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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6-26 (일) 12:42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16강-1.hwp (99KB) (Down: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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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16강]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2022년 누가복음 제 16강                                                   한아브라함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말씀 누가복음 9장 37-62
요절 누가복음 9장 6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이 쓴 ‘팬인가 제자인가’ 라는 책을 보면 예수님 당시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 열광 했지만 팬으로서 열광한 것이지 제자들은 적었고, 예수님은 소수의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고, 사역의 대부분이 제자들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는 것이구요, 교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헌신하는 제자들이 얼마나 되는가 가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신약성경은 제자들에 관한 제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제자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참된 제자는 얼마나 될까요? 지난 말씀에서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들에게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내면성과 참된 자세를 가르쳐 주십니다.

37절-40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 새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이튿날 예수님 일행이 변화 산에서 은혜와 영광을 체험한 후 내려 온 세상은 여전히 사건과 문제투성이였습니다. 귀신들린 외아들을 둔 한 사람이 예수께 나와 간청했습니다. ‘귀신 들린 제 아들을 제발 고쳐 주십시오.’ 또한 ‘제자들이 능히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라고 꼬집고 있죠. 요즘은 거의 다 외아들이지만 당시에는 자녀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그러나 낳고 싶어도 더 나을 수 없는 귀한 외아들이 귀신 들려 부르짖고 경련을 일으키고 거품을 흘리니 그 아비의 심정이 오죽 했을까요? 이 사람은 너무나 절박한 나머지 자기 외아들을 변화 산에 올라가지 않고 남아 있던 9명의 제자들에게 데려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귀신을 쫓아내는데 실패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었습니다. 아홉 명이 합심하여 소리쳐도 안 되었습니다. 그들이 왜 실패했을까요? 마태복음에서는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했고, 마가복음에서는 기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현재 믿음이 없었고 기도가 부족했습니다. 얼마 전 2명씩 전도 여행을 떠났을 때 능력을 발휘하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된 일일까요? 전도 여행 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병도 고치고 귀신도 내어 쫓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능력의 원천 되신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능력의 역사를 섬겼다는 헛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세 제자에 대한 비교 의식과 시기심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럴 때 9명이 힘을 합쳐도 귀신 들린 아이 한 명도 고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41 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예수님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주지 못한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계속해서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그 시대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누구를 칭찬하실까요? 믿음의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백부장, 수로보니게 여인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칭찬하시고 기뻐하십니다. 반면에 믿음이 없는 제자들은 책망하시죠. ‘언제까지 함께 있으며 언제까지 참으리요.’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제자들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급하십니다. 제자들이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으로 안타까워하십니다. 목자들인 우리들도 믿음이 없을 때 주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요? 우리 모두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죽어 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하나님이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 칭찬 받는 믿음의 사람, 기도의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름바이블 캠프가 오랜만에 대웅 연수원으로 가서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 한 가지 믿음을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해야겠죠.

42,43 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내어 쫓으셨습니다. 아이를 고치시고 아버지에게 돌려주니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에 다 놀랐습니다. 44절을 보십시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역사에 놀라고 신기해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귀에 담아 두라고 하셨을까요? 귀에 담아 두라는 말씀은 가슴에 새기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적인 능력을 보여 주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과 제자들은 예수님이 장차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정치적인 메시아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만민을 구원하러 오신 영적 메시아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귀에 담아 두라는 것입니다. 가슴에 새기라는 뜻이죠. 45절을 보십시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두 번이나 들었음에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묻기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46절을 보십시오.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텐데, 제자들은 누가 크냐? 누가 수제자 인가 라며 싸우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왜 누가 크냐 싸울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왕이 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극도로 예민해졌습니다. 예수님이 세 제자만 데리고 변화 산에 갔던 것이 계기가 되었고,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청탁 했을 때 나머지 제자들은 폭발했습니다.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더 높아지고자 다투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도 일생 누가 크냐, 어떻게 1등 할까, 어떻게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까 애쓰다가 갑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1등이 되고자 하는 위대해 지고자 하는 그들의 소원을 꺾지 않으시고 어떤 자가 진정 위대한 자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47,48 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며,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참된 제자는 어떤 자인가’ 제자의 내면성을 가르쳐줍니다. 첫째로, 부족한 자 연약한 자를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무지한 제자들에게 어린아이 하나를 곁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요,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어린아이는 부족한 자입니다. 돌봄이 필요한 자이죠. 귀찮고 성가시며 손이 많이 가는 존재입니다. 반면에 이용 가치는 없습니다. 이런 어린아이 같은 자를 영접하는 자가 큰 자라 하십니다. 고 이 태석 신부님이 아프리카에서 아름답고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한 그가 일생 붙든 좌우명이 되는 말씀은 마태복음 25장 40절이었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예수님은 지금도 어린아이같이 작은 자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누가 어린아이입니까? 우리 주위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바로 어린아이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양들이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 같이 부족한자 연약한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같이 부족한 자 연약한자를 영접하고 섬기는 자가 위대한 자 참 제자입니다. 영접한다 할 때 웰컴(welcome)으로 쓰였습니다. 마지못해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웰컴 기꺼이 환영하며 영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둘째로,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입니다. 가장 작은 자가 큰 자이다. 이게 무슨 역설입니까? 여기서 가장 작은 자는 겸손한 자를 말합니다. 참 제자는 겸손한 자입니다. 잠언 18장 12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 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스스로 작다 여기는 자 겸손한 자가 바로 가장 큰 자입니다. 어떤 자가 겸손한 자입니까? 매너가 겉모습이 겸손한 데 속교만이 깊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가 진정 겸손한 자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 하는 자의 내면이 겸손한 심령입니다. 주님은 내가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안에도 제자들과 같은 죄인 된 모습이 있습니다. 높아지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는 자입니다. 낮아지고 희생하고 섬기는 자리로 가라는 것이죠.

49, 50 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을 요한이 보았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라면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제자 그룹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신 쫓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제자 요한은 제자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이 컸습니다. 너무 지나쳐서 배타적 독선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라 하셨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영접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모임에 대한 프라이드를 갖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임이 최고고 다른 모임은 형편없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다른 모임, 다른 교회도 그 사역을 존중해야합니다.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야 하죠. 5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부활 승천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로 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자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52-54 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사자를 앞서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서 머무를 곳을 알아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이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bc 721년 앗수르가 사마리아를 침공하여 점령했습니다. 이주 정책을 통해서 혼혈 민족, 혼합 종교가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인들이 정통성을 상실한 것 때문에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무시했습니다. 상처 받은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을 배척했습니다. 서로 상종치 않았습니다. 지역감정의 뿌리가 깊었죠. 오늘날 우리 시대에 우리나라도 깊은 갈등이 있습니다. 영호남의 갈등, 보수와 진보의 갈등, 최근에는 남녀 갈등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편 가르고 배타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답게 불로 그들을 멸해야 하지 않겠냐고 예수께 물어보았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영접치 않고 배척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제자들이 그들을 심판할 권리는 없습니다. 심판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55 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초림의 예수님은 심판자로 오신 것이 아니고 구원하러 생명을 살리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교회 이름으로 행해지는 어떠한 폭력도 잘못 된 것입니다. 십자군 전쟁 같은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죠.

이어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세 명의 제자 후보들, 실패한 세 명의 제자 후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를 따르는 참된 제자의 바른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가난한 생활을 각오해야 합니다. 57 58절 보십시오. “길 가실 때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마태복음 8장에서 그는 서기관이었습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예수님에게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똑똑한 제자 후보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시고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시고 제자들과 여인들이 따르는 등 예수님의 멋있는 점에 반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위대한 삶을 살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겉모습만 본 것 입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즉 무조건 따르겠다고 합니다. 제자의 대가가 무엇인지 그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십니다. 안정된 삶이 보장되지 않았다 하십니다. 가난하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누구나 안정된 삶을 추구합니다. 집을 장만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가 되려면 안정된 삶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죠. 예수님은 제자의 삶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 알고 고민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가 주를 따랐지만 예수님은 묻고 따지고 심사숙고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 전파에 최 우선권을 두어야합니다. 59 60 절을 보십시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예수님이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며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먼저 가서 부친을 장례 한 후에 따르겠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장례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도리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하는 그런 비인간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아버지가 지금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상황이라면 이 사람이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것이죠. 아버지 장례를 치루고 유산도 받은 후 주를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자식의 의무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장사 지내지 말라는 뜻이 아니죠. 부친을 장사 지내는 일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바로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자는 즉시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친을 장사 지내는 것, 공부하는 것, 직장 생활하는 것 등 모든 일은 제자의 삶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죠. 셋째,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61 62절 보십시오.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좇으려고 하는데, 그는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족과의 작별 인사도 막으시는 몰인정한 분일까요? 그렇지 않죠? 예수님은 그의 속마음을 보셨습니다. 그의 속마음은 예수님을 따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가족에게 작별 인사 하면 가족들이 뜯어말릴 것입니다. 가족과 헤어질 수 없는 수많은 이유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겠지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속마음은 예수님을 따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따르겠나이다 마는, 그러나, 하지만, 이런 말을 잘 합니다.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하십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면 밭을 제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앞 만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았다는 말은 직분을 맡았다, 제자로 부름 받았다는 뜻입니다. 뒤를 돌아다보는 것은 세상일을 걱정하고 염려한다는 뜻이죠.  세상 재미나 좋아 보이는 것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죠. 세상일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다보다 망한 사람으로 롯의 아내가 생각납니다. 천사는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할 때 롯의 가족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 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다가 그곳에 두고 온 재산에 미련이 남아 뒤를 돌아다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이스라엘은 모두 합심하여 앞만 보고 요단강을 건너 진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 지파 갓 지파 자손들은 요단 동편 땅 좌 우를 바라보고 자신들은 이곳에 남게 해달라고 정복전쟁에서 빼달라고 모세에게 청했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심하게 나무랍니다.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 갈수 없게 하려하느냐.’ 이들이 회개하고 앞장서서 나아갔을 때 가나안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100m 달리기를 하는데 앞만 보고 꼴인 점만 바라보고 달려가야지, 뒤를 돌아다보면 추월당합니다. 신앙생활이란 뒤를 돌아다보지 않는 것, 앞 만보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삶입니다. 바울처럼 말이죠.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앞만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것을 다 버리고 이 땅 에서는 알거지가 되라는 말인가요? 그렇지 않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우리의 필요를 더하여 주십니다. 복을 주시고 승리를 주시죠. 다만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손에 쟁기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여러 문제 앞에 좌우를 살피며 주춤거리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건강문제, 병원에서는 세무조사문제가 있고 또 여러 동역 자님 들의 쉽게 해결되지 않는 여러 문제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기도는 하지만 저도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손에 쟁기를 잡았으면 앞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여름수양회를 섬기며 예수님만 바라보고 천성 길을 가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어린아이 같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영접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 같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손에 쟁기를 잡은 사람들입니다. 한눈팔지 말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나의 자세는 어떤지, 예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제자의 모습인지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팬이 되기보다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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