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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2-25 (토) 14:26
분 류 디모데후서
첨부#1 2022년_신년_제1강-1.hwp (33KB) (Dow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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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신년 제1강]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세우심을 입었노라
2022년 신년 제 1 강                                                          이 종 하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세우심을 입었노라
말씀 / 디모데후서 1:1-18                                                
요절 / 디모데후서 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2021년은 코로나와 경제불안으로 힘든 한 해였습니다. 캠퍼스 미션도 갈수록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대면의 여러 방법을 통해 복음역사를 놀랍게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주위에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이전보다 더 고립되어 있습니다. 어두운 현실 앞에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이들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복음만이 이들을 회복시키고 비전을 갖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위해 우리를 선포자요 사도요 교사로 세우셨습니다.
오늘 서신의 저자 사도 바울은 다메섹 가도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정말 열정적으로 살았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에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여 상상할 수 없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가 이 편지를 쓸 당시에도 차디찬 감옥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로마의 박해로 많은 성도들이 흩어지고 자신도 최후가 가까워진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 바울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영적 아들 디모데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디모데에게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하게 복음역사를 섬기도록 격려합니다. 이 시간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해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새롭게 하고 복음전파자로 굳게 서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사도 바울은 AD 60-62년경에 로마 감옥에 1차로 감금되었다가 풀려났습니다. 이후 네로의 박해 가운데 양들을 돌보다가 AD 66년경에 다시 로마 감옥에 감금되었습니다. 2차 감금은 1차 때와는 달리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였습니다. 환기 구멍이 하나뿐인 어두운 지하 감옥에서 추위와 외로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원했거나 어떤 모임이 임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택하여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사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생명의 약속을 받고 사도가 되었으며, 또 그 약속을 위해 사도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서신서를 쓸 때마다 자신의 사도된 아이덴터티(정체성)를 길게 적었습니다. 현재 편지를 받는 디모데와는 너무 밀접한 관계이므로 이런 표현을 생략할 수 있었지만 이를 통해 복음역사를 계승할 디모데도 확신을 갖도록 돕고자 함이 분명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디모데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 바울은 1차 전도여행 당시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에게 돌을 맞아 죽은 줄로 여기고 성 밖으로 내던짐을 당했습니다(행 14:19). 디모데는 그 루스드라에서 믿음으로 얻게 된 영적 아들이었습니다. 바울이 뜻을 세우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정을 가졌다면, 디모데는 세심하게 살피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부드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 안에서 가족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아껴 2차 전도여행 때부터 같이 다니며 목자훈련을 시켰습니다. 드로아, 베뢰아,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에서 복음역사를 이루었고, 나중에 디모데가 바울이 가장 오래 머물며 섬긴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될 때 바울은 그를 위해 안수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있고,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가 더 생각났습니다. 그는 현재 고난 중에 있지만, 자신이 위로받고자하기보다 오로지 디모데를 위하는 마음뿐입니다. 오직 디모데에게 주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구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바울은 밤낮 쉬지 않고 간구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둡고 습하고 냄새나는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그의 하나님을 향한 열정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의 기도생활의 중심에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생각하고 기도할 때마다 조상적부터 청결한 양심으로 섬겨오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감사했을까요?
첫째는, 디모데의 눈물 때문이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네 눈물을 생각하며,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디모데는 평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순수하고 진실된 사람이라는 징표였습니다. 그는 바울이 다시 체포되고 로마로 압송될 때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 디모데를 다시 봄으로 그의 기쁨이 가득해지기를 원했습니다. 둘째는, 디모데 안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5절 앞부분을 보십시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거짓이 없는 믿음은 ‘순수하고 깨끗한 믿음, 꾸밈이 없는 믿음’을 말합니다. 또 외식적이거나 율법적으로 매여 있는 믿음이 아니라 복음으로 충만한 믿음을 말합니다. 디모데의 이 거짓이 없는 믿음은 바울을 저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신실하지 못한 모습과 대조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의 믿음으로 인해서 늘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런 디모데의 믿음은 뿌리가 깊었습니다.
5절 뒷부분을 보십시오.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의 믿음은 외가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는 유대인으로, 초창기 기독교 개종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마 고향인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믿고 회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어릴 적부터 성경을 알았습니다(3:15). 우리 교회의 2세들과 같이 자연스럽게 교회를 드나들며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많은 기도와 섬김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디모데와 같이 순수하고 진실하며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갖도록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실제생활에서 이 믿음의 본을 보이고 열심히 성경을 가르칠 때 우리의 미리 세대들도 디모데와 같은 믿음의 종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딤전 4:14). 그 안수식에 사도 바울도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장로들의 안수를 받을 때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은사가 임하였습니다. 즉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계시하신 뜻을 받고 감독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젊은 디모데에게 힘든 곳이었습니다. 일부 신자들은 디모데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지도력을 의심하였습니다. 또 복음을 왜곡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교사들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에 있는 그를 위해 디모데전서를 썼었습니다. 이제 디모데후서에서도 다시금 디모데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사가 있음을 깨우쳐 줍니다. 그리고 이 은사가 불일 듯 일어나도록 하라고 격려합니다. 이는 꺼져버린 불을 다시 피우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더욱 불길이 타오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여기서의 마음은 ‘spirit’ 즉 영을 말합니다. 다시 이 말씀을 보면 현재 디모데가 가져야 할 것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영입니다. 이제 격렬하게 시작된 로마의 핍박은 디모데에게 심한 압박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바울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혼자서 에베소교회를 섬기고자 할 때 그는 마음이 침체되고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소심하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을 때 본성적으로 약한 부분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최대의 원수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무기력해져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하게 됩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인제군 현리 오마치 고개에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곳은 6.25전쟁 한국군 최악의 패전지였습니다. 중공군 1개 중대가 이 고개를 점령하였을 뿐인데, 그 북쪽 계곡인 현리에 있던 한국군 3군단은 지휘관, 사병 모두 두려움에 빠져 이탈하였습니다. 그 결과 5000여명이 실종되고 군단 전체 무기와 장비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 열 두령이 가나안 정탐 후 한 부정적인 보고는 전체 이스라엘 백성을 절망과 두려움에게 빠지게 하였습니다. 온 회중이 밤새도록 통곡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결국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제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일생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39세에 하반신 마비가 생겨 걸을 수 없어, 휠체어를 타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생 심혈관 질환에 시달리며 결국 뇌출혈로 소천하였습니다. 51세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극심한 대공황으로 1,300만 명의 실업자가 생겨났고, 거의 대부분의 은행들은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1941년 12월 7일, 그의 나이 59세 때, 일본의 하와이 공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도 여론조사를 하면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1933년 최악의 대공황 한복판에서,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는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습니다. “Fist of all, let me assert my firm belief that 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먼저 저의 확고한 믿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한 가지는 바로 두려움 그 자체뿐입니다.” 이 문구는 사회경제적 혼란에 빠져 있던 미국 국민의 불안을 달래고 확고한 믿음을 전달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바울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 디모데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경우에도 두려움을 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두려움 대신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영을 주십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종에게 임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다이나마이트와 같이 강력합니다. 이 능력은 연약한 디모데를 지금까지 담대하게 했고, 앞으로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능히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할 것입니다. 또 ‘사랑’은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영을 받을 때, 디모데는 어떤 부담스러운 영혼도 끝까지 품고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절제하는 영’은 ‘a spirit of self-discipline’으로 자신을 절제하는 영을 말합니다. 이 영은 디모데를 내적으로 온전하게 합니다. 감정을 절제하고 청년의 정욕을 절제할 때 내면에 성령의 확신이 분명해지고 선한 능력으로 교회를 치우침 없이 섬기게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에게 절제하는 영이 필요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절제하고 유튜브와 스마트폰 보는 시간을 절제해야 하겠습니다. 아침잠을 절제하고 주말에 놀고 싶은 마음을 절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묵상과 기도에 매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이미 주신 능력과 사랑의 영을 덧입고 우리 각자의 영적 아들, 디모데를 격려하고 섬겨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2장, 이 복음을 위하여 세우심을 입었노라
다 같이 8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은 디모데를 위로하고 격려한 후 이제 디모데가 복음의 일꾼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하여 말합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힌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고전 1:23). 바울이 그런 그리스도 복음을 전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지탄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옥에 갇히자 이런 그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바울처럼 고난을 받지 않고자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이 여린 디모데도 영향을 받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일반 죄수가 아니라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자신의 혈통과 율법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 모든 것이 아무 쓸모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어떤 것도 주 예수를 아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을 얻는 한 가지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배우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능력을 체험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고자 믿음의 경주를 달려오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이 놀라운 비밀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바울처럼 담대하고 복음을 자랑하기를 바랐습니다.
둘째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함께 고난을 받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슁카코파데손’입니다. 이 원어에 따라 해석하면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당한 고난을 디모데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이나 디모데의 능력으로는 어렵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고난을 이겼고, 지금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디모데는 바울을 잘 벤치마킹하여 먼저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담대하게 역사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까? 또 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고난이 있는 것입니까? 바울은 회심 후 인생의 목적은 오로지 복음전파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빛이 전파되자 곳곳에서 어두움의 세력들이 저항하고 바울을 핍박하였습니다. 이후 바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난 없이는 사역이 불가능하였습니다.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또 고난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전도 현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얻은 귀한 영적 체험을, 어쩌면 바울의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편지에서 사랑하는 영적 아들이요, 바울 자신을 이어 역사를 섬길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간곡하게 고난을 잘 감당하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고난을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먼저는 복음의 관점입니다. 복음의 관점이 있는 사람은 고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 21).
다음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필리핀에 갔다가 강도로부터 총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도망가려고 아무리 해도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감당할 수 없는 위기와 고난을 당하면 몸과 마음이 꼼짝할 수 없이 될 것입니다. 아마 바울도 이런 숱한 어려움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고난을 감당하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마 10:18,19). 그리고 바울은 기도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왜 고난을 받으면서까지 복음을 전하는지 설명합니다. 9,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바울을 부르심이, 바울의 행위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영원 전부터 예정된 은혜임을 말합니다. 바울에게 임한 이 은혜의 역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믿는 자를 죽음과 심판에서 구원하시고, 썩지 않는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바울도 과거 성도들을 체포하던 핍박자에서, 복음전도를 위해 어떤 고난도 감내하는 사도로 회복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바울이 행한 악행를 보셨다면 어떻게 그를 받아주실 수 있었겠습니까? 복음의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바울을 오히려 긍휼히 여기시고 사도로 부르심은 은혜 중의 은혜였습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감사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 1:14) 그러므로 바울에게 복음 전파는 무조건이었습니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져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거룩한 소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합니다. 이는 디모데도 잘 알고 있지만 다시 굳게 붙들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 같이 11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선포자’는 복음을 알리고,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세상으로 파송되어 복음을 전하는 사람, ‘교사’는 성경선생으로 복음을 가르치고 깨닫게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이러한 선포자, 사도, 교사들을 통해 널리 전파되고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그 결과 죄의 사슬에 매여 소망이 없고 무기력한 삶을 살던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소돔, 고모라와 같았던 도시가 변화되어 성경 읽는 소리, 기도 소리, 찬양이 끊이지 않고 들리는 도시로 변모하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나라가 설 곳을 잃어버리는 것과 비례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종은 구원역사를 위해 선포자요 사도요, 교사 등 multi-player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우심을 입었노라’의 원문은 과거 수동형입니다. 누가 세우신 것입니까? 1, 9절에서 바울은 미리 언급하였습니다. 영원 전에 이미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디모데가 바울의 영적 아들이 되고,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도 오로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 지성인을 위한 복음의 선포자요, 사도요, 교사로 세우시고 임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연히 목자님께 피싱을 당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사실 저도 신앙생활한 지 40년이 거의 되어가지만 이 목자의 삶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목자된 것을 저 자신도, 그 외 누구도 변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에 세우신 것을 믿기에 때로 내 스타일에 맞지 않고 피곤할지라도 모두 부인하고 지금껏 허급지급 따라왔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이 시대 목자로 부르신 은혜를 감사 찬양 드립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우리가 큰 자부심과 확신 속에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다 같이 함께 큰 소리로 읽겠습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지 또 누가 뭐라 하든지 이 확신 속에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바울은 또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확신을 드러내는 것도 있지만 디모데로 하여금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신뢰할 분인가 잘 알고, 또 그 하나님께서 ‘자신이 의탁한 것’ 곧 바울 자신이 지금까지 전한 복음의 말씀과 사역을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지키실 줄을 확신하였습니다. 즉 그는 현재 감옥에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통치하시며 택하신 자들을 통해서 복음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을 지라도 오히려 기쁨으로, 자원하여, 적극적으로 감당하였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일꾼입니다. 그 세움과 임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지만, 감당하는 것은 우리의 몫으로 수고가 따릅니다. 때로는 바울과 같은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적극적으로 감당하고자 방향을 정하면, 감당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부어주십니다. 이는 바울이 증거하고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수동적으로 소극적으로 마지못해 받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뛰어난 하나님의 종이요 목자가 되는 비결은 적극적인 고난의 대가 지불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시 디모데에게 간절히 부탁합니다. 다 같이 13, 14절을 읽겠습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지키고, 지키라’ 두 번 강조되어 나옵니다. 이 '지키다'의 원어는 '카테코'인데, '굳게 붙잡다'라는 뜻입니다. 땅이 씨앗을 꽉 붙잡고 있으면 그 씨앗은 열매를 맺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목자 바울에게 배운 것을 굳게 붙잡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디모데가 무엇을 꽉 붙잡아야 합니까? 첫째는 바울에게 들은 ‘바른 말’, 곧 ‘복음’입니다. 복음이 당시 대표적인 이단사상인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에 의해 변질되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의 복음 수호자요 변증자로서 추호도 흔들림 없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꽉 붙잡아야 할 것은 바울이 부탁한 ‘아름다운 것’ 즉 ‘복음 전파의 사명’입니다. 이 ‘아름다운 것’을 NRSV 성경은 ‘보물, 보화(treasure)’로 번역하였습니다. 바울이 그처럼 고난을 감당한 것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귀한 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디모데와 같이 복음 전파에 온갖 수고를 하므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보배로운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화를 버리고, 당시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이 목자 바울을 버렸습니다. 부겔로나 허모게네는 한 때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꽉 붙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중에 ‘유익한 자’란 뜻의 이름인, 오네시보로는 끝까지 바울 곁에 남아, 그를 격려하고, 부지런히 찾아와 섬겨주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의 섬김이 너무 감사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에 그가 주의 긍휼을 입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모든 사람이 떠나든 말든, 이 시대 오네시보로와 같은 충성스러운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처음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너무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말씀을 보면 볼수록 머리가 아팠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의 너무 높은 영적인 경지와 현재 저의 상태 사이에 갭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깊이 묵상할수록 정말 저에게 가장 맞는, 필요한 말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두려움이 많고 소심한 자였습니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허무가 늘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크게 요동하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점차 말씀 안에서 믿음을 덧입게 하셨습니다. 지난 7년간 거의 거르지 않고 새벽기도모임에 오게 하시고, 전세계 선교사님, 주위 동역자, 가족 그리고 친척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를 통해 저를 서서히 기도의 종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또 일용할 양식 발표훈련을 통하여 주일 메시지를 섬기는 기초를 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이 시대 복음 선포자요 사도요 교사로 쓰고자 하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아직도 조금만 방심하면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할 때가 있습니다. 또 자녀들의 장래에 대한 염려와 이 시대 제자 양성에 대한 부담도 자주 저를 가라앉게 만듭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저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영을 새롭게 덧입도록 하십니다. 제가 바울처럼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감당하며 이 시대 선포자요 사도요 성경선생으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요 사도요 교사로 세우셨습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영을 덧입고 말씀 전도에 충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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