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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1-08 (토) 19:31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신년_제3강-1.hwp (31KB) (Down: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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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신년 제3강]열 둘을 택하신 예수님
2022년 신년 제3강                                                             오정훈

열 둘을 택하신 예수님
말씀/누가복음 6:6-19
요절/누가복음 6:12,13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12사도를 택하여 세우십니다. 그들은 보잘 것 없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 안에 있었을 때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큰 소망과 비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간 부족하고 연약한 나 한 사람을 택하시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깊이 영접하고 예수님을 본받고 배우므로 이 시대를 섬기는 열 두 사도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오른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님(6-11)

6절을 보십시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 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앞에서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고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받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때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그렇게 했음을 아시고 적극 제자들을 변호해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안식일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안식일 예수님이 사람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회당에 들어가시자 뭐 고소할 거리가 없는지 엿보고자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거기에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외경에 의하면 그는 석공이었는데 일을 하다가 오른손을 다쳐서 전혀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한 손이 마르면 시각적으로 다른 사람이 볼 때 불편함을 주어 자의식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더운 여름에도 반팔 옷을 입지 못하고 긴팔옷을 입고 오른손을 호주머니 깊숙이 넣고 다녔을 것입니다.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오른손이 말라 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이 사람은 빌어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 어둡고 운명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 손 마른 것으로 인해서 마음도 마르고 생각도 마르고 그의 인생 전체가 말라버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 사람은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을 가지고 어찌하든지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백성의 목자가 되어야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불쌍한 사람의 처지를 이용해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얻고자 하는 악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양을 탈을 쓴 늑대들이요 양들을 삼키고 자기 몸만 기르는 사악한 목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악한 생각을 아시고 한 손 마른 자에게 일어나 한 가운데 서라 말씀하셨습니다. 다 알고 계시면 저들의 악한 의도에 걸려들지 않도록 안식일을 피하시는 것이 상책인데 예수님은 이 사람을 한 가운데 세우심으로 그들에게 정면 도전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안식일이 어떤 날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그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9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안식일은 본래 하나님이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기억하고 그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이 본뜻과 무관하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율법에 매여서 39개 범주에 1261가지의 세부규칙을 정해놓고 이를 무조건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불을 피워서 음식을 해서는 안 되고, 1km 이상 걸어서도 안 되고 특히 응급환자가 아니면 어떤 병자도 치료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피가 나면 싸매기는 해도 되지만 약을 바르면 안 되었습니다. 하여튼 뭐라도 하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이라도 안식일에 꼭 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할례입니다.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기초해서 안식일이라도 반드시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그것은 할례의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에 안식일이라도 행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안식일이라도 해야 할 일은 하는 것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로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이사야서 58장13,14절 말씀처럼 오락을 구하고 자기만족과 즐거움을 위한 것을 금하라는 것이지 무조건 아무것도 다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힘쓰는 날입니다. 그렇게 할 때 마음에 참된 기쁨과 안식이 임하게 됩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여기서 선을 행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것은 손 마른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라 볼 수 있고 악을 행하는 것과 죽이는 것은 고쳐줄 수 있는데도 고쳐주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 손 마른 사람을 누구나 다 고쳐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도와주지 않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소극적으로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배가 기울어져 침몰할 위기에 처하자, 학생들을 남겨두고 자기들만 몰래 먼저 빠져나왔습니다. 만일 그들이 죽어가는 학생들을 살리려고 퇴함명령을 빨리 내리고 최선을 다했다면 모든 사람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었는데도 학생들을 버려두고 가장 먼저 탈출하므로 많은 사람을 죽게 하는 무서운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뭔가를 해서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죄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삼하12:23) 이는 자신이 기도하지 않을 때 이스라엘이 돌이켜 우상숭배자가 되어 결국 생명을 잃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선을 행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내가 드리는 한 번의 새벽기도와 금요철야기도가 어둠과 절망에 빠진 형제 자매를 건져서 빛과 생명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이를 믿고 열심히 기도하고 때를 따라 말씀을 주므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종교지도자들은 마음이 완악해져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함을 아시고 한 손 마른 자에게 그 손을 내밀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불쌍하다고 무조건 고쳐주지 않으시고 그에게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부끄럽다고 손을 감추거나, 지금 손을 내밀었다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안식일 지나서 찾아뵙겠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말씀에 순종해서 믿음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말랐던 손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을 그토록 어둡고 운명적으로 만들던 한 손 마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병든 내면이 나음받기 위해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병든 손을 믿음으로 내밀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의사도 환자의 상태가 너무 나쁘다고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습니다. 다만 불쌍히 여기고 치료해주고자 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위험과 불이익 속에서도 선을 행하시고 생명을 구해주시는 병든 영혼의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세상에는 본문의 한 손 마른 사람처럼 어둡고 운명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broken family로 인한 상처, 희망 없는 미래로 인한 어두움, 학벌과 신체적인 열등감과 비교의식으로 내면이 말라 그것을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울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 부담스럽고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모른 척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특히 안식일에 이런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초청하여 말씀으로 섬겨서 그 안에 생명의 빛이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렇게 불치병으로 고통받던 사람이 낫게 되면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악을 도모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 목자요 영혼의 감독자들이 아니라 실상은 악을 행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독사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희망이 없음을 아시고 새로운 희망의 역사를 시작하고자 하셨습니다.

2. 열 둘을 택하신 예수님(12-19)

12절을 보십시오.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예수님은 당신을 죽이고자 하는 악한 시대에 어떻게 하면 구원역사를 이루실까 방향잡기 위해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밤을 새워 기도한다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밤을 새워 기도하셨다는 것은 그만큼 이것이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실 때 겟세마네에서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그 시대를 섬기고 구원역사를 이어나갈 사도들을 세우기 위해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이 역사는 표면적으로는 완악한 종교지도자들로 인한 것 같지만 실상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세우신 것처럼 12사도를 세워 새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루고자 처음부터 계획하신 것이었습니다. 1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날이 밝자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제자들 중에서 열 두 명의 사도를 택하신 것을 보면 제자와 사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정의의 사도란 말을 자주 쓰는데 제자가 ‘스승을 본받고 배우는 사람’이라면 사도는 ‘어떤 특별한 사명을 위해 전권을 위임받아 보내심을 받은 전권대사(ambassador)’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사도란 어디를 가더라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교회를 세울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책임감과 인내심, 또 고난을 힘써 감당하며 성령을 의지해서 개척역사를 섬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고 부족한 자신으로 인해 나 같은 사람이 사도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항상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하면 ‘가정 교회’를 이루기 때문에 이미 사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 달에 결혼한 남동희 목자님도 이미 사도가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 말고 확신을 가지고 사도로 쓰임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사도로 부르신 12명의 면면이 어떠하며 이들에게 두신 예수님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14-16절까지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인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첫째로 그들은 평범하고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어부들이고, 마태는 세무공무원이며, 셀롯인 시몬은 우리로 치면 운동권출신의 열심당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직업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4:13a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라는 기록을 보면 그들이 가방끈이 짧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학벌도 없고 백도 없고 능력도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연약하고 허물이 많은 자들이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수제자 베드로는 큰소리는 잘 쳤지만 자기가 한 말도 지키지 못하는 실수와 허물투성이의 사람이었습니다. 계집종의 추궁에 겁을 먹고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고자 하는 야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요 불을 내려 사람들을 심판하고자 하는 붙같은 성격의 배타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빌립은 너무 계산이 빠르고 마태는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으며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의리는 있었지만 쉽게 믿지 못하는 의심의 사람이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아들 유다는 여기만 이름이 나오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어디 취직하더라도 왜만한 스펙으로는 어림도 없는데 이렇게 보잘 것 없는 그들이 어떻게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을까요? 둘째로 그들을 인류의 스승으로 키우고자 하는 예수님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연약하고 부족했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랐을 때 곧 인류의 스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을 사도요 새 이스라엘의 12기둥으로 세우고자 하는 예수님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합니다. 히딩크 감독이 있어서 박지성 선수가 탄생할 수 있었듯이 누구든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위대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이름 시몬처럼 조약돌 같이 작고 연약한 자였지만 베드로 곧 반석으로 부르신 주님의 소망으로 인해 교회의 반석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 불을 내려 사람들을 심판하고자 하던 배타적인 요한이 변화되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고백하는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기적인 세리 레위는 임마누엘의 사랑을 깨닫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성 마태가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지금은 세계적인 목자가 되신 두 분이 학생시절 장막을 하면서 자주 다투었다고 합니다. 서로 허물과 약점을 감당해주지 못해 서로에게 ‘니가 목자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말했다 합니다. 그러나 두 분 다 그냥 목자가 아니라 아주 위대한 목자님들이 되었습니다. 이는 이분들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이 분들을 부르신 예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변하여 위대한 사도요 구원역사를 섬기는 12기둥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 예수님의 소망이 이를 반드시 이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인간적으로 부족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부르심을 받았을 때 모두 믿고 순종하는 위대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자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는 이처럼 믿고 순종하며 겸손히 배우는 자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인간적으로 훌륭하였지만 교만하여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지 않고 판단하고 정죄하였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성장이 없고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겸손히 순종하여 배울 때 우리도 이 시대 사도요 교회 12기둥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12명은 너무 적은 것이 아닌가 말하기도 합니다. 당시 바리새인 숫자가 대략 6000명이니까 그들에게 맞서려면 일당백이라도 60명은 있어야 하지 않나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12명을 세우셨습니다. 12명은 완전한 숫자로 소수 정예의 제자양성 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원래 명품이란 것이 마구 찍어내지 않고 소수로 아주 조금만 확실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은 분명 세상을 향해 소수지만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본받은 세상을 빛내고 변화시키는 명품들입니다. 소수일지라도 열두 사도 같이 하나님 역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젊은 지도자들이 있을 때 우리 모임의 장래도 희망이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도 소수이지만 복음 역사에 헌신된 충성된 믿음과 자세가 분명한 제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열 둘을 부르시고 산에서 내려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17,18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산에서 내려온 현실세계는 각종 병들고 귀신들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역사를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 가지 일을 하심으로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둘째는 병과 같은 실제적인 문제를 돕고, 셋째는 귀신들린 영적인 문제를 안고 고통 받는 자를 돕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 세 가지 일을 해야 하는데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자립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심정과 믿음 헌신하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예수님에게서 능력이 나갔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성령이 임하였고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가르치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제자들도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사도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성령이 임했을 때 그들도 능력 있는 사도가 되어 많은 무리들 앞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역사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병든 자를 치유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역사를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한 자신으로 인해 절망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이런 열두 사도가 될 수 있음을 믿고 예수님을 본받고 배우기에 힘쓰므로 이 시대를 섬기는 12사도들로 쓰임받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연약하고 부족하여 아무런 자격이 되지도 않는 저도 부르시고 구원역사에 쓰시는 하나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신입생 신체검사 때 성경 공부할 할 생각이 있나요 라는 설문의 답 ‘예’와 ‘아니요’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저는 그 한 가운데 동그라미를 친 아주 완악하고 소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도 신입생 환영 바이블 아카데미에 초청해 주시고 창세기 1장 2절 말씀으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영접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과 2학년 부활절 수양회에서 과연 살아나신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부활신앙을 갖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면이 연약하여 졸업 후에도 치과의사로 살 자신이 없어서 보건지소 골방에서 매일 입지도 않을 군복이나 다리며 세탁소나 할까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결혼으로 인도하시고 가정교회를 세우게 하시므로 조금씩 변화시켜서 주셨습니다. 2003년 주가 쓰시겠다 하라 말씀에 순종해서 자신을 드리고자 결단했을 때 하나님은 센터역사를 살피고 섬기는 종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또 어둠과 절망 가운데 한 손마른 자와 같던 천수원 목자님을 섬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생명을 살리기 위한 헌신과 수고만이 영원히 남고, 별과 같이 빛나는 가치 있는 삶임을 깊이 있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소망으로 인해 있으나마나 한 인생에서 예수님의 제자요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목자로 쓰임 받게 된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오래 지속되면서 많은 것을 비대면으로 하게 되자 무슨 역사가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어린 것 같고 성장이 없어 보였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하는 일대일이 무슨 소용이 있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화기 너머든 창문 너머든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고 소수정예의 역사를 이루고 계셨습니다. 솔직히 누구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저 사람이 과연 목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던  몇 몇 사람들이 지금 훌륭한 목자님들이 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소망과 열심이 반드시 이를 이루게 됨을 보게 됩니다. 이는 주께서 열둘을 택하사 세우시고 이 시대를 섬길 사도로 키우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도 이 하나님의 소망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사 사람들을 키우고 세우는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 가운데 확신을 가지고 영육 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섬기고 돕는 성경선생이요 목자의 직분을 변함없이 감당해나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2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코로나도 극복하고 취업과 결혼 자녀양육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나 한 사람이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본받고 배우는 사도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와 함께 하사 성령을 넘치도록 부어주셔서 말씀을 가르치고 병든 자를 치료하며 귀신을 내어좇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을 붙들고 제자훈련을 잘 받으므로 이 시대를 섬기는 12사도로 성장하고 쓰임받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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