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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1-06 (토) 21:55
분 류 민수기
첨부#1 2021년_민수기_제6강-1.hwp (31KB) (Dow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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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민수기 제6강]탐욕스러운 백성을 벌하신 하나님
2021년 민수기 제6강                                                                                                         오정훈

탐욕스러운 백성을 벌하신 하나님

말씀/ 민수기11,12장
요절/ 민수기11: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가나안을 향한 실제적인 진군이 시작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한 그들의 발걸음은 기쁘고 감사로 가득 차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얼마 못가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쓴 뿌리를 뿜어내고 맙니다. 탐욕으로 고기에 욕심을 내다가 탐욕의 무덤에 묻히고 맙니다. 이 이스라엘의 모습은 천성을 향해 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지금 나와 함께 하시며 이 길을 걷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감사와 기쁨으로 천성을 향해 나가는 순례자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탐욕에 빠진 이스라엘(11장)
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가나안 행군을 시작한 지 3일 밖에 안 지났는데 백성이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작심 3일이라더니 3일을 넘기지 못하고 불평을 터트린 것입니다. 거칠고 황량한 광야는 길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 굉장히 불편하고 고약한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불편하니까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악한 말이란 상스럽고 해서는 안될 말로서 아마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면서 힘들 때마다 터트리던 불평불만의 말이었을 것입니다. 힘들면 이렇게 악한 말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옛날 노예백성 시절의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출애굽하고 제사장 나가 거룩한 백성으로 택함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조금 참아야 하는데 참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진노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조금만 힘들고 불편해도 습관적으로 원망하는 그들을 벌하사 진영 끝을 불로 살라버리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다베라 곧 불사름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원망할 때 불로 사르심으로 계속 원망하다가는 더 큰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옐로카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친 광야를 지나며 모세도 힘들고 아론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모든 사람이 다 불평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참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고 인내함으로 광야를 걸었습니다. 노예에서 건져주신 것만으로도 기뻐서 찬양하며 걷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사람은 사소한 것에도 짜증을 내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불평하는 사람의 문제는 마음에 감사가 없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역사적인 사건을 교훈삼아 고린도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우리는 원망하는 대신 감사하고 불평하는 대신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하는 곳에 기쁨과 찬양이 넘치게 됩니다. 원망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감사하고 찬양하면 모든 것이 감사제목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살게 하신 것에 감사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 것에 감사하므로 광야와 같은 이 인생길을 믿음으로 나아가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의 불 맛을 보았으면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다베라 사건을 겪고도 이스라엘 백성의 자세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자세가 바뀌지 않으면 계속해서 똑같은 시험에 빠지게 되고 맙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은 그래도 선민이라서 좀 힘들어도 참고 자제하고 있었는데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었습니다. 다른 인종은 영어로 보면 ‘rabble’ 곧 오합지졸, 전혀 규모 없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이 다른 음식이 먹고 싶다고 탐욕을 품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애굽에서 먹던 양념이 잘 된 양갈비 구이를 먹어보고 싶다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누룩이 순식간에 퍼져 순전한 반죽을 부풀게 하듯 이들의 탐욕, 악영향이 순식간에 번져서 지금까지 참고 있던 이스라엘을 물들여버렸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얼마나 고기가 먹고 싶었으면 울기까지 하였을까요? 사실 우리도 밥하고 김치만 먹다 보면 고기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출애굽하여 1년 넘게 만나만 먹었으니 고기 생각이 간절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울부짖기 시작한 것인데 성경은 이들이 탐욕을 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기 한번 먹고 싶다고 운 것이 그렇게 큰 탐욕인가요? 예 탐욕입니다. 그들은 현재 광야에 있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군 중에 있습니다. 광야에는 고기도 없고 신선한 야채도 없습니다. 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 고기부페를 열어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 탐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 탐욕의 문제는 단순한 고기 문제가 아니라 과거 애굽 생활에 대한 동경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5,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을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핵심 주제는 단절되어 버린 과거에 대한 미련과 집착입니다. 고기는 단지 핑계거리일 뿐 과거 애굽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줄까?" 그들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현재가 고생스럽기 때문에 과거 애굽에서 살던 시절이 더 좋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이런 과거에 대한 동경은 출애굽과 현재 광야에 이르는 동안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으로 앞으로 나올 죄악된 레퍼토리의 시작입니다. 사실 우리 마음에도 과거 내 나름대로 살던 때 먹고 마시고 즐기던 삶을 동경하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탐욕을 품을 때가 많습니다. 아파트 투자를 해서 부자가 된 사람, 사치를 부리고 여행 다니면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동경합니다. 캠퍼스에서 남녀가 팔짱을 끼고 연애하거나 다정하게 앉아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 유혹을 받습니다. 붙타는 금요일을 다시 한번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애굽에서 누리고 즐기던 것을 누리고 즐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애굽에서 나와 현재 광야교회에서 천성을 향해 거룩한 순례의 행군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 사람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특히 세상에서 잘 사는 사람일수록 더욱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이 주는 쾌락에 취해서 자신이 멸망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챨스 피니는 길거리에서 세상 잔재미에 취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부러워해서 지지 말고 불쌍히 여기므로 승리하는 삶 살길 기도합니다.

탐욕에 젖은 그들에게 이제 만나는 아주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그러나 그들이 폄하하는 만나는 그렇게 형편없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풀 한 포기도 없는 척박한 광야에서 만나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만나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생명의 양식으로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들이 광야를 지나가기까지 필요한 모든 영양분이 다 들어 있습니다. 모양은 미나리과 풀인 깟씨와 같았고 모양은 진주처럼 생겼습니다. 밤에 이슬이 내릴 때 하나님이 같이 하늘에서 내려주셨는데 이것을 어떻게든 맛있게 먹으려고 맷돌에 갈기도 하고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거나 과자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 맛은 기름 섞은 과자와 같았습니다. 이 만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40년간 만나를 먹음으로 가나안에 이를 수 있었듯이 생명의 양식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성에 이를 수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을 내려주셔서 우리로 주리지 않고 날마다 힘을 내어 천성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모든 종족들이 자기 장막 문앞에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징징거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자식 중 한 명만 징징거려도 머리가 아픈데 그 많은 사람들이 고기 달라고 징징거리고 있으니 모세는 얼마나 머리가 아프고 괴로웠을까요? 모세는 그 괴로움과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11-15절을 보십시오. 이 많은 백성을 자신이 배지도 않고 낳지도 않았는데 젖 먹는 아이를 키우는 아비처럼 다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또 이 많은 백성을 먹일 고기를 어디서 얻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모세는 완악한 이 백성들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더 이상 고난당하지 않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소연합니다.(15) 이꼴 저꼴 안보고 그냥 꽉 죽고 싶다는 것입니다. 개똥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얼마나 힘들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모세의 이런 괴로움을 아시고 도와주십니다. 16,17절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 노인 중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70명을 모아 회막에 서게 하라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모세에게 임한 영을 주사 백성의 짐을 나누어지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18-20절을 보십시오. 또 몸을 거룩히 하고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하십니다. 그들 가운데 계신 여호와를 멸시하고 애굽에 있을 때가 더 좋았다는 말이 들리므로 하나님은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되 하루나 이틀 닷새나 열흘 스무날 정도가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달 동안 고기를 먹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고기에 걸신들린 그들에게 고기를 한달 동안 먹게 하시므로 질려서 다시는 고기 소리도 나오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볼 때 아무리 하나님이라 하시지만 보행자만 60만 명인데 어디서 고기를 얻어 이들을 한 달 동안 먹게 하시겠느냐 반문합니다. 양떼와 소떼 바다의 모든 고기를 잡아도 이들을 먹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열 사람이 하루 양 한 마리 정도 먹는데 그러면 매일 20만 마리에 30일을 곱하면 600만 마리의 양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모세 말대로 그들 가운데 있는 양떼와 소떼를 잡아도 부족하고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다고 해도 턱도 없을 것 같습니다. 모세의 이 말은 해지는 빈들에서 이백 데나리온이 없어서 무리를 먹일 수 없다고 말한 빌립의 대답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의 불신을 책망하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그런 일을 못한단 말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갈라서 길을 내신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모세는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문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인간의 불신이 문제입니다.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서 먼저 모세가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믿음을 갖지 못하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불신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지도자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24,25절을 보십시오. 먼저 칠십인의 장로를 세우시고 그들에게도 모세에게 주신 영을 주시고 그들도 예언하게 하사 짐을 나눠지게 하셨습니다. 무거운 짐은 혼자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서로 나누어질 때 가벼워지고 끝까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칠십 인을 불렀을 때 엘닷과 메닷이라는 자가 모세의 권위에 반발심이 있었는지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진중에서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들은 여호수아는 예언을 하지 못하게 말려야 한다고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아마 여호수아는 모세의 주관하에 이런 역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모세를 통한 역사, 모세 중심의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히려 여호수아를 책망합니다. 29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모세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성막에 나오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여 예언하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역사에 누구라도 쓰임받길 원했습니다. 성전에 나오지 않고 집안에만 머무는 사람이라도 성령이 임하시면 유능한 성경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나를 통해서 역사가 일어나길 바라는 편협한 생각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 말고 나랑 말씀공부해서 사람들이 구원받고 변화되고 그래서 내가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모세와 같이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아서 예언하고 성경을 가르치므로 하나님 역사에 쓰임받길 소망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고기 먹는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바람이 여호와께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루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 쯤에 내리게 한지라.” 메추라기를 보거나 먹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먹어봤는데 아주 쫄깃쫄깃하고 담백한게 맛있습니다. 크기는 어른 손바닥만하고 3월에는 북쪽으로, 9월에는 남쪽으로 이동하는 철새 중 가장 작은 새라고 합니다. 단거리는 무리 없이 잘 날아가지만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바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면 메추라기는 힘을 잃고 땅에 떨어져 버린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서 바다로부터 바람을 일으키셔서 메추라기를 광야로 몰아넣어 이스라엘 백성이 잡아먹도록 하신 것입니다. 진영 사방으로 하룻길 되는 지면 위에 두 규빗 곧 1m 정도의 높이의 메추라기가 수북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고대에서 하룻길은 25-35km정도라고 하니까 서울 정도 되는 면적에 메추라기가 1m정도 수북이 쌓이게 하신 것입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울고불고 난리치던 이스라엘은 수북이 쌓인 메추라기를 보고 신이 나서 메추라기를 주워다 모았는데 적게 모은 사람도 열 호멜 곧 2200리터나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고기 걱정은 안하겠다며 메추라기를 쌓아놓고 고기 파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고기 파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33,34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고기가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란 말씀은 ‘고기 맛을 보자마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탐욕에 가득 차 오랜만에 고기 맛 좀 보려고 하는 그 순간 큰 재앙으로 그들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탐욕을 부리던 자들을 거기 장사하였으니 그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 곧 탐욕의 무덤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탐내지 말라 하는 십계명 중 마지막 계명을 어긴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십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약1:15) 그들에게는 매일 먹을 양식 만나가 있었고 그것은 전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구워 먹고 삶아 먹고 해도 될 만큼 충분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탐욕을 부려 고기를 달라고 징징대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닌 영광스러운 군대였는데 탐욕에 사로잡혀 원망과 불평이나 일삼는 보잘 것 없는 군대로 변모해 버린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사는 죄입니다. 그런데 이런 탐욕의 문제는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탐욕에 사로잡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탐욕을 부립니다. 없는 사람 생각하면 집 한 채만 있어도 감사한데 탐욕에 사로잡혀 두 채 세 채 더 가지려고 합니다. 재물욕, 명예욕, 권력욕 등에 사로잡혀서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 속에 살다가 결국에는 한 줌의 흙이 되어 사라집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은 이런 인생들에게 말씀합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시 사는 이 세상에서 탐욕을 부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에 자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필요한 것 이상으로 소유하고 있으면 이웃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 가운데 우리가 탐욕을 버리고 주신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함으로 끝까지 믿음의 순례를 감당하는 하나님 백성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12장)
기브롯 핫다아와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비극적인 장소에서 속히 벗어나길 원했습니다. 그들이 그곳을 떠나 머문 곳은 하세롯입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12장1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였습니다. 율법에는 제사장 지도자는 이스라엘 여인과 결혼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어겼다며 비방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실제적인 이유는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12장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하나님이 모세와만 말씀하지 않으시고 자기들과도 말씀하고 계시니 모세와 동등하다는 교만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친누나와 형인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하니 집안 싸움을 할 수도 없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온유함이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적하는 사람을 대적하지 않고 부드럽고 따뜻하게 받아주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는 성령의 열매로서 광야 연단을 통해 형성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모세도 젊은 시절 사람을 쳐 죽일 만큼 혈기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양을 치며 규모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기면서 온유함이 지면에서 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혈과 육의 싸움을 싸우지 않았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사람과 싸우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믿음의 싸움을 감당합니다. 반면 권위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힌 미리암과 아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갑자기 모세와 미리암 아론 세 사람을 회막으로 부르시고 구름 기둥 가운데 강림하사 아론과 미리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선지자가 있으면 비대면 곧 환상으로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시고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그 형상까지도 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모세는 특별한 사람이고 그 주신 권위가 남다른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면서 자신들에게도 말씀하신다고 하나님이 세우신 종 모세를 비방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진노하고 떠나가시자 미리암이 나병에 걸려 눈과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론은 절망에 빠져 자신들이 범죄하였다며 고쳐주시도록 기도해 달라 간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7일간 진영 밖에 있다가 들어오게 하여 주셨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을 통해 타락한 인간의 내면에 시기심과 교만이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비방하고 끌어내려서라도 자기를 높이려고 합니다. 이는 권위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탐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자리에 만족하고 감사하므로 그 자리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어떤 자리에 앉아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충성하느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시고 주와 복음 역사에 충성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시고 특별하게 대우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자리에 대한 탐욕으로 남을 시기하지 아니하고 맡은 자리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므로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스스로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결혼할 때 산 양복을 20년간 입다가 도저히 입을 수 없게 되어 2년 전에 한 벌 다시 장만하였습니다. 가방도 애들이 초등학교 때 들고 다니던 영어교재 가방을 계속 들고 다녔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핀잔을 주고 원규연 목자님은 이런 저를 불쌍히 여겨서 산뜻한 가방까지 선물해 주었지만 여전히 그 가방을 꿰메고 또 꿰메서 들고 다녔습니다.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저는 모든 것을 초탈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면 이런 저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 세상 잔재미에 대한 탐욕에 늘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아파트 값이 많이 오르자 아파트 시세를 자주 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궁리하였습니다. 지난달에는 대체 휴일에 야외로 나가는 많은 차들을 보며 나도 믿음으로 안 살았으면 이 산 저 산 등산을 하며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과거에 대한 미련, 이런 저런 십자가로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는 불만과 원망이 생겨났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그리워하며 고기를 달라고 했는지 이해가되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보며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감사를 잃어버리고 불평불만에 빠질 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됨을 보게 됩니다. 제가 기브롯 핫다아와와 같은 세상 속에서 살며 탐욕에 물들어 하나님을 은혜를 하찮게 여기고 감사함 없이 살던 것을 이 시간 회개합니다. 주신 것으로 만족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천성을 향해 나아가며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온 집에 변함없이 충성하는 종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이 세상은 기브롯 핫다아와 같이 탐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세상의 악영향을 받으면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과거 죄악된 삶에 대한 미련과 동경으로 원망과 불평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 속에 끊임없이 역사하는 이런 탐욕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거룩한 순례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또 남을 비방하지 않고 모세와 같이 주신 위치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므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쓰임받는 복된 살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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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6강]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관리자 2022-04-17 146
75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5강]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관리자 2022-04-10 161
74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4강]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관리자 2022-04-03 163
74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강]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03-28 147
74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강]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관리자 2022-03-20 171
74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강]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관리자 2022-03-13 187
745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7강]이스라엘의 노정과 기업 분배 관리자 2022-03-06 182
744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6강]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관리자 2022-02-27 181
743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5강]절기와 제사 관리자 2022-02-20 164
742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4강]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한 비느하스 관리자 2022-02-13 190
741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3강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신 하나님.. 관리자 2022-02-06 171
740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2강]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관리자 2022-01-30 198
739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1강]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모세와 아론 관리자 2022-01-22 252
738 민수기 [2021년 민수기 제10강]붉은 암송아지의 재 관리자 2022-01-15 193
737 누가복음 [2022년 신년 제3강]열 둘을 택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01-08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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