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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1-30 (일) 08:23
분 류 민수기
첨부#1 2022년_민수기_제12강-1.hwp (59KB) (Dow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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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민수기 제12강]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2022년 민수기 제12강                                                       고 영훈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말씀 / 민수기 21:1-35
요절 / 민수기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수기 20장 까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반역으로 끊임없는 실패의 역사였습니다. 출애굽 1세대는 광야 38년 기간 동안 이러한 실패의 역사 가운데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2세대들을 광야 기간 동안 훈련하셨습니다. 이들은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약속의 땅에 들어갈 만한 믿음과 내면성을 갖추게 하셨습니다. 오늘 민수기 21장부터는 이들 광야 세대 이야기를 다룹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훈련하시며 소망 가운데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시는가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새로운 세대들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믿음과 순종의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잘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I. 놋뱀을 쳐다보게 하신 하나님(1-9)
1절을 보십시오. 지금 이스라엘이 거하고 있는 곳은 가데스 바네아 지역 호르산이고 아론을 장사 지내고 30일 동안 그를 위해 애곡한 후였습니다. 14장에서 가데스 바네아를 떠나 38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받다가 다시 가데스 바네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 때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다림 길’은 ‘정탐 길’이란 뜻입니다. 38년 전에 열두 명의 두령들이 이 길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바로 그 길이었습니다. 아랏 왕은 이스라엘이 정탐의 길을 따라 온다는 첩보를 듣고 자기들과 싸우러 오는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이끌고 나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랏 왕의 공격을 받아서 몇 사람이 포로로 끌려가자 여호와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이후 하나님께 한 번도 서원기도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힘든 일이 생기면 먼저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런데 광야 세대는 어려움이 닥치자 놀랍게도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했습니다. ‘서원’이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하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위급하거나 어려울 때 누구를 찾고 의지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서원 기도는 그 사람의 신앙을 알려 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서원 기도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랏 왕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한 후에 서원한 대로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진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고 했습니다. ’호르마‘는 ’진멸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곳 호르마는 38년전 가나안 정탐 사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아말렉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에게 나아갔다가 패배하여 도망친 곳입니다. 그러나 이 번 전쟁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함께 하셨고, 가나안 사람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38년 전에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 싸웠다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나안 땅에 입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쟁취할만한 믿음과 내면성이 없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하여 도망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38년 동안 방황하다가 모두 죽게 된 것입니다. 그들 1세대들의 믿음 없음과 죄악으로 인해서그 자식들은 38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오랜 기간 동안 자식 세대를 훈련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마다 하루 분량의 일용할 양식을 거두었습니다. 이 일용할 양식 훈련으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매 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훈련과 율법 훈련을 통하여 노예 백성에서 규모 있는 백성들이 되어 갔습니다. 이렇게 광야 세대들은 광야 훈련을 받으면서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부모세대들이 두려워하고 패하였던 가나안 사람들과 싸워서 그들을 진멸하였습니다. 이 모습은 훈련 받은 백성과 훈련 받지 못한 백성의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내면성은 한 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38년이란 오랜 시간 훈련을 받으면서 믿음이 성장하였고 믿음의 심지가 견고해졌고 담대한 용사들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이스라엘은 에돔 땅을 지나 왕의 대로를 따라 모압 평지에 이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에돔 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홍해 길을 따라 에시온 게벨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했습니다. 그 길은 좁고 험난하고 멀었습니다. 왕의 대로가 고속도로라면 이 길은 비포장된 산악 길이었습니다. 이런 힘든 길을 천막과 각종 살림살이를 짊어지고 행군해야만 했습니다. 연약한 여인들과 아이들은 힘들어서 땅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에돔 왕 때문에 이 고생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신 8:2,3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든 여정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이 상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상했다‘는 것은 어떤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이 조급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인내심이 바닥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사람은 힘들면 악한 본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들은 훈련을 받아서 부모세대보다 약간의 나은 면이 있었지만, 힘들면 불평하는 죄악된 습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불만 수위는 이전보다 높았습니다. 그동안 매일 먹어 왔던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만나에는 삶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다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이 만나를 먹고 생명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런 귀한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호르마에서 큰 승리를 거둔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심각한 불평을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마음이 변덕스럽습니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은혜를 받으면 금방 좋아했다가 고난이 닥치면 금방 불평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훈련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더욱 싫어하십니다. 불평과 원망이 얼마나 큰 죄인가 우리는 이전 민수기에서 여러 번 살펴봤습니다. 부모세대가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만 했던 것이 불평하고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심히 분노하셨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 지라” 하나님은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물려 죽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죽은 자가 광야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전과는 다른 놀라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지금까지 반역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보면 항상 모세가 땅에 엎드리고 먼저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중보 기도를 모세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험난한 길로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지만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즉시 회개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모든 어려움을 모세 탓, 하나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이들은 불뱀 사건을 통해서 자신들의 죄악이 이러한 심판을 초래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죄악을 깨닫는 것은 엄청난 변화의 역사입니다. 죄를 깨닫게 될 때 비로소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또 다른 변화가 엿보입니다. 이전 세대는 모세를 하나님의 종으로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광야 세대들은 불뱀 사건을 통해서 모세를 자신들의 지도자로 깊이 인정하므로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광야 세대는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모세를 지도자로 인정하게 되는 놀라운 내면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광야 훈련을 통해서 마음이 많이 낮아지고 겸손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자 하나님은 구원의 방법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구원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8,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매달라고 하셨습니다. 뱀에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곧장 놋뱀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장대위에 높이 매달았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아났습니다. 불뱀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제시하신 하나님의 방법은 문득 이해가 되지 않는 신기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실 수도 있었고, 모든 불뱀들을 없애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뱀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하나님은 백성들이 뱀에게 물렸을 때 놋뱀을 쳐다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만 살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가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면 장대위에 높이 달린 놋뱀을 바라보면 살 수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쳐다보는 행동은 뱀에게 물려 1초라도 빨리 치료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 버리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입니다. 자, 광야에서 백성 중에 두 사람이 뱀에게 물렸습니다.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똑똑하다고 생각한 한 사람은 뱀에게 물리자 급하게 상처 부위에 입으로 피를 빼내고 싸맨 다음에 광야의 야전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지만 독이 온 몸에 퍼져 고열과 패혈증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좋은 다른 한 사람도 뱀에 물려 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혹시나 해서 눈을 들어 높이 매달린 놋뱀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뱀에게 물린 상처가 말끔하게 아물고 혈색이 돌아오고 치유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장에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십자가의 도)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증거했습니다(고전1:18,21). 하나님은 이 방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가 시험하셨습니다. 그리고 순종만이 그들이 살길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방법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길 뿐입니다. 불순종은 죽음이지만 순종은 생명입니다. 순종이 사람을 살립니다.

훗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만든 놋뱀이 어떤 마술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놋뱀을 숭배했습니다.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히스기야 왕은 이 사실을 깨닫고 모세가 만든 놋뱀을 부숴버리도록 했습니다(왕하18:4). 그리고 그것을 ‘느후스단’이라고 불렀습니다. ‘느후스단’이란 ‘놋조각’이란 뜻입니다. 모세가 만든 놋뱀은 그 자체가 신비한 능력을 지닌 성스러운 물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놋조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놋뱀 자체가 어떤 힘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데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순종할 때 우리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불신자들에게 이러한 말씀들은 우스갯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약속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만이라도 진심으로 순종하고자 할 때 우리는 놀라운 체험을 하고 깊은 믿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순종함으로 우리 모두가 깊은 믿음의 세계로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장대위에 달린 놋뱀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와 대화를 하시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체 성경의 요절이라 할 수 있는 3장 16절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놋뱀이 장대에 달린 것처럼 자신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들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바라본 사람들은 치명적인 불뱀의 독에도 불구하고 모두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들도 어떤 죄를 지었던지 모두 살아나게 됩니다. 인생은 아담의 타락이후 죄가 주는 독소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온갖 죄악이 인류 안에 파고들었습니다. 이러한 죄에는 반드시 형벌이 따릅니다. 그래서 이러한 죄를 지은 자마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로 인해서 죽어가는 인생들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인생들이 죄로 인해서 영원한 심판을 받기를 원치 않으시고 그들을 살리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방법으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높이 들리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장대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았을 때 살아 난 것처럼 이제 우리 죄인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볼 때 죄가 주는 고통에서 치유되어 영생을 누리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죽어가는 인생들에게 주신 생명의 처방인 것입니다. 세상에 죄로 인해 죽어가는 인생을 치유할 다른 처방은 결코 없습니다. 이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시간 죄로 인한 죽음의 고통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생명의 구원의 약속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 드립니다.

II.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행군을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10-35)
10-20절은 모압까지의 이스라엘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뱀 사건후부터 이스라엘의 행군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호르 산을 떠난 이스라엘은 오봇에 진을 쳤고, 오봇을 떠나 이에아바림, 거기를 떠나 세렛 골짜기, 거기를 떠나 마침내 모압의 경계가 되는 아르논 강에 이르렀습니다. 아르논 강은 모압과 아모리 족속의 경계로서 여호와의 전쟁기에도 기록된 경계선이 되는 지역입니다. 이스라엘의 행군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이제는 광야를 떠도는 방황이 아니라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한 힘찬 행진입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이 우물은 모세가 아니라 백성의 지휘관들과 귀인들이 판 것입니다. 모세가 행하던 일을 이제는 백성의 지휘관들도 능히 해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공급해주신 우물물을 풍족하게 마시고 찬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출애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찬양의 노래를 부른 적이 딱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출애굽하자마자 홍해를 건넌 직후에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신 권능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힘차게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쭉 없다가 바로 이곳 브엘에서 하나님이 주신 우물물을 마신 후에 노래로써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 불평만 일삼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것은 실로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가 가까워졌습니다. 이처럼 노래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맛다나에서 나할리엘에 나할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렀습니다. 회개하고 믿음의 눈으로 놋뱀을 바라본 광야의 2세대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행군하는 길에는 더 이상 불평이나 원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 되었고 전쟁에서도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21-32절은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의 땅과 야셀을 정복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왕의 큰 길을 따라 그들의 땅을 통과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시혼은 단칼에 거절하였고 도리어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대적들을 무찌르고 아르논에서 얍복까지 정복했습니다. 이전에 모압 왕에게서 시혼이 빼앗았던 헤스본 성과 모든 땅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거주하였습니다. 모세는 또 사람을 보내어 야셀을 정탐하게 하고 그 촌락들을 빼앗고 그 곳에서 아모리인들을 추방했습니다. 33-35절은 이스라엘이 바산왕 옥의 땅을 정복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이 바산 길로 올라가자 바산 왕 옥이 그의 백성을 다 거느리고 에드레이에서 싸우려 했습니다. 바산 길은 왕의 큰길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합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바산 왕 옥은 그의 침상의 길이가 4미터가 넘는 강하고 거대한 자였습니다(신3:11).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산 왕 옥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시혼 왕에게 행한 것처럼 바산 왕 옥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백성을 다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그의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도 1983년에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38년 이상이 지나온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신자 집안에서 나고 자란 제가 처음에는 아무런 영적인 기초도 없이 헤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 훈련과 매주 안식일 지키는 훈련을 시작으로 때마다 말씀 강사의 직분과 여러 영적 훈련들을 주시며 하나님이 쓰실 만한 사람으로 까지 성장시켜 주셨음을 인해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과 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날마다 바라보고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구원의 확신을 얻었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영접하고 난 후부터는 제 삶에서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고 믿음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저를 키워주신 하나님을 굳게 믿고 우리 모임가운데 자라나고 있는 신세대 양들과 가정의 2세들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잘 섬겨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38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훈련 받은 광야 세대는 출애굽한 부모의 세대와는 달랐습니다. 이들은 서원 기도 하였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모세에게 중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불뱀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을 배웠습니다. 브엘에서는 우물의 노래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서 승리했습니다. 이렇게 변화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38년 동안의 광야 훈련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이 오늘날도 우리를 훈련하시고 변화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이 변화되고 우리 모임이 더욱 더 영적으로 변화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이런 소망 가운데 주시는 영적 훈련을 기쁨으로 받고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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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3강]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관리자 2022-06-05 123
75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2강]자연과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 관리자 2022-05-29 159
75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1강]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 관리자 2022-05-23 134
755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0강]많은 죄 사함, 많은 사랑 관리자 2022-05-15 167
75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8강]원수까지도 사랑하라 관리자 2022-05-08 203
753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7강]열두 사도를 세우신 예수님 관리자 2022-05-01 191
752 누가복음 [2022년 부활절 특강]청년아 일어나라 관리자 2022-04-25 120
751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6강]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관리자 2022-04-17 234
75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5강]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관리자 2022-04-10 238
74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4강]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관리자 2022-04-03 196
74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강]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03-28 177
74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강]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관리자 2022-03-20 203
74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강]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관리자 2022-03-13 224
745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7강]이스라엘의 노정과 기업 분배 관리자 2022-03-06 209
744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6강]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관리자 2022-02-27 205
743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5강]절기와 제사 관리자 2022-02-20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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