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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0-23 (일) 15:00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32강-1.hwp (32KB) (Down: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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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32강]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2022년 누가복음 제32강                                                            한아브라함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말씀 누가복음 18장 31절-19장 10절
요절 누가복음 19장 10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여리고 에서 두 사람을 만납니다. 한 사람은 맹인 거지요. 다른 한 사람은 세리 장 삭개오였습니다. 한 사람은 육신이 병든 자요. 다른 한 사람은 영혼이 병든 자였습니다. 이 둘은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예수님을 만남으로 눈을 떴고, 죄 용서 함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을 만나고, 죄 사함 받고 구원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만나고 영적인 눈을 뜨고 새 사람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1 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보통 사람들은 자기 앞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 길을 피하고자 애를 쓸 것입니다. 러시아의 징집영장을 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국외로 탈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앞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시면서 피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과 능욕과 침 뱉음과 채찍질을 당할 것이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것이다.’ 고난 받으실 것에 대하여 아주 세세하게 알려 주십니다. 그러나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다.’ 라고 선포하시는 것이죠. 사람들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겠지만, 인자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여서 승리의 주가 될 것이다, 라고 미리 말씀하시는 것이죠. 이 모든 것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마침내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이죠. 예수님이 이 사실을 미리 알려 주시는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제자들이 믿음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4 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제자들이 하나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토록 예수님이 자세히 설명하셨음에도 왜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까?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다윗 왕같은 정치적인 메시아가 되셔서 로마 식민지 백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자기 민족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기대하는 것이죠. 이런 제자들이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믿을 수도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수차례에 걸쳐서 수난 예고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온전히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인생 문제 해결해줄 메시아로만 기대하고 나의 소원을 들어주실 메시아로만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메시야 십자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제자들은 육신의 눈은 멀쩡했지만 영적인 눈이 감긴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비록 육신의 눈은 감겼지만 영안이 열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는 29km 떨어진 곳이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여리고가 있었습니다.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그곳에 주목받지 못하는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바디매오, 곧 디매오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고, 구걸하며 살아가는 거지였습니다. 여리고는 역사적인 도시입니다. 그 옛날 출 애급 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에 만난 당시에 난공불락의 요새로 불렸던 여리고 성 이곳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법에 그대로 순종했을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여리고성은 믿음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던 역사적인 장소였습니다. 이곳에서 평생 맹인으로 살던 거지 바디매오가 기적적으로 눈을 뜨는 문제 해결 받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맹인 거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선호 합니다. 그래서 이곳 여리고는 그의 일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맹인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소원이 충만하였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맹인이라 청각이 발달했을 것입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자 이 무슨 소리인가 물었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에 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두루 퍼져서 예수님이 병든 자들, 나병환자, 자기 같은 맹인들을 고쳐 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너무나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내 눈앞에 오시다니’ 하지만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하여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동안 구걸을 할 때는 최대한 슬픈 목소리로 불쌍한 표정으로 말해 왔습니다. ‘한 푼 줍쇼.’ 그러나 지금은 달랐습니다. 예수를 향하여 크게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처럼 소리를 지르는 것은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나사렛은 사마리아와 함께 당시 천대받는 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나다나엘이 제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메시아요 그리스도로 굳게 믿은 것입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이 소경의 외침이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꾸짖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예수님을 귀찮게 할 자격이 없는 하찮은 사람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눈이 멀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를 사람들이 도와주기는커녕 조용히 하라고 야단을 치니 그는 더욱 소리 높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외침은 마침내 예수님의 귀에까지 전달이 되었고,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반드시 사단의 방해가 있죠. 모처럼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방해가 따라옵니다. 친구나 직장동료 또는 부모님이 방해합니다. 술 퍼마시고 늦잠 잘 때는 꿀물을 타 주시던 어머니가 믿음으로 거룩하게 살고자 하면 그러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때 사단의 방해를 뚫고 더 크게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면 예수님을 반드시 만납니다. 그가 예수님을 다시 만날 기회는 없습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기적의 주인공 바디매오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문제 해결을 위한 영적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고자 하는 충만한 영적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간절한 기도의 외침이 있어야 합니다.

41절 보십시오. ‘내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맹인의 간절한 외침에 예수님은 머물러 서서 그를 데려오라 명하였습니다. 맹인을 데려오자 그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소경이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눈뜨는 것이지요. 당시에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너는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 는 질문인 것이죠. ‘주여 보기를 원합니다.’ 이 대답은 ‘당신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할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믿습니다.’ 라는 신앙고백인 것이죠. 4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네 눈이 치료되었다.’ 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너에게 구원을 주노라’ 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주의 말씀을 믿었을 때 즉시 눈을 떠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영혼의 구원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구걸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영육 간에 밝은 눈으로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희망차게 출발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면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하죠. 맹인 거지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고 초대교회의 기둥이 되었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간절한 기도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문제 해결을 받게 됩니다. 구원을 얻게 됩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졌던 것처럼 여리고의 맹인이 눈을 뜬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하러 나왔으면서도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간 이 예배 시간 주님이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예수의 제자라고 하면서도 영적인 눈이 감긴 채 세상 가치관을 따라 살고 있진 않습니까? 앞이 보이지 않아 미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진 않나요?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십시오. 주님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미래를 보십시오. 주님이 물으실 때 우리는 영의 눈을 뜨기를 원하나이다. 간절히 외쳐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고 예수님을 밝히 보며 영적인 가치관을 가진 제자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9장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 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삭개오라 이름 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였습니다. 당시 세리는 정해진 세금보다 더 거두어서 일정 부분 로마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가 가졌습니다. 그는 세리들의 우두머리인 세리 장이었습니다. 그는 칼만 안 들었지 강도와 같이 동족들의 재산을 빼앗아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율법에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삭개오 라는 뜻은 ‘깨끗한’, ‘순전한’ 이란 뜻입니다. 그의 부모는 삭개오를 낳고 그의 이름과 같이 순전하고 깨끗한 인생을 살라고 삭개오라 이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이름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키가 유달리 작은 관계로 무시 받았을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줄 알고 부단히 노력한 결과 부자가 되었습니다. 좋은 저택에서 여러 하인들을 두고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로마에서도 인정받는 세리 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부자가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죠. 뒤에서는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수군대며 욕을 했습니다. 자녀들은 학교에서 세리의 자식이라고 놀림 받으며 왕따를 당했습니다. 세관에 있을 때는 뭔가 된 것 같았지만 집에만 오면 늘 우울했습니다. 부자가 되었지만 자기뿐 아니라 가족까지 사회에서 냉대 받는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젊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 양심이 아파 왔습니다. ‘죽으면 꼼짝없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구나.’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삭개오와 같이 성공과 출세를 위하여 달려가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도 만족을 못합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으로도 만족을 못합니다. 다른 어떠한 성취로도 만족을 못하죠. 돈을 벌어도 만족을 못합니다. 원하는 결혼을 해도 만족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채워 주시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는 빈 공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것이죠.

3절을 보십시오. 삭개오는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세리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여기서 ‘보고자 하되’의 원어의 뜻은 계속해서 보고자 하였다 라는 뜻입니다. 간절히 찾다 갈망하다 라는 뜻이죠. 그냥 단순히 호기심으로 연예인 보듯이 한번 보고자 한 것이 아니고, 주님 보기를 간절히 원하고 또 원했습니다. 주님 보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는 키가 작아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기도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의 조롱이 두려웠습니다. 보통 이 정도 어려움을 만나면 포기합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는 어린아이처럼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나무 위로 돌 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은 자신이 키가 작다는 자신의 컴플렉스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입니다. 컴플렉스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죠. 여리고 세리 장이라는 체면을 극복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비난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보고자 하는 열망이 모든 방해를 극복한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고자 할 때 반드시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장애물을 만나면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삭개오 같이 바디매오 같이 예수를 만나고자 하는 충만한 소원으로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포기하지 말고 예수만을 바라보고 나아가야겠습니다.

5절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하겠다 하시니’ 예수님은 돌 무화과나무에 있는 삭개오를 주목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너를 만나야하겠다.’ 예수님이 어떻게 삭개오의 이름을 알았을까요?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 때문에 삭개오를 다 아셨습니다. 그동안 삭개오가 세리 장이 되기까지, 또 세리 장이 된 이후에도 얼마나 처절하게 살았는지, 그럼에도 내면의 만족과 기쁨이 없고 공허하고 죄의식으로 괴로워하였던 것을 아셨습니다. 그가 세리의 친구이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가 하는 것도 다 아셨습니다. 이런 삭개오를 예수님이 만나러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다 아십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찾는 자를 절대로 외면치 않으십니다. 이름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만나 주시고 그 집에 유하고자 하셨습니다. 삭개오와 교제 나누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늘의 황태자께서 죄인 중에 괴수의 집에 유하고자 하십니다. 식사를 같이 하십니다. 즉 친구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가정 방문을 한다 하실 때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삭개오의 집이 어떤 집입니까? 그의 집은 부정부패의 온상이었습니다. 도둑의 소굴이었죠. 이는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이 오셔서 유하신다면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너무나 기쁘고 황송하여 급히 내려와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자 뭇사람이 보고 그가 죄인이 집에 들어갔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율법 사회에서 세리 같은 공인된 죄인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하는 것은 당시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그가 어떻게 이런 어려운 결정을 내렸을까요? 삭개오가 예수님과 같이 그의 집에 가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가난한 자들, 소외된 자들, 병든 자들의 행렬을 그는 보았습니다. 이들을 일일이 사랑으로 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에는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이 1도 없었는데, 이제 예수님과 동행하며 가난한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에 은혜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전해 주신 말씀에도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온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놀라운 결단을 하였습니다.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고 속여 빼앗은 것은 네 배로 보상하겠다고 했습니다. 율법에는 속여 빼앗은 것에 이십 프로를 더 하여 주라고 하였습니다. 강도 짓한 경우 에만 네 배를 배상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4배나 갚겠다고 함으로써 자신이 강도짓 한 것과 같은 자임을 인정한 것이요, 이 죄를 철저히 회개한 것입니다. 자발적인 결단이었습니다. 배상하고 나면 그의 재산은 거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말로만의 회개가 아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진짜로 만나면 삶이 변화됩니다. 회개하고 세상 욕심으로 살던 삶을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삽니다. 부자 청년과 대조적입니다. 부자 청년은 삭개오와는 180도 달랐습니다. 그는 율법을 잘 지켰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이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도전하자 그는 자신의 물질이 재산이 아까워서 결국 예수님을 버리고 물질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삭개오가 진심으로 회개하자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다고, 이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삭개오를 통해서 보듯이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변화가 따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혼이 변화되고, 몸이 변화되고, 마음이 변화되고, 생각이 변화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자손의 영광과 명예를 회복하게 됩니다. 세리장 삭개오도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이요. 잃어버린 드라크마이며, 잃어버린 둘째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 살아가는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려 함입니다. 이를 위해 여리고를 통과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니다. 삭개오처럼 예수님께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써 권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영생을 주십니다. 죄인이라고 하는 것과 잃어버린 자라고 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죄인이라는 말에는 판단과 정죄가 담겨 있습니다. 심판의 대상이고 소망둘 수 없는 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죠. 그러나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라는 것은 본래 하나님께 속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인류는 아담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희생하심으로써 잃어버린 자들을 찾고자 하십니다.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이 어떠합니까? 개구리 소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목자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양들을 볼 때도 죄인으로 정죄하기보다 잃어버린 자들로 하나님의 신분을 회복하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저도 과거 잃어버린자였습니다. 학창시절 학과공부에 대한 부담감 장래에 대한 염려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초청하지 않았지만 여름수양회에 제 발로 참석하여 거기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저와 같이 잃어버린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새사람 되는 역사에 시간과 물질을 드려 섬기는 목자의 인생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제가 바디매오의 간절함과 삭개오의 헌신을 잘 배워 주님께 유익을 드리는 자로 성장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들은 예수님을 만나면 구원받고 변화됩니다.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삽니다. 삭개오처럼 자신을 드리는 삶을 삽니다. 우리가운데 잃어버린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받고 변화되는 역사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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