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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7-17 (일) 12:48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19강-1.hwp (116KB) (Down: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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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19강]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2022년 누가복음 제19강                                           김반석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말씀/ 누가복음 11:1-13
요절/ 누가복음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지난 5월 23일 손흥민 선수가 2021~202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공동 득점왕(23골)에 올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유럽 축구 빅5 무대에서 골든부트를 받았습니다. 손흥민의 눈부신 활약으로 토트넘은 부진에서 탈출하여 최종 4위에 올라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월드클래스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남들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화려한 기술을 익힐 때 6년 이상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기본기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탄탄한 기본기가 오늘의 손흥민을 있게 했고, 지금도 손흥민은 매일 기본기 훈련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기본기가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본기는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기도는 ‘거듭난 영혼의 호흡,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된 우리와의 대화’라고도 합니다. 호흡을 잘못하면 병이 들듯이 기도를 게을리 하면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막혀 병들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기도란 무엇을 위해,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는지 기도의 기본기를 가르쳐주십니다.

 Ⅰ.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1~4)
 1절을 보십시오. 하루는 예수님이 기도를 다 마치시자 한 제자가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처럼 자기들에게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교 종파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등이 있었는데, 랍비들은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카디쉬(회당 설교 후 낭송하는 짧은 기도문)’나 ‘18번 축복기도(유대인들이 하루 3번 드리는 긴 형태의 기도문)’라는 기도문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기도문들을 암송하며 기도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이런 기도 문화 속에서 제자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시는 것 같고, 유대인들의 형식적이고 외식하는 기도와는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싶은 영적 소원이 생겼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제자 공동체에도 기도문이 필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요청대로 응답하셔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이것이 ‘주기도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며 기도의 모범을 제시하셨습니다. ‘주기도문’은 순서와 내용면에 있어서 완벽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앞의 2개(마태복음은 3개)는 하나님에 대한 간구이고, 뒤의 3개는 인간의 필요에 대한 간구입니다.

 2a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예수님은 기도할 때에 먼저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분명히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도하는 대상은 자신들이 만든 우상이나 일월성신 등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로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허상에 불과합니다.(왕상18:22~40)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체로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과거 우리는 죄와 사탄의 종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벌에 처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요3:16). 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롬8:1,요1:12)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롬8:15).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됩니다.(롬8:17a)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우리와 함께해주시고, 우리를 보호해주시며,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대해 주십니다.(시106:1) 우리의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갖고, 우리의 삶이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해피엔딩으로 이끌어 주십니다.(롬8:28)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십니다.(시107:9) 와! 이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런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먼저 ‘아버지’하고 불러야 하겠습니다. 어떤 분은 폭력적이고 무책임하고 무능한 아버지와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어색해하거나 생략하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게 느껴져 기도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그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더욱 깊이 맺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 ‘아버지’께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까요?
 첫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2b). ‘이름’은 존재를 가리키고, ‘거룩’이란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고, 죄와도 구별되는 순결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여드리고, 경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롬1:21) 하나님이 아닌 물질과 세상 정욕과 쾌락을 더 사랑하고, 각종 우상숭배에 빠져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무신론자로 살아가는 사람도,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며 망령된 말을 하는 교만하고 무지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하나님의 이름이 회복되도록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우리의 첫 번째 기도 제목으로 주신 것은 우리의 인생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름이 어떻게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을까요? 먼저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요17:4) 예수님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구원 역사의 사명을 다 이루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요19:30)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1대1 성경 선생의 직분을 잘 감당하여 2041년까지 1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므로,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마5:16) 내가 속한 곳에서 선한 사미라아 사람처럼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겸손히 낮아져 섬기며,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성실하게 감당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불신자들과 구별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레11:44) 세상의 죄악된 가치관이나 육체의 쾌락을 좇아 살지 않고, 죄를 멀리하며 순결한 삶을 살 때 믿음의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에 대하여 소금과 빛이 될 때,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첫째 목적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만족, 자기 영광을 위한 자기중심적인 기도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도 제목이 첫째가 되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나라가 임하시오며(2b). 여기서 ‘나라’는 ‘통치’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간은 타락하고, 세상은 사탄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세상은 두려움, 불안, 갈등, 분열, 미움, 허무, 절망, 슬픔, 고통 등 죄와 사망 권세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와 진리로 다스려 주시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안에서 평화와 감사, 생명과 자유와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내 안의 죄를 회개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자기 욕심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의 행불행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누구의 다스림을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탄의 다스림, 세상 세력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만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가정도 부모나 자녀의 뜻대로 좌지우지되지 않고, 하나님이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직장과 교회와 나라와 전 세계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 전파를 통해 이뤄집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지상 명령,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a) 는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 전파하는데 힘썼을 때 놀라운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오심으로 시작되었고, 제자들을 통해 확장되고,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고, 제자 양성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기도할 때, 먼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을 위한 기도와 나를 위한 기도가 5:5의 비율입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은 외면하고 자기 필요를 채우는 데 집중되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셋째,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일용할 양식’이란 의식주를 포함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공부, 직장, 결혼, 건강, 물질, 자녀 양육 등)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일용할 양식을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얻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도록 기도할 때, 하나님이 먹이시고 공급해주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솔직히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일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하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합니다. 그런데 한 번에 월용할 양식이나 화끈하게 연용할 양식을 주시면 좋을 텐데, 왜 번거롭게 날마다 구하라고 하셨을까요? 사람이 가진 것이 많아 배부르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안일에 빠지고 부패하게 됩니다. 하지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자는 매일 하나님께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를 통해 날마다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고, 날마다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공부할 때나 직장 근무할 때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쾌락에 쓰려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 받을 수 없습니다.(약4: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십니다.(마6:33) 그런데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도록 기도할 때, ‘나에게’가 아니고, ‘우리에게’라고 하셨습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더불어 먹기 위해 구해야 합니다. 나를 풍족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이웃에게 나누도록 하기 위함입니다.(고후8:14)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신실하게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넷째, 용서를 위한 기도(4a).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이 말씀은 우리가 죄지은 자를 용서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조건절처럼 보이지만 용서가 조건이 아닙니다. 만일 조건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미 죄 사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하여 살아가면서 여전히 많은 죄를 짓습니다. 이때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백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십니다.(요일1:9) 그러므로 이 기도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청원과 함께 우리도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면서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았다면 이 용서가 이웃에게 흘러가도록 실생활에서 용서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는 남을 용서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할 수 있듯이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야 남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프레드 플러머(plummer)는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마적이고,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인간적이라면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신적이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아무 대가 없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신 희생의 대가로 주어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왕에게 1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는 왕에게 1만 달란트를 탕감받았는데, 자기에게 100 데나리온을 갚지 못한 사람을 감옥에 넣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왕은 화를 내며 모든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 종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는 그가 1만 달란트를 갚지 못해서가 아니라 100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만 달란트는 요즘 금 시세로 환산하면 약 15조 원이나 됩니다. 노동자 하루 품삯을 2022년 근로자 평균임금으로 계산하면 약 6조 원, 이는 16만 년 이상 연봉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 정부에 내는 1년 세금이 800달란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1만 달란트는 개인이 결코 갚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가 1만 달란트 탕감받은 큰 은혜를 기억했다면 100 데나리온(1만 달란트의 육십만 분의 일) 빚진 자를 불쌍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임영수 목사님은 진정한 용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잘못을 없던 일로 한다든지, 잊어버린다든지, 원상태로 돌려놓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분명히 손해가 있고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상대방을 그 실수와 아픔과 원한에 묶어 놓지 않고 해방시켜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그것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한 감정과 아픔과 선입견에 상대방을 묶어 놓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 역시 다른 사람에게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담을 쌓습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용서를 거절하는 행위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용서는 그러한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용서의 대상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용서는 우리와 적대 관계에 있는 이웃을 소외시키고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 허무는 작업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제일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해 같은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심지어 같은 집에 살면서도 상종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한 죄를 애통히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다섯째, 시험으로부터 보호의 기도(4b).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여기서 시험은 인간의 연약한 죄성으로 인해 받는 유혹을 말합니다. 루이스는 “인간의 삶은 유혹투성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탄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가도록 유혹합니다. 이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번 유혹에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시험에 빠져 있으면서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꼭 큰 죄를 지어야만 시험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남을 미워하고 판단하는 마음, 감사하지 않고 남을 탓하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있다면 이미 시험에 빠진 것입니다. 새가 우리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어도, 우리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에 빠지기 전에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해주시도록, 항상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골4:2) 정신을 차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해주시도록 끊임없이 간구해야 합니다.(엡6:18)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집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자다가 결국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항상 기도하시므로 사탄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시고, 구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자인가를 인식하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므로 시험에 빠지지 않고, 승리하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Ⅱ. 기도의 자세(5~13)
 첫째, 간청하는 기도(5~8). 예수님은 한 가지 비유를 들어 우리가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하다가 밤이 깊어 친구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집에는 먹을 양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중이지만 그 친구는 옆집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집안의 불은 이미 꺼져있었고, 친구는 자식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민폐를 끼치는 일인 줄 알았지만 염치 불고하고 대문을 두드리며 떡 세 덩이를 꾸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일어나서 음식을 주면 가족들이 깰 것 같아 모른 척하고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며 떡을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잠자던 친구는 견디지 못하고 떡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친구가 떡을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친구가 떡을 준 것은 우정 때문이 아니라 간청함 때문이었다고 하십니다. ‘간청함’이란 ‘부끄러움이 없음’, ‘뻔뻔함’이란 뜻입니다. 이는 체면 불고하고 계속해서 뻔뻔하게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집요하고 담대하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배고픈 친구를 먹이고자 하는 간절한 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떡을 가진 친구가 자신의 간청을 들어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간청하는 자세로 기도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능한 분인데 왜 한 번에 주시지 않고, 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실까요? 물론 한 번에 들어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자기가 잘해서 된 것 인양 자기 의가 생기고, 감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자동판매기처럼 생각하고, 필요할 때만 찾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우리가 무조건 끈질기게 구한다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롯의 구원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 들어주십니다. 간청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고, 지속적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의지하며 간청하는 기도를 하게 되고,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렘33:3)

 둘째, 기도의 필요성(9~13).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모두 현재 명령형으로 기도의 능동적인 자세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받기 위해서는 구해야 하고, 기도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찾고, 두드리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좋은 성적 얻기 위해 절제하며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양을 주시도록 기도하며 적극적으로 피싱해야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같은 의미로 세 번씩이나 말씀하시는 것은 기도 응답의 확실성을 강조하시기 위함입니다. 조지 뮬러(고아들의 아버지, 5만 번 이상 기도 응답받은 목회자)는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나 올바르게 기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얼마 동안 기도를 계속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응답을 얻을 때까지 인내와 믿음으로 계속 기도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일생 5명의 친구가 구원받도록 기도했는데, 4명은 구원받고, 1명은 뮬러가 죽을 때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나중에 뮬러가 자신의 구원을 위해 52년간 기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을 순회하며 “뮬러 목사님의 기도는 다 응답 되었습니다. 내가 그 최후의 응답입니다.”라고 간증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인내와 끈기를 갖고 계속해서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구하는 자에게 어떻게 응답해 주십니까? 11~13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자식이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주고, 알을 달라하면 전갈을 주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악한 아버지일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줍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간구하는 자녀들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주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구하는 대로 주시지 않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이십니다.(13b) 성령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영접할 때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행2:38) 성령님은 보혜사로서 항상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의 인생 문제를 상담해 주십니다(요14:16). 우리에게 힘이 필요할 때 힘을 주시고,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주시며, 위로와 쉼이 필요할 때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며,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롬8:26,27) 또 성령님은 때마다 필요한 말씀을 떠오르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십니다.(요14:26) 예수님을 본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시므로, 내면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갈5:22,23). 무엇보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으로서 마음의 모든 죄의 소원을 다스려 주시고, 거룩하고 정결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내적인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될 때 우리는 항상 기쁘고, 열정이 넘치며, 비전에 불타는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눅4:1,행2:1~4,4:31) 개인의 성장과 교회의 부흥은 성도들의 기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여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 승리하고, 부흥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영적으로 무지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식사할 때는 누가 볼까 봐 눈을 뜨고 수초 이내로 짧게 기도했습니다. 평상시에는 기도하지 않다가도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기도했습니다. 기도 시간은 2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기도하지 않을 때 쉽게 사탄의 유혹에 빠지고, 죄악된 본성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결혼을 했는데, 동역자는 매일 저녁 합심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피곤한데 빨리 자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너무 귀찮았고, 동역자가 길게 기도하는 것이 괴로워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동역자에게 이끌려서라도 계속해서 기도하면서 많은 기도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고, 27년 전부터 새벽 미명에 기도하신 예수님을 배우고자 새벽기도를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졸리고 피곤하여 중단할 때도 있었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자립적으로 새벽 기도 훈련을 받았습니다. 365일 새벽 기도하고자 투쟁할 때는 출장을 가더라도 지역교회의 새벽기도에 나가 어찌하든지 새벽기도의 단을 쌓았습니다. 선교지에서도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기 위해 간청하는 기도를 감당했습니다. 이런 기도 훈련을 통해 하나님은 지극히 인본적인 자를 절대적인 믿음과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게 하시며, 혈기 충만한 자를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제가 드린 수많은 기도를 들으시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제가 이후로도 더욱 깨어 기도에 힘쓰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실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기도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기도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기도를 하면서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쉴 틈 없이 바쁜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나가 쉬지 않고 기도하심으로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 제목과 기도의 자세를 분명하게 하고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여름 수양회를 기도로 동역하여 섬기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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