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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1-22 (토) 19:55
분 류 민수기
첨부#1 2022년_민수기_제11강-1.hwp (58KB) (Dow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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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민수기 제11강]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모세와 아론
2022년 민수기 제11강                                     김반석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모세와 아론
말씀/ 민수기 20:1-29
요절/ 민수기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광야 생활 후기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출애굽 세대를 이끌었던 미리암과 아론이 죽고, 모세의 죽음이 예고됩니다. 모세는 200만 명이나 되는 노예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년 동안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백성들을 온 마음을 다해 섬겼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경고를 받게 됩니다. 이 시간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기에 힘쓰는 믿음과 순종의 사람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Ⅰ. 모세와 아론을 징계하신 하나님(1~13)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은 출애굽 제 40년이 되던 해 1월(태양력으로는 3~4월)에 신 광야에 도착하여 가데스에서 진을 쳤습니다. 이곳은 38년 전 12명의 지휘관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부정적인 보고를 해서 백성들을 불신에 빠뜨렸던 곳입니다.(민13장)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출애굽 1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민14:30,33)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 자손은 38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다가 1세대의 대부분이 죽고, 당시 20세 미만과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들이 주축을 이뤄 이곳으로 다시 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소망 가운데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실 물이 없자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와 항의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이 장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전 르비딤에서 물이 없다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던 때와 비슷합니다.(출17:1~3)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여 목마름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당시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들이 분명히 여기에 있습니다. 설령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 광야 세대라고 하더라도 매일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셔서 양식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옷이 해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신8:3) 하나님이 그들 앞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십니다.(출13:21.22) 1,2년 후에는 광야 생활이 끝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소망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소망을 붙들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 도와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싹 다 잊어버리고, 조상의 망령된 행실을 좇아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노래 잘하는 앵무새와 욕 잘하는 앵무새가 있었다고 합니다. 주인은 욕 잘하는 앵무새를 노래 잘하는 앵무새와 함께 있게 하면 노래를 배워서 욕을 안 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출근할 때 같은 새장에 넣어두었습니다. 퇴근 후 욕 잘하는 앵무새가 즐겁게 노래할 것을 기대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듀엣으로 “야! 주인 새끼 온다!”라고 했답니다. 이처럼 원망과 불평하는 죄는 쉽게 퍼집니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이 원망할 때 감정적이 되어 다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백성들을 떠나 회막 문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영광의 광채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함께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면 진노하시고 징계하셨습니다.(11:1,33,14장,16:35,49) 왜냐하면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과 사랑을 불신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이 백성들을 책망하시거나 징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 길을 걸으며 많은 고생을 하고, 너무 지친 상태에서 마실 물조차 없어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연약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이해하시고 물 문제를 해결해주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원망하는 백성들의 대부분은 광야 세대들입니다. 그들은 부모가 범한 죄 때문에 38년 동안 광야에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장차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새 세대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물이 없어 죽을 지경에 이른 그들이 반석에서 물이 나와 마시게 되었을 때, 환호성을 지르며 전능의 하나님, 은혜와 긍휼과 인자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찬양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갖고 아론과 함께 백성을 모으고 그들 앞에서 반석을 향해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40년 전 르비딤에서는 반석을 치라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단순히 물을 내라는 명령만을 요구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지팡이를 잡았습니다.(9) 출애굽 후 여기까지 모세의 순종은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은 백성을 반석 앞에 모아 놓고 어떻게 했습니까? 10b절을 보십시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지금까지 모세는 습관적으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백성들을 품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진멸하고자 하실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그치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자신의 목숨을 걸고 기도하기까지 했습니다.(출32장)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사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고맙다는 말은커녕 두 번이나 돌로 치려고까지 했습니다. 네 번도 아니고, 4년도 아니고, 무려 40여 년간 인내하며 섬겼는데 습관적으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백성들을 보니 더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퍼부었습니다. 시편106:33절은 모세가 망령되이 말했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혈기에 충만하여 너희 같은 반역자들을 위해 우리가 반석에서 물을 내야 되겠느냐며 분노를 표출한 것입니다. ‘우리가’라는 말을 통해 아론도 모세의 망령된 언행에 동조하거나 방조한 것이 분명합니다. 모세는 마치 자기가 반석에서 물을 내서 백성들에게 물을 줄 수도 있고, 심판할 수도 있는 사람처럼 행세하며 혈기를 부렸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하고 불평하는 그 입을 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대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힘차게 내리쳤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언행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가 치고자 했던 그 백성에게 기적을 보이시고, 그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인내와 자비를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백성들은 하나님만이 그들의 진정한 구원자이시오, 목자 왕이심을 믿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이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순종하였다면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혈기를 절제하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다 함께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지금까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느라 뼈 빠지게 고생했는데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니!! 모세와 아론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멘붕에 빠졌을 것입니다. 모세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겸손하고(민12:3), 하나님의 집에 충성한 종이었습니다.(히3:5) 지금까지 너무 잘했는데, 한 번 정도는 봐주셔도 되지 않나? 너무 가혹한 형벌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나친 형벌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이 치명적인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반석에게 명령만 했으면 되는데, 자기 경험에 기초하여 반석을 내리쳤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모세가 반석을 쳐야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한 분이십니다. 모세가 이 하나님을 믿고, 단순히 순종하여 명령만 하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반석에서 물을 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믿음과 순종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순종도 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반역자라고 불렀지만 결국 자신도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므로 반역 죄인이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언행은 백성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신중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자신의 언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약한 양들이 범하는 죄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시지만, 지도자가 범하는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십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악평하여 백성들을 절망에 빠트린 열 명의 지휘관들은 하나님이 재앙으로 치셔서 다 죽은 사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민14:36,37) 그러므로 지도자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기에 힘써야 합니다. 거룩은 ‘구별’과 ‘완전함’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지도자라고 해서 자기 임의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뜻을 완전히 나타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도자로 세우신 것은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월권행위입니다. 모세와 아론에게는 반석에서 물을 내거나 내지 않을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명령대로 행하는 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백성들에게 화를 내고, 마치 자신들이 기적을 이루는 것처럼 말하고,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하나님은 모세의 불순종과 상관없이 친히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백성들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징계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셨습니다. 인간은 연약해서 허물과 실수가 많지만, 하나님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시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하사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영적 지도자들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지도자들이 성적인 문제, 돈 문제 등의 비리에 연루되어 국민에게 신뢰를 잃으면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고 하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물며 영적 지도자들에게는 이들보다 더욱 높은 도덕성과 함께 영적 성숙함과 거룩한 영성이 요구됩니다. 양들은 지도자의 언행 하나하나에 은혜를 받기도 하고, 상처받고 실족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지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두렵고 떨림으로 언행에 신중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존경받는 목회자 중에 이중표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도 한때는 혈기를 부린 적이 있습니다. 설교할 때 조는 성도가 있었는데, 단상에서 그를 향해 성경책을 집어 던지며 욕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여 교회를 물러났습니다. 그 후 목사님은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다시 교회를 개척했는데, 누구보다 온유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지도자가 감정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우리가 양들을 섬기면서 또 동역자들과 역사를 섬기면서 감정이 쌓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표출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간적으로는 마음이 후련할지 모르지만,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주어 사랑의 관계성이 깨져 버립니다. 영적 성장을 가로막고, 합심 동역할 수 없게 됩니다. 나의 분노와 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자기를 과시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향력이 큰 위치에 있을수록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만을 나타내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고전10:31) 물론 완악한 사람을 책망하여 회개하도록 돕고, 제자양성을 위해 훈련을 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되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치고 싶은 감정이 들 때 절제의 영을 주시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인내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군병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시고 갈대로 머리를 맞으며 희롱당하실 때도 참으셨습니다.(마27:29,30) 십자가에 달려 고난받으실 때 지나가던 사람들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 자신이나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왕이여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고 조롱했습니다.(마27:39~42) 이때 만일 예수님이 감정적이 되어 내려오셔서 그들을 진멸하셨다면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끝까지 인내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저는 자기 의와 혈기가 충만한 자였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 지도, 교회에서는 양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미성숙한 자인가를 깨닫고, 깊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배우는 생활에 힘쓰고자 투쟁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사랑, 오래 참음, 온유와 절제 등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지만, 언행에 더욱 신중하고,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믿음의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주님의 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근원이시며 우리 믿음을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므로(히12:2),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믿음과 순종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드러내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Ⅱ. 돌아가게 하시는 하나님(14~29)
14~21절은 이스라엘이 에돔 땅을 우회하게 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돔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 에서(에돔)의 후손들이 사는 거주지 또는 그 민족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당시 사해 남서쪽에 있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북쪽의 험한 산맥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요단강 동편의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따라 모압과 암몬 지역을 거쳐 가나안으로 가고자 갔습니다. 그 길을 가려면 북동쪽의 에돔 땅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사신을 보내며, 조상 야곱과 에서(에돔)의 혈육의 정을 근거로(신23:7a)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이라고 소개한 후, 어떻게 가데스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에돔 땅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 에돔 땅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두 번이나 간절히 부탁했습니다.(17,19) 하지만 에돔 왕은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땅을 빼앗을 것으로 생각하여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에돔 땅을 지나간다면 전쟁도 불사해야 할 것이라고 엄히 경고하고,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나와서 막았습니다.(18,20) 이번에는 모세가 혈기를 부리지 않고, 멀고 힘든 길로 우회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는 에돔과 다투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신2:4,5) 결국 이스라엘은 할 수 없이 거기서 발길을 돌려 다시 홍해 길을 따라 에시온 게벨까지 내려갔다가 에돔 땅을 우회하여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짜증이 나고 힘들었겠습니까? 이로 인해 21장에 가면 백성들의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쉽고 빠른 길을 가며,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상하게 일이 꼬여 돌아서 더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돌아가게 되면 시간과 물질과 인생이 허비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이 들고, 조급하면 분별력을 잃게 되어 나름대로 하다가 실패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셉은 청년의 때 얼마나 멀리 돌아갔습니까? 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꿈, 지도자가 되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습니다. 형들의 시기심으로 노예로 팔려 가고, 성추행범의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습니다. 이로 인해 무려 13년이나 돌아갔습니다. 만일 그가 13년 동안 복수심에 불타 신세 한탄하며 운명적이고, 부정적이고, 우울하게 살았다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생 전 과정을 하나님의 선한 주권과 섭리 편에서 바라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돌아가는 것 같고, 실패한 인생 같았지만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총리로 높이시고, 구원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사실 돌아가는 것이 힘은 들지만, 나에게 주신 연단으로 영접하고 인내하면 하나님이 기도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시고,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지체되더라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며 묵묵히 기도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하여 남보다 조금이라도 느리면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빨리 간다고 성공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려다가 부실시공으로 큰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녀가 현재 공부를 못한다고 쥐어짜지 않아도 됩니다. 오랫동안 성경 공부한 양이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당장 취업이 안 된다고 안절부절 서둘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빨리 가는 것보다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잠16:9)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빠르고, 정확하고, 승리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잠16:3)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롬8:28)

이스라엘 자손이 호르산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4~26절을 보십시오. “아론은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까닭이니라.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 산에 올라.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모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모든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혔습니다. 옷을 벗겨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입히는 것은 직위를 이양하는 의식입니다. 아론의 대제사장직은 엘르아살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아론은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으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산꼭대기에서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30일 동안 그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이로써 아론의 생애는 막을 내렸습니다. 얼마 후에는 모세도 죽고, 여호수아가 그의 후계자가 됩니다.(민27:22,23) 이제 1세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광야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결론입니다. 율법을 전수한 모세나 대제사장 아론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임을 배웠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라도 율법을 100% 지킬 수 없고, 율법으로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받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따를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모세와 아론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믿음과 순종의 사람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종으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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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4강]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관리자 2022-04-03 196
74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강]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03-28 177
74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강]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관리자 2022-03-20 203
74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강]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관리자 2022-03-13 224
745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7강]이스라엘의 노정과 기업 분배 관리자 2022-03-06 209
744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6강]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관리자 2022-02-27 205
743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5강]절기와 제사 관리자 2022-02-20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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