 메시아로 오신 분이셨습니다. 공생애 가운데 그 능력으로 베푸신 여러 사건과 이적 등을 통해 백성들이 점차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되었고, 후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모든 백성들이 나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연호하며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백성들이 바라는 것과는 달랐고 백성들의 실망은 분노로 변해갔습니다. 이런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기를 쳐서 철저히 낮아지셨고, 결국 자기가 사랑하셨던 백성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오늘 말씀은 안식일이 지난 후 첫날 아침 해가 떠오르지 않은 으슥한 미명에 시작됩니다. 사방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가운데 조심스레 주변을 두리번대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들이었습니다. 당시에 여인들끼리 어두운 길을 나서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마리아의 표정에는 자신의 안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 듯 비장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이틀 전 골고다 언덕에서 벌어졌던 예수님의 처형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이라도 더 발라드리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나왔습니다. 언덕을 오르는 중에도 비참했던 예수님의 모습이 눈 앞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긴 가시에 찔려 이마에 나 있는 구멍들, 수없이 맞은 채찍으로 마치 난도질을 당한 것처럼 찢기고 뜯겨진 살점들, 못이 박힌 뒤 십자가에 걸리며 다 찢어진 손과 발, 창에 찔려 구멍 난 옆구리와 상처에서 쏟아지는 피를 생각하면, 분노가 들끓다가 곧 극심한 슬픔에 바닥조차 없는 아래로 꺼지는 듯했습니다. 현기증을 겨우 참아내며 무덤에 다다랐는데,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무덤가를 지키는 초병도 없었고, 무덤 입구를 막았던 그 큰 돌은 옆으로 옮겨져 있었으며 주변은 몹시 적막했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이 분명했습니다. 황급히 무덤 안으로 들어가보았는데, 그 안에 있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몹시 놀란 마리아는 누군가 무덤을 지키던 로마 병사들을 매수해서 훔쳐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다급한 마음에 마리아는 당시 리더였던 베드로와 요한에게 도움을 구하려 즉시 떠났습니다.
한편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패배감과 무기력함에 시달렸고, 유대인들이 두려워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막달라 마리아가 찾아와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간 것 같다고 전한 것인데,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무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얼마나 치열하게 달렸는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마치 달리기 경주라도 하 듯 안간 힘을 다했습니다. 더 빨랐던 것은 요한이었습니다. 무덤에 먼저 도착한 요한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주변을 살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가져간 것 같다고 했으니, 현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안에 숨겨져 있을 범인의 단서를 찾아야하지 않겠습니까? 허리를 구부려 동굴 안을 살펴보는데 세마포가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잠시 후 베드로가 도착했는데, 조심스럽게 현장을 살피던 요한은 아랑곳 않고 다짜고짜 무덤 안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무덤 안의 광경은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쌌던 세마포는 별다른 손상도 없이 처음 쌌던 상태 그대로 있어, 마치 안에 있던 몸이 물처럼 증발해버린 것 같았습니다. 또 머리를 쌌던 수건도 세마포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당시 현장에 있었다면 어떤 생각이 드셨겠습니까? 베드로의 눈에는 결코 누군가 무덤 안에 침입해 시신을 훔쳐간 것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장례를 치를 때에는 시신을 깨끗이 씻은 후에 세마포로 감싼 뒤 향품을 그 위에 발라 시체가 썩을 때 나는 악취를 제거했습니다. 향품은 고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것과 동시에, 장례를 치르는 동안 악취가 많이 풍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니고데모가 장례를 치르고자 향품으로 가져온 침향과 몰약이 기억나시나요? 그 양이 100리트라, 약 33Kg이나 되었습니다. 1리트라가 노동자 1년의 품삯이니, 이건 노동자 100년의 품삯인데 지금으로 따지면 몇 십억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예수님을 진정한 메시아로 영접한 니고데모가 아낌없이 드린 것이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무덤에 침입한 것이라면 시신이 아닌 이 비싼 향품에 잔뜩 절여진 세마포가 더욱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시신을 훔치고자 들어왔다 하더라도 시신을 세마포에 싼 채로 들고 가지, 굳이 세마포를 풀고 훔쳐갈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세마포를 푸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몸을 쌌던 세마포가 마치 누에가 빠져나간 누에 고치와 같이 처음 상태 그대로 있었으니, 베드로와 요한은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장에 대한 베드로와 요한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다같이 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 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막연하기는 해도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안 부활의 현장을 목격한 적이 여러 번 있지 않았습니까? 나인성 과부의 독자가 죽었을 때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니 관에 누웠던 그 아들이 일어나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으며, 최근에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부패했던 나사로의 시신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 생명을 되찾고 자기 손발을 베로 동인 채로 얼굴은 수건에 싸인 채로 다시 일어났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1: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과정을 지켜본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하며 신앙고백을 통해 부활에 대한 믿음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빈 무덤을 보고 온 이후 베드로와 요한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마르다와 같이 부활신앙을 덧입게 되었을까요? 10절을 보면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암시하는 현장의 증거를 마주하고서도 허무하게 그냥 집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말입니다. 이를 볼 때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은 부활을 겨우 인지하는 정도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비록 막연하게나마 부활하셨음을 알게 되었으나, 예수님이 그동안 하셨던 말씀과 연결짓지는 못했으므로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의 그 현격한 차이가 여기서 잘 나타납니다. 만일 이들에게 완전한 부활신앙이 있었다면 이토록 무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온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며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을 쫓아 다시 무덤으로 돌아온 마리아에게 부활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을 돌보기도 버거워 남을 신경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실 것을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습니까? 무려 네 차례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시니 점차 받아들이나 했지만 결국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마주했을 때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무력함이 가지는 의미가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이런 큰 허물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부활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여름수양회에 와서 말씀공부를 하며 처음으로 부활에 대해 알게 되신분도 계시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양회를 참석하며 부활신앙을 다지신 목자님들도 계십니다. 우리 모두 부활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지만, 만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에 기초해 믿는 믿음이 없다면 이들과 같이 삶에 어떤 변화도 맞지 못할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여전히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무기력함과 염려가 많을 것이고,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 절망하고 낙담하기 쉽습니다. 이런 현상을 겪고 계시다면 부활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나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각자의 내면을 점검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말씀대로 부활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편 베드로와 요한이 떠난 후,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가에 남아서 처연히 울고 있었습니다. 과거 입곱 귀신 들려 고통받으며 울부짖을 때, 구원하여 주시고, 새 삶을 살게 해 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울면서 무덤 안을 다시 들여다보는데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신이 놓여있던 곳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천사를 보고 놀랄만도 했지만 사람이 감정에 휩쓸리게 되면 이성적인 판단이나 사리분별이 어려워집니다. 그녀는 지금 누가 옆에 서있는다 하여도 크게 개의치 않았을 것입니다. 천사가 물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사람들이 내 주님을 어디 두었는지 알지 못해 그렇습니다.” 대답을 마치고 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누군가가 뒤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도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물었습니다. 동산지기인가 싶어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 있느냐며 울며 찾아 달라 사정했습니다. 그 뒤에 서 계셨던 분은 예수님이었지만, 마리아는 죽은 예수님을 찾느라 곁에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익숙한 음성으로 “마리아야-” 하시며 부르실 때까지 말입니다. 천사와 예수님은 다 아시면서 마리아에게 왜 우느냐고 물으셨을까요? 마리아는 아직 부활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불쌍한 예수님을 찾지 말고, 영광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으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었습니다.
이제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예전과 같이 함께 계시길 바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마리아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여기서 마리아에게 자기를 붙들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늘로 반드시 올라 가셔야만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어 드린 제사가 하나님께 바쳐지고 비로소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번째 증인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당시 여인의 지위는 매우 낮아서 재판에서 증인으로 인정받지를 못했으므로, 그녀에게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내 말을 사람들이 과연 믿어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말씀에 즉각 순종하여 제자들에게 찾아가 증거했습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 여기서 놀라운 비밀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마리아가 명령에 순종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가운데 완전한 부활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서 우리 안에 부활신앙이 있는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했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그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제시되었습니다. 바로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전하는 가운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도 장차 부활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망 권세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를 통해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들은 제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 말을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는 이전에 일곱 귀신들린 전력도 있지 않습니까? 그녀가 너무 예수님을 사랑한 나머지 헛것을 보았다 여긴 것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도 제자들의 삶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모여 있었는데, 유대인들이 무서워 문들을 걸어 잠그고 숨죽이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의지할 유일한 대상이었던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 돌아가시고 나니, 지금 당장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먹고 살 일도 걱정되었고, 유대인들이 얼굴이라도 알아보는 날에는 잡혀가 예수님처럼 비참한 죽음을 당할까 두려웠습니다. 죽음 권세에 심령이 완전히 짓눌려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긴 문은 제자들의 이런 심리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현장을 보고 왔던, 베드로와 요한은 공동체에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모습에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신령한 몸이 되어 방문들이 잠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 갑자기 나타나셨습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마음은 기쁨과 죄책감이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모를 겪으시는 동안 누가 끝까지 예수님의 곁을 지켰습니까? 3년을 동고동락하며 말씀을 가르치고, 사랑으로 섬겨 주셨지만 이들은 모두 십자가 앞에서 고통에 떨며 절규하는 스승을 두고 도망쳤습니다. 다들 제 목숨 부지하기에 바빴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찢어진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며 지금 보이는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음을 믿도록 도우셨습니다. 이런 사랑의 수고 가운데 제자들의 마음을 지배했던 두려움과 슬픔이 서서히 걷히고 평강과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제자들이 부활을 믿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주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21절 상반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첫째로 평강을 주셨습니다. 평강은 지금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나가신 후에 그 사명을 이어받아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는데, 지금처럼 생활의 염려와 불안함으로 위축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평강이 있으라 명령하심으로써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자리했던 염려와 두려움을 파하셨습니다. 21절 하반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두번째로 예수님께서 주신 것은 “사명” 입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을 복음을 전파할 사도로 위임하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하신 일들이 무엇입니까? 먼저, 어딜 가시든 복음을 전파하기에 힘쓰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기 위해 애쓰셨고, 그 다음, 우리의 죄짐을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누구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 의롭다하시며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쁜 사실을 전하라는 중대한 사명을 맡기신 것이나, 제자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여, 예수님이 세번째로 주신 것은 “성령” 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셨고, 이 성령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렇다면 부활의 증인으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장차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죄사함의 권세는 예수님께만 있지만, 이제 예수님이 공생애를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 구원역사를 완성하신 뒤에는 부활의 증인들, 사도들에게 그 역할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예전에 그러했듯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죄인됨도 모르고, 죄가 죄인줄 모르고 범하며, 심판이라는 그 죄의 결말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죽고 사는 것이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권한을 위임받은 대사로서 맡기신 그 복음을 캠퍼스를 넘어 우리의 발길이 닿는 곳곳에 전하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해도 자기가 경험한 일이 아니라며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습니다. 당시에 도마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제자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는 장소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손가락을 주님 손의 못자국과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합리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그는 믿음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히11:1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했습니다. 봐야, 만져야 믿을 수 있겠다는 것은 확인과 경험의 영역이지 믿음의 영역은 아닙니다. 확실히 해 두어야 할 점은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자리에 어떤 이유로 없었던 것이고, 후에 죽었다 다시 살아날 것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제자들의 증언을 믿지 못했음으로 지탄받을 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도마조차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8 일만에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27절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제서야 도마는 부활을 믿게 되었고 예수님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신앙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예수님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셨으나, 그의 믿음없음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망하셨습니다.
이처럼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봐야만 믿는다는 태도는 믿음에 걸림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승천하셨으므로, 안타깝게도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님께서 남기신 말씀은 지금 이 시간에도 살아 역사하고 계십니다. 부활을 믿느냐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 어떠해야 할지는 명확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한 마리의 어린양조차 잃지 않으려 애쓰시는 상한 목자의 심정과 같습니다. 우리 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하시고, 신앙고백을 통해 부활의 증인으로 서길 바라십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증거하며 더 깊은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맡아 준비하면서 두려워 떨며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서 저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스승을 잃고 당장 미래의 방향이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으나, 오랜 시간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제 소감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현실에 대한 염려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올해로 저도 마흔에 접어들게 되다보니, 이 치열한 사회에서 언제까지 경제활동을 하며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갑작스레 사직을 하게 되는 상황들을 볼 때마다 그것이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자 있는 힘을 다해 버티려는, 애잔한 저의 모습을 자각하며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다 제가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학창시절 시험에 실패하고 장래문제로 두려워 좌절하던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중요한 고비마다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고자 했을 때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도, 풍하목자와 아들 준수도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찾아오신 주님께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주님은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며 그때와도 같이 죄인의 마음 속에 찾아오셨습니다. 죄인이 잠가두었던 마음 문을 열고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고 제자를 세우는 캠퍼스 미션을 감당하는 삶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슬퍼하는 마리아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은혜와 기쁨과 평강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부활을 증거하는 값진 삶, 복된 삶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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