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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0-09 (일) 10:55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30강-1.hwp (33KB) (Down: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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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30강]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2022년 누가복음 제30강                                   고 영훈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 / 누가복음 17:20-18:8
요절 / 누가복음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현세적 하나님 나라와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소망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떤 자세로, 무엇에 힘써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음으로 기다리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20,21)
  20a를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물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아가 나타나서 과거 다윗 왕국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신다면 자신들을 압제하는 로마의 식민 통치를 끝내고 평화와 번영과 축복의 나라가 임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20b,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 같이 볼 수 있게 임하거나 또 어떤 지정된 장소에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인간의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내면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 역사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막1:15). 이를 볼 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진실되게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의 마음에 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스리실 때 인간은 무한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사탄이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면서부터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좋은 환경가운데 살더라도 그 내면에 참된 행복이 없는 이유는 사탄이 그 마음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사탄을 멸하러 오신 것입니다(히2:14). 우리가 진실되게 마음에 숨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모든 사탄의 세력이 물러가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 사랑과 평화,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 주십니다(사9:6,7). 그 때 우리의 내면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변화에 관심을 갖기보다 내면에 숨은 죄를 회개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여 진정으로 복된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I. 다시 오실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22-37)
  22절을 보십시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여기서 “때”는 주님의 재림을 바로 앞에 둔 환난의 때를 가리킵니다. 제자들은 장차 많은 환난과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인자의 날인 예수님의 재림하실 날을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 시대에는 인자의 날을 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재림의 시기가 가까울수록 세상은 더욱 악해지는데 제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거짓 메시아의 출현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환난의 때가 되면 사람들이 불안하여 무엇인가 의지할 대상을 찾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며, 내가 바로 그 메시아다’ 하며 속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미혹되어 사탄의 종이 되어 버립니다. 예수님은 이런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 당하지 않도록 주님의 재림의 모습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예수님은 거짓 메시아가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만 알도록 몰래 오시지 않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번개와 같이 임하십니다. 번개가 한 번 번쩍이면 그 빛의 속도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돌기 때문에 지구상에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번개 같이 순식간에 임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먼저 십자가의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실 것입니다(25).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실패가 아니라 구원역사의 완성이요 재림주의 표적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 구원 역사가 완성되고 이 복음이 만국에 전파된 후에야 주님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것입니다(막13:10). 우리는 먼저 구원의 주를 영접하고 다스림 받으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이 땅에서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믿음으로 따라가는 종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인자의 때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해주심으로 제자들이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노아 시대 사람들은 홍수 심판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들었으나 아무도 심판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는 데만 온통 마음을 쏟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육체가 되어 육의 일만 추구하다가 홍수가 나서 순식간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의 때는 노아 시대보다 더 타락하여 육신의 쾌락과 물질에 대한 탐심으로 죄악이 극에 달했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이나 롯 시대의 불 심판은 역사적 사건으로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분명히 경고해 줍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그 인자의 날이 어떻게 임할 것인가를 역사상 2번의 사건을 통해서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설마 진짜로 심판하시지는 않겠지 나름대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직전에도 노아 시대와 롯의 시대와 같은 모습일 것이라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살펴 볼 때 그 시대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을 실감 나게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재미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 T.V 프로그램에도 먹고 마시고 즐기는 오락 프로가 대세입니다. 날이 갈수록 향락 사업은 번창하고 사람들은 음란한 이야기, 취직, 결혼, 스포츠, 부동산 투기, 주식이나 코인 투자 등 주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파는 이야기로 온통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 사명, 비전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하고자 하면 왕따 시키고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자로 무시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합니다(딤후3:1-4). 그러다가 갑자기 멸망이 임하게 됩니다. 이 때 세상에 소망을 두고 정욕과 욕심을 좇아 살았던 자들은 무서운 불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믿음으로 산 자들은 구원을 받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눅13:29).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31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멸망은 갑자기 임하기 때문에 세간을 가지러 갈 여유가 없습니다. 그 때는 재산보다도 목숨을 구하는 것이 최우선 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물질에 얽매여 세간을 가지러 집으로 들어가다가 귀중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간곡히 권면하신 후 이에 더하여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32). 소돔에 무서운 유황불 심판이 있을 때 롯의 처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의 은혜를 덧입었습니다. 천사는 그들이 소돔성에서 도망쳐 나올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도 롯의 처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심판의 현장에서 롯의 처가 뒤를 돌아 본 것은 그의 평소의 가치관과 소망, 삶의 자세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롯의 아내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이 세상 재물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세상에 대한 욕심과 미련 때문에 뒤를 돌아보다가 실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모든 것을 잃지나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믿음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세상으로 돌아갈 때 오히려 생명을 잃게 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마가복음 8:35절에서는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자기 목숨을 얻는 길은 세상으로 향한 소원을 부인하고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34,35절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입니다. 같은 장막 생활을 하더라도 구원을 얻는 사람이 있고 버림받을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원은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개인 신앙에 따라 이루어짐을 말해줍니다.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외형은 차이가 없지만 내적 소원이 다르고 인생목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데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주와 복음을 위해 산 자요 다른 한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산 자입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둔 자요 다른 한 사람은 세상에 소망을 둔 자입니다. 한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좇아 산 자요 다른 한 사람은 정욕과 욕심을 따라 산 자임을 보시고 데려감을 당하기도 하고 버려둠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3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이 심각해져서 주님께 묻습니다.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는 주님의 심판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죽은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 드는 것 같이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일는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있습니다. 임하되 번개같이 우리가 예측할 수 없이, 준비할 틈도 없이 갑자기 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방주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좇아 의의 길을 가며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자 하기보다 생명을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할 때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에 기초한 복음적인 가치관과 믿음으로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준비하는 충성된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II.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18:1-8)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제자들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많이 겪을 것입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불의하게 사는 자들이 부와 권세를 누리며 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수고한 만큼 영육 간에 결실이 없어서 낙담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상 속에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심령에 은혜가 있을 때나 낙심될 때나 평안할 때나 환난의 때나 변함없이 계속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는 어떤 역사가 있을 때, 문제가 있을 때, 필요할 때만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영적 호흡으로서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듯이 기도해야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 생명을 유지하고 분별력을 가지고 복음 역사를 섬길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기도하지 않으면 사탄의 시험에 들어 믿음을 잃기 쉽습니다. 이처럼 기도의 중요성은 알지만 항상 기도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도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 같지 않고 얼른 응답이 없다고 생각되면 낙심하여 포기하게 됩니다. ‘낙심(give up)’은 기도 생활의 원수입니다. 낙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될 것을 비유를 들어 가르쳐 주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재판장의 본분은 공정하게 재판하는 것입니다. 또한 약자를 배려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비유에 나오는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교만하고 안하무인이었습니다. 이런 불의한 재판장에게 한 과부가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과부는 돈도 없고 배경도 없고 권세도 없는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과부는 유일하게 기대할 사람이 재판장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과부의 정당한 요구(justice)가 이 재판장에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제로였습니다. 이런 과부의 상황은 누가 봐도 낙심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과부도 보통 과부가 아니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이 과부가 재판장을 찾아 가서 호소할 때마다 그녀는 철저히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았습니다. 무시를 당했습니다. 재판장 얼굴은커녕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쫓겨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가서 간청했습니다.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이 과부가 어떤 원한을 갖고 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이 원한을 풀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습니다. 과부는 이 원한 때문에 아무리 멸시천대를 받아도 포기하지 않고 재판장을 찾아 가서 계속 간청했습니다. 재판장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과부가 자신을 찾아오는 횟수가 늘어 갈수록 점점 괴로웠습니다. 재판장은 더 이상 견디다 못해 마침내 중대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번거롭게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귀찮게 한다는 것입니다. 재판장은 견디다 못해 과부의 그 원한을 풀어 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재판장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한 것은 과부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은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지만 이 과부의 끈질긴 간청이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그는 한 맺힌 과부의 간청에 두 손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6-8a를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 비교하여 택하신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재판장은 불의하지만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공평하십니다. 또 재판장은 사람을 무시하지만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사랑하고 존귀히 여기십니다. 재판장은 과부의 애간장을 다 태워가며 자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 주었지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속히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속히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기꺼이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약4:2,3).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택하신 자들의 부르짖는 기도에 속히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 드립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하도록 가르치십니까?
첫째, 한 맺힌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아무 문제가 없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한 맺힌 분명한 기도제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기도제목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져야 할 절실한 기도제목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불의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한 맺힌 기도제목은 이스라엘의 회복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가정과 직장과 부친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고 온갖 힘든 훈련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수들에게 붙잡혀 무력하게 돌아가시자 그들은 모든 희망이 사라져 물고기 잡는 옛 생활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시자 그들의 희망도 다시 살아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7,8)” 세계 선교는 예수님의 한 맺힌 기도제목이었습니다. 복음서의 마지막은 항상 예수님의 한 맺힌 기도 제목으로 끝을 맺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예수님은 이 기도제목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다 감당하셨습니다. 또 이를 위해 열두 제자를 키우셨으며 부활하사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간절히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이 한 맺힌 소원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해야 마땅합니다.
둘째, 낙심하지 말고 끈질기게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불의한 재판장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심오한 철학이나 돈이나 권력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과부의 끈질긴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한 비결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밤낮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밤낮으로 사귐을 갖는 것이요 밤낮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하시며 끈질기게 계속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할 일은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목자의 끈질긴 기도가 한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셋째, 믿음을 지키며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8b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은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믿음을 지키기가 힘듭니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2년 동안에도 한국교회 장로교단 신자 수가 55만 명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이는 하루에 747명의 장로교 신자들이 교회 울타리를 빠져나간 것입니다. 장로교단 외에 모든 한국 교회와 더 나아가 전 세계의 교회들까지 합치면 엄청난 숫자가 교회를 떠나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 말세의 때에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늘 조심하고 믿음을 지키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기도를 계속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제자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좋지 못한 관계가 결코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밤낮 택한 백성들의 기도를 속히 들어 주십니다. 제자들이 낙심하고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린 불신 때문입니다. 사탄은 틈만 있으면 우리 마음에 회의와 불신을 심어 기도가 시간낭비요, 기도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는 것처럼 속삭입니다. 이런 사탄의 거짓을 물리치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태산을 움직이는 새 역사를 창조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전능한 능력으로 역사 하실 것입니다.
  저의 한 맺힌 기도 제목은 신앙의 자유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불교를 믿는 집안의 장손으로서 특히 제주도의 강한 친척 문화와 수많은 제사와 대소사를 앞장서서 감당해야 될 운명을 갖고 자라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를 캠퍼스 시절 만나 주시고 예수님의 제자의 인생을 살도록 택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이 은혜에 감사하여 계속 믿음으로 살고 싶었지만 예상 되는 집안의 핍박이 두려워 너무도 갈등이 되었습니다. 저는 명절에 제주도로 가서 믿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즐거운 명절에 혼자 제사상에 절하지 않고자 노심초사하며 조부모님, 부모님과 여러 친척들의 요구들을 견뎌야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하나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는 신앙의 자유를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저의 이 한 맺힌 기도를 들어 주셔서 지금은 저와 저의 가정이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사명인의 삶을 살도록 모든 환경을 영적으로 다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 시간 비천한 저의 마음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앞으로도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사는 복된 사명인의 삶을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계속하여 이 말세의 때에 주님의 뜻을 좇아 항상 기도하며 주와 복음 역사를 믿음으로 잘 섬겨나가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말세의 시대에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신자들은 믿음을 지키기가 더욱 더 힘들어 질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때 일수록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는 칭찬을 듣는 믿음의 종들로 준비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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