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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1-26 (금) 18:38
분 류 민수기
첨부#1 2021년_민수기_제8강-1.hwp (30KB) (Down:27)
ㆍ추천: 0  ㆍ조회: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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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민수기 제8강]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2021년 민수기 제8강                                                         고 영훈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말씀 / 민수기 15장
요절 / 민수기 15:41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지난 강의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과 두려움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광야로 되돌아서는 모습을 공부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인도하심을 모두 잊고 열 수령의 불신에 찬 보고를 듣고는 밤새도록 통곡을 하였고, 갈렙과 여호수아의 믿음의 말에는 돌을 들어 치려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들 스스로 새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모습에 크게 진노하시고 그들이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다가 20세 이상인 자들은 다 죽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실패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어 보였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소망을 끊고 버리셔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 소망을 두고 계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패한 이스라엘에게 다시 말씀을 주시고 무너진 법과 질서를 세우시고자 하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실패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철저하게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끊지 않으시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가 배우고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 해야 하는가 잘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제사 제도를 갱신하신 하나님(1-21)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13,14장에서 20세가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으로 인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어도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취소하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1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지만 2세대를 중심으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셔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도록 하시겠다는 소망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를 드리도록 말씀합니다. 제사 제도는 죄악 된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죄악을 저지른 이스라엘에게 제사 제도를 갱신하여 주시는 것은 그들에게 다시 소망을 두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이 제사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3-21절은 가나안 땅에서 그들의 자손들이 드릴 제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제사에는 크게 5가지가 있습니다. 불로 태워서 드리는 번제, 곡식을 갈아서 드리는 소제, 불로 다 태우지 않고 사람과 제사장이 남은 부위를 먹는 화목제, 죄 문제를 해결하는 속죄제, 남에게 끼친 손해를 배상하는 속건제가 있습니다. 이중 화목제는 감사할 때 드리는 감사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는 서원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낙헌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또한 절기제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나팔절 등의 절기에 따라 드리는 제사입니다.

또 제사를 드리는 방법으로 4가지가 있는데 제물을 불로 태워 드리는 화제, 흔들어서 드리는 요제, 손으로 올려 드리는 거제, 제단에 붓는 전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제사는 어린 양, 숫양, 수송아지, 어린 염소 등을 드릴 수 있습니다. 짐승을 제사로 드릴 때에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소제로 드리고, 또 포도주를 제단에 붓는 전제를 함께 드리게 하셨습니다. 또 짐승의 종류에 따라 짐승이 더 클수록 그에 비례하여 가루와 기름 포도주의 양을 점차 늘리도록 하셨습니다. 제물 가운데 고운 곡식 가루, 기름, 포도주는 광야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들입니다. 바로 풍족한 가나안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제물들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얻을 축복의 산물들입니다. 이것들을 드리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하나님을 섬기는데 잘 사용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제사는 정해진 절기에 드리도록 되어 있고 또 개인적으로 감사한 일이 있거나 자원하는 마음이 들 때 언제든지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14-16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나 너희 중에 대대로 있는 자나 누구든지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릴 때에는 너희가 하는 대로 그도 그리할 것이라 회중 곧 너희에게나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같은 율례이니 너희의 대대로 영원한 율례라 너희가 어떠한 대로 타국인도 여호와 앞에 그러하리라 너희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같은 법도, 같은 규례이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타국인에게도 똑 같은 법도, 같은 규례가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타국인이라고 차별하지 않으시고 그 제사를 똑같이 받아주십니다.

17-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곡식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거제로 드리도록 말씀하십니다. 광야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만나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들은 자신들이 농사한 그 땅의 양식을 먹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이 직접 수고한 농산물들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거제’는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는 제사 방법입니다. 제물을 들어 올리는 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이며, 다시 내려놓는 것은 하나님이 그 제물을 돌려주시는 은혜를 상징합니다.
2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마당의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타작마당에서 타작하기 전에 제일 먼저 처음 익은 곡식 한 단을 묶어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가나안 땅에서 처음 수확한 곡식으로 떡을 만들어서 먹기 전에 먼저 거제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것을 드린다는 것은 그 소산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것이요,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먼저 드린다는 뜻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짓게 되면 자기가 처음부터 수확할 때 까지 땀 흘려 얻은 것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자기의 땀방울의 결과라고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땀 흘려 수고한 것은 맞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키우시고 열매 맺게 하지 않으시면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노력한다 해도 하나님의 은총이 없다면 그 어느 것 하나 얻을 수 없습니다. 이 거제는 첫 번째 것을 드리므로 내 삶의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임하였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생활하는 것, 돈을 버는 것, 사회적으로 성취한 것들이 내 노력의 결과인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건강이나 지혜, 능력 등 모든 것을 주시지 않는다면 결코 얻을 수 없음을 깊이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서원기도를 했을 때 신기하게도 좋은 직장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 직장생활에서 첫 열매를 드리는 것, 매달 십일조를 드리는 것, 감사 헌금을 드리는 것은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와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자는 다음 열매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첫 열매를 주신 하나님이 다음에도 신실하게 공급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II. 죄 문제를 해결 해 주시는 하나님(22-36)
하나님은 인간이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안정된 삶을 살게 될 때 더욱 죄를 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죄를 범했을 때 죄 사함 받는 속죄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이로써 그들이 죄에 대해 경계하고 잘못한 일에 회개하는 삶을 살도록 도우셨습니다. 22-2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릇 범죄하여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 모든 명령을 지키지 못하되 곧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여호와께서 명령한 날 이후부터 너희 대대에 지키지 못하여 회중이 부지중에 범죄 하였거든 온 회중은 수송아지 한 마리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고 규례대로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라” 하나님은 부지중에 지은 죄에 대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자세하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먼저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때에 대한 규정입니다. 공동체가 죄를 지었을 때는 수송아지 한 마리를 화제로 드리고 소제와 전제를 함께 드립니다. 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리며 제사장이 속죄하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단체로 죄를 짓는 것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공동체가 짓는 죄에 대해 더 많은 제물을 요구하시고 철저히 회개하고 경계하도록 말씀하십니다. 공동체뿐만 아니라 한 개인이 부지중에 지은 죄에 대해서도 일년 된 암염소로 속죄제를 드리고 제사장으로부터 속죄함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나 부지중에 범죄한 자에 대한 법은 동일하였습니다(29).
‘부지중에 범죄하였다’는 것은 죄를 짓는 줄 모르고 짓게 된 경우를 말합니다. 그런데 ‘몰라서 그랬습니다’ 하는 변명은 통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몰라서 죄를 지었더라도 속죄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지중에 범죄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지키려고 했지만 인간의 연약함과 부주의 때문에 죄를 짓는 경우도 포함이 됩니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절대로 배반하지 않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와 같습니다. 우리도 말씀에 순종해서 살고자 하지만 감정에 사로 잡혀서 이웃에게 혈기를 부리고 상처를 주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거룩하게 살고 싶지만 정욕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고 죄에 넘어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부지중에 범죄 하였을 때마다 속죄제를 드려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지금의 우리도 모르고 부지중에 지은 죄와 잘못과 실수에 대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때마다 나아가 회개하고 죄 사함의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이런 자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됩니까? 30,31절을 보십시오. “본토인이든지 타국인이든지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누구나 여호와를 비방하는 자니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의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의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어지리라” 고의적인 죄란 원어에 보면 ‘하나님을 향해 주먹을 내뻗는 죄’로 표현됩니다. 즉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 하나님을 욕하는 죄, ‘목이 곧은 태도’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고의적으로 짓는 죄는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말씀을 멸시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하게 다루십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게 됩니다. 사형을 당하거나 하나님의 진영에서 영원히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32-36절은 고의적으로 죄를 지은 자에 대한 처벌의 예입니다.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를 하다가 발견되어 돌에 맞아 죽은 사건입니다. 안식일 법은 십계명 중 제 4계명에 해당하는 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켜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하다가 사람들에게 발견되었고 그를 잡아 모세와 아론에게 끌고 왔습니다. 모세와 아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를 가두어 놓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어떤 방향을 주셨습니까? 35,3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처 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하나님은 안식일을 어긴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서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볼 때 아무리 고의라 해도 안식일을 어겼다고 하나님이 너무 하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죄 가운데 살던 자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킴으로서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안식일을 고의적으로 지키지 않는 것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신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뿐 만 아니라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만일 안식일에 나무를 하는데도 내버려 둔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자를 돌로 쳐 죽이게 하심으로 고의로 안식일 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분명히 깨닫게 하여 주셨습니다.

III. 옷단 귀에 술을 달게 하신 하나님(37-41)
37,3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 자손에게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고 하십니다. 이 옷 술을 달게 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39,40절을 보십시오.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이 술은 그들이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그들을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한 마디로 일상의 삶 속에서도 계명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준행하도록 돕는 시청각 자료였습니다. 인간은 망각을 잘 합니다. 특별히 죄의 본성이 강해서 가만히 있으면 순간순간 죄악 된 생각을 하고 죄악 된 행동하기를 잘 합니다. 그런데 생활 하면서 옷을 입을 때마다, 걸을 때마다 이 술을 보면 경각심을 받아 말씀을 생각하고 방종과 욕심을 좇지 않도록 장치하게 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술의 끈을 청색으로 염색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당시 청색 물감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연안에 사는 달팽이에서 채취했다고 합니다. 달팽이 12,000마리에서 1.4g 정도의 물감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희귀한 물감은 매우 비쌌기 때문에 왕이나 귀족들만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청색은 왕족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귀한 청색 옷 술을 달게 함으로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이 택한 매우 존귀한 존재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죄의 유혹이 들어 올 때마다 이 청색 옷 술을 보며 ‘나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야. 나는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이야’ 하며 죄와 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과거에 애굽의 노예로 자기 죄악 된 본성을 좇아 살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빚어지고자 할 때 실제 생활 속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까요? 그들은 그럴 때마다 이 술을 보며 자신이 이제 어떤 자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돌아보며 자기 부인하고 내면 훈련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요즘 신자들 중에도 십자가 목걸이, 반지 등을 눈에 보이게 하고 다닙니다. 또 휴대폰 첫 화면에 말씀이 뜨도록 합니다. 카톡 프로필 사진에 하나님 말씀을 걸어 둡니다. 이렇게 분명히 자기를 하나님을 믿는 신자로 드러내면 어떤 생각이 들어옵니까? 사실 이런 것으로 인해 조금은 행동하기에 조심스럽고 부자유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신자로서 사람들이 나의 행동을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무척 신경이 쓰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표식을 통해 내가 누구이며,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투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외적인 표식으로 이렇게 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옷 술 다는 훈련으로 외적으로는 규모 있는 백성으로 달라 지게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마태복음 23:5-7절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경문 띠를 넓게 하고 옷 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바리새인들은 옷 술을 길게 하여 겉모습을 경건하게 보이게 했지만 외식하는 것이었고 경건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이를 볼 때 외적인 표식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내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됩니다.

이상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여러 규례들을 자세하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는 광야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례와 확연히 달라진 것은 “율법 갱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갱신이란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보충하고 보완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단체로 연단 받으며 지켜야 할 규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지켜야 하는 규례와는 달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지켜야 하는 제사는 하나님 앞에 자발적이고 헌신된 자세를 요구하고 있고, 감사와 개인의 믿음이 강조된 제사입니다. 한마디로 연단을 통해 믿음이 성숙해지고 경건한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제사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까? 4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 출애굽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고 그들은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다운 삶을 살도록 율법을 주셨고 광야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내면성과 믿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하나님께 제사 지내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말씀을 좇아 살므로 이방 민족들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근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섬기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답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신 목적이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시지 않는 것럼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높은 곳에 계신 것처럼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 한 사람은 하나님께 별로 소중한 존재가 아닌 것처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시고 믿음으로 살도록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가장 친밀하고 사랑의 관계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 고백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하나님은 고영훈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된 자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게 됩니까?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나의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교제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 나의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구합니다. 기쁘고 행복할 때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모든 삶 속에서 나의 하나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나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의 삶의 목적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바입니다. 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때 우리는 방패요 상급되시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됩니다. 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때 우리는 두렵거나 무서울 것이 없게 됩니다. 삶에서 폭풍우가 몰아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갈지라도 기쁨을 잃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심을 깨닫고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 가정에서 나고 자란 저를 크신 뜻 가운데 캠퍼스 시절 죄 가운데서 출애굽 시키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저의 삶의 고비마다 저를 지켜 주시고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저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 주신 이유가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자 하심을 인해 감사를 드립니다. 코로나 시대 가운데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지 불안하고 막막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사 지금까지 신앙생활 잘 하도록 인도하여 주셨고 앞으로도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셔서 저의 인생길도 잘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이제는 세상의 좋아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때마다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 잘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 가운데에서 불러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이며,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하나님의 소망을 붙들고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나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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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5강]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관리자 2022-06-19 178
75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4강]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관리자 2022-06-12 165
75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3강]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관리자 2022-06-05 198
75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2강]자연과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 관리자 2022-05-29 198
75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1강]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 관리자 2022-05-23 169
755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0강]많은 죄 사함, 많은 사랑 관리자 2022-05-15 241
75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8강]원수까지도 사랑하라 관리자 2022-05-08 230
753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7강]열두 사도를 세우신 예수님 관리자 2022-05-01 216
752 누가복음 [2022년 부활절 특강]청년아 일어나라 관리자 2022-04-25 150
751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6강]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관리자 2022-04-17 301
75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5강]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관리자 2022-04-10 321
74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4강]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관리자 2022-04-03 225
74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강]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03-28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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