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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8-01 (월) 06:52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2년_여름수양회_제_4강-1.hwp (121KB) (Down:61)
ㆍ추천: 0  ㆍ조회: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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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수양회 제4강]참포도나무 되신 예수님
2022년 여름수양회 제 4강                                                              전영민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님
말씀 / 요한복음 15:1-17요절 /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번 수양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BESPOKE”라는 말이 어떨까 싶습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고루 수렴해 학생과 학사팀으로 나누어 주제강의를 진행하는 “맞춤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특별한 수양회에서 주일 메시지를 맡게 되어 부담이 적지 않았지만, 이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맡기 전에 집에서 겪었던 일 때문입니다. 어느 날부터 동역자가 이른 아침마다 어딘가로 나가는 것입니다. 운동이라도 갔나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화분을 나눔 받으러 나갔던 것이었습니다. 비좁은 옥상에 화분이 하나 둘 늘어갔고 뿌렸던 씨앗도 곧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동역자는 하나 하나 명찰을 달아가며 저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단호박, 오이, 비트, 상추, 고추, 깻잎, 쑥갓, 대파, 바질, 파프리카, 방울토마토로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만큼 많이 심었습니다. 서울에서 자라 식물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제가, 씨앗이 자라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동역자가 자꾸 잘 자라는 가지를 잘라내길래, 멀쩡한 가지를 왜 자꾸 잘라내냐며, 스트레스를 이런 식으로 풀면 못 쓴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많이 잘라냈더니 오히려 열매가 더 잘 영그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것이 이번 메시지를 쓰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말씀에 나오는 포도나무 비유를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말씀 안에 담긴 놀라운 비결, 인생에서 열매를 잘 맺는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시던 날 밤에 포도원 옆을 지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하나님 아버지를 농부로, 우리를 가지에 비유하셨습니다. 포도나무를 예로 드신 이유는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와 더불어 이스라엘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작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의 비밀을 쉽게 가르쳐 주시고자 제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소재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포도나무 비유를 드신 또 다른 이유는 포도나무가 가진 고유한 특성 때문입니다. 포도나무는 스스로 서지 못하고 덩굴 길게 뻗어 다른 것에 감아 붙어야만 하니 나무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목질이 단단하지 못해 건축용 자재로도 쓸 수 없고, 땔감으로도 효용가치가 낮습니다. 오직 열매를 맺을 때에야 그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포도나무를 예로 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포도나무가 아니고 참 포도나무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유일한 포도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참“이라는 표현을 쓰신 것을 보면 “참”이 아닌 것도 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참 포도나무처럼 행세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신천지와 같은 이단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상이나 종교,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 우선 시 하는 것이 있다면 다 참이 아닌 “거짓” 포도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영원한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예수님 보다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돈을 들 수 있습니다. 혹시 FIRE족이라는 용어를 아십니까?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의 약자로 경제적으로 자립을 이뤄 일찍 은퇴하려는 젊은 세대를 가리킵니다. 소득의 70~80% 까지도 극단적으로 저축하며 은퇴자금을 마련하는 미국식 FIRE 족이나, 주식, 코인에 빚을 내어 투자하는, 소위, 영끌투자를 통해 단기간에 큰 돈을 모으려는 한탕주의식 FIRE 족이나, 젊었을 때 돈을 버는데 심혈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이들이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것은 돈이 나를 지켜 주리라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돈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구원해줄 수는 없습니다. 생활의 불편과 고통을 참아가며 열심히 벌었는데 그 끝이 심판이라면 얼마나 허무합니까? 돈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결과는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 요14:6 에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오직 참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 안에만 생명과 구원이 있음을 믿고, 우리가 예수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런 참포도나무에서 농부되신 하나님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8절 상반부를 보십시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앞서 제가 화분에 식물을 키웠던 일을 소개했는데, 비슷한 경험을 해보셨다면, 작은 화분에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 열매를 맺었을 때 얼마나 기쁜지 아실 겁니다. 하물며 우리가 삶 가운데 열매를 맺었을 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십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을 때 기쁘고 보람차고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까?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5:22-23 에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성령의 열매라 했습니다. 이런 열매가 우리 안에 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한 평강이 흐르고, 기쁨이 충만해져 입에서는 감사가 흘러 넘칩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자신을 드리고자 힘쓸 때, 외적인 열매도 맺게 됩니다. 이런 기쁨을 나누고 싶어 주변에 예수님을 알리는 전도의 열매도 있고, 디도서 3:14 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는 선행을 열매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가 있을 때 우리가 학교에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그 어디에 있든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참 포도나무에서 이런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2절에서는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두 종류의 가지에 대해 언급되어 있습니다. 먼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제거라는 표현때문에 매우 살벌하게 들립니다. 물론, 열매도 못 맺는 것이 나무에 떡하니 들러붙어서 양분만 빨아 마시니 제거되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제거한다는 표현은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헬라어 원어로는 “아이로” 라고 하는데, “제거해 버린다” 라는 뜻 뿐 아니라 “들어 올린다” 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들어올린다” 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포도나무의 성질을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본디 밑으로 쳐져서 땅 위를 기면서 자라는 성향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잎사귀에는 흙먼지가 쌓일 수밖에 없고 비가 오게 되면 쌓인 흙먼지가 젖어 진흙이 묻게 되니, 햇빛을 받지 못하고 공기도 통하지 않아 곰팡이가 피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농부가 바닥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가지를 들어올려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울타리에 매어준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열매를 못 맺는다고 잘라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 농부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예수님을 알지만, 예수님과 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죄에 빠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가룟 유다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열 두 제자 중 돈궤를 맡을 정도로 예수님의 신뢰를 받았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 공동체에 속해 있었음에도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고,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다가 여의치 않자 은전 30냥에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6절에서는 이런 가지의 결말에 대해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어 던져 사르느니라.” 하나님은 이런 비극을 원치 않으시기에 우리의 삶에 개입하십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지만 바닥으로 떨어진 가지를 올려 매어주는 농부의 손길과 같이, 사랑의 매를 드시는 것입니다. 제가 학생 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개입을 많이 하셨습니다. 성공에 목말라 오로지 시험 합격만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짐으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말씀공부 하다가도 시험이 있는 겨울만 되면 힘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제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시고, 자존감이 바닥까지 낮아질 정도로 사랑의 매를 드셨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세상만 바라보며 썩어 없어질 것만 좇아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열매를 맺기까지 때때로 우리를 징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깨닫고, 말씀 앞에 겸손히 회개하는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절 하반절에서는 열매를 맺는 가지에 대해 언급되어 있습니다.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여기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을 전정이라고 부르는데,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입니다. 포도나무를 그냥 놔두면 무성하게 자라면서 덩굴이 너무 빽빽해지고, 열매가 달려야 하는 부분까지 햇볕이 닿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밖에서 보면 잎이 무성하게 자라있으니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햇볕도 받지 못하는데다가, 열매로 가야 할 양분이 가지에 몰리면서 제대로 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와 같아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무성하게 여러 방향으로 잔가지를 내기 쉽습니다. 잔 가지는 우리를 집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학생을 예를 들면,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매스컴에서 떠들석하게 소개되는 드라마가 자꾸 생각나는 겁니다. 이 때 타협하는 마음으로 1화만 보고 공부하자고 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밤새 드라마를 보다가 시험을 망치는 경우입니다. 목표를 정했으면 집중해야 합니다. 포도나무의 유일한 목표이자 존재의미인 열매맺기에 힘쓰려면,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잔가지를 단호히 쳐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성하게 자라나는 잔가지들을 스스로 끊어 내고자 해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잘라낸 줄 알았더니 그 자리에 다시 돋아나는 잔가지들을 볼 때 얼마나 절망스럽습니까? 술, 담배, 게임 중독 등 나의 은밀하고 악한 습관을 멈추지 못하고 반복할 때 실의에 빠져 포기하기 쉽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전정의 주체에 대해 오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전정은 가지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농부가 하는 것입니다. 날카로운 가위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과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말씀이 내 안에 살아있을 때 잠들었던 영적 양심이 깨어나고, 죄악된 행동들이 하나 둘 잘려 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선포되는 말씀을 영접하고, 매일마다 영의 양식이 되는 말씀을 반추하며, 세상을 이길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절은 말씀을 통해 깨끗해진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농부의 도움으로 전정을 받아야 하고, 포도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올라오는 양분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가지가 할 수 있는 것이란 포도나무에 붙어있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참 포도나무에 잘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하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코 앞에 두고 있었던 만큼 제자들과 계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짧은 본문에서 “거하라”는 말씀을 무려 10번이 넘게 쓰신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까? 신앙경력이 길다고 해서, 센터에 오래 나와있는다고 해서 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3:20 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을 예수님과 연합하여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삶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과 가르침이 다 녹아 있는 말씀을 읽고, 외우고, 순종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시편1:2 에서는 이런 삶의 기쁨에 대해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가운데 말씀 안에 담겨있는 정수가 우리 안에 녹아들게 되고,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 안에 꾸준히 거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어느새 풍성한 열매를 맺혀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했음에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우리의 삶 가운데 스스로 왕 노릇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간섭이 싫고 답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밀어내고 마음 문 밖에 세워 두는 것입니다. 거절의 아픔은 우리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캠퍼스에 나가 복음을 전하다 거절을 당할 때, 험한 말이나 차가운 표정으로 감정을 다쳐 아플 때도 있지만, 복음의 가치를 모르고 거절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도 아픔을 느낍니다. 마음 문 밖에 서서 우리를 하염없이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내 삶 밖으로 밀어내고 나면 잠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리를 알게 된 이상 양심에서 비롯된 죄의식으로 인해 흙탕물과 같은 세상에 온전히 속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에도 세상에도 속하지 못한 중간자가 되어 영적인 생명력이 고갈되고 결국 바짝 마르게 될 것입니다. 이미 언급했던 것과 같이 마른 포도나무 가지는 그 어느 곳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불쏘시개 정도일 것입니다. 풍성히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가지가 불쏘시개로 전락하다니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떨어져 바짝 마른 가지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과 불쏘시개로 태워지는 삶 가운데서 무엇을 택해야 할지는 너무나 명백합니다.
7절에서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말씀을 붙들고 있을 때 찾아올 크나큰 축복과 특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바로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단, 구복신앙과 같이 우리의 인간적인 야망에서 비롯된 기도를 다 들어주신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이 말씀에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구하는 대로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 거하려는 우리에게 기도는 특권임과 동시에 “의무”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과의 관계는 더욱더 깊어지고, 기도의 응답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 더욱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말씀 안에 거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셨고, 예수님은 그 사랑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심으로써 본을 보이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계명을 지킬 때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나단이 세상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서 다윗을 순수하게 사랑했던 것과 같이 우리가 동역자 간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가운데,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누리셨던 기쁨이 오롯이 우리 안에 전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동역하는 가운데 우리가 아름다운 포도원을 이루고,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제가 이번 메세지를 준비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거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추상적인 의미를 나열하는 데 그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말씀을 본다고 하지만 바쁜 일상이 시작되면 분주한 마음 가운데 말씀이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포도나무 말씀을 맡게 되면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용이 어렵게 느껴져 본문을 계속 읽어야 했고, 관련 자료도 찾아보며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 그 다음에 드는 생각은 제 삶 가운데 맺힐 열매였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성령의 열매라고 했는데, 지난 한 해 제 안에 가장 많이 맺혔던 감정은 판단에서 비롯되는 분노였습니다. 무언가 제 생각 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다 보니, 저의 내면은 까맣게 썩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1년 전부터 썼던 소감들을 읽어보며 제가 갈등의 원인을 밖에서, 특히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주일에 메시지를 듣고 은혜를 받다 가도, 주중에 이런 문제에 자주 봉착했다는 것은, 제가 주님 안에 지속적으로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번 말씀을 맡게 된 것에는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신 주님의 사랑 때문임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돌아보면 제가 부족하지만 말씀 안에 거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놀랍도록 축복 해주셨습니다. 시험에 떨어졌을 때 여름수양회를 통해 말씀을 먹이사 회복시키셨고, 몇 달 만에 직장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결혼 문제에 대해서도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믿음 가운데 기도했을 때 풍하 목자와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하셨고, 가정 가운데 아들 준수도 큰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삶 가운데 항상 감사하며 기도했던 것도 아니고, 실족할 뻔 한 위기도 참으로 많았는데,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돌아보신 하나님은 참 너무나 좋으신 분입니다. 제가 이번 메세지를 준비하며 배운 것과 같이, 참포도나무 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하고 순종하여 가지에 많은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결단하고 3박4일 동안 수양회에 참석했는데, 최소한 이 기간동안 말씀 안에 거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금 열매를 맺을 준비가 된 싱싱한 가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곧 수양회를 마치고 사명의 땅을 향해 다시 나아가야 하는데, 어떤 어려움과 장애물이 다가와도 “내 안에 거하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사랑 안에 거함으로 일생 풍성한 열매 맺는 복된 삶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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