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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2-04 (토) 21:53
분 류 민수기
첨부#1 2021년_민수기_제9강-1.hwp (33KB) (Dow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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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민수기 제9강]아론의 지팡이에 싹을 내신 하나님
2021년 민수기 제9강                                         이 인구

         아론의 지팡이에 싹을 내신 하나님
말씀/민수기 16,17장
요절/민수기 17;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오늘 말씀은 고라의 반역과 이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관한 말씀입니다. 고라의 반역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전멸당할 수도 있는 큰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종 모세와 아론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역사를 이루심으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내면속에 숨어있는 탐심의 죄를 발견하고 택하신 종들을 통해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를 배우고 성숙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장, 고라의 반역(16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후 가나안땅을 정탐했지만 불신에 빠져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38년을 광야에서 연단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소망의 말씀을 주심으로 광야생활을 인내하며 승리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15장) 하지만 광야생활이 길어질수록 백성들은 지치기 시작했고 믿음과 소망이 희미해지며 불만과 불평속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고라의 반역입니다. 고라가 르우벤 지파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당을 지어 이스라엘 지도자 250명과 함께 모세와 아론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고라가 누구입니까? 고라는 모세, 아론과 같은 레위지파로서 고핫의 손자입니다. 즉 고라와 모세는 같은 할아버지를 둔 사촌지간으로서 어릴 때부터 가까이 살았던 사촌이고 같이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레위지파인데 어떻게 반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연예인이 빌딩을 사면 돈 많이 벌었구나 잠간 부러워하지만 사촌이 비트코인으로 대박을 맞아 땅을 사면 배가 아파 잠을 못자는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하지만 고라의 반란은 그 수준을 넘어 세상의 정치적 쿠데타(역모)처럼 권력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빼앗고자 하는 반역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전체 지도자가 되고 고핫의 장남 아므람의 아들이자 모세의 형인 레위가 제사장이 된 후 고라는 고핫의 둘째 아들 이스할의 장남인 자신이 제사장은 못됐어도 (순서에 따라) 고핫자손의 지휘관이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고핫자손의 지휘관은 다른 사촌 (웃시엘의 아들) 엘리사반이 되었습니다.(민3;30) 또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이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다른 불을 드리다 죽음을 당한 후 혹시나 기대했지만 제사장 직은 아론의 셋째 아들 엘리아살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어릴 때 같이 놀던 사촌과 그 아들이 제사장이 되어 성막에서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로 제사를 드릴 때 자신은 뒤에서 종과 같이 기구 닦는 일을 하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대표하고, 중보하는 제사장의 권위가 부럽고 시기심이 났습니다. 결국 그는 죄의 어둠속에서 분노하다가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들리는 사단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고라의 반란은 주도면밀했습니다. 그는 앞에서 혼자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지 않고 뒤에서 서서히 자기 사람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남쪽에 진을 친 고핫자손인 고라는 같이 남쪽에 진을 친 르우벤 지파 사람들과 자주 만나면서 모세와 아론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였지만 아버지의 첩 빌하와 통간하여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고 그 때문에 장자의 권위를 빼앗겼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그 후손들로 장자지파의 특권을 잃어버린데 대한 불만 속에서 모세와 아론의 리더쉽에 반발하였습니다. 그들이 성막의 남쪽에 위치한 지파들로 당을 지었다 해서 어떤 성경학자는 ‘남쪽의 반란’이라고 부릅니다. 고라의 세력확장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총회에서 택함 받은 영향력 있는 지휘관들 250명을 포섭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자들로 고라의 반역은 그저 어중이떠중이들의 원망과 불평의 뒷골목 소동이나 미리암과 아론의 시기로 일어난 내분과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반역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에 대한 고라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위에 스스로 높이느냐”(3) 왕이 신처럼 추앙받고 노예들은 물건처럼 취급되는 고대사회에서 모든 이들이 다 각각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계시다는 말은 정말 놀라운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와를 유혹하는 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탐욕을 위해 왜곡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19;5,6) 또 그들이 불신으로 가나안입성에 실패한 후에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민15;40) 인간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지위와 소유를 가진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존귀합니다. 사실 세상역사 속에서 ‘인권’이니 ‘공평’, ‘민주주의’등의 말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이 공평하고 존중받아야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인들이 다 스스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지킬 때 거룩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말씀이 없고 법이 없을 때 동물보다 추악해지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말씀을 왜곡하는 고라의 의도는 온 회중과 하나님을 이용하여 모세와 아론의 권력을 빼앗아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거짓지도자들은 이런 식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비뚤어진 민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며 모든 불만 세력을 모아 집권하고자 합니다. 사실 모세와 아론은 본인이 원해서 백성들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원대하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제사장직분을 민주적으로 모든 백성들에게 기회를 줘 투표를 통해 결정하지 않으시고 친히 택하시고 세습제로 하셨을까요?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의식수준이 될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무지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자신의 육신의 본성을 위해 아귀다툼하다 광야에서 분열되고 소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통치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다스림 받으며 자율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힘들다면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지도자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 지도자가 드물기 때문에 죄악된 독재자에게 맡기는 것보다 현재의 민주주의처럼 백성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것이 차선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지도자가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고라의 도전에 모세는 고라와 싸우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고라보다 논리나 말주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도자로써 인간적 감정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모세는 기도 후 고라 무리와 제사장 아론이 같이 하나님께 분향하므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자고 제안했습니다. 모세는 자신과 아론의 영적권위에 도전하는 고라와 인간적으로 싸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맡겼습니다. 고라가 아론같은 제사장으로 쓰임받길 원한다면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분향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의 특권입니다. 왕이나 레위인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향을 피우면 죽게 됩니다. 심지어 제사장인 아론의 두 아들들은 경외심 없이 함부로 하나님께 분향하다(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모세는 고라의 문제를 ‘너무 분수에 지나친 것’ 즉 ‘탐심’으로 보고 그 죄를 책망했습니다.
  고라는 레위지파 중에서도 고핫 자손으로 가장 중요한 성막의 기구들을 관리하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레위지파 중 고핫자손이 아닌 게르손, 므라리 자손들은 성막의 천막이나 널판이나 기둥 등 더 무겁고 힘든 기초물들을 관리하는 3D사명을 맡았습니다. 또 레위지파를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지파 남자들은 하나님의 군사로 더 힘들고 위험한 실제적인 전투에 가담했습니다. 고라에게 맡겨진 직분은 참으로 중요하고 거룩한 직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은 본래 노예백성으로 살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하나님영광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는 인생 자체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하지만 고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가지지 못한 한 가지, 제사장자리에 탐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탐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백성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사단 편에 섰습니다. 고라가 원한 제사장의 권위는 백성들위에 군림하고 높아지고자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권위는 이웃을 사랑하고 섬겨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닮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 예수님은 모든 신자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신자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신자들이 교회에서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지만 세상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직장사명에 만족하지 못하며 기쁨도 보람도 없이 노예처럼 일만 하는 이가 많습니다. 어떤 작가가 한 환경미화원 아저씨를 알게 됐습니다. 그는 매일 새벽부터 악취와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쓰레기통을 치우고 거리를 청소하는 일을 평생하신 분인데 힘든 3D업종으로 존경받는 것도 아니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닌데 항상 표정이 밝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항상 밝은 표정으로 일할 수 있는가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지금 죽어가는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일의 의미와 목적을 찾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입니다.”(헤르만헤세)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직업)을 보는 관점이 3가지가 있습니다.(Christopher Pterson 2009년 연구) 연구자들은 직장인과 가정주부를 포함해 만 명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직업에 따라 비율은 조금 달랐지만 모든 직업에서 3가지 관점이 모두 나타났습니다. 첫째, job(직업)으로 보는 이는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이들로 만족도가 가장 떨어지고 삶의 열정수준도 가장 낮게 나타났습니다. 둘째, career(경력)으로 보는 이는 일을 통해 경력과 성취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로 상대적으로 더 빨리, 더 많은 성취를 이루는 것 같지만 경쟁으로 인한 높은 스트레스로 만족도는 높지 않게 나타났습니다. 셋째, calling(소명)으로 보는 이는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목적을 중요하게 여기며 더 만족하고 열정적으로 일해 외적 성과도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신자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calling(소명)으로 여길 때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기쁨과 보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택하시고 부르신 은혜를 감사할 때 무슨 일을 하든 충성으로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할 때 힘들고 의미를 찾지 못할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달란트를 맡든 5달란트를 맡든 지금 맡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마25;21) 모세는 궁중에서 왕자로 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결단 후 광야에서 40년을 양 똥을 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물론 처음엔 힘들 때도 있었겠지만 충성스럽게 그 작은 사명을 감당했을 때 나중 더 큰 일에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40년 동안 고독하게 양을 감당하는 인내의 내면성을 연단 받지 못했다면 양보다 완악한 이스라엘노예백성들을 출애굽시키고 광야에서 40년을 함께 고난 받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주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고라의 죄를 책망 후 고라의 반역에 동참하는 르우벤의 후손인 다단과 아비람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세와 대면하지도 않고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며 모세와 대적했습니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13,14) 그들은 과거 바로의 노예로 살았던 애굽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리워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흥분하여 말이 잘못 나온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내면 속 진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들은 그동안 모세가 바로와 맞서 싸워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지팡이로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고 또 금송아지 우상숭배 때 전멸당할 위기 속에서 중보기도로 지켜준 은혜를 망각하고 부인하였습니다. 그것은 모세뿐 아니라 모세를 쓰신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심히 노하였지만 그들과 맞서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주는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나귀 한 마리도 빼앗지 아니하였고 그들 중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15) 그리고 고라일당이 아론과 함께 하나님 앞에 나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선택을 받도록 알렸습니다. 다음날 고라일당이 아론과 함께 하나님께 분향하기 위해 향로를 들고 회막문 앞으로 나왔습니다. 고라일당과 그 편에선 250명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 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증스러운 죄악에 분노하시며 전멸하시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22) 무지한 백성에게 임한 진노를 거두도록 중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고라일당을 심판하시기전 무지한 백성들이 고라일당을 떠나도록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작은 경외심이라도 가진 백성들은 고라일당을 떠났지만 다단과 아비람은 오히려 그들의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 모세를 대적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기는커녕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이용해 죄를 가리고자 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이 서 있는 땅에 임해 순식간에 땅이 갈라지며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삼켜버렸습니다. 또 하나님으로부터 불이 나와 반역에 가담한 지도자 250명을 그 자리에서 불살랐습니다. 공의의 심판이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죄악된 자들이 사용한 하나님의 거룩한 향로를 수거하도록 하셨습니다. 향로로 철판을 만들어 제단을 싸게 하심으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부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분향하지 못하도록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고라일당은 전멸했지만 고라의 자녀들은 살아남았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자신들의 죄악에 처자식까지 끌어들였지만 고라는 자녀들을 끌어들이지 않았습니다. 고라의 아들과 후손들은 훗날 다윗시대에 성전 문지기와 찬양대등의 일을 맡았습니다.(대상6;37, 26;1,19)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 속에서도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고라일당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음으로 이스라엘은 다시 회복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이스라엘 온 회중이 분노와 살기의 눈으로 모세와 아론 앞에 나왔습니다. 그들은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을 죽였다며 또 다시 모세와 아론에게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도 왜 그들은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까? 고라의 사악한 영향력 때문입니까? 아니면 백성들의 무지 때문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정탐 실패 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을 광야에서 떠돌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20세 이상 불신의 세대가 광야에서 죽은 후 20세 미만의 신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라 약속하신 후 백성들은 본인들은 안되지만 자녀들은 들어갈 수 있다는 소망가운데 하나님말씀을 붙들고 모세를 따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광야생활에 지쳐가면서 내면 속에서 불평과 원망이 쌓였습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 출애굽했는데 한 번의 불신으로 광야에서 살다 죽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무하신 것 아닌가?” 그런 중 고라가 은밀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속삭였습니다. “이 모든 고난은 여러분들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백성들을 잘못 인도한 모세와 아론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론에게 많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시내 산의 금송아지 사건 때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 만드는 것을 아론이 목숨 걸고 막았다면 그렇게 많은 백성들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미리암의 비난에 가담한 것이나, 두 아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잘못 드리다 죽을 때에도 아론에게 많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아론과 그를 임명한 모세야 말로 백성들을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지 못하는 적폐세력이라고 주장하는 고라의 논리정연한 말에 250명의 지도자와 많은 백성들이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들고 일어섰지만 지진으로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왜곡된 진실에 미혹됐던 백성들은 고라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고라가 퍼뜨린 거짓소문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호응했을 때 소문은 사실이 되고 무지한 백성들은 불변의 진실로 믿게 된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인내하실 수 없었습니다. 염병을 내려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모세는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아론에게 염병으로 죽어가는 자를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아론이 죽은 자와 산자 사이에 섰을 때 마침내 염병이 그쳤습니다.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으로 죽은 자가 1470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가나안정탐 실패로 모든 이스라엘 성인들을 평생 광야에서 살도록 하신 것입니까? 만약 그때 한 번 더 용서하시고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셨다면 고라의 반란같은 비극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것은 단지 가나안땅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정탐 실패 후 백성들에게 새롭게 소망의 말씀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민15;41) 신자의 진정한 목적과 행복은 가나안땅에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중 40년 광야연단 후 마침내 가나안땅을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땅의 풍요로움에 취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의 죄에 빠졌을 때 더 추악한 백성이 되어 끊임없이 이방인들의 괴롭힘과 고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사사기의 350년의 혼돈의 역사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다 해도 하나님과 동행했을 때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며 때마다 만나와 메추라기 등 모든 것을 채워주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척박한 광야에서든 풍요의 가나안땅에서든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려고 나를 애굽 땅에서, 사단의 노예에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현재의 거칠고 황량한 세상광야를 지나 천국(천성)에 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럼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천국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곳이고 영원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천국에 가도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성으로 가는 길은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로 갈수 없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심으로 완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와 함께 하신 나의 하나님을 따르고 동행함으로 세상광야에서도 천국의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며 끝까지 천성으로 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2장, 아론의 지팡이에 싹을 내신 하나님(17장)  
17장을 보십시오. 고라의 난과 염병사건이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12지파의 지휘관에게서 지팡이를 가져오도록 하셨습니다. 각 지팡이에 지휘관의 이름을 쓰도록 했는데 레위지파는 아론의 이름을 쓰도록 하셨습니다. 지팡이는 지파를 상징하고 지휘관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12지팡이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만나는 증거궤 앞에 두도록 하시고 하나님이 택하신 자의 지팡이에 싹이 날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오직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났습니다. 죽은 나무로 만든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습니다. 살아있는 나무에서 움에서부터 시작해 열매까지 맺으려면 꼬박 일 년이 걸리는데 죽은 나무에 이 모든 과정들이 함축되어 하룻밤동안 열매까지 맺은 것은 천지를 지으시고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불가능한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적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과 원망가운데 반역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심판의 표가 아니라 백성들이 더 이상 죄로 심판받지 않도록 막고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론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세우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지팡이도 있는데 왜 아론의 지팡이에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까? 아론은 하나님이 이루신 기적의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봐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제사장으로 세운 증거니 앞으로 내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마! 내 권위에 반발하면 다 죽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아론은 지팡이의 기적을 보고 그날 밤새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아론은 하나님께서 자격 없는 자신을 제사장으로 택하신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습니다. 금송아지 사건 때 백성들의 잘못을 알았지만 광란하는 백성들이 두려워 막지 못했습니다. 미리암의 비난 때도 미리암의 잘못된 확신에 분별력을 잃고 동조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두 아들을 제사장으로 제대로 교육하지 못해 죽게 했습니다. 두 아들이 죽었을 때 제사장의 율법으로 시체를 붙들고 울지도 못하고 제사장직에서 내려오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방황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게 하시고 인내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많은 실수와 부족함에도 하나님은 고라의 반란 때 자신을 변함없이 제사장으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 아론의 모든 고독과 연약함과 두려움과 고통을 다 알고 계셨고 또 감당해주셨습니다. 아론은 그 은혜가운데 자신을 죽이려했던 백성들이 염병(전염병)으로 죽어갈 때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그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 걸고 죽은 자와 산자 사이에서 중보의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큰 뜻 가운데 아론을 제사장으로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론이 택함 받을만한 인간적인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역사가운데 부족한자를 택하시고 쓰심으로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주신 제사장의 권위는 자신을 광내고 높이고 백성들을 군림하는 능력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섬기고 높이며 살리는 능력입니다. 아론은 이 사건이후 광야에서 제사장으로 죽을 때까지 백성들을 하나님께 돌이키고 살리는데 생명을 바쳐 헌신하였습니다.

최근 2년 동안이나 우울한 코로나와 동행하면서 삶이 광야생활 같이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동생의 병은 갈수록 악화되고 부모님들도 고령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며 저도 만성 위염에 최근엔 거의 한 달 동안 어깨통증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이런 삶이 지속되면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과 불신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이도 반환점을 넘어 인생열매를 생각해야 할 때 주변 잘나가는 사람들에 비교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아쉬움가운데 고라처럼 반역은 하지 못해도 모세처럼 견고한 믿음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중 민수기 말씀을 감당하면서 고라와 같은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제가 받은 많은 것을 감사하기보다 현재 내가 얻지 못한 것에 집착하고 불만에 빠졌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부족한 자신을 아론처럼 왕 같은 제사장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은혜 속에서 믿음으로 인생을 긴 안목으로 보며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함으로 지팡이에서 싹을 내시는 하나님의 생명력과 권능을 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해 죄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악된 백성들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사랑(긍휼)을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부족하지만 아론을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택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도 부족하지만 하나님역사를 섬기는 종들에게 왕 같은 제사장의 권위를 주심으로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나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코로나로 죽음의 세력이 가득한 시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기도의 지팡이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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