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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9-11 (일) 10:40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26강-1.hwp (108KB) (Down: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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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26강]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2022년 누가복음 제 26 강                                                     최동진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말씀 / 누가복음 14:1-35
요절 / 누가복음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오늘 말씀에서는 두 가지 잔치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첫째는 바리새인의 지도자가 베푼 잔치이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베푼 잔치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청받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져야 할 영적 가치관과 사명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1-14)
  1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안식일에 예수님은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초청을 받아 그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안식일 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실제 삶에서 적용하려 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많은 고민과 토론을 통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39가지 규정을 정했습니다. 그 규정에 따르면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생명을 위협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만 허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많은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온전케 해주셨습니다. 이때마다 바리새인들은 어찌하여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법으로 인해 바리새인들과 계속해서 부딪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 지도자는 예수님을 권위있는 랍비로 여기고 가르침을 듣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엿보고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때마침 예수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식탁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러 온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가 주로 바리새인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인 것을 생각하면 이 수종병 든 사람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심어놓은 미끼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수종병은 근육이나 피하조직에 물이 고여서 몸이 붓는 병입니다. 주로 신장질환이 있을 때 전신 부종이 생기게 됩니다. 소변도 못보고 물에 빠진 사람처럼 호흡도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당시 수종병은 불치병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지도자들로서 병자를 불쌍히 여기고 어찌하든지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병자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책잡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아주고자 하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잠잠했습니다. 그들은 속으로 여전히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면서도 수종병 든 사람를 고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5)  수종병든 사람을 고쳐주는 것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안식일은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쉬는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예수님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인식일에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을 치료해 주시고 오른손 마른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삼십팔년된 병자를 고쳐주시고 태어날 때부터 눈먼 자를 치료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심으로 안식일이 병에서 놓임받고 안식을 주는 날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회복시켜주심으로 영혼의 안식을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고통하며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인간들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참안식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안식일의 의미를 알고 지키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상석에 앉고자 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식사초대를 받으면 먼저 손을 씻고 나서 스스로 자신이 앉을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의자는 식탁을 가운데 두고 U자 형태로 배열했습니다. U자의 중앙에 주인이 앉고 서열이 가장 높은 사람이 주인의 좌우편 상석에 앉았습니다. 상석에서 멀어질수록 서열이 낮은 사람이 앉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민감합니다. 바리새인 지도자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서로 상석에 앉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여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혼인잔치’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 높은 자리에 앉고자 하면 어떻게 됩니까? 대게 중요한 사람은 맨 나중에 등장을 하는 법인데 그 때 주인은 상석에 앉은 사람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 때쯤 되면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기 때문에 남은 자리는 말석 밖에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상석에 앉았던 사람은 가장 말석으로 밀려나게 되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끝자리에 앉아 있으면 주인이 그 사람을 보고 높은 자리로 올라앉으라고 할 것입니다. 그 때에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을 받게 됩니다.(10) 11절을 보십시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기를 높이는 것은 스스로 큰 자처럼 행세하며 대접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를 낮추는 것은 종의 자세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를 높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반드시 낮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인생을 산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서 높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잠언18장 12절은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어린 아이 때에는 어디를 가든지 왕자님, 공주님 대접을 받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와 너무 예쁘다, 정말 잘 하네” 하면서 덕담을 해줍니다. 아이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기 쉽습니다.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울면서 생떼를 씁니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서 원하는 것을 다 해줍니다. 하지만 성장하여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다니면서 자기가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생떼를 써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법도 배우면서 건전한 인간관계를 맺어갑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자신을 왕자님, 공주님이라고 생각하며 대접을 받기만 바라는 미성숙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종의 자세로 섬김으로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자기 비하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비천함을 인정하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시는가 깊이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이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며 섬기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고 영화로우신 분이시지만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일생 동안 종의 자세로 병든 자들을 치료해 주시고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결국에는 사람들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한없이 자신을 낮추며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가장 높은 자리인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온 우주를 통치하는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로 삼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 땅에서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인생을 산 사람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천국 잔치에서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의 지도자가 초청한 잔치 곧 이 땅의 삶에서 자기를 높이는 자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천국잔치에서 낮은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기를 초청한 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초청을 받았으면 그 사람을 다시 초청하여 되갚는 것이 도리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받았으면 준 사람의 가족이 결혼을 하거나 상을 당하면 되돌려주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서로 되갚다 보면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고 하십니다.(13)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되갚아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마음에 보상심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수고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줄 때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섬깁니다. 그런데 열심히 수고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런 보상도 없다면 힘이 빠지고 화가 납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긴다고 하면서 이를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캠퍼스에서 진리를 알지 못한 채 방황하는 영혼들을 돕는 것은 갚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섬기는 일입니다. 열심히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쳐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수고한 만큼 열매를 맺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일생 동안 믿음의 길을 가도록 마음에 품고 기도하면서 섬겨주어야 합니다. A/S를 잘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목자생활이 힘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열심히 수고했지만 아무런 보응도 받지 못한 것이 오히려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의인들의 부활시에 하나님 나라에서 100배로 갚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관대하게 행한 사람들에게 상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 사람의 인생을 복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열매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수고를 알고 보응해주십니다. 우리가 이를 알고 확신 가운데 힘써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15-24)
  15절을 보십시오.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4절에서 예수님이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말씀하시자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분명 바리새인이나 율법교사였을 것입니다. 그는 종교지도자로서 때가 되면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참석하여 떡을 먹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면 세 가지 때문에 놀란다고 합니다. 첫째는 당연히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요, 둘째는 도저히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들어온 것이요, 셋째는 자기 자신이 천국에 들어온 것입니다. 가장 큰 복은 아무 자격 없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잘 알고 애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어떤 사람들이 참석하는가 비유로 말씀해주십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했습니다. ‘큰 잔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22장 2절에서는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황태자의 혼인 잔치에 초청받은 것같이 가장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큰 잔치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혼인 잔치를 할 때 두 번에 걸쳐서 초대를 합니다. 당시에는 미리 종들을 보내어 잔치가 있음을 알리고 참석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주인은 참석할 사람들의 숫자를 파악해서 음식과 포도주를 준비하였습니다. 축하 메시지와 특송과 찬양과 댄싱과 오케스트라와 각종 은혜로운 프로그램을 풍성하게 준비한 후 종들을 보내어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오소서’하며 정중하게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다 일치하게 사양했습니다. 한 사람은 “미안하지만 나는 밭을 샀기 때문에 못가겠네” 말했습니다. 당시 농부들은 대부분이 소작농이었기 때문에 밭을 산 것을 보면 그 사람은 부자임이 틀림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는데 시험해 봐야 해서 못가니 이해해 주기 바라네” 말했습니다. 한 겨리는 두 마리입니다. 밭을 갈 때 두 마리가 쌍을 이루어 갈았습니다. 그런데 밭을 갈기 위해 소 열 마리를 샀다면 그도 역시 큰 부자임이 분명합니다. 또 한 사람은 “나는 장가 들었기 때문에 못가네”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들은 잔치에 참석할 수 없을 정도로 긴급하고 중요한 일들은 아닙니다. 그들의 말은 모두 핑계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천국잔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부족함 없이 즐겁게 사는 사람들은 대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하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대 받은 것은 단순히 맛 있는 밥 한끼 먹는 차원이 아닙니다. 초청에 응하는 자는 구원 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알 때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하는 것을 사모하게 됩니다. 세상일 때문에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하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종이 돌아와서 초청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사양했다고 주인에게 고하자 주인은 매우 분노했습니다. 오랫동안 정성껏 잔치를 준비했는데 아무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자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준비한 잔치를 취소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초청하라고 하였습니다. 시내 거리와 골목에 있는 사람들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 맹인들, 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온전하지 못해서 성전에 나갈 수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하고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에 이사야서 29장18,19절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종은 이미 두 번씩이나 나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자리가 남아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종들을 길과 산울타리 가로 보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길과 산울타리 가는 멀리 동떨어진 곳입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멀리 동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잔치에 데려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종들에게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명하십니다. 강권하여 채우라는 것은 물리력을 동원하여 협박해서라도 데려오라는 뜻은 아닙니다. .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간곡하게 촉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큰 잔치에 사람들이 가득차기를 바라는 주인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집 주인은 아직도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이 잔치에 참석해서 즐기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이는 구원받을 사람들을 계속해서 찾고 찾으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종들은 이런 주인의 마음을 알고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데려옵니다. 이로 인해 주인의 집에는 사람들로 가득차게 되었고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이 비유에서 ‘집주인’은 하나님, 1차적으로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천국 잔치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천국 혼인잔치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구원의 잔치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대신에 하나님 나라 잔치에는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죄로 더럽혀진 사람들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길과 산울타리 가에 있는 자들은 곧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모두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부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할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들의 초청을 받았을 때 이를 영광스럽게 받아들였고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래 초청받았던 사람들은 하나도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라 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가장 귀한 구원의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잔치를 위해 많은 공을 드리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는 모든 것이 준비된 가장 큰 잔치요, 기쁨과 생명의 잔치요, 구원의 잔치입니다. 이를 알고 그 잔치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초청의 음성에 기쁨으로 응답함으로 천국잔치의 복을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II.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25-35)
  25절을 보십시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르면 기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참된 제자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를 미워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합니다. 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가족 간의 사랑의 관계성을 깨뜨리라는 뜻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부모님에게 반항하고 형제자매 가운데 다툼을 일삼던 사람이 예수님을 알게 된 후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형제자매를 더욱 사랑하게 된 예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거듭난 신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럴 각오로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부모의 권위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부모의 권위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뜻을 거역한다면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에게도 버림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합니다. 이런 각오 없이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없습니다.
둘째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고난도 기꺼이 감당하며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고난을 감당해야 하는지 알기 쉽게 가르치시고자 망대비유와 전쟁에 나가는 임금비유를 말씀해주십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망대를 짓고자 한다면 먼저 그 비용을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사전에 계산하지 않고 무작정 건물을 짓게 되면 기초만 쌓고 그만둘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는 먼저 앉아서 일만 명으로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려 봐야 합니다. 대적할 수 없다면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맺어야 합니다. 헤아려보지 않고 무작정 전쟁을 시작하면 큰 패배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비유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헤아려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먼저 계산을 해보고 예수님을 따를지 말지를 결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반드시 먼저 그 대가를 헤아려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생활은 취미로 하거나 재미 삼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가족들로부터 미움 받고 쫓겨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재물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꿈과 욕망을 포기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적인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어떤 희생과 손해도 감수하고자 하는 분명한 각오와 결단을 한 후에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난이 닥치고 희생과 손해가 요구될 때 제자의 길을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셋째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버린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맡은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이런 가치관 없이 자기 소유에 집착하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18장 18-23절에는 한 부자청년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 소원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재물에 대한 미련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기를 포기하고 근심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전 이베이에서 진행 된 세계 최고의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 경매 가격이 무려 1900만달러(246억원)에 낙찰되었다고 합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점심식사는 없다는 소식에 그 어느 때보다도 경쟁이 치열했다고 합니다. 점심 식사 한 끼에 이처럼 엄청난 거금을 투자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투자의 철학과 지혜를 배우기 위해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삶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을 갈다가 땅 속에 감추어진 보물을 발견하고는 그 밭을 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하고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한 가치가 있습니다. 놀라운 구원의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이를 알 때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댓가도 기꺼이 지불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확신 가운데 나에게 있는 시간과 물질과 삶의 전부를 드려 예수님을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각오와 결단이 없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맛을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고 식품을 저장할 때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소금이 맛을 잃게 되면 아무데도 쓸모가 없게 됩니다. 거름으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잃어버린 제자는 아무데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버림을 당하고 하나님 나라 잔치에도 참석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자 하는 각오와 결단 가운데 예수님을 따르며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지난 1년반 동안 부천까지 장거리를 출퇴근하면서 매일 첫 시간 일용할양식과 새벽기도를 절대적으로 감당하고 전철안에서도 성경 10회독을 하며 말씀을 더욱 간절히 붙드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퇴근후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사명을 감당하는데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마음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천국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센타 가까운 곳으로 병원을 이전한 후 많은 시간이 생기면서 그동안 소홀히 했던 운동도 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조금 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삶이 육신의 건강과 삶의 여유를 가져다 줄수는 있지만 자칫하면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신앙 경륜이나 목자의 타이틀이 천국잔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제가 지금까지 믿음의 투쟁을 힘써 감당했다는 자기 의와 자기를 사랑하고 편하게 지내고자 했던 마음을 회개합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의 전에 나와 새벽기도를 드리고 말씀연구와 제자양성의 십자가를 힘써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예수님의 제자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모든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내게 있는 시간과 물질과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드림으로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끝까지 가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잔치에 참석하려면 그 잔치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 가치를 알고 어떤 댓가라도 지불할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을 따르며 배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자의 인생은 하나님 나라 잔치로 인도하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제자로서 합당한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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