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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9-05 (일) 15:11
분 류 빌립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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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빌립보서 제1강]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2021년 빌립보서 제1강                                                     최동진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말씀 / 빌립보서 1:1-30
요절 / 빌립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이 A.D.62년 로마 옥중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재판을 앞두고 음습한 감옥에서 외롭게 지내고 있는 그의 형편을 생각하면 그의 서신은 슬픔과 절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서신은 기쁨과 감사와 희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란 말이 16번이나 나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었고 고난 가운데에서도 주님께 쓰임 받는 삶 자체로 감사하였습니다. 또한 빌립보서는 4장 밖에 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39번 나오고, ‘주 안에서’라는 단어가 9번 나옵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온통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과 행동과 삶의 초점이 예수님께 맞추어져 있었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인생관과 가치관과 생사관이 정립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가을학기를 시작하는 우리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 바울의 감사와 기도(1-11)
  1,2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였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영적인 눈을 뜨고 이후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유럽에서 최초로 개척한 교회로서 바울과 빌립보 교회 사이에는 각별한 애정과 신뢰의 관계가 맺어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인사말을 마치고 가장 먼저 ‘나는 감사한다’라고 말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바울의 형편은 감사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인 몸이 되어 차갑고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또한 주위에는 사도바울을 오해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통 속에서도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이 차고 넘쳤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5)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영접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처음부터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목자 바울이 필요한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섬겨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를 개척할 때에도 바울을 위하여 기도하고 여러 번 물질 지원을 하였습니다.(빌4:16) 그들이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극심한 가난과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에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여 목자를 섬겼습니다.(고후8:2) 바울은 이러한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하였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빌립보 교회 사역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개척된 교회입니다. 바울은 본래 아시아 북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성령께서는 그를 마게도냐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다가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가 복음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자신의 집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루디아의 집은 유럽 최초의 가정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가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며 소리치면서 귀찮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 여종을 사로잡고 있던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가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어 바울 일행을 고발함으로 바울은 심하게 매를 맞은 후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찬미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벗겨졌습니다. 간수는 이를 보고 바울 일행이 탈출한 줄로 알고 자결하려 하였습니다. 이때 바울이 소리 질러 멈추게 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그러자 간수와 그의 온 집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빌립보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착한 일, 즉 죄로부터 구원 받고 거듭난 새 인생을 살도록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인도하시고 구원의 완성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실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경성 UBF 역사도 1982년 경희의대 교수로 부임하신 서제임스 목자님과 실습학생이었던 한아브라함 목자님과의 만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서제임스 목자님은 양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계셨고 첫 양이셨던 한아브라함 목자님은 성경선생을 찾고 있었습니다. 두 분의 기도와 소원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역사적인 만남을 이루어주심으로 본격적인 개척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구원 역사는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주권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습니까?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생각이 바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을 정도로 그들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목자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 성도들은 이를 부끄러워하기 쉬웠습니다. 또한 바울이 전한 복음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복음 자체를 의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이 잘못을 저질러서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니라 로마에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스스로 죄수의 몸이 된 것임을 알고 있었고 바울의 복음신앙을 적극적으로 변명하였습니다. 자신들도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음을 간증하였습니다. 바울의 사명이 복음의 절대성과 우월성을 변명하고 확정함으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바울과 함께 이 은혜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옥중에 있는 사도 바울에게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섬기도록 했고 물질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바울의 고난에 동참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성숙한 동역을 생각할 때 큰 위로가 되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증인이 될 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들을 사모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속에는 예수님으로 가득차 있었고 예수님이 그의 심장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바울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때문에 살고 예수님 때문에 죽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늘 사모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빌립보 교회를 사모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사랑과 섬김에 감사할 뿐 아니라 빌립보 교회가 더욱 온전한 교회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바울의 간절한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9-11절을 보십시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첫째로, 그들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현재 빌립보 성도들에게는 사랑이 있었지만 바울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그들 가운데에는 다툼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더욱 발전되고 풍성해지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풍성해질 수 있습니까? 참된 사랑에는 지식과 총명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영적 지식을 말하고, 총명이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성경 공부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죄로 죽을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낮아져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이 비밀을 깨달을 때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게 됩니다.
둘째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복음 신앙 위에 굳게 서기 위해서는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비록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세속적인 요소를 물리치고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의의 열매가 가득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의의 열매란 갈라디아서 5:22,23절에 나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의의 열매는 죄악된 인간의 본성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거룩한 형상을 닮아감으로써 맺어지는 내적인 열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II.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12-30)
  신앙 연륜이 짧은 빌립보 성도들은 목자 바울이 옥에 갇힘으로 복음역사는 퇴보하고 망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당한 일로 인해 도리어 복음전파에 진전이 된 것을 빌립보 성도들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진전이란 군사용어로서 장애물 앞에서 뒤로 물러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장애물로 인해 오히려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적극적인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한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동족들의 고소를 받아 억울하게 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목자가 갇히게 되었으니 복음사역도 같이 갇힌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갇혀 있었지만 복음은 갇히지 않고 계속해서 퍼져나갔습니다. 바울의 매임이 어떻게 복음의 진전을 가져왔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첫째로, 모든 시위대 안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시위대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에 갇혀 시위대의 감시를 받음으로 시위대와 접촉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군인들이 죄수를 지킬 때 군인의 왼 팔과 죄수의 오른 팔을 묶어 약 4시간 동안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구원역사 편에서 보면 이들은 로마 정부가 바울에게 붙여준 고정 양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도망 갈 수도 없는 양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시간 맞추어 규칙적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1대1 양으로 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에게 감옥은 1대1 말씀공부 하기 가장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말씀에 무관심하거나 때로는 반발하는 양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겸손과 눈물로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자 그들은 점점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마침내 마음 문을 열고 자신들의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시위대 안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로써 가장 절망적인 때에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결국 이 역사가 A.D. 313년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복음전파에 소극적이던 사람들이 담대한 복음전파자로 변화되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바울이 갇히기 전에는 내면의 두려움과 자의식 때문에 복음 전파에 소극적이었던 자들이 바울이 감옥에서라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 복음에 대한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사랑하여 착한 뜻으로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반면에 또 다른 종류의 전파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없어도 복음이 더 잘 전파된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바울에게 심리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음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은 자신이야 어찌되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전파되기만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어떤 동기와 목적으로 했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온전히 그리스도만을 중심으로 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진실로 그리스도의 사람 곧 참된 christian 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처음 코로나가 발생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지침에 따라 캠퍼스의 문이 닫히면서 가장 먼저 복음 역사가 타격을 받지 않을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복음 전파에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시간과 장소의 한계가 없어졌습니다. 말씀공부를 비롯해서 각종 모임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조용히 말씀을 깊이 받고 은혜 받은 분들이 더 적극적으로 온라인으로 말씀을 전파하자 복음이 더 활발하게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 역사를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사람을 쓰셔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게 하심을 믿습니다.

  18b,19절 말씀을 보십시오. ‘표준 새 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도와주셔서, 내가 풀려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무죄석방 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성령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당시 바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만큼 중요한 것이 성도의 영적 교제입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를 위한 성도들의 기도는 믿음을 강하게 하고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강력한 원군이 됩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무엇입니까?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감옥에서 세례요한과 같이 순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무엇입니까? 2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 자신을 통해 예수님이 존귀하게 되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줄기차게 달려왔습니다. 바울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그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존귀히 된다면 바울 자신은 죽든지 살든지 연연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에게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도 영광스러운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도 영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찌하든지 죽음을 피하고 조금이라도 삶을 연장해보려고 애를 씁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손에 쥐지 못하면 실망하고 좌절에 빠져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신앙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된다면 자기는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는 분명한 생사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14:8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그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고자 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삶의 의미요 목적이요 원동력이요 전부였습니다. 성숙한 신자가 가져야 할 참된 소망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삶의 의미와 목적과 희망이 그리스도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순수하게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나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높이고자 하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가질 때 우리의 삶은 주님께서 주시는 하늘나라의 기쁨과 환희로 충만하게 되고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도 한 가지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사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죽어서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더 원했습니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수고를 마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가 받은 사명 즉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의 또 다른 희망은 세상에 좀 더 머물면서 복음을 선포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고 교회가 견고한 믿음 위에 세워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아직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할 일이 남아있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 살아서 육신에 거하며 육신의 열매를 맺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은 결국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양들에게 유익한 길을 택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27, 28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로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따라 살았습니다. 동시에 빌립보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첫째로, 한 마음 한뜻이 되어 복음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것입니다. ‘협력하다’라는 말은 ‘함께 경기하다’, ‘함께 싸우다’, ‘함께 다투다’란 뜻이 있습니다. 경기로 설명하자면 2인 3각 달리기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혼자서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동역의 역사입니다. 축구경기를 할 때 동료가 맘에 안 든다고 자기편끼리 싸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울은 빌립보 교회 내에 일부 성도들 간에 다툼과 갈등으로 인한 분열이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성도들 각 사람은 한 몸을 이루는 지체에 해당합니다. 몸이 머리의 생각과 뜻을 따라 움직이듯이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이는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각자 악기의 소리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악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연주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악기는 가만히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확실한 존재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교회도 주 안에서 지휘자 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서로 사랑하고 동역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복음의 원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멸망하게 되고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주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서 큰 은혜요 특권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마음에 조각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난을 통해서 부활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무엇인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많은 자유를 잃어버리고 감옥에 갇힌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생활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몸과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백신 접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환자는 오히려 늘어나면서 언제 일상을 회복할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저의 기대와 소망은 새롭게 개업한 병원이 하루 속히 자리잡아 안정적으로 경영이 이루어지고 독일에 있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안전하게 학과공부를 감당하고 그곳에서 선교사로 쓰임 받는 것이 중요한 기도제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건이나 상황에 상관 없이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우리 가운데 복음의 진전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온라인으로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말씀 공부를 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매임이 없이 더욱 활발하게 퍼져나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연로하셔서 교회에 나가는 데에 어려움이 많아 예배를 드리지 못하시던 부모님이 온라인으로 매주 신실하게 예배를 드리도록 도와주시고 마침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심으로 나의 일생의 간절한 기도제목을 이뤄주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친히 선한 일을 이루어나가시는 분이심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단순히 상황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회개하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무엇을 하든지 나를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기도합니다. 다만 제게 맡겨주신 복음 전파 사명에 충성함으로 하나님이 친히 이루시는 구원 역사에 쓰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모두가 사도 바울을 본받아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믿음의 종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양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함으로 코로나의 한계상황에서도 복음의 진전을 이루는 기도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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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22강]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관리자 2021-08-15 162
715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 21강]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관리자 2021-08-07 196
714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20강]내 안에 거하라 관리자 2021-07-31 209
713 요한복음 [2021년 여름수양회 제4강]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관리자 2021-07-25 170
712 요한복음 [2021년 여름수양회 제3강]다 이루었다 관리자 2021-07-24 127
711 창세기 [2021년 여름수양회 제2강]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관리자 2021-07-24 121
710 누가복음 [2021년 여름수양회 제1강]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관리자 2021-07-23 109
709 다니엘 [2021년 여름수양회 특강]다니엘서 특강 관리자 2021-07-22 79
708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9강]내가 곧 길이요 관리자 2021-07-18 270
707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8강]서로 사랑하라 관리자 2021-07-10 177
706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7강]한 알의 밀 관리자 2021-07-03 211
705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6강]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1-06-27 208
704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4강]나는 선한 목자라 휴화산 2021-06-19 226
703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3강]세상의 빛 예수님 관리자 2021-06-13 204
702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2강]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관리자 2021-06-05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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