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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7-31 (토) 17:25
분 류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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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20강]내 안에 거하라
2021년 요한복음 제20강                                                    고 영훈

                            내 안에 거하라
말씀 / 요한복음 15:1-27
요절 /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하나님께서 코로나 판데믹 가운데서도 여름수양회를 허락하시고 우리 가운데 풍성한 말씀의 은혜를 부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죄로 병든 우리 영혼을 치유해 주고 우리의 심령에 위로와 참 생명과 기쁨을 부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잘 깨닫고 여름 수양회 이후에도 계속하여 말씀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포도나무 비유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사용할 수 없고 쓸 만한 재목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열매를 얻고자 존재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열매가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의 열매를 맺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내 안에 거하라(1-8)
1절과 5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과의 관계를 농부, 포도나무, 가지의 관계로 비유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1)”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5a)"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요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들입니다. 이 삼각관계는 뗄 레야 뗄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로서 연합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도 좋은 열매를 맺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포도나무입니다. 나무가 좋지 않으면 결코, 절대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선언하십니다. 참 포도나무는 보통 나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나무로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혀 드릴 수 있는 나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는 농부의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농부가 포도나무에 기대하는 바는 오직 좋은 열매입니다. 이사야서 5장을 보면 우리 인생들로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사5:1,2).” 이 하나님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극상품 포도 열매를 기대하시며 이 땅에 내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해 들 포도를 맺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나서 죄 가운데서 살다가 죄의 열매만 주렁주렁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좋은 열매를 맺고자 하는 소원을 변치 않으시고 마침내 약속대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 공평과 평화의 열매, 사랑과 온유와 희락의 열매, 인내와 생명의 열매들을 주렁주렁 맺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우리를 예수님의 나무에 접붙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더불어 연합하여 좋은 열매를 맺혀 드리게 되었습니다. 본질상 들 포도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예수님께 접붙인 바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특권입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첫째로, 가지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2,3). 2절을 보십시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먼저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제거해 버리십니다. 이는 병들었거나 죽은 가지로서 아예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농부는 이런 가지를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잘라 버립니다. 가지가 왜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이는 처음부터 포도나무와 관계성이 잘못 되어 포도나무로부터 영양분을 공급 받기를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몸은 예수님과 함께 다녔지만 실제로는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회개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끝까지 회개치 않고 병든 가지로 남아 있어서 제자 공동체에 해를 끼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지를 제거해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과실을 맺는 가지라 할지라도 더 좋고 풍성한 과실을 맺게 하려고 가지를 깨끗케 하십니다. 이를 ‘전정 작업’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해당 하는 가지는 ‘제거해 버리는 가지’와는 달리 포도나무와 좋은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정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잔가지들이 자라나서 영양분이 분산되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특히 포도나무는 번식력이 왕성하여 잔가지들을 많이 냅니다. 농부는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이른 봄부터 열매를 수확하는 가을까지 네 번에 걸쳐 열심히 잔가지를 쳐 줍니다. 전정을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인생의 나무도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전정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접붙인바 되었지만 본성대로 놔두면 수많은 잔가지들이 뻗어나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모임 저 모임을 다니며 정열을 분산시킵니다. 또한 교만의 잔가지, 정욕의 잔가지, 세상 욕심의 잔가지, 염려의 잔가지들이 자라나면 이일 저일 많은 일을 하고자 하다가 스피릿이 분산됩니다. 이런 사람은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 같지만 지내 놓고 보면 어느 하나도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인생말년에 가서 땅을 치며 후회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전정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 졌으니(3)”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정은 잘 숙련된 농부가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농부이신 하나님이 말씀의 가위로 우리 내면의 잔가지들을 정리해 주십니다. 우리가 왜 규칙적으로 말씀공부를 하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하고 성경 다독을 하고 소감을 쓰는 것입니까? 말씀을 꾸준히 받을 때 말씀이 내 속에서 여러 가지 잔가지들을 잘라 주기 때문입니다. 내면이 깨끗한 사람은 날 때부터 천성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수양을 많이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진실 되게 공부하고 영접하느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히4:12). 또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3:16,17).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의지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전정 작업을 능히 하여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전정은 죄인들로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의 표현입니다.

둘째로,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4-6).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케 된 다음에는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나무는 자연스럽게 붙어 있지만 사람은 인격체로서 저절로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나의 결단과 투쟁이 필요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지된 우리가 정말 힘써야 할 일은 예수님 안에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7a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곧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그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을 굳게 붙잡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명령입니다.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는 말씀은 약속입니다. 우리가 한마디라도 말씀에 순종할 때 그 말씀이 내 속에 거하게 됩니다. 말씀이 내 안에 거하게 되면 말씀이 나의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에 기초하여 생각하고 말씀에 기초하여 판단하고 말씀에 기초하여 행동합니다. 곧 말씀에 기초한 가치관, 인생관, 역사관, 세계관, 결혼관을 소유하고 말씀과 일치하는 삶을 살고자 애를 씁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예수님께 대한 개인 신앙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동역자들 끼리 함께 지내기 때문에 때로는 여러 사람에 휩쓸려 신앙생활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모임 안에는 거하지만 예수님 안에 거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센터에서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은데 집이나 군대에 가서 홀로 있게 되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개인 신앙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좋은 향기를 풍깁니다. 또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계속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1,2년 정도가 아니라 일생 동안 해야 할 일입니다. 여기에는 인내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는 사상을 골로새서 2:6,7절에서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는 말씀으로 좀 더 발전시켰습니다.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초로 흔들릴 수 없는 인생관과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는다는 것은 아무리 강한 비바람이 몰려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때를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과 같습니다. 이런 자는 내면에 늘 은혜와 감사가 넘치고 생명력이 넘칩니다. 그러나 그 안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사는 자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자를 ‘악인’이라고 했습니다(시1:4).

사람들은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박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만 진리를 위해 자신을 투자하기를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래서 말씀 공부를 하더라도 은혜만 즐기고자 할 뿐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순종하기를 싫어합니다. 이 때문에 정말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어야 할 때 부담을 느끼고 떠나는 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됩니까? 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려고 하는 것은 자기 나름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자유롭고 자기 노력으로 얼마든지 열매 맺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유를 잃어버리고 쓸모없이 되어 버립니다.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지는 어디까지나 가지일 뿐입니다. 가지의 생명은 가지에 있지 않고 나무에 있습니다. 가지는 결코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고 원나무에 붙어 있어 계속해서 영양분을 공급 받아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너무 따분하고 얽매이는 것 같아 잠시 나무에서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 얼마동안은 너무나 좋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말씀공부와 소감쓰기를 안 해도 됩니다. 또 황금 같은 여름 방학기간동안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쓸 수 있어서 살 맛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점점 말라비틀어지게 됩니다. 생명력을 상실하고 심령에 은혜와 기쁨이 없어집니다. 대신에 불평불만이 쌓이고 신경질이 늘어나게 됩니다.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리며 평안이 없습니다. 또한 원치 않게 죄의 소욕에 시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떠난 가지는 결국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 불쏘시개 감이 되어 버립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좋은 열매 맺는 비결로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을 볼 때 말씀과 기도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과 상관이 없는 기도를 하게 되면 기도가 기도답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응답 받는 기도는 말씀 안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말씀 안에서 하는 기도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소원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말씀 안에 거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를 기뻐 받으시고 친히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열매 맺는 비결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왜 반드시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사람의 존재 의미와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혀 드리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열매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인생을 되는 대로 대충 살아갑니다.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생충’이 아니라 ‘대충’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맺는 열매를 통해서 영광 받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열매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바로 내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에서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령의 열매는 바로 그리스도의 인격이요 신자의 내면에 맺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열매들이 내 속에서 풍성히 맺히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내적인 열매를 맺을 때 자연히 우리를 통하여 외적인 열매도 풍성히 맺혀질 것입니다.

II. 서로 사랑하라(9-17)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서 맺어야 할 구체적인 열매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랑으로 새 사람이 되고 영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에 거할 때 그 내면에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들의 본성으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야심 때문에 사랑해야 할 동역자들도 미워하고 시기하고 경쟁했습니다. 이런 그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 때 주님의 사랑에 힘입어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킴으로 그의 사랑 안에 거하신 것 같이 제자들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함을 보셨습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을 때 사탄이 틈타게 되고 마음에 기쁨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 사랑하게 될 때 예수님의 사랑이 그들 안에 있어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사실 사랑을 하면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기쁨이 그 사람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은 아름다운 사랑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과 비교하면 그 사랑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부족한 제자들을 친구 삼는 일도 위대한 것이지만 이런 그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은 더욱 큰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1서 3:16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말로만 친구라 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친구로 대우해 주셨습니다. 종은 주인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지만 친구는 다 압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알려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제자들이 예수님을 택하였다고 할 때 제자 생활을 하다 힘들면 스스로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 때 부르심은 상황에 따라 변하게 되어 절대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절대 주권과 섭리 가운데 부르신 것을 믿을 때 그 부르심은 변개할 수 없고 후회함이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열매를 맺는 복된 인생을 살게 하는데 있습니다.

III.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18-27)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이 세상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제자들을 떠나게 되므로 그들에게 마음 준비를 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면 자연히 많은 열매를 맺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과 같이 죄악 된 삶을 살지 않고 성별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가 무엇입니까? 1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있기 때문에 신자들이 세상과의 전투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에 의롭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반드시 박해를 받게 됩니다(딤후3:12). 그런데 박해는 우리에게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을 줍니다. 박해는 포도나무에 햇빛과 같아서(마13:6) 예수님 안에 거하는 제자들에게는 당분이 많고 큼직한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또한 박해는 강한 바람과 같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면 어린 나무는 이리 저리 흔들립니다. 그러나 나무는 바람 때문에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고 거목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를 박해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또 우리가 전하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도 있습니다(20b).
21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우리를 박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죄를 핑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입니다(23). 이는 아무 까닭 없이 괜히 미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박해를 받을 때 조금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보혜사는 진리의 성령으로 예수님을 증언합니다(26).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증언해야 합니다(27). 우리는 대적이 심한 세상에서 박해 받고 움츠러들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증거 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쓸모없는 들 포도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저를 불쌍히 여기사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시므로 극상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 집안에서 나고 자라서 예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일방적인 은혜로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여주시고 말씀을 통해 제가 열매 맺는데 방해가 되는 잔가지들을 전정하여 주셨습니다. 캠퍼스 시절 죄악 된 테니스 동아리를 제일 먼저 탈퇴하였고, 의료 봉사 동아리, 경희대 제주 향우회, 치대 향우회 등을 정리하게 되었고, 이성 친구, 술 친구, 당구 친구 등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인간관계들을 정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방학 때마다 예수님 안에 더 잘 거하도록 장막 생활을 하며 센터에 늘 거하게 하셨습니다. 본과 1학년 겨울 방학 때 창세기 특공대를 하였는데 방대한 창세기를 15일 만에 끝낸 적이 있습니다. 매일 공부하고 소감 쓰고 또 공부하고 소감 쓰고 하여 마지막 공부시간이 되었을 때 말씀이 내 속에 가득하고 소감을 통해 모든 죄를 다 회개하니 너무나 마음이 가벼워 몸이 둥 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이 평안하니 늘 방글 방글 웃고 다니게 하셨습니다. 학창시절 예수님 안에 거하고자 투쟁 했을 때 때 마다 말씀 강사로 쓰임 받았고 졸업 후에도 경희대 치대 병원에 수련의로 남게 하시므로 변함없이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불신 집안의 핍박이 거세어 불가능한 가운데 믿음의 결혼을 하게 하시므로 본격적으로 열매 맺는 가정 교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때부터 저의 가정을 통하여 많은 양떼들이 들며 날며 말씀의 꼴을 먹으며 제자들로 성장하였으며, 육신의 자녀도 4명이나 풍성히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저의 인생을 오늘 말씀에 비추어 돌아보니 제가 한 것이라고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기를 힘쓰고, 또 기도에 힘썼을 때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으로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주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열심히 드리므로 저와 저의 가정을 통하여 풍성한 성령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를 맺혀 드리는 인생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과거 하나님을 떠나 쓸모없는 들 포도를 맺고 결국에는 심판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참 포도 나무되신 예수님께 접붙인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극상품 포도 열매를 맺는 복된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힘써 해야 할 일은 가지로서 참 포도 나무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으로 잔가지들을 전정하며 예수님 안에 거하기를 힘쓰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의 열매들을 풍성히 맺혀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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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빌립보서 [2021년 빌립보서 제4강]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관리자 2021-09-25 95
721 빌립보서 [2021년 빌립보서 제3강]그리스도를 알고자 관리자 2021-09-19 105
720 빌립보서 [2021년 빌립보서 제2강]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관리자 2021-09-11 140
719 빌립보서 [2021년 빌립보서 제1강]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관리자 2021-09-05 139
718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26강]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관리자 2021-08-28 172
717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23강]진리의 왕이신 예수님 관리자 2021-08-22 192
716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22강]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관리자 2021-08-15 187
715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 21강]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관리자 2021-08-07 215
714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20강]내 안에 거하라 관리자 2021-07-31 222
713 요한복음 [2021년 여름수양회 제4강]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관리자 2021-07-25 197
712 요한복음 [2021년 여름수양회 제3강]다 이루었다 관리자 2021-07-24 140
711 창세기 [2021년 여름수양회 제2강]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관리자 2021-07-24 139
710 누가복음 [2021년 여름수양회 제1강]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관리자 2021-07-23 126
709 다니엘 [2021년 여름수양회 특강]다니엘서 특강 관리자 2021-07-22 92
708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9강]내가 곧 길이요 관리자 2021-07-18 328
707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8강]서로 사랑하라 관리자 2021-07-10 190
706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7강]한 알의 밀 관리자 2021-07-03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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