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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2-18 (토) 19:54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1성탄-2q-1.hwp (17KB) (Down:18)
ㆍ추천: 0  ㆍ조회: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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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성탄 제2강]경배 받으실 왕 예수님
2021년 성탄 제2강                                                                       함바나바
                           경배 받으실 왕 예수님
말씀 마태복음 2장1-12
요절 마태복음 2장11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지난주일 레너드 혜성이 7만 년만에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지나갔습니다.
레너드 혜성은 맹독성 청산 성분이 많아 신비로운 청녹색을 띠고 있는데,
7만 년에 한번 지구 주위를 방문하므로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한 혜성입니다.
성탄절 메시지를 준비하는 저에겐 이 별이 지구에 와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최근 별을 본 것이 언제인지요?
요즘 도심은 밤에 불빛이 너무 많고 공기도 좋지 않아서 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삶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느라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헤아리고 있을 마음의 여유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지금은 너무 추워서 바깥에서 하늘을 보고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처럼 별 볼일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는 별을 찾아 일생을 바쳐온 최고의 지성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말씀은 이방인들인 동방박사들에게 임한 성탄절로서,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하는 내용입니다. 1,2절에서 “경배하러 왔노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11,12절에서 “경배하고 ... 고국에 돌아가니라”는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를 뜻하는 “크리스”와 예배, 경배를 뜻하는 “마스”의 합성어로서
그리스도께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메리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예배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이 땅에 구주요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는 날입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어떤 왕이 되시는지 또 왕께 경배하기 위해
먼 곳에서 온 동방박사들의 순수한 신앙은 어떤 것인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헤롯 왕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이 한 마디는 그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헤롯은 이두매 사람 즉 에서의 후손인 에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정통성이 없다보니, 늘 왕권을 잃을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불안감은
정권을 내려놓을 때가 가까운 그의 정치 말년에 오히려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왕권을 지키기 위해 아내와 장모, 처남에 아들들까지 죽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은 후에는 2살 이하의 아이들을 수없이 죽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성전을 더욱 크고 화려하게 지어주었습니다.
이처럼 헤롯은 겉으론 왕이었지만 백성들이 인정하고 따르는 왕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통치에는 속임수와 살인, 배반, 그리고 간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불완전한 지도자 밑에서 사는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자녀들의 심정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한글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마태는 “동방으로부터” 앞에 “보라”는 감탄사로 동방박사의 등장을 알려줍니다. 이 동방박사 이야기는
마태복음에만 기록된 특별한 사건입니다.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이 메시아의 별을 보고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1500킬로미터나 떨어진 페르시아에서 찾아온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페르시아에서 제사를 드리는 성직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귀족계급이었고, 철학, 과학, 역사, 의학, 기하학, 천문학 등 모든 학문을 통달한
최고의 지성인들이었습니다. 박사들은 애굽과 그리스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의 책들을
수집해서 연구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페르시아 지역에는 흩어진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을 통해 성경을 접하고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민수기 24장 17절은
동방에서 온 발람 선지자가 예언한 내용입니다. “ ...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 ” 이 예언은 유대인들을 통해
동방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즈음에는
사람들이 곧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 생각하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도 메시아 탄생을 고대하면서 하늘의 별들을 관찰했습니다.
인생들을 다스려 주실 참된 왕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 자체를 사랑하였습니다. 진리를 발견하여 진리대로 사는 것을
인생의 참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목적으로 삼았던
참된 구도자들입니다. 그러다가 메시아 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그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메시아는 캄캄한 밤과 같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나십니다.
외식과 거짓이 많은 세상에 진리의 별이시며,
시기와 증오가 많은 세계에 사랑의 별이시며,
불화와 분쟁이 넘쳐나는 시대에 평화의 별이십니다.
죽음이 가득찬 이 세상에 참되고 영원한 생명의 별이시며,
억압과 구속이 많은 현대에 자유의 별이십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의 별은 전 인류의 소망의 별이 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동방의 왕도 아니고 유대인의 왕인데
이방 사람들이 경배하러 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경배란 예배와 같은 의미입니다. 경배는 최상의 가치를 지니시고 최고로 높으신 분에게
최고의 예의로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메시아로서
경배 받으실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여
경배 받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민족의 구원자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모든 이방인들의 대표인 동방박사들을 통해 이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온 목적은 순수했습니다.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예수님을 경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할 때 영혼의 참 기쁨이 있습니다.
‘내려놓음’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예배시간에 벌러르라는 자매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몇 달 전에 기도로 듣지 못하던 귀가 열린
자매였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서, 소를 찾아 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한 것을 깨닫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소를 버려두고 들판을 가로질러
뛰어온 것이었습니다. 벌러르 자매는 초신자였지만 소를 버려두고 올 만큼
예배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습니다.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벌러르 자매가 소가 아닌 예배를 택한 그 믿음의 결단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달라고, 다시 소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예배가 마치자마자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잃어버렸던 소가 벌러르 자매를 따라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온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인도해 주십니다.
잠언 8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참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듣고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였습니다.
헤롯은 다윗 왕의 합법적인 계승자가 아니었고, 유대인들은 헤롯을 왕위 찬탈자라 여기고
증오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아기가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라면, 헤롯의 왕권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에 박사들의 방문은 헤롯을 불안하게 하였습니다.
헤롯은 그렇다 치더라도, 헤롯의 폭정 아래 참된 메시아가 오기를 간절히 바랬을
예루살렘 주민들은 왜 소동한 것입니까? //그들은 아직 메시야를 맞이할 마음과 믿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을 세상에 도적맞아서
세상에 묻혀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떨며 소동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주님과 복음역사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기쁜 소식이 될 텐데,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세상 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 소식을 듣게 된다면 소동하게 될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헤롯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미가서 5장 2절 말씀을 인용하여
유대 베들레헴이라 말해주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600미터가 넘는 높은 산마루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작은 마을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메시아가 이곳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선지자가 예언한 것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런데 저자 마태는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는 말씀 대신 미가서 5장 4절에 나와 있는 ‘목축한다’ 말을 근거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는 말씀으로 바꾸었습니다.
왕이시지만 목자처럼 다스리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양으로 표현합니다. 인간의 습성이 양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양은 눈이 나빠서 앞을 잘 보지 못합니다. 앞에서 목자가 인도해 주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립니다. 이리 저리 방황하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발을 헛디뎌
웅덩이에 빠집니다. 양은 다리가 짧아서 한번 뒤집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목자가 일으켜주어야만 합니다. 또 양은 순할 것 같지만 고집이 셉니다.
목자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놓아도 굳이 밖으로 나가서 독초를 먹고
병에 걸리거나 짐승에게 잡아먹힙니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의 절대적인 보호와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목자의 절대적인 돌봄과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목자의 다스리심을 받지 않으면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죄에 넘어져 신음하게 됩니다.
자기 욕심을 좇아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만
한번 죄의 수렁에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므로 목자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또 양은 두려움이 많아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 있거나 고난이 닥치면
쉽게 불안해합니다. 특히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무기가 없기 때문에
맹수의 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양에게 유일한 장점은
듣는 귀가 발달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의 음성을 잘 구별할 수 있습니다.
멀리서 목자가 불러도 이를 잘 듣고 다가옵니다. 목자의 음성을 들으면 안심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도 불안한 인생 가운데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잘 듣고 따라야 합니다.
그럴 때, 불안과 혼돈의 시대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소년시절 양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양을 쳐서 삯을 얻고자 하지 않았고,
양 자체를 가족처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였습니다. 곰이나 사자가 와서 양을 물어가면
목숨을 걸고 달려가서 곰이나 사자의 얼굴을 치고 입을 찢어 양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다윗은 백성들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고 공평과 정의와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이런 다윗은 장차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메시아의 그림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왕으로 오셨지만, 세상 왕처럼 군림하지 않으시고
목자처럼 긍휼한 마음으로 돌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방황하는 무리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들의 병든 내면을 치료하시기 위해
자기 목숨도 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1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신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고 다스림을 받을 때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불안한 이 시대에서도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선한목자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목자되신 예수님께
인생의 무거운 짐을 맡기고 그 분의 다스림을 받을 때 참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이 참 목자이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삶에 대해 노래한 것입니다.
목자 되신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받을 때 현재 우리의 형편에 무관하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어떤 환난이 닥쳐도 예수님께서 보호해주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생 동안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항상 따라다닙니다. ‘따라 다닌다’는 것은 추격한다는 뜻입니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추격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복음서에 나오는 니고데모, 세리, 중풍병자, 사마리아 여인, 본문의 저자 마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이 방황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부릅니다. 이 “가만히”라는 단어는
어디서 봤던 단어 같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지난 주 성탄 말씀에서
요셉이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고 가만히 끊으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가만히”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오는데 요셉이 했던 일과
지금 헤롯이 하고 있는 일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가만히 하는 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의 생명을 구하고자 가만히 행동했지만,
헤롯은 아기의 생명을 빼앗고자 가만히 행동합니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자신의 진짜 의도를 숨기기 위해 헤롯이 한 거짓말입니다. 헤롯은 이처럼
정치적 술수와 음모에 능통한 자였습니다. 헤롯은 이 일을 비밀리에 진행하며
그럴듯한 포장으로 자신의 욕심과 악한 의도를 숨겼습니다.
순진한 동방박사들은 헤롯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 때 마침 그들 앞에 동방에서 봤던 별이 나타나 그들을 인도합니다.
9절 말씀에도 한글 성경에는 생략되었지만, 원래 “보라”는 말이 기록되어
별의 등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박사들을 인도하시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별은 아기 있는 곳에 머물러 서 있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시작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동방박사들은 아기를 발견했을 때,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들의 기쁨을 3중, 4중으로 강조하여 표현한 것을 보면 이 기쁨은
최상의 기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바사 국립대학 천문학과에 입학했을 때에도, 천신만고 끝에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에도,
사랑하는 동역자와 환상적인 결혼을 했을 때에도 기뻤겠지만
별을 보았을 때의 기쁨은 이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정말 큰 기쁨이었습니다.
이 기쁨은 경배의 대상이신 메시야를 만난데서 오는 영적인 기쁨이었습니다.
이 기쁨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기쁨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기뻐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가서 소리쳤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일평생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얻는 기쁨은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것이어서 잠시 누릴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동방박사들과 같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최상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진정한 기쁨의 source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에게서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은 죄와 사망권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런 죄와 사망권세에서 단번에 구원해주시는, 구원자가 되시므로
이 예수님을 만난 자는 누구나,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박사들은 별의 인도함을 받아 유대인의 왕이 계신 집에 들어가
어린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박사들은 그토록 찾던 메시야가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것을 보고
실망하거나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린 아기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왕으로 오신 분임을 영접하고 아기께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박사들이 이곳까지 온 목적이 바로 아기께 경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박사들은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예물을 드렸습니다.
황금은 왕에게 드리는 선물로 황금은 변치 않는 충성을 상징합니다.
이 황금은 헤롯을 피해 이집트로 갔을 때 요긴하게 쓰여졌다고 합니다.
유향은 감람나무와 유향나무에 속하는 나무에서 추출하는 나무의 진액 즉 수지로서
제사장들이 백성을 대신해 성소에 들어갈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었고, 순결을 상징합니다. 몰약은 값비싼 향료와 향수로서
역시 나무에서 얻었으며 시신의 방부처리에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인류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상징합니다. 박사들은 순수하게 예수님을 만나고
보배합을 드려서 예배했기 때문에 기쁨이 더욱 컸습니다.
순수한 영혼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자신의 현실문제 해결이나,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나, 다른 무엇을 구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의 본질입니다.

처음 성탄 예배 메신저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소동하였습니다.
올해 가장 은혜가 충만한 목자가 메신저가 될 것이라 하셨기 때문에
이번에 종신 교수님이 되어 기쁨이 충만하신 홍 목자님이나,
양들이 너무 많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계신 천 목자님이 될 거라 예상하였습니다.
여전히 떠나간 양에 대한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제가
메신저가 될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면접 보러 온 수험생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경계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찌감치 부모님 품으로 사라져 버리는 사람도 있었으나 시험을 보러 와서 그런지
대부분 겸손하고 가난하고 떨리는 심정들이었습니다. 학교 선배라고 하니 고마워하고
전화번호도 바로 주었습니다. 이렇게 순수한 영혼들을 만나니 제 마음도 설레었고,
다시금 어린 양들을 먹이고자 하는 소원이 생겨났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그들처럼 순수할 때가 있었습니다. 신입생 시절, 선배 목자님들을 만나
얼떨결에 삐삐 번호를 드렸지만, 계속해서 도망 다니던 저를
하나님께서는 생물학에서 F학점을 주심으로, 계절 학기를 듣느라
고향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으시고, 여름수양회에서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만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이제는 제가 그렇게 우러러보던
선배 목자님들의 자리에, 팀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앉게 되었지만, 책임감과 체면으로
또 매너리즘으로, 그 전에 예수님을 만난 기쁨은, 오히려 많이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런 죄인에게 메신저의 직분을 맡겨주시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제 생활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 주시고
죄인을 겸손과 섬김으로 다스려 주시는 주님께
순수하게, 경배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주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을 받고, 주님께 귀한 것을 드려 예배하는
기쁨이 충만한 신앙생활을 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우리의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세상 지도자들처럼 우리를 실망시키시거나
지휘권을 임의로 휘두르지 않으시고, 목자와 같이 겸손하게, 사랑으로
우리를 섬겨 주십니다. 동방박사들은 이 예수님께, 경배하는 것을 목적 삼았고,
다른 것을 얻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또 자신의 귀한 예물을 드려
예수님께 순수하게 경배하였을 때,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우리도 이 동방박사들처럼
진정한 경배의 대상을 회복하고, 또, 순수하게 경배하고자 하는 마음을 회복할 때
이들이 느낀 기쁨을, 우리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경배의 대상으로 영접하고, 왕으로 모실 때
주님께서도 우리의 삶을,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해 주시며, 안위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한 아기의 모습으로 낮아져 오신 예수님께
즐겁게 경배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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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3강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신 하나님.. 관리자 2022-02-06 171
740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2강]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관리자 2022-01-30 198
739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1강]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모세와 아론 관리자 2022-01-22 252
738 민수기 [2021년 민수기 제10강]붉은 암송아지의 재 관리자 2022-01-15 193
737 누가복음 [2022년 신년 제3강]열 둘을 택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01-08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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