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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7-03 (토) 15:34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요한복음_제17강-1.hwp (29KB) (Down: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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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17강]한 알의 밀
2021년 요한복음 제17강                                                        오정훈

한 알의 밀

말씀/ 요한복음 12:20-50
요절/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사람들 마음에는 이처럼 죽은 후에도 뭔가를 남기고 싶은 열망이 가득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에서 많은 열매를 남기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를 한 알의 밀알의 비유로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배우고 한 알의 밀알로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헬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아니라 유대교로 개종한 정통 헬라인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7장21,22절을 보면 헬라인들은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고’ 또 ‘범사에 종교성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은 참으로 놀랍고도 신비스러운 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고상한 철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죽음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정말 한 번 꼭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필립이라는 헬라식 이름을 가진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뵙기를 청했습니다.(21) 그런데 빌립은 오병이어 사건으로 직접 말씀드리기 뭐 했는지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님께 가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헬라인 몇 사람이 나온 것을 보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말씀하십니다. 이제까지 항상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셨는데 여기서는 왜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환호하는 유대인들, 거기다가 헬라인들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정말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생각하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광은 죽음 너머의 영광 곧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이루어질 구원 역사의 완성과 부활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이를 위해 밀알의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24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알은 그 자체는 영광이 아닙니다. 참새 간식거리도 되지 않는 하찮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많은 열매를 맺으면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어떻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먼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합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죽는다는 것은 자기희생이요 자기 분해를 가리킵니다. 싹이 나올 때까지 한 알의 밀은 자신의 영양분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내어줍니다. 손으로 모내기 해보면 가끔 모 뿌리에 속이 텅 빈 볍씨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알의 밀알이 철저히 분해되고 죽을 때 그 양분을 힘입어 싹이 나오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 과정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밀이든 쌀이든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양분을 내어주며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 죽음은 썩어 없어지기 위한 죽음이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거룩한 죽음이요 영광스러운 죽음입니다. 이렇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밀은 4개월이 지나면 100-125개의 알곡을 보통 맺게 되고 이 알곡들을 다시 땅에 뿌리고 거두는 과정을 5년 동안 되풀이하면 100-125억 개라는 엄청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는 17,000가마니로 100명이 하루 세 끼 빵만 먹는다고 해도 60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식량이 됩니다. 이처럼 한 알의 밀이 가지고 있는 위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런 위력이 실제로 나타나려면 반드시 땅에 떨어져 100% 죽어서 분해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한 알의 밀알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로 오셔서  머리 둘 곳도 없이 각종 병들고 상처받고 귀신들려 고통 받는 자들을 섬기기 위해서 철저히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죄로 인해 멸망 받을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므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거룩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생명의 열매로 맺히게 되었습니다.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을 버리시고 온전히 죽으신 한 알의 밀알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우리도 이 예수님을 본받아 한 알의 썩는 밀알로 자신을 드려 많은 열매를 맺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죠셉 헨리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s)는 호주에서 우리나라에 파송한 최초의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누나 메리와 함께 1889년 10월 2일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교사가 한 명도 없는 곳에 가겠다고 결심하고 5개월 후에 부산으로 떠났습니다. 20일을 걸쳐서 500킬로를 여행하여 마침내 부산에 도착하였지만 불행히도 폐렴과 천연두에 걸려 그는 부산에 도착한 다음날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그의 나의 34세였습니다. 그는 호주 멜버른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결혼도 못해보고 선교사로서 제대로 일도 못해보고 죽었으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러나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순교소식에 감동을 받은 호주교회에서 120명이 넘는 후속 선교사들이 그 후로 한국 땅에 파송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이 억 만 리 한국 땅에서 떨어져 죽었을 때 실로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자기가 죽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자녀가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가 온전히 희생하고 헌신하여 죽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생명의 열매가 없는 이유는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 주위에서 생명의 열매가 시작되는데, 내가 죽지 않으니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죽는 것은 항상 현재적인 것입니다. 이전에 죽었지만, 지금은 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는 것은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 죽는 것을 날마다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저도 이렇게 죽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요즘은 영 죽기가 싫어졌습니다. 수년전만 하더라도 일대일하면서 졸고 일대일 끝나고 기도하다가 졸만큼 수고하고 헌신했는데 요즘은 별로 그러지 못했습니다. 집에 가면 이래저래 피곤하고 치과에 가면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좀 깎아달라는 환자들로 인해 삶에 기쁨이 없었습니다. 새벽을 깨우지만 기도실에 엎드려 비현실적인 꿈만 꾸다가 돌아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땅에 떨어지긴 했는데 전혀 죽지 않을 때 제 삶에 열매가 없었습니다. 시대가 악하고 환경이 나빠서 열매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자기 한 몸 아끼며 잘 살아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 여전 치과에 코로나 환자가 다녀가면서 정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게 인생이구나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요즘 델타변인지 뭔지 때문에 확진자가 늘면서 백신 맞았다고 자랑할 것도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이왕 한 알의 밀로 떨어졌으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것이 아니라 주와 복음을 위해 온전히 죽는 것이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인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번 수양회 라이프 강사가 2명 뿐이라는 누군가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듣고 ‘아, 땅 짚고 헤엄치기구나’ 속으로 아주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 기도모임에서 거의 10명으로 늘어난 강사 수를 보며 ‘역시 그러면 그렇지’ 절망하였습니다. 강사들과 지지고 볶고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내가 인생소감을 쓰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마음이 편치 않은가? 그것은 죽고자 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예전에 많이 죽었으니까 이제는 그렇게까지 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을 보며 죽는 것이 사는 길이며 많은 열매를 맺는 영광을 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안죽으려고 발버둥치고 자기만을 위해 살고자 하는 죄악된 본성을 회개하고 다시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는 한 알의 밀알로  자신을 드리는 삶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번 수양회 특별히 라이프 강사들 힘써 섬겨서 구원의 은혜가 드러내는 역사에 쓰임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만을 위해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자를 말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자기를 영원히 보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자는 잃게 되고 오히려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게 됩니다. 영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는 이 역설적 진리를 단순하고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는 주인공 형사가 퇴직 일주일을 남겨둔 데서 시작합니다. 그는 떨어지는 낙엽에도 몸을 사리며 그 일주일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랍니다. 그러나 퇴직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한 건강검진에서 불치의 혈액암을 진단받게 됩니다. 이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 셔틀버스 운전기사가 마약복용사실이 들통 날까봐 주인공의 혈액샘플과 자신의 것을 바꿔치기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모르는 주인공은 이제 8살인 아들이 하버드대학에 들어가는 평생의 꿈이 날아가게 된 것으로 인해 절망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꿈에서 아들이 하버드에 합격했지만 자신의 죽음으로 등록금 낼 돈이 없다고 말하는 아내의 말을 듣고 놀라서 꿈에서 깹니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총에 맞아 순직함으로 아들이 하버드에 들어가는데 충분한 보상금 23만 달러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주인공은 며칠 안남은 퇴직을 남겨두고 총에 맞아 죽기 위해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력범죄 현장으로 달려 나갑니다. 매일 팔이 부러지고 다리를 다치는 큰 부상을 입지만 강력범들을 체포하여 표창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불법무기제조단과 맞닥뜨리게 된 그는 죽기 위해 차창 밖으로 몸을 드러내고 자신을 쏘라고 하지만 그들이 쏘는 기관총은 빗나가고 두목이 던진 수류탄도 계단사이로 빠져 죽지 못하고 맙니다. 조직두목과 건물창문을 닦는 곤돌라에서 마지막 사투를 벌일 때 혈액샘플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된 파트너가 그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때부터 그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곤돌라를 지탱하던 줄에 발이 걸려 추락하고 맙니다. 물론 주인공은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영화의 주제는 너무나 간단하여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발버둥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지 않고 이 땅에서 잘 살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자기를 사랑하여 몸에 좋다는 것은 사서 먹고 마시고 바릅니다. 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을 아끼고 보존하려고 한다고 해서 보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자기 생명을 미워하여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다 잃어버릴 것 같지만 오히려 영생하도록 보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런 자를 풍성하게 축복하시고 그 생명을 영원토록 보존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 이런 사람은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어리석은 삶인 것 같지만 실상은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그런 믿음과 가치관이 있는 사람은 항상 주님을 섬기는 곳, 십자가의 자리에 있습니다. 운동할 때, 뭐 먹으러 갈 때, 엠티 갈 때는 있다가 꼭 필요할 때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자리에 항상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영생하도록 보존하여 주십니다.

27절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질 영광을 보셨지만 죽음 앞에서는 괴로우셨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육신을 입고 계신 예수님도 할 수만 있으면 이 십자가를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보통 우리의 기도는 여기서 멈추고 여기에 집중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심히 고통스러우셨지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세상에 십자가 체질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위대한 전환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십자가 앞에 결단이 필요하십니까? 그러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요즘 이마태오 형제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꼭 저랑 말씀공부 해서가 아니라 이번에 십자가 메시지를 맡았는데 이를 어찌하든지 감당하고자 하는 자세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정말 불과 몇 년, 한 2년 전만 해도 언제 좀 어른스러워질까 늘 노심초사했는데 결단하고 십자가를 지고자 하니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고통스럽지만 나를 살리고 나를 성숙하게 하는 길입니다. 28절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길 원하셨습니다.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나님은 이미 그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28b) 무리들은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고 천사가 말하였다고도 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소리가 난 것은 그들을 위함이니 곧 예수님의 죽으심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죽으심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죽음이란 것입니다. 31절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날 비전을 보셨습니다. 곧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서 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이 쫓겨나는 완전한 승리를 바라보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땅에서 들리십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32)” 땅에서 들린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동시에 말씀하시는 것으로 땅에서 들리신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택하신 모든 자들을 예수님께로 이끄실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은 패배자의 죽음이 아니라 승리자의 죽음이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죽음이십니다.
34절입니다. 무리들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계신다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는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율법에서 인자 곧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가 영원히 계신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삼하7:13) “이 인자는 누구냐?” 이런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입니까? 35,3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요한복음에서 빛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어둠은 불신과 무지와 죄악을 상징합니다.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있을 동안에 빛이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면 어둠에 다니지 않고 빛의 아들이 됩니다(35,36).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서 숨으셨습니다. 숨으셨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무리들에게 가르치지 않으시고 마지막 제자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드리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37-41절은 2-12장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표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요약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많은 표적을 행하셨는데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의 불신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예언의 성취로 보고 있습니다. 38절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이사야 시대 사람들이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고 능력을 보아도 믿지 않았던 것처럼, 예수님 시대에도 동일하게 믿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주의 팔 곧 주의 능력이 나타난 것을 보고도 믿지 않는 것입니까? 39,40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는 것은 그들이 믿기를 거부하니까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두신 것(롬1:24)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 능력의 역사를 보고도 끝까지 믿지 않는 자들은 억지로 믿게 하지 않으시고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이렇게 계속된 촉구에도  믿기를 거부하면 결국 그들의 눈이 감기고 마음이 닫히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말씀하실 때 마음을 열고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b)

41-43절을 보십시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유대인 관리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그들은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출교란 종교적인 축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고립을 의미하였기에 심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의 평가와 인정에 매일 때 하나님 편에 온전히 설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어려움과 불이익이 따르더라도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분명하게 하나님 편에 서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외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44-47절을 보십시오. 이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믿음으로 어둠에 거하지 않고 구원에 이르게 하려 하심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그들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함이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지 않고 완악하게 굴면 어떻게 됩니까? 48절입니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거부한 자들을 마지막 날에 그 말씀을 따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믿고 구원을 받고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이는 주께서 하신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생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50)

결론입니다. 우리 인생은 이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과도 같습니다. 이것을 어디다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지고 열매가 바뀌게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 아끼고 자기만을 위해서 쓰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런 인생은 한 알 그대로 있는 인생, 아무 열매도 없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드리고 복음 역사를 위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복된 인생이 됩니다. 밀알의 진리를 몸소 보여주신 주님을 본받아 한 알의 썩는 밀알로 우리 자신을 이 땅에 드려지므로 많은 열매를 맺는 영광스러운 인생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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