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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9-11 (토) 19:34
분 류 빌립보서
첨부#1 2021년_빌립보서_제2강-1.hwp (30KB) (Dow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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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빌립보서 제2강]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2021년 빌립보서 제2강                                                          오정훈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말씀/빌립보서 2:1-30
요절/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기쁨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하나가 되지 못하여 기쁨이 부족하였습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있었고 무엇보다 교회에 영향력 있는 두 자매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하면 기쁨이 사라집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서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고 그 마음을 품음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되므로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이 마음을 품으라(1-11)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빌립보 교회에는 성도 간의 권면과 위로, 성령의 교제와 긍휼과 자비가 있었습니다. 권면이란 격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 번 실패하여 절망과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는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슬픔과 고난에 빠진 사람을 보면 내 일처럼 여기고 위로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나의 어려움을 알고 작은 위로를 건네는 것만으로 큰 위안과 힘을 덧입게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은혜가 있으면 서로 은혜를 나누며 성령의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또 형제가 먹지 못하거나 헐벗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에게는 이런 아름다운 신앙의 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는 개인적으로 훌륭하였지만 하나 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2) 이 말씀은 한마디로 마음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 대단한 열심으로 복음역사를 섬기다보니 다 자기 나름의 스타일이 있어 하나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합치지 못할 때 성도 상호 간에 오해와 불신이 생기고, 공동체 안에 판단과 분열하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무엇보다도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헤어스타일하고 같은 동네에 모여서 산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서로 다 개성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자 하는 같은 마음,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한 영(one in spirit)이 될 때 가능합니다. 이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악기가 다르고, 또 연주자도 다르지만 한 지휘자를 중심으로 같은 곡을 같은 마음으로 연주할 때 아름답고 감동적인 하나의 곡이 연주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되기 위하여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3a절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다툼은 이기적인 야심(selfish ambition)을, 허영(vain conceit)은 자기영광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한마디로 상대방을 누르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헛된 야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기 유튜브 조회 수가 얼마인지, SNS 팔로워 수가 얼마인지 그것으로 자랑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목숨을 걸면 사무엘서에 나오는 사울 왕처럼 되고 맙니다. 사울왕은 자기보다 더 많이 자매들의 인정을 받은 다윗을 시기하여 평생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 자기도 망하고 이스라엘 전체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 다툼과 허영심을 부리면 파벌이 형성되게 됩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에도 유부초밥을 좋아하는 유오디아와 순두부를 좋아하는 순두게 두 파로 나뉘어져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유부초밥이 서빙으로 나오는 날이면 자신들이 이겼다고 좋아하였으나 순두부가 나오는 날에는 절망하고 낙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꽃이 떨어지면 그 아름다움이 없어지듯이 사람의 인정이 사라지면 인생이 허무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헛된 다툼과 욕심을 부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 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3b절을 보십시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이는 자기비하나 비굴하게 굴라는 것이 아니고 남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겸손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거꾸로 합니다. 남을 자기보다 낮게 여기고 자기를 남보다 낫게 여깁니다. 겉으로는 ‘참 잘하셨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칭찬하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내가 당신보다는 더 낫지’ 생각합니다. ‘내가 저 찬스에서 공을 찼으면 골을 넣었을텐데’, ‘내가 저 콩나물밥을 했으면 양념장을 좀 더 맛있게 했을텐테’ 은근히 자신을 더 낫게 여깁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자기를 남보다 낫게 여기면 결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공을 좀 못 차도 말씀을 조근조근 잘 가르치는 사람이 있고, 양념장을 잘 못해도 사람들을 따뜻하게 잘 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훌륭한 점이 있고 또 자기 스스로도 부족한 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겸손은 이처럼 남의 장점과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이를 인정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미덕도 겸손이요 두 번째도 겸손이며 세 번째도 겸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의 그릇을 이루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견고한 공동체로 쓰임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 하나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성도는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돌아본다는 것은 자기가 맡은 일을 자기가 잘 알아서 잘 해야된다는 말씀입니다. 학생들은 학과공부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말세가 가까웠으니 곧 예수님이 오실 텐데 공부는 해서 뭐하나 하면 안됩니다. 또 장막에서 공동생활하는 형제들은 자기 빨래는 자기가 해야 합니다. 자기 일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고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해서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일을 돌아보고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봐야 합니다. 다른 동역자에게 무슨 어려움은 없는지 괴로운 일은 없는지 살피고 기도해주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 살기 바쁘다고 알아서 잘 살겠지 무관심하면 안됩니다. 자주 안부도 묻고 커피선물도 보내고 해서 교제하고 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돌볼 뿐 아니라 남을 돌 볼 때 교회에 사랑이 넘치고 온전히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 빌립보 성도들에게 겸손의 대가, 겸손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롤 모델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말씀합니다. 품으라는 것은 마음에 두고두고 새겨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려 깊게 생각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마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첫째, 내 권리를 내려놓는 마음입니다. 6-8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시오,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가 되십니다. 골로새서 1:15절에서는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창조주로서의 권세와 영광을 누리시고,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이 대우받기를 원치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비우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비우기보다 무엇으로라도 자신을 채워서 높이려고 합니다. 10여년 전 서울시장 선거에 나온 어떤 후보 경력에 이렇게 쓰여진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경희대 총학생회장 후보 2회 출마’ 그니까 경희대 총학생회장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후보로 두 번 출마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별것 아닌 것으로라도 자신을 채우고 포장하여 높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영광과 권세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얼마든지 힘이 있으셔서 인생들을 심판하실 수 있으셨지만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이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둘째로, 그 사람과 같아지는 마음입니다. 사람과 같이 되었다는 것은 사람들과 같은 배고픔 고통과 슬픔 한계를 똑같이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생노병사 희로애락의 한계 속에 거하셨습니다. 이렇게 연약하고 한계적인 비천한 사람과 같은 모양이 되신 것은 인간을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기사 섬겨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사람과 같은 모양, 같은 처지에 있을 때 그 사람을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습니다. 다미안 신부는 몰로카이 문둥이 섬을 지나다가 복음을 전했는데 문둥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문둥병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미안 신부는 문둥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문둥이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건강한 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문둥이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문둥이들이 감동하여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처럼 그 사람과 같아지는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셋째로,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같이 되실 뿐 아니라 종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복종하셨습니다. 일생 섬기는 종으로 사셨을 뿐 아니라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로서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시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구원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을 때 결국 어떻게 되셨습니까? 9-11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능력으로 살리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며, 예수님을 찬양과 경배받으실 하나님으로 고백케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자기를 낮춘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낮아지기를 싫어하는 것은 자기만 무시 받고 손해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낮아진다고 자신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또 스스로 높아지고자 한다고 높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높이셔야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높이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고 낮추시지만,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낮추는 자를 높이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높아지길 원한다면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때가 되면 높여주실 것입니다.(벧전5:6)
둘째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낮아지심으로 우리가 높아지게 되고 예수님께서 가난해지심으로 우리가 부요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이 되심으로 우리는 의인이 되고 예수님이 자기를 버리심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복종은 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남을 낮게 여기고, 할 수만 있으면 높아지고자 발버둥치는 저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과 겸손의 본을 보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이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 낮아지고 죽기까지 복종하므로 서로 하나가 되어 영혼을 구원하는 참된 기쁨을 충만히 누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너희 구원을 이루라(12-30)
12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 성도들은 목자 바울이 있을 때 항상 복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목자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지금 육신의 소욕대로 살기 쉬웠습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랴 하고 말씀공부 소감도 다 제쳐놓고 놀러가고 싶어집니다. 또 요즘 같이 코로나가 횡행하는 시대에 비대면을 핑계로 슬그머니 예배에 빠지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가 보면 하고 보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 이것은 온전한 신앙의 자세라 할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누가 보나 보지 않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그 앞에서 말씀에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 몸의 구원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몸은 끊임없이 죄의 소욕에 시달리며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방치하고 죽기까지 싸우지 않으면 결국 죄의 탁류에 떠내려가 구원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3절입니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자신의 기쁜 뜻을 이루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환란 당한 자들의 목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사울에게 쫓기는 위태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또 시기심과 미움으로 가득 찬 형들을 섬기는 종이 되게 하기 위해 요셉을 종이요 죄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어떤 분은 쉽게 취직하는 반면 어떤 분은 7년 8년이 넘어서야 취직이 된 분도 있습니다. 신현준 목자님 자기소개서를 써서 새벽 5시도 안된 시간에 3층에서 우렁차게 발표 연습을 하고 또 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렇게 어떤 사람에게는 시련과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동일한 고난을 받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해야 합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평탄하고 내 인생은 이렇게 고난의 가시밭길인가 하며 비교하고 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각 사람에게 두신 뜻과 계획이 다르고 모든 사람에게 선한 뜻을 두고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고 최선을 다해서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렇게 성숙해질 때 흠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에 빛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최근에 머리에 피도 안마른 10대들이 할머니를 때리고 담배심부름을 시킨 것은 이 세대가 얼마나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인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세대에 신자들은 말씀대로 살아서 빛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1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신자들이 성숙해지고 성화되어 세상에 빛으로 드러나게 되면 목자는 그로 인해 자랑할 것이 생기게 됩니다. 바울의 이제까지 양들을 위한 달음질과 수고가 헛되지 않고 이런 빛의 열매로 드러나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개무량하겠습니까? 목자도 사람인데 좀 자랑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잘 키운 자식이 부모의 자랑이듯이 잘 자란 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 목자의 무한한 자랑이 될 것입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 교회만 물질로 도왔고 에바브로디도를 보내 바울을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빌립보 성도들의 헌신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그런 섬김과 헌신 위에 자기 자신을 전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구약시대 제물에 포도주를 부어드리던 것처럼 그들의 믿음의 제물과 섬김에 자신의 목숨도 기쁨으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만큼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사랑했고 바울도 목숨을 걸고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했음을 말해줍니다. 목숨을 건 진정한 사랑 안에서 서로 기뻐하고 또 기뻐할 수 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속히 보내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그곳 사정을 알므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었는데 디모데 말고는 이 일을 진실히 감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아마 목자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많은 사람이 떠나갔고 그나마 남아 있는 자들도 자기 일만 하느라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무관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는 것처럼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헌신한 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를 속히 보내고 자신도 가게 될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 개척의 동역자요 그곳을 섬기던 자로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자 바울을 섬기러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바울의 쓸 것을 돕는 자’로서 한마디로 목숨을 건 전장에서 전우와 같이 소중한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바울을 섬기러 왔다가 풍토병에 걸렸는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27). 이로 인해 바울도 걱정하고 이 소식을 빌립보 성도들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에바브로디도 자신도 심히 근심하게 되었습니다(26).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또 바울을 긍휼히 여기심으로 그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택하신 자가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반드시 그 생명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빨리 보내어 그를 보게 하고 또 이 빌립보서 편지도 그 편에 전달하게 함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29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기쁨으로 영접하고 이와 같은 사람은 존귀히 여기라 명령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라.”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주와 복음역사에 헌신하는 자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게 됩니다.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기 사업하고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느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무관심하기 쉽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자기 일만 구하지 않고 디모데와 같이 또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목숨을 드려 헌신하므로 주 앞에 존귀한 자로 쓰임받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 안에 사람들을 권면하고 사랑으로 위로하고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성령의 열매를 맺히게 하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사랑으로 교제하고 섬기므로 때를 따라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고 비워서 하나 되는 겸손과 성숙함이 부족하였습니다. 이는 항상 남을 자신보다 낮게 여기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근거 없는 교만 속에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모님은 이런 저에게 ‘그 근거 없는 교만을 회개하라’고 학생 때부터 늘 책망하셨지만 저는 ‘어찌 근거가 없으리요’ 하며 이런 생각을 결단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중보건의 기간 혹독한 체력단련을 통해 강철같은 체력을 같게 되자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 백신 1,2차 접종을 받았는데 아무런 증상이 없게 되자 역시 나는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본체도 아니고 별로 비울 것도 없는데 이렇게 자신을 비우고 낮출 줄 모를 때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성령의 역사를 우습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므로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잘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며 자기를 낮추시고 비우신 겸손의 왕 예수님께서 이런 죄인을 지난 30년간 오래 참으시고 섬겨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낮아지심과 섬김으로 교만하기 그지없는 제가 심판받지 않고 이날까지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이 크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자신을 남보다 낫게 여기는 뿌리 깊은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히 낮아져 동역하는 종이 되길 기도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남은 때를 진리에 복종하며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같이 주 예수의 일에 항상 힘쓸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다툼과 허영심을 버리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를 비워서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악된 세상 가운데 두렵고 떨림으로 남은 구원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서로 높아지고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어그러진 세상 가운데 디모데와 같이 또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낮아져 겸손히 충성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을학기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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