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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0-02 (일) 10:46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29강-1.hwp (64KB) (Down: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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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29강]엎드리어 감사하니
2022년 누가복음 제29강                                                   김반석
엎드리어 감사하니
말씀 / 누가복음 17:1-19
요절 / 누가복음 17:16 “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누가복음 9장 18절부터 19장 27절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제자로서 삶의 자세(제자도)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실족, 용서, 믿음, 무익한 종, 감사 등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갖추어 할 성품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자세와 믿음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① 실족시키지 않도록 조심하라(1~3a)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제자들은 장차 주님의 양무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목자요 영적 지도자가 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직분을 감당하다 보면 실족하게 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족’은 ‘스칸달론(skavndalon)’으로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란 뜻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장애물(덫,함정)을 놓아 죄를 범하게 하거나 믿음을 잃게 하여 복음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있는데, 상대방이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 감정적인 언행으로 실족하게 하는 일이 가까운 사이에서도 발생합니다. 제일 많이 일어나는 곳이 가족, 직장, 교회라고 합니다. 나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닌데 오해하여 그 말에 큰 상처를 받고, 작은 자가 실족할 수 있습니다. ‘작은 자’란 믿음이 약한 자를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정적인 말이나 불신적인 말을 들으면 쉽게 상처를 받아 갈대처럼 믿음이 흔들리고, 회의에 빠져 실족합니다.
 그러면 작은 자는 믿음이 약해서 실족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족하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 없지만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2절에 보면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목에 연자 맷돌을 달아 깊은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더 낫다고 경고하십니다. 연자 맷돌은 방앗간에서 곡식을 갈 때 사용하는 회전형 도구로 소나 말의 힘을 이용해서 돌립니다. 이런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고 바다에 던져지면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살아날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무서운 경고를 하신 것은, 작은 자 하나라도 무시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족하게 하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매사에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3a) 야고보서 1:19절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은 천천히 하며 함부로 성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국적,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므로 민감하고 예민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발언을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또 작은 자들이 실족할 만한 걸림돌을 제거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목자의 이중적인 삶이나 언행 불일치 등으로 실족할 수 있으므로 항상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라도 자유롭게 먹을 만한 믿음이 있었지만, 이 일로 인해서 믿음이 약한 자들이 실족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고전8:9,13) 만일 조금이라도 문제가 되면 자기합리화나 구차한 변명보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실족하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② 죄 범한 자를 경고하고, 회개하면 용서하라(3b~4)
 실족하게 하는 자는 화가 있다고 해서 죄 범한 형제를 보고, 그냥 모른 체하고 덮어줘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관계성이 깨질 것을 우려하여 죄 범한 것을 보고도 묵인하거나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죄 범한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망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도와야 합니다. 목자가 영적으로 깨어서 양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질 때 책망할 수 있습니다. 책망은 참된 사랑의 표현입니다. 책망은 수술과 같기 때문에 섬세하게 하되 죄의 뿌리가 뽑히도록 끈질기게 죄와 씨름하면서 도와줘야 합니다.(마18:15~17) 이때 만일 형제가 회개하면 마음으로 영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용서는 무조건 죄를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전제로 한 용서를 말합니다. 회개했는데도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이 역시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형제가 회개하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얼마 못 가서 다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이때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실망하여 용서하지 않고, 죄인 취급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개한다고 하면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까지 용서해야 합니까? 유대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해 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루에 일곱 번이나 죄를 짓고, 그때마다 돌아와서 회개한다고 하면 용서해 주라고 하십니다. 일곱은 완전수이므로 하루에 일곱 번 용서해 주라는 말씀은 회개한다고 하면 무한정 용서해 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까지 용서해야 합니까? 첫째는 용서하지 않으면 실족하게 되어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할 때마다 용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반복해서 죄를 짓는 한 사람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서 하나님께 하소연했습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반복해서 죄를 짓는 저런 사람을 데려가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나는 너를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냐?” 되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각한 죄, 반복된 죄에 빠졌을지라도 여전히 소망 가운데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회개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때마다 용서해 주시고, 여전히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주기도문에서 가르쳐 주신 대로 우리에게 죄 범한 모든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ajfivhmi 아피에미)는 “자신을 풀어주다”, “자유롭게 하다”는 뜻입니다. 용서는 심판자 되신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으로부터 풀어주는 것입니다. 용서로 인해서 자유를 얻는 사람은 바로 자신입니다. 용서할 때 내 안에 쌓인 미움과 분노와 증오심에서 자유롭게 되어 평강이 임하고, 영육간에 건강해집니다. 실제로 샌디에이고에서 15,000명의 암 환자를 상대했던 의사의 연구에 의하면 심각한 암이라도 용서한 환자들 가운데 54%가 5년 이상 살았고, 10년 이상 산 환자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암에 대한 가장 훌륭한 예방약은 용서라고 했습니다. 용서의 최대 수혜자는 용서하는 자기 자신입니다. 또한 용서는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은 굶주린 조카를 살리기 위해 빵을 훔치고, 탈옥을 시도한 죄로 19년간 옥살이 후 출소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신부의 집에서 은잔을 훔쳐 달아났다가 경찰관에게 잡혀 평생 감옥에 갇힐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때 신부는 장발장에게 “은잔하고 촛대를 드렸는데 촛대를 깜빡 잊고 가신 것 같다”며 촛대까지 주었습니다. 신부의 말을 들은 경찰은 그 자리를 떠났고, 할 말을 잃고 서 있는 장발장에게 신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돈을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쓰시기로 저와 약속한 것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19년 동안의 감옥살이도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지만, 용서의 위력 앞에 얼어붙었던 그의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그때부터 장발장은 180도 변화된 새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용서의 사랑이 어둡고 병든 장발장의 마음을 치료했습니다.

 ③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5~6)
 5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그렇게 용서하실 수 있지만, 자신들의 수준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큰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예수님은 용서하지 못하는 원인이 사랑이 없어서도 아니요, 태산과 같은 큰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없는 것으로 진단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그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땅에 심겨지기만 하면 큰 나무처럼 성장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작지만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역사하심을 실제로 믿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100% 신뢰하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사실 반복해서 죄를 짓고, 마음에 큰 상처를 준 사람을 무한정 용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뽕나무가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믿고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이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죄를 짓고 회개한다고 하면 용서하라고 하셨으니 어찌하든지 그 말씀에 순종해서 용서하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다 보면 진정으로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는 마음을 품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반복되는 죄악된 습관이 뽕나무처럼 내면에 깊이 뿌려내려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투쟁해도 죄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며 절망합니다. 그러나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느라 재산을 다 허비하였는데,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병만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군중 틈에 끼어 가다가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자기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러자 즉시 혈루 근원이 말라 병이 나았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의 통로를 통해 예수님의 능력이 역사한 것입니다. 믿음이 크냐 작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질이 중요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 도전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믿음으로 도전하여 내면에 깊게 뿌리내린 미움, 분노, 불신, 정욕, 게으름의 뽕나무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는 놀라운 능력의 역사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④ 무익한 종의 자세(7~10).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다고 해서 자기 의와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명령대로 행한 후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비유로 가르쳐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종이 있었습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여 새벽부터 밭에 나가 하루 종일 밭을 갈고 양을 쳤습니다. 그는 주인이 보지 않는다고 요령을 피우며 적당히 일하지 않고,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몹시 지치고 배가 고팠습니다. 이런 종에게 “오늘도 수고 많았어. 저녁 맛있게 먹고 푹 쉬어”라고 칭찬해주는 주인은 없습니다. 오히려 “너는 내가 먹을 저녁을 준비하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시중들다가 내 식사가 끝난 다음에 먹고 마셔”라고 합니다. 종은 주인을 섬기는 직분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이 많은 일을 했다고 주인에게 수고한 대가를 요구하거나 인정과 칭찬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사실 종은 주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유익한 종입니다. 그러나 종은 스스로 유익한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통 큰 업적을 이루면 자만심에 빠져 마치 자기 혼자 모든 것을 다 한 것처럼 생각하고 우쭐해집니다. 또 자기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으면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힘들어합니다. 그러면 감사함을 잃어버리고, 영적 성장이 막혀 쓸모없는 종이 되어버립니다. 사람이 충성한 후에 마음의 교만을 극복하고 겸손한 자세를 갖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뜻대로 행한 후에 교만해지지 않도록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갖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질 때 큰 역사를 이룬 후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겸손하고 순수한 자세로 끝까지 주와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4차에 걸친 전도 여행을 하면서 수없이 매를 맞고, 굶주리고, 죽을 뻔한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그의 절대적인 믿음과 열정, 헌신과 수고를 통해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에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또한 신약성경 27권 중 13권을 기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겸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며 죄인 중의 괴수처럼 살다가 영벌에 처할 자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았기 때문입니다.(고전15:9,10) 주님의 은혜에 비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은 조족지혈에 불과했습니다. 그 일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다만 뒤에 있는 것(자기가 이룬 성과와 업적)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하나님의 상급)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빌3:13,14) 만일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라고 생각한다면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해야 하는 것도 마땅합니다. 이 일로 인해서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칭찬이나 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는 그 자체가 은혜요 특권으로 생각하고, 겸손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자가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진 성숙한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연못에 살던 개구리가 너무 답답했습니다. 어느 날 착한 새 한 마리를 포섭하여 나뭇가지의 한쪽 끝을 각각 입에 물고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료 개구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물었습니다. “와! 너 정말 대단하다. 그건 누구 아이디어야?” 개구리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어서, “아 당연히 내 머리에서 나온 거지?” 하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입에 물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치고 추락하여 큰 바위에 부딪혀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새가 베푼 은혜를 잊고 자기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자랑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작은 일을 하고서도 생색내고 자기 영광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날마다 부인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무익한 종들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⑤ 감사하는 믿음(11~19)
 1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자 나병환자 열 명이 멀리 서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시 나병은 하나님의 형벌로 생각했고, 불치의 병으로 여겨졌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고독한 삶을 살다가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각종 병든 자를 고쳐주셨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라면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병환자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려면 제사장에게 가서 정한 규례를 따라 병이 나았다는 것을 확증 받고, 정결 예식을 행해야 합니다.(레13:19, 14:1-11) 그런데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고쳐주시지 않은 채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명하셨습니다. 안수 기도를 해주거나, 병이 나았다고 선포하신 것도 아니었기에 나병환자들은 참으로 난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토를 달지 않고, 단순히 말씀에 순종해서 제사장에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비록 지금은 낫지 않았지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일 때는 깨끗하게 될 것을 믿고 순종하여 나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병의 뿌리가 뽑혀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순종은 기적을 낳습니다. 참된 믿음은 순종을 통해 그 믿음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열 명의 나병환자가 고침을 받았는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돌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으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통해 자기의 병이 낫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긋지긋한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뻤겠습니까?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눈물과 콧물이 쏟아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예수님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어 감사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감사합니다.” 반면 큰 은혜를 받고도 감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7,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아홉 명은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더욱더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지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요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병 고쳐주는 분으로는 믿었지만, 영혼까지 구원할 분으로까지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육체의 질병은 고침 받았지만, 영혼의 질병인 죄 문제는 해결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배은망덕한 이들에 대해 심히 안타까워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한 사마리아인에게는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영혼 구원의 복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감사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롬1:21) 그런데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은혜 망각증에 걸려서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둔감하여 웬만한 일에는 좀처럼 감사하지 않게 됩니다. 기쁨이 사라지고, 점차 심령이 메말라 내면은 짜증과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를 붙들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민감하여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의 마음은 순수해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로 성장하게 됩니다. 현재 나는 구원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찬양과 감사는 신앙의 최고봉으로서. 구원받은 신자가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입니다. 우리는 과거 영적인 나병환자처럼 죄의 병에 걸려서 비참한 인생을 살다가 심판받고, 영벌에 처할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방황하는 영혼들을 섬기는 거룩한 인생, 목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자격 없는 죄인들에게 임한 이 놀라운 은혜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큰 은혜를 마음에 새기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살전5:16~18)
 슈바이처 박사는 소년 시절을 회상하며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많은 사람이 나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시하지 못했다. 성격이 내성적이었던 탓도 있지만, 그래서 더더욱 감사를 표현하도록 하는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나를 도와준 많은 사람에게 직접 감사를 표현하기 전에 그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난 것을 생각하면 내 마음은 더욱 아프다. 감사란 잠시도 주저하거나 보류해 두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은혜받았을 때 즉시 표현해야 합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나중에 하려고 미루다 보면 마음이 변하여 감사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감사하는 것처럼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은 없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감사 결핍증에 걸려서 툭하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감사 제목을 찾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녀와 양들에게도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적극적인 감사의 표현으로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물질과 시간과 몸과 재능을 드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때 하나님과 더욱 깊은 관계성이 맺어지고, 영육간에 강건한 사람들로 성장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을 유익한 종이라 생각하고, 의무감으로 역사를 섬길 때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회개하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 이런 죄의 뿌리가 뽑히도록 영적 투쟁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죄인에게 베풀어주신 한량없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마땅히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는 무익한 종의 자세를 회복하고, 순수하고 감사하는 믿음으로 하나님 역사 섬기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 중 5가지(작은 자를 실족시키지 않도록 조심할 것, 형제가 죄를 범하면 경고하고 회개하면 용서할 것,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 순종할 것,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질 것,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 )에 대해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수준이 너무 높아서 연약한 자신을 바라볼 때 절망하고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능력을 믿고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에 도전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닮은 제자들로 성장하게 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제자는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숙한 믿음의 사람은 감사할 시기를 알고, 감사할 수 있을 때 감사를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 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보는 문제라는 서양 격언이 있습니다. 날마다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 제목을 찾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을 역설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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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95 베드로전서 [2023년 베드로전서 제1강]산 소망 관리자 2023-01-29 80
79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40강]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관리자 2023-01-22 81
793 누가복음 [2023년 누가복음 제38강]아버지의 원대로 관리자 2023-01-15 15
792 사도행전 [2023년 신년 제 2강]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관리자 2023-01-08 145
791 이사야 [2023년 신년 제 1강]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관리자 2023-01-01 168
790 누가복음 [2022년 성탄 2강]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관리자 2022-12-25 95
789 누가복음 [2022년 성탄 1강]구원의 뿔 돋는 해 관리자 2022-12-18 136
78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7강]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관리자 2022-12-11 114
78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6강]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관리자 2022-12-04 133
78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5강]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관리자 2022-11-27 143
785 시편 [2022년 추수감사절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관리자 2022-11-20 137
78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4강]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11-13 150
783 이사야 [2022년 가을 제자 수양회 제2강]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관리자 2022-11-06 117
782 이사야 [2022년 가을 제자수양회 제2강]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관리자 2022-11-06 106
781 로마서 [2022년 가을 제자 수양회 제1강]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관리자 2022-11-05 97
780 로마서 [2022년 가을 제자 수양회 제1강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관리자 2022-11-05 104
77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3강]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관리자 2022-10-30 150
77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2강]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관리자 2022-10-23 201
77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1강]영생을 얻는 길 관리자 2022-10-16 182
77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0강]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관리자 2022-10-09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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