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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8-07 (토) 16:59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요한복음_제21강-1.hwp (33KB) (Dow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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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 21강]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2021년 요한복음 제 21강                                                   이 인구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말씀/요한복음16;1-33
요절/요한복음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40년을 광야생활 하였습니다. 길도 없는 황량한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백성들을 인도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신약시대에 성령을 상징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령에 대해 하신 말씀으로 오늘 말씀을 통해 광야같은 세상에서 인생들을 인도할 성령에 대해 배우고 성령을 좇는 신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하루 전 제자들에게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미리 말씀하심으로 마음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제자들을 사회에서 출교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엄포할 것입니다. 거짓된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고난 속에서 제자들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죽을 것 같은 정신적 고통에 직면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자신들과 함께 하며 보호하시고 이끌어주신 예수님마저 떠난 후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7) 보혜사는 성령으로,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끝내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면 성령을 보내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으로, 성령의 사역은 신비스럽고 은밀하므로 많은 이들이 성령의 역사에 대해 오해합니다. 성령으로 쓰인 단어(루아흐, 프뉴마)가 숨결, 바람, 능력 등을 의미하고 성경에서도 성령을 비둘기, 기름, 물과 불등으로 묘사하므로 어떤 분들은 성령을 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불, 물과 같은 움직일 수 있는 물체처럼 생각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입안의 아말감(치아충전재료)이 금으로 바뀌고, 살짝 밀었는데 장풍 맞은 것처럼 뒤로 날라간다며 그런 성령의 능력을 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인격과 신격을 같이 가지고 있는 성자 예수님, 성부 하나님과 함께 삼위일체의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지만 영원히 동등하시고 공존하시는 세 위격(특성)이 존재합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역사 속에서 서로 동역하시며 사역을 분담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구속사역을 계획하셨고(엡1;3-5, 벧전1;2)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서 실제적인 구원역사를 완성하셨으며(엡1;7)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이 완성하신 구원을 각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십니다.(엡1;8,9. 벧전1;12)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고 성령은 예수님을 드러내시며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인류역사를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후, 즉 BC와 AD로 나눕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AD기간을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와 예수님이 떠난 후 성령이 오실 때의 3부분으로 나누어 현재를 성령시대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신 후부터 본격적으로 역사를 시작하시지만 사실 그전 세상의 창조 때부터 함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b) 또 인간의 창조 때에도 함께 동역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a) 또한 성령은 창조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사역을 하십니다.(사40;7, 시104편)

예수님이 오시기전 구약시대 때 성령은 하나님께 특별히 택함 받은 사람(사사, 왕, 선지자)에게 임해 특별한 은사를 줌으로 하나님역사를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이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할 때 성령께서 임해 놀라운 능력으로 흩어진 선민 이스라엘을 통합해 첫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다윗에 대한 시기심과) 교만의 죄에 빠져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 성령은 떠나고 공허한 내면에 악령이 임해 패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울 다음으로 왕이 된 다윗은 이런 성령의 역사를 깨닫고 죄에 빠졌을 때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간구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지 않도록 간청했습니다. 그는 택함 받은 후 긴 고난 속에서도 변치 않는 믿음으로 왕으로 세움 받았지만 정욕의 죄에 빠져 성령이 떠나려고 할 때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회개하며 다시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투쟁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온전한 회개와 믿음을 받으셔서 다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하셔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요 메시아의 조상으로 쓰임 받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술한 구약과 신약의 모든 저자들도 성령의 영향과 능력으로 집필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0)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면서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은 구약시대 때와 어떻게 다릅니까? 구약시대 때 성령은 하나님역사를 위해 택함 받은 극히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에게만 임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죄에 빠졌을 때 성령은 떠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은 예수님을 영접한 모든 신자에게 임했고 또 영원히 그 속에 거하십니다. 성령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민족에 관계없이 예수님을 영접한 모든 이들에게 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해주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제 성령께서 오셔서 하실 일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세상을 책망하시고 신자들을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그럼 성령이 어떻게 세상을 책망하십니까? 여기서 사용된 책망이라는 단어는 단지 ‘꾸짖다’는 의미를 넘어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 잡아준다는 의미입니다.

첫째, 성령은 죄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9) 세상에 죄를 판결하는 법이 있고 교회에도(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이 있는데 모든 죄를 책망하기 위해 성령이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을 책망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폭력적인 부모밑에서 제대로 된 양육도 교육도 받지 못하고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하고, 무시 받고 차별받다가 분노가운데 폭력까지 저질렀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부자집에서 태어나 최고의 양육과 교육을 받았지만 교만과 이기심으로 다른 이들 위에서 군림하며(갑질하며) 무시하고 모욕했는데 누구의 죄가 더 큽니까? 세상에서는 전자의 죄만 처벌받고 후자의 죄는 죄로도 취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죄는 하나님 앞에서 판단 받아야 되고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이들이 다 죄인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후 어떤 상황과 조건에 따라 살든지 누구나 죄의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인간의 죄 사함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 받고 구원받기를 바라셨습니다. 진짜 죄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기 위해 보내신 예수님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죄입니다. 성령은 그 어떤 죄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이 가장 큰 죄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이 증명되었고 따라서 그를 거부한 세상의 죄가 선고됩니다.

둘째, 성령은 의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10) 사람들은 율법을 잘 지키고 도덕적인 삶을 살며 선행을 많이 하면 의롭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행위로써 자기를 의롭게 만들려고 할수록 교만해집니다. 자기의가 많은 사람일수록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기 의가 기준이 되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어떤 이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반대파의 불의를 적폐로 몰아 심판했지만 자기편사람들의 죄악은 다른 기준을 적용해 합리화하였습니다. 조폭집단에서 의리가 거짓인 것처럼 죄인들에게 진정한 의는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하나님의 의를 가르치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탐욕을 채우기 위해 성전을 사유화하며 백성들을 착취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시자 시기해 신성모독죄를 뒤집어 씌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진정한 ‘하나님의 의’로 받아주셨습니다. 진정한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에서 오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 죄인들은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진정한 의가 되심을 증거하십니다.

셋째, 성령은 세상임금이 심판받았음을 깨우쳐주십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11) 세상임금은 세상 죄를 지배하는 사탄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탐욕의 죄가 만들어낸 극심한 무더위와 코로나 전염병의 맹위 속에서 집에 갇혀서 뉴스를 검색하다 보면 세상은 갈수록 죄악으로 넘치는 것 같습니다. 가족 살해, 묻지마 범죄 등 매일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한 죄인들의 뉴스가 넘쳐나고 그 뉴스를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다른 이들을 불신하고 경계하며 걱정근심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2000년 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미 사탄이 패배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세상을 향해 사탄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현재 코로나 전염병이 맹렬하게 퍼지고 있지만 이 병이 인류를 멸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확신하는 것처럼 사탄은 지금 세상어둠을 지배하지만 결국 마지막 때에 심판은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사탄에 지배당하는 세상어둠만을 바라볼 때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과 함께 할 때 세상에서 사탄을 이기는 이들의 승리의 역사를 볼 수 있고 예수님처럼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성령이 제자들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증거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3) 성령이 오신 목적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입니다.(요15;26) 성령은 세상은 책망하며 증거하지만 제자들과 신자들에게는 진리로 인도하시며 증거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성령의 역사는 말씀역사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을 때나 들을 때 말씀의 뜻을 깨닫도록 우리의 마음을 밝혀주십니다.(성령의 조명) 성령의 도우심이 없을 때 아무리 똑똑하고 명석해도 성경 속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진리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주의 비밀을 연구하는 최고지성의 과학자라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때 돼지머리 놓고 신령님께 고사를 지내는 어리석은 짓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강한 폭풍같은 불같은 성령을 받아 순식간에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수시로 세상 더러운 죄에 넘어져 절망하거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신앙생활을 하며 기쁨이 없을 때 그런 감동적인 성령체험을 간구합니다. 성경에서 2부류의 성령받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울같이 강한 성령의 능력으로 순식간에 변화된 불같은 성령파가 있는 반면 디모데처럼 서서히 성령께서 임하여 변화되는 비둘기 같은 온건한 성령파가 있습니다. 바울은 불같은 열정이 있는 사람으로 예수님을 핍박하며 제자들을 소탕하려 가는 중 강한 빛으로 오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진리되신 예수님을 깨닫고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인생을 바쳤습니다. 반면 디모데는 어릴 때 외할머니(로이스)와 어머니(유니게)를 통해 성경을 배웠고 바울을 만나 거듭난 후 하나님역사에 동역하였습니다. 그는 허약하고 소심한 성격에 바울같은 극적인 성령체험은 없었지만 마치 씨앗이 마음밭에 떨어져 서서히 자라 놀라운 생명력으로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것처럼 성령의 꾸준한 말씀역사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방법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말씀을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이 과거 잘못 깨달았던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올바로 깨닫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은 자신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십니다. 때로 성령이 신자들에게 놀라운 예언의 은사를 주고 병 고치는 은사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이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그것을 통해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는 거짓 영들이 많습니다. 뱀이 하와를 미혹하는 것처럼 화려한 외모와 기교스러운 말로 사람들 마음에 불신과 회의를 심고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성령처럼 다가오는 악령이 많습니다. 신자는 영이라고 해서 다 믿어서는 안되고 영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마귀로부터 왔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한1서4;1,2)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께 듣는 것만을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는 말씀에 기초해 그 영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정확히 알고 깨달을 때 거짓 영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성령은 말씀에 기초해 장래 일을 알려줍니다. 혼란의 시대에는 항상 많은 이들이 장래 일을 예측하며 미혹합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로봇(AI)이 사람보다 정확한 예측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말씀 속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장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꿈을 발견할 수 있고 지금 길되신 예수님을 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최근 우리는 네비게이션 때문에 아무리 길눈이 어두워도 길을 헤메지 않습니다. 네비게이션은 정확한 길을 알려줄 뿐 아니라 장래 목적지에 도착하는 정확한 시간까지 알려주고 심지어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즉시 올바른 길로 돌이키도록 도와줍니다. 하지만 네비게이션이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비게이션은 하늘에서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예수님)의 말씀을 전하시며 그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는지 시험해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 또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문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아직도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조금 있으면’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넘어 성령 강림을 가리킵니다.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것이고 그 후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40일 후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3일은 제자들에게 천년만큼이나 긴 시간입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정량적으로(수치적으로) 계산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시간(카이로스)은 의미와 가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내시경검사를 받는 2부류 사람의 고통강도를 조사했습니다. A환자는 9분 동안 내시경을 했는데 고통의 강도를 점차로 높여 검사가 끝나기 전 극심한 고통(8)을 주었고 B환자는 25분 동안 했는데 처음 극심한 고통(8) 후 점차적으로 고통을 줄여(6-5-3-2) 끝날 때는 거의 고통 없이 끝났습니다. 검사가 끝난 후 검사의 고통에 대한 평가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9분 동안 검사한 A환자보다 25분 동안 검사한 B환자가 덜 아프다고 평가했습니다. B환자의 마지막 작은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큰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느낀 것입니다. 현재 신앙생활의 고통이 클지라도 장래 영광을 확신한다면 능히 현재의 고통을 인내하며 이겨낼 수 있습니다. 신자의 고난은 해산의 고통과 같습니다. 마치 여자가 죽을 것같은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다시는 임신하지 않겠다, 다시는 결혼도 하지 않겠다 맹세하지만 막상 아기를 낳으면 한 생명을 출산한 기쁨으로 과거의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많은 고난에도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면 마지막 날 큰 기쁨과 영광을 받게 되지만, 만약 그때까지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면 그 모든 고생이 무의미 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합니다. 또 어떤 분은 사도바울은 부활신앙으로 순교까지 했지만 자신은 그런 신앙수준도 아닌데 사도바울처럼 죽을 때까지 고생만 하다 죽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의 소망의 메시지에도 제자들은 그때까지 견딜 수 있을까 근심을 벗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성령이 임할 때 제자들이 받게 될 기도의 능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23,24) 그리고 자신의 일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28) 많은 이들이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살 것처럼 세상에 자신의 모든 열정과 소망과 보물을 다 쏟아 붓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것을 알 때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도록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근심 속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니이다.”(30) 하지만 제자들의 믿음은 모래위의 집처럼 견고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다 흩어져 도망가고 결국 십자가 앞에서 혼자가 되실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있게 증거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 예수님께서 어떻게 제자들의 승리를 확신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제자들이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해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부족했지만 성령께서 예수님처럼 항상 함께 하며 부모로 선생님으로 또 친구로 돕고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약속대로 다음날 모든 이들의 죄 사함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망갔던 제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부활의 몸을 보이시며 부활신앙으로 다시 일어서도록 도우셨습니다. 제자들은 죄악된 자신들과 끝까지 함께 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며 성령을 기다렸습니다.(행1;14) 마침내 오순절날 성령이 모든 제자들에게 임하였고 성령과 함께 하는 제자들은 일생동안 인간적 한계를 넘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성령은 지금도 시공간을 초월해 예수님을 믿은 모든 신자와 영원히 함께 하시며 예수님의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살전5;19)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도록(엡4;30a) 경고했습니다. 성령을 소멸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멸시하는 것이고(성령의 불을 끔)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성령을 무시하고 불신하며 반복적으로 세상 죄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은 민감하십니다. 성령이 진리를 깨우쳐주고 인도하는데도 무시하며 반복적으로 세상 죄에 ‘빠지면 성령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을 소멸하고 근심하게 한다 해도 성령이 우리를 떠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부모를 근심하게 했다고 해서 그 부모가 아이를 버리거나 아이에게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부모는 그럴 수 있지만 우리를 당신 형상대로 지으신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셨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영원히 함께 하며 하나님께로 인도하도록 하셨는데 그 구원약속을 최소하지 않으십니다. 감사하게도 성령은 근심하시면서도 우리 속에 계십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마음을 닫고 있을지라도 성령은 변함없이 항상 내 옆에서 계십니다. 사도바울이 증거했습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성령이 임한다고 죄인이 갑자기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령은 우리가 연약할 때 함께 하시고 우리가 죄로 완악할 때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때로 돌이키도록 강하게 연단하시며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도록 도우십니다.

미국에 에디슨이라는 중학생 자녀를 둔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에디슨은 어릴 때는 밝고 활달한 아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니며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 원인을 찾다 보니 자녀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심하게 왕따 당하며 무시 받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그 이유가 일 때문에 수시로 이사하면서 잦은 전학으로 친구를 사귀지 못하였기 때문임을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고민 끝에 엄마가 싸주는 아이의 도시락에 매일 짧은 한마디 메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니면 하늘의 무지개를 볼 수 없단다.” “다른 애들이 먹는 아이스크림을 부러워하기만 하면 막상 네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버린단다.” 아이는 매일 도시락 메모를 보며 항상 자신 옆에서 응원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보내는 아버지의 메모를 보면서 아이는 주변 친구들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자신감있고 긍정적인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하늘로 돌아가면서 선물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얻은 신자들을 위해 보내는 가장 좋은 선물(행2;38)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어 자신을 떠난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더럽고 연약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악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지만 자신의 피로 얻은 신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 성령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성령은 과거 우리를 지배했던 죄처럼 우리를 강압적으로 억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항상 신자들 옆에서 함께 하면서 위험한 죄에서 보호하시고, 더러운 죄와 싸우도록 힘주시고 때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주시고, 때로는 따끔하게 책망하시며 때로는 연단하시며 약속하신 천성을 향해 끝까지 가도록 도우십니다. 우리는 성령과 함께 함으로 어떤 세상 고난 속에서도 평안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나와 동행하며 나를 가장 잘 아는 성령께서 감당할만한 고난을 주실 것이고 또 한계를 넘는 고난 앞에서는 감당할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나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으로 인해 우리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세상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

하나님께서는 30년 전 하나님 없이 살던 죄인을 사도 바울같은 강한 성령체험을 통해, 죽음 앞에 서게 했던 교통사고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또 강한 자기생각을 버리지 못한 저를 디모데처럼 매주 성경공부를 통해 성령의 도움으로 조금씩 변화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최근 외적인 코로나의 환난 속에서 동생의 병이 갈수록 악화되고 자녀들의 입시 문제 앞에서 믿음이 시험받게 됐습니다. 첫째가 고2때부터 반복되는 기흉수술로 큰 고난을 받았는데 둘째도 고2때 기흉 수술을 받은 후 얼마 전 고3 마지막 기말고사를 앞두고 다시 기흉으로 입원하게 됐습니다. 시험을 못 보면 내신에 큰 감점이 되는데 절망과 불신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아들과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감당하지 못하는 시험을 주시지 않고 시험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심으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말씀(고전13;13)을 붙들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다음날 입원했지만 빠른 시술로 3일 만에 회복하고 퇴원해 바로 기말고사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어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덧입게 됐습니다. 앞으로의 코로나 상황도 동생건강과 자녀입시 그리고 섬기는 형제들의 앞날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매일 말씀과 기도가운데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 뜻을 좇음으로 결국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승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부활승천하시며 모든 믿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과 영원히 함께 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추하고 연약한 질그릇 같을지라도 우리가 담고 있는 하나님의 선물, 성령으로 인해 고귀하고 가치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광야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상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기쁨을 얻기 위해 세상즐거움을 찾기보다 나를 생명과 진리로 인도하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매일 말씀과 기도가운데 나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의 인도함 받음으로 광야같은 세상을 이기는 제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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