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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8-22 (월) 07:52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23강-1.hwp (112KB) (Dow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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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23강]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2022년 누가복음 제23강                                                      이인구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말씀/ 누가복음12;35-59
요절/ 누가복음 12;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미국 폭스사가 판매직 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자 무려 1500명의 지원자가 자기소개서를 보내왔습니다. 폭스사는 그중에서 특이하게 자기소개서를 쓴 한 사람을 채용했습니다. 그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소개합니다. “저는 현재 가구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느때라도 가구점을 한번 방문하시면 세일즈맨으로서의 제 모습을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머리는 빨간 색이기 때문에 저를 알아보기가 쉽지만 저는 손님을 알아볼 수가 없을 테니 가구를 사는척하고 한번 방문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을 많은 손님중의 한 사람으로 맞을 것입니다. 저의 판매 실력과 손님에 대한 친절을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저를 채용해 주십시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혼돈과 죄악의 시대 우리가 어떻게 깨어서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로 살 수 있는가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시대 제자들에게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기다리며 살아가도록 말씀하셨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는 것은 어떤 일도 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이고 등불을 켜는 것은 한밤중에도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입니다. 그것은 마치 혼인집에 갔다 돌아온 주인을 맞는 종의 자세입니다. 당시 유대지방 혼인식은 며칠동안 밤늦게까지 계속되어 주인이 혼인집에 갔다 밤늦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통 종들은 기다리다 잠에 빠지겠지만 신실한 종은 언제든지 다시 돌아온 주인을 맞기 위해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기다릴 것입니다. 만약 밤늦게 돌아온 주인이 깨어 기다리는 종을 보면 너무 기뻐 주인이 종처럼 띠를 띠고 그 종을 섬기며 큰 상급을 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때 도둑처럼 재림하시지만 깨어 기다리는 신자는 큰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시며 부활승천하신 후 2000년이 흘렀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세월의 속도가 빨라지는것처럼 인류역사도 종말이 가까워올수록 세상역사(인류문명) 수렛바퀴의 속도는 빨라집니다.
현재 전쟁으로 인한 핵의 위험이 아니더라도 매년마다 가속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폭염, 폭우, 가뭄, 한파등으로 지구가 폭팔할 지경입니다. 거기에 정신까지 파괴하는 미세먼지에 온 바다에 떠다니다 우리가 마시는 생수통까지 들어온 미세 플라스틱등 급격히 심해지는 지구 오염으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또 많은 바이러스가 매년 더 강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며 인류를 위협합니다. 이 모든 환난과 재난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진 인류의 죄로 인한 결과로 언제 인류가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탐욕과 음란과 이기심의 죄가 한계치를 넘을 때 예수님께서 마침내 다시 오실 것 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전 내가 먼저 예수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세의 때를 맞아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깨어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일생 깨어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일생 자신이 원하는대로 죄속에서 살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옆의 회개한 강도처럼(눅23;42,43) 늙어 죽기 전 깨어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일생 자신의 본성대로 죄의 노예로 살던 이들은 그 삶의 습관과 가속도를 돌이키기 쉽지 않습니다. 정말 인생말년 십자가에 못박히는 듯한 엄청난 환난과 고통속에서 돌이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의 하루의 고통은 천년만큼이나 길고, 일생 방탕하며 살던 시간들이 하루만큼이나 짧게 지나가며 가슴을 치고 후회할것입니다. 그래도 고통가운데 깨어서 돌이키면 축복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자가 다른쪽 강도처럼 고통가운데서도 끝까지 회개는 커녕 더욱 분노와 저주속에서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는 지금 깨어있어야 하고, 벌써 늦었다고 포기하는 지금이라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헬라어로 시간을 가리키는 단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객관적 시간 "크로노스(chronos)"가 있고 각 사람들에게 다른 의미로 적용되는 주관적 시간 ‘카이로스(kairos)’가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적인 시간으로 해가 뜨고 지면서 결정되는 시간이며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면서 결정되는 시간입니다. 매일 한번씩 어김없이 밤과 낮이 찾아오고 매년 한 번씩 봄여름가을겨울이 찾아오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이 탄생하고 자라며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시간입니다. 반면 ‘카이로스’는 의미 있는 시간, 특정한 시간, 기회를 말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카이로스’라는 신이 있는데 놓치면 다시 붙잡을 수 없는 기회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그 신의 앞머리는 무척 길고 뒷머리는 맨들맨들한 대머리인데 어깨와 발목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손에는 저울과 칼을 들고 있습니다.(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의 카이로스 조각상) 앞머리가 무성한것은 사람들이 잘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카이로스’가 지나가면 다시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려있는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손의 저울은 기회가 있을 때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이고 날카로운 칼은 칼같이 결단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카이로스’ 바로 ‘기회’입니다. 한번 지나간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또한 카이로스는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나타난 특별한 시간, 의미있는 시간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실현되는 시간, ‘하나님의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시간은 그분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담긴 카이로스입니다. 이 시간은 먼 과거의 역사, 과거로 흘러가면서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라 현재도 수많은 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시간(역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새로운 생명을 통해 크로노스의 시간속에서 카이로스의 의미있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코로나로 3년 동안 마스크속에서 답답한 시간(크로노스)을 보내며 하나님의 역사도 정체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수양회 3일 동안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것은 3년 동안 기도하며 뿌린 말씀의 씨가 마침내 싹을 내는 시간(카이로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시간인 크로노스에는 끝이 없습니다. 목적없이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역사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에는 처음과 마지막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한 때(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하신때에 오셨고 또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다시 오실(재림) 것입니다. 그것이 카이로스의 완성이면서 영원한 시간의 출발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새 인생을 사는 우리는 세상역사의 크로노스의 시간에 자신의 인생을 흘려보내면 안됩니다. 흘러가는 시간속에 뛰어들어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치 흘러가는 물을 가두어 다목적댐을 만들어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특별하고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한 번 지나간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잘 알듯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인생의 시간을 잘 계산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특별하고 의미있는 시간들을 만들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어두운 세상역사속에서 깨어서 허리에 띠를 띠고 손에 등불을 켜고 예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우리는 깨어서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언제 재림이 있을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 어떻게 재림을 준비하는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말세의 때에 깨어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의 삶을 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42)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맡아 책임지고 관리하는 종입니다. 주인집의 종들을 관리하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관리자입니다. 청지기는 본래 종이었지만 주인의 은혜로 주인집의 관리자로 세움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사단의 노예였지만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깨어서 하나님의 역사의 청지기로 쓰임받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길 바라십니다. 그럼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는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지혜로운 청지기
어느 병원에서 자신이 최고의 지혜와 지식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두 의대생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두 학생이 병원복도에서 어떤 남자가 매우 고통스런 표정으로 허리를 숙이고 엉거주춤하고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학생이 “분명히 류마티스 관절염이야!”확신하자 다른 학생이 머리를 저으며 “천만에, 저건 디스크가 틀림없어!”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싸우고 있는데 그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아주 힘겹게 물었습니다. “저기 저-- 화장실이 어디죠?”
지혜는(사전적의미)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우치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지혜는 단지 지식이 아니라 합당한 지식을 분별하고 올바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현재사회에서 누구나 스마트폰을 통해 수많은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올바로 분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지혜가 없을 때 많은 지식은 오히려 판단을 흐리는 병이 되고 어리석게 합니다. 또 지혜는 세상에서 자기 욕심을 구하는 임기웅변적인 꾀가 아닙니다. 참된 지혜는 큰 뜻과 놀라운 섭리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하지만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을 때 그 생각이 허망해지고 미련해집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어리석게 되어 썩어질 헛된 우상을 섬기게 되고 마음의 욕심을 따라서 부끄러운 일을 행하게 됩니다.(롬1;21-24) 신자가 온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혜’라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부엉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는데 부엉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입니다. 솔로몬이 어떻게 그런 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까? 다윗의 정실부인의 아들도 아닌 솔로몬이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된 후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아버지 다윗의 믿음을 따라 살고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구하는지 물으셨습니다. 솔로몬은 부족한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심을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스라엘백성들을 재판할 수 있는 지혜(선악을 분별)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다른 이들처럼 자기를 위해 무병장수나 재물이나 자기원수 갚는 것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지혜를 구한 것을 기뻐하시며 그의 일생동안 놀라운 지혜뿐 아니라 부귀와 영광도 넘치도록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처럼 하나님영광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주심으로 하나님역사의 청지기로 쓰임받도록 도우십니다.
둘째, 진실된 청지기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결과가 좋으면 거짓된 수단도 허용되고 심지어 창의적인 방법이라고 합리화시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드러난 결과가 아닌 그 동기와 과정을 보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바리새인들이 로마식민지하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지만 그 거짓된 외식과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말세의 때 세상에서 수많은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것 같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진실된 청지기와 함께 하시고 결국 승리하게 도와주십니다. 진실한 청지기의 영어표현은 충성된 청지기(faithful manager)입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충성된’으로 표현했습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자가 누구냐”(마24;45) 하나님역사는 아무리 머리가 좋고 능력이 많아도 충성심이 없으면 결코 쓰임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종들은 한결같이 충성된 사람입니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시101;6a) 충성은 세상군대나 조폭집단에서의 맹목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힘에 굴복해 어쩔수 없이 하는 복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진실된 청지기,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될 수 있습니까?
요셉은 하나님께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지도자의 꿈을 꾼 후 오랫동안(13년) 감당하기 힘든 긴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시기심으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지만 주인 보디발에게 충성심을 인정받아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을때도 그곳에서 충성스럽게 사람들을 섬겨 간수장에게 인정받았습니다. 그가 애굽의 보디발에게 또 간수장에게 충성한 것은 살아남기 위한 꾀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으로부터 꿈을 받은 후 감당치 못할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타고난 믿음의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창39;2,21) 요셉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노예로 일할때에도 또 보디발여사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을때에도 신실하게 그와 함께 하셨고 어떤 곳에서든지 형통하게 은혜를 받게 도와주셨습니다. 신자가 아무리 큰 환란을 당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다면 어떤 환란속에서도 인내하며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충성은 자신과 변함없이 함께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고 그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달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어떤 부족함속에서도 변함없이 함께 하시며 어떤 죄가운데서도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인도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있을 때 충성할 수 있습니다.
바로의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이끌어내 40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함으로 구원역사의 표본을 만든 모세의 충성도 왕궁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 동안 부족한 자신과 함께 하시며 위대한 종으로 연단하셨던 신실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또 위대한 메시아 왕국의 표본을 이룬 다윗의 믿음과 충성도 자신의 정욕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하나님백성의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어디에서든 변함없이 자신과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자신이 있는 곳의 세상권세자들에게도 진실하고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과 충성이 연단되었을때 그는 애굽의 총리로 하나님의 구속역사가운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지혜롭고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충성심이 있는 사람은 영적인 세계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충성한다!”며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을 따르지 않고 직장에서 상사의 말을 무시하며 적당히 꾀부리며 일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심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세상권력자들에게도 진실하고 충성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써의 진실과 충성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 작은 일에 충성하는 청지기가 또한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큰 사명을 맡았든지 작은 사명을 맡았든지 맡은 사명에 진실하고 충성된 청지기를 기뻐하십니다. 기독교 2천년동안 위대한 신학자 5명을 꼽으라면 성어거스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31살까지 지극히 죄악되고 방탕한 젊은시절을 보냈습니다. 만약 어머니 모니카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왜 이런 한심하고 웬수같은 자식을 주셨는가 불신하며 불평하며 방치했다면 그는 쓸모없는 죄인으로 역사속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니카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가운데 맡겨주신 한 영혼을 진실하고 충성된 눈물의 기도와 섬김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을 때 결국 회심한 어거스틴을 통해 역사상 수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구원 역사가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2달란트 맡은 종이나 5달란트 맡은 종이나 그가 주인에게 충성하여 수익을 거두었을 때 똑같이 칭찬하였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25;21,23) 하지만 한 달란트 맡은 자가 주인을 무시하고 자신이 받은 기회를 땅에 묻어 버렸을 때 그 불신과 악함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주인에 대한 불신으로 자기가 맡은 기회에 충성할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주신 지혜로 일생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인생 말년 그는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하지 못했고 진실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방여인과 통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세상국가들과의 이해관계를 핑계로 후궁을 700명, 첩을 300명이나 두어 자신의 쾌락을 좇았습니다. 솔로몬의 인생만년 이방 여인들은 그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외에 다른 신들을 따르도록 유혹하였고 하나님께서 2번이나 책망하셨지만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인생전반기의 믿음과 충성으로 그의 생애동안 심판하지 않았지만, 그가 이방여인에게서 낳은 자식(르호보암)때부터 나라가 둘로 분열되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열상11;9-13)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깨어서 변함없이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로 산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큰 복과 상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신실하지 못한 청지기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심판의 때가 됩니다. 그는 주인이 늦게 올 것이라 확신하며 주인집의 모든 소유를 마치 자기것처럼 여기며 자신에게 맡겨진 남녀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며 인생의 기회를 허비하다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때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하면 적게 맞을 것이지만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않고 명령을 거스린 종은 많이 맞을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이 주신 자에게 많이 요구하십니다. 특권을 많이 가진 자가 더 큰 의무를 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특권을 받은 자는 그 특권을 자랑하기보다 맡겨주신 일을 두렵고 떨림으로 감당해야 하고, 적게 받은 이는 남과 비교하여 열등감에 빠질것이 아니라 받은 만큼 예수님앞에서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천지의 기상을 잘 분별하면서도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 외식하는 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56) 당시 농업을 하던 유대인들은 지중해 서쪽 하늘에서 구름이 일어나면 비가 올 것을 알았고, 사막이 있는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뜨거운 날이 시작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징조들을 보고 농사에 필요한 강수량과 일조량을 해석하며 대비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징조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3년 동안이나 이어지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비해서는 더 완벽한 백신이나 치료약을 개발하고 돈을 풀거나 금리를 올리며 경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엄청난 연구를 하고 대비하며 준비하지만 막상 이 전염병의 영적의미는 무시하며 방관했습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기록적인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몇 백년만의 기록적인, 관측이래로 최고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록적인 폭염과 한파와 가뭄과 산불이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올해는 우리나라에도 기록적인 폭우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최첨단 과학적인 시스템으로도 이런 재난을 완전히 예측할 수 없고 대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환란속에서 신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멀지 않았다는 영적의미를 깨닫고 지혜롭게 대비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고발하는 자와 법관에게 갈때는 먼저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때 결국 심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죄악되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받고 또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써 맡겨주신 양들에게 때를 따라 말씀을 전하는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최근 코로나 기간동안 만성적인 소화불량을 비롯한 몸의 여러곳에서 이상이 나타나고 작은 스트레스에도 큰 피곤을 느끼며 나의 젊음도 지나간다는 아쉬움과 허무감이 들어왔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지구온난화가 피부로 다가오면서 정말 예수님께서 오시거나 아니면 내가 예수님께 갈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만난후에도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는 깨어있는 신앙생활을 부담스러워하며 오랜기간동안 자신의 본성에 이끌려 살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때마다 말씀가운데 함께 하시며 청지기로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어둡고 혼돈스러운 세상속에서 내 인생하나 감당하기 힘든데 양들까지 맡아 말씀을 전하는 청지기의 삶이 부담스러웠지만 점차 말씀을 공부하며 주는 삶이 어두운세상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덧입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갈수 있게 하는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로 사는 것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 뿐 아니라 진정한 인생의 열매를 맺는 길임을 깨닫고 감사하게 됐습니다. 제가 예수님께 많은 은혜를 받은 청지기로써 어두운 시대 두렵고 떨림으로 깨어 세상안일과 유혹을 이기며 끝까지 말씀의 빛을 증거하는 지혜롭게 진실한 청지기의 길을 갈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도록 경고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구체적으로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맡겨주신 양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삶입니다. 죄악이 난무하는 위험한 밤에 등불을 들고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등불은 다른 이들을 비춰주는 동시에 자신을 밝혀줍니다. 때를 따라 예수님의 말씀을 양들에게 주는 삶은 양들의 생명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합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등불을 켜고 말씀을 나눠주는 삶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신자의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등불을 들고 있는 신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세상의 어떤 어둠과 환난속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깨달을 때 신자는 믿음으로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어두운 세상에 말씀의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말씀의 등불을 켜고 말씀의 빛을 전하는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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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5강]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관리자 2022-11-27 92
785 시편 [2022년 추수감사절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관리자 2022-11-20 102
78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4강]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11-13 112
783 이사야 [2022년 가을 제자 수양회 제2강]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관리자 2022-11-06 85
782 이사야 [2022년 가을 제자수양회 제2강]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관리자 2022-11-06 75
781 로마서 [2022년 가을 제자 수양회 제1강]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관리자 2022-11-05 60
780 로마서 [2022년 가을 제자 수양회 제1강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관리자 2022-11-05 66
77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3강]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관리자 2022-10-30 104
77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2강]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관리자 2022-10-23 132
77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1강]영생을 얻는 길 관리자 2022-10-16 138
77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0강]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관리자 2022-10-09 170
775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9강]엎드리어 감사하니 관리자 2022-10-02 181
77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8강]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관리자 2022-09-25 196
773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7강]잃은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기쁨 관리자 2022-09-18 180
772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6강]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관리자 2022-09-11 215
771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5강]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관리자 2022-09-04 167
77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4강]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관리자 2022-08-28 215
76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3강]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관리자 2022-08-22 207
76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2강]염려하지 말라 관리자 2022-08-14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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