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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2-12 (일) 10:48
분 류 베드로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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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베드로전서 제3강]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으라
2023년 베드로전서 제 3강                               원규연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으라

말씀: 베드로전서 3:1-4:11
요절: 베드로전서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베드로전서는 AD 65년경 로마 네로 황제의 기독교에 대한 대 핍박의 시대에 기록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 핍박 때 순교당한 것을 보면 이 서신에는 베드로 사도의 유언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핍박받는 성도들에게 움츠러들지 말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하여 도리어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신자의 가정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자는 고난의 때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이 말씀을 잘 듣고 새겨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을 담대한 믿음의 용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part1. 믿음의 가정 (3:1-7)
  초대 교회가 수많은 핍박과 박해를 이기고 헬라 전 지역에 선교를 잘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로마의 300년간의 평화, 도로 발달, 헬라어 통용, 순교 때문이라는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더해진 것이 가정교회의 역할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임은 주로 두 군데, 회당과 가정교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회당은 유대인 중심, 남성중심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정교회는 유대인뿐 아니라 헬라인, 여성, 종들도 참석했고 성, 종족, 신분의 차별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가정교회의 형태는 로마의 엄청난 박해에도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복음 확장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런 가정 교회가 얼마나 귀한지 잘 알았습니다. 가정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말씀으로 예수 믿는 가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사도 베드로는 먼저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혹 남편이 이교도이거나 믿음이 아주 적은 자라 하더라도 말로 설득하기보다 아내가 겸손히 순종하는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하나님을 경외함과 정결한 행실을 보고 아내가 믿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여성의 아름다움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의 숨은 사람, 즉 내면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금장신구를 걸치고 비싼 명품 옷으로 휘감아도 찬바람이 불고 괴팍한 성격을 가진 자라면 아무도 아름답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온유하고 조용한 심령으로 믿음과 순종의 내면성으로 단장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값진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라의 겸손과 순종을 예로 들어 본받도록 하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속이기도 했던 부족하고 두려움 많은 남편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사라는 주(my lord)라 하며 순종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순종한 것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남편이 두렵게 하는 일에도 굽히지 않고 믿음을 지키면 아내들은 사라의 딸, 그의 후손이 된 것이라고 인정하십니다. 아내들이 가정생활에서 지켜야 할 기본 질서는 순종이고, 내면의 믿음으로 단장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임을 가르쳐주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가정생활에서 남편의 역할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결혼을 이루신 하나님의 뜻을 인식하고 아내를 대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보통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수십억명중에서 그의 남편을 위해 돕는 배필로 택하여 주신 아주 귀한 사람입니다. 또한 아내들은 남편보다 몸과 마음이 더 연약한 그릇이므로 그를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보호하고 평안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결코 힘이 세다고 권위를 부리고 언어폭력, 신체적 폭력을 쓴다면 하나님의 뜻에 크게 어긋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는 생명의 은혜, 즉 영생과 천국을 함께 유업으로 받을 믿음의 동반자요, 같은 사명으로 부르심 받은 믿음의 전우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보호하고 함께 동역할 때 기도가 막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함부로 대하면 아내는 마음이 병들게 되어 우울증에 시달려 몸도 병이 나고 무너져 갑니다. 갈수록 마음이 닫혀 동역하기 힘들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자녀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 믿음으로 사는 것에 회의와 불신을 갖게 됩니다. 가정교회는 훗날 언제 닥칠지 모르는 핍박의 시대에 우리가 피할 마지막 도피처와 같은 곳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존중하고 높일 때 기도가 막히지 않고 합심하여서 생명 구원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저도 어느덧 가정교회를 이룬지 올해가 20년째 되는 해입니다. 20년을 살면서 동역자는 평소에 제가 화가 난 상태면 거기에 화를 돋우지 않기 때문에 분쟁이 금방 마무리 되었습니다. 온유하고 내면성 있는 동역자를 아내로 주셔서 진정 감사드립니다. 또 기도하고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존경하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 받을 자로 귀히 여기고 있습니다. 올 한해에 우리 가운데 말씀위에 굳게 선 가정교회가 많이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part 2.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라 (8-22)
  8,9절을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하면서 다시금 결론적으로 간곡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교회 내에서 섬겨야 할 형제들에 대해 먼저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라’고 합니다. 고난을 받으면 서로 무관심해지고 이기적이 되고, 자기중심적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같이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힘든 시기를 극복하려면 마음을 같이 하여 힘을 합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힘든 형편을 이해하고 동정하며 형제처럼 사랑하고, 마치 내가 어려움을 당한 것 같은 동일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 돕고자 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을 찾기 힘든 시대가운데 교회에 나와서 말씀공부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형제자매들이 얼마나 귀한가요? 물론 세대차, 문화의 차이, 언어의 차이로 인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만 이들은 귀한 믿음의 후손들임을 알고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게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박해자에 대해서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원수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하십니다. 교회가 못마땅하여 민원을 넣어도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곧 우리는 선을 행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 복을 우리만 누리고 우리만 천국을 소유할 것이 아니라 복을 전하여 그들도 복을 이어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기가 쉽지 않고 양들에게 좋은 마음으로 다가갔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그들을 위해서 계속하여 기도하며 낙심치 말고 선을 행하여 그들도 하나님의 복을 받도록 돕는 목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10-12절까지 시편 34편 말씀을 인용하여 구체적으로 신자들의 행동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우리가 장차 영광의 날을 보고자 한다면 우선, 우리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쳐야 합니다. 악한 말은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남의 명예에 손상을 줍니다. 악한 말 한 마디가 서로의 신뢰를 깨고 사람을 실족시킵니다. 생명을 사랑한다면 입술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헐뜯는 것을 금해야 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여 입술로 격려하고 칭찬하고 기도하는 말로 화평을 이루고 믿음을 심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성도는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해야 합니다. 화평을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 들은 말을 저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옮기므로 이간질시키기도 하고, 거짓을 말함으로 올무에 빠지게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득을 취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분쟁이 있는 곳에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를 향하십니다. 우리의 선행, 우리의 기도를 주님께서 다 보고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며 응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악행하는 자들 또한 하나님께서 모르는 체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악행을 향해 진노하시는 얼굴로 심판의 때를 위해 저울로 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느라 손해 본다는 불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눈과 귀는 의인을 향해 그의 사랑을 나타내고 계심을 믿고 담대하게 선을 행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사도 베드로는 더 나아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라고 격려하십니다. 그러면 선을 행한다는 정의는 무엇입니까? 기독교 신앙고백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91문에는 선행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서 그리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행한 것만을 선행이라 하며,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사람의 계명에 근거한 것은 선행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답게 진리의 말씀에 기초해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 선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주고 전도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님들이 일생을 바쳐 타국에서 제자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평신도 목자님들이 매주 말씀을 연구해서 전하는 것 역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학생 목자들이 젊은이의 본성대로 사는 것을 멀리하고 친구들을 초청하고 말씀역사를 섬기는 것 역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자기 시간과 물질을 드려서 복음 역사 섬기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것은 자기를 버리고 희생하고 낮아 져야하기에 큰 고난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마십시오. 선을 행하고 의를 위한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큰 복을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이 친히 채워주시는 영적인 복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0-12) 하셨습니다. 신자들이 받는 고난은 단순히 고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은 천국에서 누릴 상급과 영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하니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근심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면 두려움의 종에서 해방됩니다. 두려움과 근심의 뿌리는 죽음과 심판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감당할 때 주님은 우리의 죽음과 심판으로 인한 두려움을 해결해 주시니 어찌 아니 기쁘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뜻을 좇아서 의를 행하는 고난을 감당할 때 어느새 우리가 결코 해결할 수 없었던 일들을 자연스레 이미 해결되도록 도와주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잠시이나 우리가 받을 복은 영원한 상급이고 근본적인 복을 받는 것이므로 오히려 크게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면 삶이 달라집니다. 죄악을 먹고 마시던 삶에서 ‘거룩’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근심으로 쪄들었던 마음이 충만한 기쁨과 평안과 소망으로 넘쳐서 표정과 언행심사를 통해 나타납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할 것입니다. 요즘은 노상현목자님을 볼 때마다 놀랄 뿐입니다. 그가 처음 센터에 왔을 때는 장발에 무척 말라서 픽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예배 때도 매일 늦어서 소망을 두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사무엘하 22장 29절 말씀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말씀의 능력으로 어둡던 그가 완전히 변화되어 이제는 그가 없으면 센터역사가 돌아가기 힘들 정도로 하나님께 유익한 종이 되었습니다. 대학원에서 철학, 의학 두개의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경희대 행복기숙사 사감, 계성고등학교 교사 등을 하며 때마다 양들을 섬기며 돕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십자가로 잠잘 시간이 부족하지만 얼굴엔 오히려 생기가 돌았습니다. 하도 궁금해서 제가 그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캠퍼스에 남아서 말씀전하는 것이 삶의 소망이라고 지체 없이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분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가져도 불안하여 잠을 못자고 우울한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갖고 더 좋은 것을 먹고 마셔도 참된 기쁨이 없습니다. 이는 참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들에게 물을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을 믿고 희생하며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슨 소망이 있기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까? 물을 것입니다. 그때 지체 없이 증거해야 합니다. ‘저에겐 주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주님께서 주신 구원과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을 정의하기를 ‘같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의 삶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저녁에는 말씀공부, 기도모임, 철야 기도모임, 1대1과 찬양대, 오케스트라, 토요미팅 등 일주일이 꽉 차 있습니다. 대부분의 목자님들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왜 이런 삶을 사는 것입니까? 주님이 나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구원역사를 섬기는 택함 받은 은혜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목자님들은 양들이 회개하고 소감발표 하면 그렇게 좋아합니다. 이는 양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역사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생 이후로 이문동, 회기동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후배들과의 사랑의 교제가 있고 캠퍼스 사명이 있는 이곳 여기에서 주님을 만났고 주님을 전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이곳이 제게는 소망의 터전입니다. 우리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때마다 점검하고 내가 무엇을 위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된 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오늘의 요절 말씀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인간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그러나 고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받는 의로운 고난과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입니다. 따라서 고난 받을 때는 먼저 내가 왜 고난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죄가 있어서,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라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영접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에는 엄청난 열매가 있습니다. 불의한 자를 구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복음을 전하는 고난을 통해 양들이 구원받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18절에서 사도베드로는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고난 받으사 죄인들을 살리신 예수님이 우리의 기준이 되심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셨으므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노아 시대에 불순종했던 옥에 있는 영들에게까지 그리스도가 주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도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을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할 때 불신자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노아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노아는 120년간 방주 짓는 고난을 감당하여 결국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120년을 한결같이 믿음으로 방주를 짓고 의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비가 오고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이 다 물속으로 가라앉을 때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는 겨우 8명, 노아와 그 가족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으면 거기에는 생명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베드로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의 원형으로 보았습니다. 세례는 물을 통해서 받는 구원의 징표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는 외적인 형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도록 인도하는 시작점입니다. 22절입니다.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예수님은 고난 후에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였습니다. 고난 받은 그리스도는 최후의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고난에 동참할 때 최후의 승리자가 됨을 확증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최후 승리로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part 3. 그리스도인의 생활 (4:1-11)    
  4:1,2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고난의 또 다른 유익은 고난을 통해서 죄를 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정욕은 우리를 끝없이 따라다니며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에는 더욱 깨어 있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점점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어 죄를 그치게 됩니다. 사람이 타락하기 시작하는 것은 가난하고 어려울 때가 아닙니다. 배부르고 가진 것이 많아지면서 죄악 된 딴 생각을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람을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고난이란 폭풍우는 우리를 흔들어 새 사람으로 빚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자 은총의 손길입니다. 따라서 고난 받을 때 주눅 들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것이 아니라 더욱 예수님의 믿음의 세계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공보의 훈련 때 딱 일주일간 모든 것이 통제되고 모든 음식도 통제된 생활을 한 후 2주 때 논산훈련소 예배에 가니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달수가 없었습니다. 다들 울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였습니다. 잠시의 고난도 영적으로 깨어 있게 한 것을 그때 체험하였습니다. 고난의 은혜를 체험한 자는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 소망을 가진 거룩한 나그네로서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야 할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과거에 수많은 죄를 행했으므로 지나간 때로 충분합니다. 더 이상 죄악된 삶에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자신은 신입생 때부터 성경공부 해서 죄를 많이 짓지 않았으니 아직 좀 더 죄의 낙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2세로 태어나서 세상 친구들보다 죄를 훨씬 덜 지어서 죄를 즐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된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넘치는 죄를 사함 받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들이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주님께 그들의 죄가 사실대로 알려질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입니다.(4-6)
  7-10절까지는 신자가 이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첫째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깨어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게 되고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영적 방향을 잡게 됩니다. 둘째로, 우리는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내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고 모임에 사랑이 충만할 때 양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서로 대접해야 합니다. 서로 대접하는 것을 원망 없이 해야 합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서로 대접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 기도하는 모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각각 은혜를 받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살도록 우리 각 사람에게 그만의 특별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이기 때문에 자기 것인 양 마음대로 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들을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를 쓰지 않으면 녹슬고 은사를 드리면 능력과 은사가 불같이 살아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아낌없이 드려 봉사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설교자나 교사로 말하는 자들은 인간적인 말을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말해야 합니다. 봉사하는 자들은 부족한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하는 것같이 감사하며 힘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범사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저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왜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27년차 ubf 맨인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교회에서 주님을 만났고 가장 소중한 청년기를 존경하는 목자님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이곳에서 소중한 동역자도 만났고 자녀도 얻었습니다. 존경스러운 선후배 목자님들을 만났습니다. 안정된 직장, 학생들을 섬기기에 최적의 직장도 주셨지만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잡아서 선을 행하는 데는 게을렀습니다. 어느덧 안정기에 접어 들고 소위 말하는 중년의 위기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점점 마음이 둔해지고 고난당하기 싫어졌습니다. 고난의 그림자만 봐도 회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가운데는 정욕과 세상 욕심이 점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본문을 백번은 넘게 듣게도 하시고 읽게도 하셨는데 아브라함목자님 처럼은 결코 외울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가 무엇을 위해서 인생의 중반부, 후반부를 살아야 할지 방향을 주십니다. 제가 붙들고 있는 썩어질 세상 소망, 사람의 정욕을 회개하고 선을 행하는 삶,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이때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드려 말씀전파를 위한 고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베드로는 고난의 때에 적극적으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십니다. 이런 값진 고난을 감당하려면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믿음으로 사는 소망의 이유를 분명히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도 육체의 남은 때를 깨어 근신하며,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적극적인 복음의 증거자들로 귀하게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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