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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23 (월) 20:40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11강-1.hwp (97KB) (Down: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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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11강]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
2022년 누가복음 제 11강                                                  한아브라함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
말씀: 누가복음 8:1-21
요절: 누가복음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누구나 열매 맺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 땅에 왔다가 열매를 맺고 열매를 남기고 떠나는 인생일 것입니다. 주님은 열매 맺는 비결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오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말씀을 주십니다. 주님은 여러 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셨는데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비유가 바로 오늘 말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말씀입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씨가 좋은 땅에 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씨가 좋은 땅에 떨어지면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고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땅은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좋은 땅은 어떤 마음 상태를 말할까요?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열매 맺는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받고 풍성한 열매 맺는 인생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새 열두 제자가 함께하였고’ 예수님은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기전 세례 요한도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선포했습니다. 주님은 공생애 기간 내내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땅에서 우리 마음에, 가정에, 교회에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이 부르시면 부활의 몸으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 전해야 할 메시지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때 누가 함께 했습니까? 열두 제자가 함께하였습니다. 12명은 사도로 세움을 받았지만 여전히 영적으로 어린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어린 제자들의 도움이 없이도 혼자서도 능히 복음 역사를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의 도움을 받으신 이유는 그들을 동역자로 삼아서 구원 역사에 동참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장차 예수님의 뒤를 이어 사도행전 역사를 감당할 자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3 절을 보십시오. 또한 여인들이 함께했습니다. 예수님의 든든한 조력자들로서 여러 여인들이 함께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함께 한 여인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곱 귀신 들렸다가 나음 받은 막달라 마리아, 교만 귀신, 게으름 귀신, 수다 귀신, 시기심 귀신, 사치 명품 결혼 귀신 등 일곱 귀신이 역사할 때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귀신들이 떠나가고 자유함을 덧입었습니다.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 그녀는 귀부인이고 부자였지만 중병에 걸렸다가 나음 받았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들은 죄 사함의 은혜, 병에서 나음 받은 은혜에 기초하여 자기들의 소유를 드려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귀한 향유 옥합을 쏟아부은 것처럼 아낌없이 주님께 쏟아 부어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이 두 여인은 함께 있었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수산나 그 외에 여러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여인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숫자에 들지도 못했죠. 그런데도 자신들의 소유를 드려서 주와 복음 역사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ubf도 자매님들의 헌신과 눈물의 기도를 먹고 부흥의 꽃을 피운 역사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드려 섬겼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은혜 받고 싶어 합니다. 기도 응답 받고 싶어 하죠. 그러나 은혜 받은 후, 기도 응답 받은 후 자신을 드려 헌신하는 자는 적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드려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복됩니다. 큰 무리가 몰려오자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5-8절을 보십시오. 씨 뿌리는 자가 밭에 씨를 뿌렸습니다. 씨앗은 4 종류의 밭에 떨어졌습니다. 씨 뿌리는 자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씨를 뿌림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말씀전파는 잘 받아들일 것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만 전해서는 안 되고 넓게 뿌려야 함을 배웁니다. 길가는 밭과 밭 사이에 나 있는 작은 길을 말합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흙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굴러다니다가 사람들에게 밟히거나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습니다. 더러는 바위에 떨어졌습니다. 석회암 바위 위는 부드러운 얇은 흙으로 덮여 있습니다. 싹이 났지만 바위 때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죽었습니다. 더러는 가시 떨기에 떨어졌습니다. 가시 떨기는 싹이 나고 뿌리도 내렸지만 가시가 기운을 막아 결실치 못했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뿌리를 깊이 내리고 무럭무럭 자라 100 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밭에 떨어지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자라고, 또 자라서 100 배의 결실을 하게 됩니다. 이런 투자가 어디 또 있을까요? 핸드폰에 2배 3배 또는 10배 수익을 올려준다고 문자가 옵니다. 이런 것은 다 사기죠.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배의 결실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참이요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을 마치시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며 경청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말씀입니다. 말씀 역사는 잘 듣는 데서 시작합니다. 중병에 걸린 사람들은 의사의 처방과 지침에 귀를 기울입니다.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스마트폰으로 녹음도 하고 반복하여 듣고 그대로 따릅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의사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들을 귀를 갖고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합니다.

9-10 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나 깨달아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셔야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지 않으면 어떤 석학도 깨달아 알 수 없습니다. 지적 능력과 상관없습니다. 더욱 다 안다고 교만을 떠는 자들은 한마디도 깨닫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인지 모릅니다. 예배 때 말씀 듣고 깨닫고 은혜받고 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모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비유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씨는 작고 볼품이 없죠. 그런데 이 작은 씨가 밭에 떨어지면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신비스럽죠. 씨 안에는 생명력이 있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도 생명력이 있고 100배 열매 맺을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네 가지 마음 밭은 우리에게 다 해당되는 밭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길가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딱딱하다는 것입니다. 길 가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밟아서 딱딱해져 있습니다. 딱딱한 마음 밭은 씨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러면 길 가는 어떤 마음 밭일까요? 세상일로 분주하고 바쁜 상태입니다. 세상일에 관심을 다 빼앗긴 상태죠. 스펙 쌓고, 돈 벌고, 결혼하고, 집 사고 등등에 관심을 다 빼앗긴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일 공간이 여유가 없습니다. 사단 마귀는 우리가 말씀을 듣는 것, 말씀을 받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지 못하는 길가에 뿌려진 말씀을 잽싸게 빼앗아 가버립니다. 따라서 말씀에 대한 수용성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죠. 말씀을 먹고자 하는 말씀에 대한 식욕이 있어야 합니다. 암을 잘 극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잘 먹는다는 것입니다. 노인이 갑자기 식욕을 잃으면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듣는 것이 즐겁지 않으면 영적인 병에 걸린 것입니다. 마음 밭이 딱딱해진 것이죠. 예배가 온라인으로 계속되다 보니까 처음에는 말씀을 앉아서 경청하다가 나중에는 누워서 비스듬히 듣게 됩니다. 마음이 딱딱해지는 것이죠. 말씀이 역사할 리 만무인 것이죠. 영적으로 병들기 쉽습니다. 딱딱해진 나의 마음 밭을 회개의 쟁기로 갈아엎어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바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 배반하는 자요.’ 바위 위에는 얇은 흙이 덮여 있습니다. 이런 자는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받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양을 만났다며 목자도 기뻐합니다. 문제는 그 마음 밭에 바위가 있어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시련이 닥치면 떨어져 나갑니다. 믿음의 기초가 약한 사람입니다. 뿌리가 중요함을 봅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뿌리가 있는 사람은 시련 속에서도 성장합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마음속의 바위는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형성된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관, 인생관, 자기 생각이 바위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배워온 과학적 사고방식이 바위이기도 하구요. 유대인들에게는 유대 율법주의와 전통이 바위가 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다윗과 같이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줄 정치적인 메시아가 되시길 기대하고 있었구요. 그럴 때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토속 신앙은 구복 신앙입니다. 무병장수,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신앙생활 합니다. 또한 죄 문제가 바위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있는 낡은 가죽 부대와 같은 옛 삶의 가치관, 세계관 자기생각의 바위를 깨야 합니다. ‘시련을 당할 때 배반하는 자요’ 인생에는 시련이 반드시 있습니다. 신앙의 뿌리가 있는 사람은 시련 가운데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 하지만 뿌리가 없는 사람은 넘어집니다. 신앙의 뿌리가 중요함을 봅니다. 시련은 믿음이 성장하도록, 순수해지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돌을 제거하고 뿌리를 내리도록 돕는 것이 중요함을 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가시 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 떨기 땅은 좋은 땅과 비슷해서 뿌리도 내리고 어느 정도 자라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가시가 영양분을 다 빼앗아가서 시들시들하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생의 염려는 세상 걱정입니다. 산다는 것이 계속되는 문제의 연속이기는 합니다. 돈 문제, 학과 공부 문제, 건강 문제, 결혼 문제, 자녀양육 문제 등등을 걱정하게 만듭니다. 문제를 묵상하고 근심 걱정하는데 온 힘을 다 써버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제 걱정거리는 기도함으로 주님께 맡길 때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은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신실한 주님이십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아 책망하셨습니다. 염려하는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신입니다. 자신의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나 몰라라 하시겠습니까? 주님을 믿어야죠. 말씀의 능력을 믿어야지요. 또 재물에 대한 욕심입니다. 재물 돈은 없을 때 염려 하지만 있어도 욕심을 내기 쉽습니다. 돈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돈에 대한 과도한 욕심 집착은 가시가 되어서 우리의 신앙을 찌릅니다. 마귀는 우리의 돈에 대한 욕심을 무섭게 이용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한국이 가난한 나라였을 때는 이 땅에 부흥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부자 나라가 되니까 기독교인들에게 돈에 대한 욕심이 들어왔습니다. 이때부터 힘을 잃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질은 내가 얻으려고 따라간다고 얻어지지 않습니다. 물질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심은 가시에 찔리어 믿음을 잃을 뿐입니다. 우리 가운데 극한 가난으로 굶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합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욕심부리지 말아야겠습니다. 또한 향락의 가시입니다. 요즘은 재미를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이 외면합니다. 세상에는 재미난 것들로 가득합니다. 젊은이들은 게임에, 클럽에서 춤을 추는 것에 빠져 지냅니다. 남녀노소 모두 다 스마트폰에 유 튜브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이는 여행에 취미에 몰두합니다. 세상에서 즐길 수 있는 것 다 즐기다 보면 정작 하늘의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향락의 가시에 찔린 사람은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 쾌락이 주는 즐거움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이 더 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답니다. 영적인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세상의 즐거움은 하찮아 보입니다. 가시는 일단 뿌리를 내리면 무척 쎕니다. 영양분을 다 빼앗아갑니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힘이 없습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해도 감격스러운 삶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열매가 맺히지 않죠. 그러므로 가시를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뿌리 뽑아야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좋은 땅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말씀을 흡수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말씀에 목말라합니다. 말씀을 깨닫고 깨달은 말씀에 순종하고자 합니다. 길 가 바위 가시 떨기 등을 극복한 좋은 땅은 말씀에 뿌리내리고 자라 백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여기서 인내로 결실한다고 했습니다. 열매 맺는 데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린아이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고 더딘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자라서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인내로 기다리면 반드시 열매가 맺힙니다. 이처럼 말씀을 굳게 믿고 지킵니다.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믿음을 버리지 않고 시험과 환란 중에도 요동치 않고 끝까지 인내합니다. 때가 되면 백배의 결실을 합니다. 길 가는 갈아엎고 바위는 깨뜨리고 가시는 제거했을 때 좋은 땅이 되는 것이죠. 한번 좋은 땅이 되었다고 계속해서 좋은 땅이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땅도 잘 가꾸지 않으면 어느새 길 가 돌밭 가시밭이 되어 버리고 잡초가 무성해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좋은 땅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 생활을 통해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는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길 가 돌밭 가시밭으로 타락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가난한 시절에는 좋은 땅이었으나 선진국이 되어 잘 사는 나라가 되자 사람들은 경건함이 없어지고 기독교는 힘을 잃고 있지 않습니까? 솔로몬의 전반기는 좋은 땅이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었지만 그의 후반기는 타락하고 엉망이 되었습니다. 다윗과는 달랐죠. 다윗은 일생 좋은 땅을 유지했습니다. 솔로몬이 되지 말고 다윗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윗에게서 좋은 땅을 유지하는 비결을 배웁니다. 밭을 기경한다는 말을 쓰죠. 다윗은 이 마음 밭을 잘 기경했습니다. 내적 투쟁 즉 말씀 투쟁, 말씀을 받고 회개하고 순종하는 말씀 투쟁을 잘 하였습니다. 영적 기경을 잘했죠. 또한 그는 축복의 때에도 하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감사시를 쓴 것이 시편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 그는 일생 좋은 땅으로 100배 열매 맺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등불을 켜는 것은 그 빛으로 주위를 밝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등불을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책상 위나 높은 곳에 두죠. 그러면 무엇이 등불입니까? 주의 말씀이 등불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 이다.’ 또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요한복음 8장 12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등불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책상 밑에 침대 밑에 숨겨 두지 말아야 합니다. 밝혀야합니다. 널리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어둠이 물러가고 생명이 살아나게 됩니다. 말씀 전파를 통해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이죠. 또한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 되신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고 닮아서 우리가 빛이 되는 것이죠. 지금은 주님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말세요 어두운 시대입니다. 우리는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각자 처한 곳에서 빛을 비추는 등불이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빛 된 삶을 통해서 예수님이 밝히 증거되길 기도합니다. 17 절을 보십시오. 때가 되면 숨은 것과 감추인 것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마지막 때와 하나님의 심판은 임박했습니다. 그날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선악 간에 행한 것을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영벌의 심판을 믿는 자는 부활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게 됩니다. 영적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하늘나라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 주와 복음을 위해 드리면 더 풍성히 주시지만, 원망하고 불평하면 있는 것조차 빼앗깁니다.

19-21 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찾아온 가족들에게 ‘그 사람들은 내 가족이 아니야. 내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찌 이런 심한 말씀을 하십니까? 예수님이 육신의 부모와 형제를 무시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영적인 가족의 개념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 새 인생 살게 된 사람은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주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인 것입니다. 육신의 가족이라도 주님을 믿지 않으면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믿음의 가족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가까워지고 관계가 돈독해집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길가와 같고 가시밭 같은 저의 마음 밭을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잘 안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마음이 딱딱해져서 말씀을 잘 수용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또한 시간이 나면 말씀보다는 유 튜브에 손이 많이 갔습니다. 제가 회개의 쟁기로 딱딱해진 마음 밭을 갈아엎고 일락의 가시를 뿌리 뽑음으로 마음 밭을 잘 기경하고 좋은 밭이 되어서 열매 맺는 인생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열매를 맺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밭을 극복하고 좋은 땅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때가 되면 열매가 맺힙니다. 100 배의 열매를 약속하십니다. 우리 모두 좋은 마음 밭을 가꾸어서 풍성한 열매 맺는 인생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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