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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7-23 (금) 14:59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1년_여름수양회_제1강-1.hwp (26KB) (Dow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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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수양회 제1강]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2021년 여름수양회 제1강                                                            남동희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1 – 10
요절 -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 Introduction
오늘 말씀의 주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입니다. 창세기 때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후로 인간은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가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명화 천지창조를 보신적이 있나요?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를 향해 손을 뻗고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습니다. 이러한 무너진 관계성을 회복하고자 하나님은 예수님을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2. Contents
2.1 뽕나무 위로 올라간 삭개오(1-4)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여리고(Jerico)’라는 이름의 도시를 지나가실 때 발생한 사건입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 근교에 위치한 상업과 교통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출애굽기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이스라엘인이 처음으로 점령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당시 하나님은 철옹성과 같던 여리고 성을 일주일 동안 빙글빙글 돌도록 하셨습니다. 7일째 되던 날 여리고 성이 무너졌고, 이스라엘인이 여리고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여호수아 6장 3-5). 우리나라로 치면 현재 수원정도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여리고에 ‘삭개오(Zacchaeus)’ 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 지역의 세리장이자, 소문난 부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리장은 지금으로 치면 지방국세청장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당시 유대사회에서 세리란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어찌보면 단순히 세금을 거두는 공무원인데 사람들로부터 왜 배척을 당하는가 궁금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3장 12-13절에 보면 세례 요한에게 나온 세리들이 ‘우리는 회개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라고 묻자 세례 요한이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제국에 바칠 세금을 징수하였고, 부과된 것 이상으로 징수하여 폭리를 취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지배로 고통받던 유대인들에게는 사실상 세리들은 매국노와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예수님을 보고자 거리로 나왔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인기는 엄청났기에, 수많은 인파가 예수님을 보러 나왔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아 인파에 가려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고, 결국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기본적으로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 열심이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살다가 장애물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서 선택을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볼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자 바로 나무 위로 올라가는 적극적인 사람입니다. 삭개오의 자세한 삶은 성경에 추가적으로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의 성향 상 세리 업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였기에 세리장이 되었을 것이고, 재물을 자신의 목표로 두고 열심을 다하여 살아온 사람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열심히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었지만, 그는 필요한 순간에 도와줄 이 하나 없는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고자 길거리로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지만 오히려 공허했고, 사람들로부터 비난받는 외로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 상황을 바꾸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마침 마태와 같은 세리들을 영접하신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고,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예수님 앞으로 나온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안정되면 그것에 만족하여 안주하며 살아갑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9장 24절(“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리라 하시니”)에서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을까요? 그만큼 자신의 안정된 삶과 물질을 포기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달랐습니다. 비록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지만, 그는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영적인 소원과 간절함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주십니다. 우리도 삭개오와 같은 열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2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머물러야) 하겠다 하시니(5-7)
예수님은 뽕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보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너의 집에서 머물러야 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원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름이란 우리 자신을 지칭하는 고유하는 것이며, 각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각자의 소망을 담아서 이름을 지어줍니다. 저의 부모님은 저에게 동쪽의 희망이 되는 큰 사람이 되라는 소망을 담아서 이름을 동희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의 뜻은 본디 순결함 혹은 정의를 뜻하는 것으로, 그의 부모도 그에게 순결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소망을 담아서 이름을 지어주었을 것입니다. 아이러닉하게도 그의 삶과 많이 대조되는 이름이었고, 유대 사회에서는 그의 이름을 경멸하였습니다.
하지만 삭개오의 간절함을 알아보시고 예수님은 그가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으시고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틀어서 많은 자들을 영접하셨습니다. 세리, 간음한 여인, 남편 문제로 고민하는 사마리아 여인, 병자들 대부분 죄인들이거나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인맥’을 쌓기 위해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과 관계성을 맺고자 힘을 씁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하지만 예수님은 죄인들과 약한자들을 찾으러 오셨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단순히 사람의 죄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자 인생에 맞는 방법으로 찾아오셔서 죄로부터 돌이키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병자들은 병을 치유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믿음을 얻도록 도우셨고, 간음한 여인은 모두가 죄인임을 알려주시며 다시는 죄를 짓지않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삭개오에게는 인생의 외로움을 보시고 친한 지인과 같이 집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만나주셨습니다. 이를 삭개오가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정말 친한 친구여야 집으로 초청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까? 키가 작은 그를 위해 올려줄 사람 한 명 없이 외로운 삶을 살아온 그에게는 이것이 크나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그를 불렀을 때 삭개오가 소원을 가지고 응답했기에 발생한 일입니다. 우리도 부르심의 때에 응답하시는 믿음 허락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머물러 들어갔다고 비난하였습니다.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죄를 용서하기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법대로 산다면,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말씀처럼 모두가 죄인이기에 다들 장님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또한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도록 허락하시길 기도합니다.
2.3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8)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후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전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부당하게 얻은 재물은 네 배로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평생을 재물을 추구하며 살아온 그가 이것을 내려놓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삶의 주인이 물질에서 예수님으로 바뀌었다는 의미입니다. 물질에 목표를 두고 살던삭개오는 탐욕스러운 죄인이었습니다. 힘들게 얻은 물질은 그의 내면을 채워주지 못하였고, 삭개오는 공허함과 죄의식으로 시달리며 괴로워하던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삶의 중심으로 받아들이자 그는 허망한 물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가난한 자들을 가엾이 여기고 가진 재물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세상적인 성공을 목표를 두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죽고, 세상적인 즐거움은 이 때 모두 헛것이 되어버립니다. 이것을 알기에 모두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지만, 어느 순간 허무함만 남게 됩니다.
이를 두고 성 어거스틴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마음의 빈 공간이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창세 때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만드셨기 때문이고, 인간은 하나님과 교감하며 살아갈 때 참된 삶을 살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6장 27절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썩어서 없어질 세상적인 성공을 중심에 두지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4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9-10)
9절을 보십시오. 이러한 삭개오의 결단을 들으신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삭개오에게 이르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구원은 기나긴 절차를 거쳐야하는 세상적인 사면과 다르게, 회개의 순간 즉각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칭하신 것은 그의 내면적인 죄사함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인정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심히 좋았더라, 즉 기뻐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자녀와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탄에 꾀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소중한 사람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힘을 다하여 찾아다니겠지요.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죄만으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잃어버린 자녀들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다니셨습니다. 결국 스스로 돌아오지 못하는 인간들을 위하여 육신을 입고 예수님의 형상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삭개오와 같은 죄인의 집에 머무르시고 구원을 주신 것은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으러 오신 예수님의 목적과 사랑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스스로 삭개오보다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바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으며”말씀에 나오듯이 결국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예수님께서 지금까지도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다니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영접할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삭개오처럼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찾고, 구원받는 삶 살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Application
저는 과거 가정문제로 인하여 분노와 인생의 대한 회의감에 쌓여 하루하루 죽어가던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은 말씀공부 앞으로 인도하시고 창세기 12장 1-2절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될지라” 말씀으로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인생의 목적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취업에 성공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취업의 은혜가 충만하여 기쁜 마음으로 첫 열매도 드리고, 직장 가운데서도 말씀을 중심으로 살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이 바빠지고 고단해짐에 따라 어느 순간부터 세상일에만 열중하였습니다. 업무적으로 인정받고 승진도 빠르게 하였지만, 점점 말씀과 예배를 뒷전으로 두게 되었습니다. 결국 신앙생활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하나님 앞을 잠시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여유시간동안 쉬면서 정신적으로 회복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무런 소망없이 죽을 삶이 허무해졌고, 모든 일에 대해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걸 내가 왜 하고있을까’ 고민하면서 무력감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방황의 기간동안 제가 체험한 것은 세상의 즐거움이 아니라, 말씀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말씀을 적극적으로 찾으려고 할 때 세상 가운데서 실족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셨듯이, 저도 남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나서는 삶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 Conclusion
결론입니다. 삭개오는 비록 물욕으로 인해 헛되게 죽을 죄인이었지만,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을 때 결국 회개하여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은 각자의 현실문제들로 인해서 예수님 앞으로 나아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찾고 응답받는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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