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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1-08 (일) 10:45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신년_제_2강-1.hwp (87KB) (Down: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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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신년 제 2강]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2023년 신년 제 2강                                            이 인구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말씀/사도행전2;42-47
요절/사도행전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오늘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은 모든 교회의 원본이요 따라야 될 표본입니다. 신년 초 우리가 초대교회의 신앙을 배우고 우리모임이 어떻게 그런 교회로 변화되고 회복될 수 있나 길을 찾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4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재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한 말씀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신 날 삼천 명이 베드로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초대 신약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이때에 초대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어떠합니까?

첫째,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신자들의 믿음은 무조건 “믿습니다!”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믿음에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신자들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말씀(성경)입니다. 말씀에 기초한 약속입니다.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기 때문에 사도들의 가르침이 성경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에는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랍비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성경선생이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세우신 사도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하신 말씀과 그의 피로 이루신 구원의 길을 가르쳐 지키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파 하였습니다. 이들은 인간적으로 부족했지만 예수님과 동거동락했던 자들로써 예수님을 배척한 종교지도자들보다 진정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였습니다. 12사도들은 각자 자신들의 관점에서 체험하고 깨달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가르쳤지만 그것은 그들의 생각과 판단이 아닌 성령의 모습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도우심 가운데(조명) 깨달은 진리입니다. 또 그들은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구약성경을 기초로 예수님의 말씀과 삶의 의미를 깨닫고 증거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신자들의 신앙의 기초가 말씀인 것처럼 교회의 기초도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죄악과 혼돈의 역사에 흔들리지 않고 휩쓸려가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초골조가 잘 서야 집이 튼튼한 것처럼 우리 믿음의 뼈대, 골조는 말씀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바쁘다고, 할 일이 많다고 점점 말씀에서 멀어지면 어느날 믿음의 집이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 믿음은 말씀에서 시작되고 말씀으로 완성됩니다. 말씀에서 힘과 위로와 기쁨과 확신과 희망을 얻는 믿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접하고 순종하여 생각이 바뀌고 중심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새해에 우리도 더욱 말씀을 받고자 힘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서로 교제하고
교제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로 세상에서 인간사이의 친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의 사귐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 하와를 돕는 배필로 주셔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배우며 동역하여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면서 교제의 의미가 변질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교제하나 경쟁사회 속에서는 서로를 경계합니다. 가족 같은 동료라며 자신의 죄와 실수를 보이다 자칫 발목을 잡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철저히 마음을 닫고 여러 가지 가면(페르소나)을 쓰고 서로를 대합니다. 그래서 군중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낍니다. 겉으로 웃고 있어도 내면은 슬픔으로 참담합니다. 인간의 기쁨과 행복은 외적 성취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사랑의 교제에서 옵니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돈과 명성(12.7%)보다 좋은 배우자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31%)을 행복의 조건 1순위로 뽑았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그런 사랑의 교제를 얻을 수 있습니까? 가장 기본적인 가족 간에도, 부부사이에서도, 부모자식 사이에도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요구하고 판단하느라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서로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줌으로 마음을 열수 있는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신분과 인종과 민족의 구분과 차별은 허물기 힘든 장벽으로 늘 존재해왔습니다. 초대교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귀족과 천한 계층으로 나뉘고 주인과 노예로 구분되며 남자와 여자도 신분과 권리에서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존재했습니다. 현재도 누구나 공평하고 동등한 사회라고 하지만 실상은 진보와 보수, 고용자(재벌)와 노동자, 청년과 노인 또 남자와 여자의 넘을 수 없는 차이와 벽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희생과 말씀위에 세워진 초대교회는 이 모든 구분과 차이를 뛰어넘었습니다. 누구나 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로서 예수님 안에서 똑같이 귀하고 사랑받을만한 존재입니다. 서로 인정하고 배우고자 할 때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고 힘이 됩니다. 그러나 말씀공부는 필요하다 느끼지만 성도들 간의 교제는 상처 받을까봐 부담되고, 섬기는 것이 부담되어 피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집니다. 코로나 시절 마스크라는 가면을 쓰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 간의 교제는 배움의 터전이요 소통의 터전입니다. 이것이 울타리가 되어 내 인생의 터전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죄악되고 어두운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라 좁은 길을 가려는 나에게 같이 동행할 수 있는 동역자가 있는 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우리 가운데 양식교제, 기도모임 교제, 요회교제, GBS 말씀교제, 평신도 교제 등 세상에는 없는 좋은 교제를 이루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런 교제를 통해 성숙한 종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떡을 떼며
초대교회는 교회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함께 음식을 나누며 식탁을 공유했습니다.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은 하나 됨의 출발이요 완성입니다. 누구라도 순전한 마음으로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다면 모든 차이와 차별은 이미 극복된 것입니다. 예수님안에서 같이 식사하면 마음이 열리고 가로 막던 벽이 허물어지게 됩니다. 크게 한 식구가 되어 갑니다. 성도들이 떡을 떼며 상대방의 형편을 알게 되고 깊이 이해하게 되고 상대방과 공감하게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그의 믿음과 투쟁과 헌신을 보게 됩니다. 우리모임에 함바나바 목자님이 좋은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함바나바 목자님은 코로나 시기 경영하는 한의원에 큰 매출감소가 있고 먹여 살릴 아들이 3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일이면 항상 배고픈 요회 형제양들을 이끌고 풍성한 식사와 커피까지 섬기며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 사랑의 섬김에 10년 전에 말씀공부 했다 떠났던 양도 각박한 세상에서 그 사랑을 잊지 못해 최근 다시 연락해 말씀공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떡을 떼는 것에 타격을 받았으나 이제는 예수님안에서의 사랑의 교제로 회복되고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오로지 기도
초대교회는 성령을 갈망하며 힘을 다해 기도하는 다락방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또 성령이 임하고 성령과 동행하면서 더욱 기도에 힘썼습니다. 왜냐면 말씀과 기도 가운데 나와 함께 하시고 교회를 인도하는 성령을 깨닫고 동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영적인 호흡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특권이요 성도의 능력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능력이나 경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철저히 느끼고 연약한 존재로 설 때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겸손과 믿음과 순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기도는 쉽지 않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내안의 하나님과 만나려는 거룩한 영혼에 맞서 육신의 본성은 교만과 게으름과 안일, 불신과 불평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때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기도의 역사였습니다. 기도를 받으시고 성령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초대교회 때처럼 지금도 우리는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어려움 앞에 있습니다. 오로지 기도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어려움 앞에 염려만 하지 말고 우리도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을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43) 사람들이 초대교회사도들에게 느꼈던 두려움은 공포가 아니라 경외심과 존경입니다. 사도들로 말미암아 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대표적으로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말씀을 선포하자 걷게 됐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사도행전3;6) 사도들의 기적과 표적은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됩니다. 증거가 나타나는 교회가 참교회입니다. 현재도 어떤 교회에서는 치유의 능력과 예언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기도와 말씀이 기본이 되지 않으면 그런 기적은 잠시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만 경외심을 줄 수 없고 일시적일뿐입니다. 매주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신기한 능력과 기적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출연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들을 스승으로 경외심을 가지고 따르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런 기적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지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적과 표적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인해 죄악된 사람이 거듭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모임에서 말씀과 기도로 많은 이들이 변화되는 기적과 표적을 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44,45절을 보십시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한 가족처럼 함께 지낼 뿐 아니라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가난한자와 부자가 함께 하고 주인과 노예가 함께 하는 초대교회에서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사용한 것은 어떤 기적이나 표적보다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것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본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물질을 모든 인간문제의 원인으로 보고 모든 물질을 공동분배하며 이 땅에 천국을 만든다고 선전했지만 실상은 권력을 가진 지배층이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사유화하며 백성들은 똑같이 가난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에서 부자는 제도나 시스템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팔아 나누었습니다. 당시 로마식민지의 암울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장래에 대한 소망을 잃고 눈앞의 현실만을 바라보며 먹고 살기 위해 이기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초대성도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믿음과 소망으로 물질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열심히 구제 사업을 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변화된 가치관으로 영적 가족 공동체를 이루었음을 보여줍니다. 갈수록 사회는 무관심과 자기중심, 개인주의로 흘러가는데 우리가 초대교회 가족관을 배워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46절을 보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구약은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일주일중 최소한 하루는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주를 위해 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새 언약인 복음 안에서 시작된 초대교회는 안식일을 넘어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율법아래 있지 않고 성령을 좇아 삶으로 이미 율법의 요구뿐 아니라 더 높은 수준으로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날마다 성전에 모일 수 있습니까? 예전에 탁구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어떤 분들은 정말 매일 탁구장에 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각자 할 일이 많고 바쁘지만 탁구 치며 얻는 기쁨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매일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 배우며 실력이 나아지는 기쁨과 더 큰 기쁨은 자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동역자들이 있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배우고 성장하는 기쁨이 있다면 나오지 말래도 매일 나올 것입니다. 많은 청년들이 자신을 환영해주는 사람이 있고 또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으면 기쁨으로 교회에 나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체험하는 이는 기쁨으로 매일 나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또한 집도 가정교회처럼 개방하여 초청하며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받아 성도들을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정을 교회처럼 만들었고 또 교회를 가정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자라도 항상 마음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충만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 해도 항상 꽃길이나 탄탄대로가 펼쳐진 것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에서 수시로 고난을 만날 수 있고 어떤 때는 신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억울한 환난도 있습니다. 고난가운데 참고 인내할 수 있지만,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다른 이들을 집에까지 초청해서 섬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종교지도자들처럼 마음에도 없는데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형식적으로 외식하며 섬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고난 중에도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다른 형제들과 교제하며 섬길 수 있습니까?

미국의 심리학자 월리엄 제임스(1842년생)는 오랜 연구를 통해 말했습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어떤 성격을 원한다면 이미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라” 그의 이론을 응용한 실험들 중 한 독일연구팀(Strack F, Martin LL등 1988)은 실험참가자 절반에게 연필을 치아로 물고 있도록 했고 다른 절반에게는 연필을 입술로 물고 있도록 했습니다. 연필을 치아로 물고 있으면 웃는 표정이 나타나고 입술로 물고 있으면 찡그린 표정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행복감의 수치를 조사했는데 놀랍게도 연필을 치아로 물고 있는 사람들 즉 웃는 표정의 사람들이 행복감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결혼식 사진 찍을 때 ‘치즈!’라고 하며 웃는 표정을 연출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즈!’하며 웃으며 행복해하지 ‘치즈’하며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단지 행복한 생각을 떠올리는 것보다 자신이 정말 행복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행복감을 높인다고 합니다. 고개를 똑바로 들고 경쾌하게 걷고, 행복한 얼굴로 이야기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또 웃으며 박수를 치고, 좋아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하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성도들은 현실문제 없이 영적소원으로 나온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절망스러운 현실문제 속에서 갈급함으로 예수님께 나온 이들입니다. 이들이 어려운 형편에 다른 이들을 초청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기도를 통해 성령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자신들도 결국 힘든 세상의 나그네의 삶을 마친 후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부활하여 천국으로 올라갈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믿음과 소망으로 그들은 자발적으로 또 기쁨으로 매일 성전에 달려가고 동역자들을 누추한 집에까지 초청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베풀고 섬길수록 부활의 믿음과 소망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우리가 고난가운데 절망과 슬픔과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빠진다면 설사 고난이 지나가도 그 늪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절망, 슬픔, 분노는 단순한 인간의 감정을 넘어 사단이 주관하는 강한 세력으로 한 번 그 세력에 사로잡히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마음속 분노를 참으면 병이 생긴다고 해서 힘들 때마다 분노하면 어느새 분노의 종이 됩니다. 하지만 잠시 절망하고 슬퍼하며 분노할지라도 곧바로 믿음과 소망으로 다시 일어서 사랑으로 교제하고 섬긴다면 현실의 고난은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어떤 고난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믿음과 소망’입니다.

4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성도들은 주변 백성들에게 많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사도들의 기적 때문에 관심을 가졌지만 더 큰 기적인 고난 중에서도 진실하게 예수님을 따르며 서로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섬기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신앙의 내용은 세상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조롱이나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의 죄를 용서한다는 진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나도 죽음을 이긴다는 진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부활을 믿음으로 십자가를 지는 자신들의 삶을 통해 신앙을 증거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사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는 것은 믿음의 내용 때문이 아닙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거짓되고 탐욕적인 외식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은 신자가 전하는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해도, 신자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과 거짓 없는 진실된 삶을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었고 선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죄악된 인간의 실존을 깨달은 백성들이 점차로 교회에 나오며 구원받은 성도의 수가 날마다 더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은 장차 모든 신자들이 도달할 천국의 모습입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예수님과 함께 하며 서로 사랑으로 교제하는 모습은 이 땅에 실현된 천국의 모습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다보니 과거 우리모임이 초대교회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모임은 그 어떤 모임보다 성경중심이었습니다. 예전에 자격도 없는 대학생들이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현재 많은 교회가 우리의 철저한 말씀중심의 역사를 벤치마킹합니다. 과거 센타에 어떤 양이 오더라도 모든 목자님들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양은 자기도 모르는 이가 이름을 부르며 맞아주는 것이 이상했지만 이미 모든 목자님들이 그 양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또 센타가 좁았지만 목자님들은 수시로 양과 동역자들을 가정으로 초청해 식사하며 교재를 나누었습니다. 대학생들이 군사정권에 반발해 대모하던 시대에 절망한 많은 학생들이 우리모임의 신앙을 보고 말씀공부하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많이 변했습니다. 코로나 3년의 시간이 지나며 누구나 마스크를 쓰는 게 익숙해져 센타에서도 직접적인 만남과 대화가 힘들어지고 같이 식사하는 것조차 힘들게 됐습니다. 이제는 위드코로나 시대가 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서로에 대한 관심과 공감이 줄어들고 자발적이고 기쁜 섬김이 드물어졌습니다. 센타 건물은 커졌지만 영향력은 줄어들었습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처음의 목표의식과 열정을 되찾자는 것입니다.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기본과 원칙, 순수와 열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초대교회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3000명을 회개시킨 사도 베드로 같은 열정과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모든 이들이 지킬 수밖에 없는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까?  한사람의 지도자보다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 각 개인의 신앙입니다. 사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지키려고 힘썼던 4가지는 우리도 모두 아는 내용입니다. 매년 신년 초마다 많은 분들이 말씀과 기도투쟁을 위해 또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제하며 섬기는 요절말씀을 잡지만 작심3일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절망합니다. 그래도 방법은 있습니다. 3일에 한번 씩 작심(결심)하면 됩니다. 즉 일년에 100번 작심하면 신년 초 결심한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더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우리는 죄악된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 안에 있기 위해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회개하는 삶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신 존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일 자신의 죄악된 육신의 본성과 싸우고, 죽임으로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순절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라는 것을 깨닫고 괴로워할 때 베드로가 증거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사도행전2;38) 이 말을 듣고 회개한 3000명이 초대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회개할수 있습니다. 또 회개함으로 성령과 동행하며 다시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올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여 말씀과 기도하기에 힘쓰며 성령을 좇는 신앙생활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교제를 나누며 더욱 풍성한 모임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어둡고 부패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작년 초 투병했던 동생이 세상을 떠난 이후 안타까웠지만 동생을 위해 기도하며 도왔던 많은 목자님들의 사랑의 섬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동생을 데려갔다는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세력은 순간순간 저의 현실문제 속에 파고 들었습니다. 말씀공부 했던 형제들이 장래문제의 불신가운데 모임을 떠났고 연말에 둘째 자녀가 수능 한달 전 다시 기흉으로 입원했습니다. 직장에서도 환자들의 불평과 직원들의 불만에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됐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불평이 들어오면서 현실의 두려움과 분노와 허무가 밀려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목자로써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라도 말씀을 붙들고 전하며 기도하면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붙들 수 있었습니다. 허무하게 사라질 인생을 권능의 손길로 구원해주시고 끊임없이 현실문제에 매이는 저를 말씀을 전하는 목자로 불러 주시며 하나님역사가운데 쓰임 받으며 열매 맺는 인생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내가 소유하고 이룬 것들이 손해 볼 때 불신하고 불평했지만 사실 나의 모든 소유와 성취도 다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였습니다. 이따금 이해할 수 없는 현실문제로 정체될 때도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가장 안전하고 빠른 지름길이었습니다. 제가 새해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떤 형편에서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제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초대교회는 강대한 로마제국 밑에서 겨자씨처럼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쓴 그들의 신앙은 결국 로마제국을 정복하고 더 나아가 온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생명력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매일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며 말씀과 기도 가운데 사랑으로 교제하며 어두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요, 복음적인 교회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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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5강]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관리자 2023-03-26 60
80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4강]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관리자 2023-03-19 109
80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3강]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관리자 2023-03-12 121
800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강]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관리자 2023-03-05 128
799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강]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관리자 2023-02-26 138
798 베드로전서 [2023년 베드로전서 제4강]양 무리의 본이 되라 관리자 2023-02-19 127
797 베드로전서 [2023년 베드로전서 제3강]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으라 관리자 2023-02-12 149
796 베드로전서 [2023년 베드로전서 제2강]왕 같은 제사장 관리자 2023-02-05 142
795 베드로전서 [2023년 베드로전서 제1강]산 소망 관리자 2023-01-29 158
79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40강]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관리자 2023-01-22 163
793 누가복음 [2023년 누가복음 제38강]아버지의 원대로 관리자 2023-01-15 84
792 사도행전 [2023년 신년 제 2강]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관리자 2023-01-08 195
791 이사야 [2023년 신년 제 1강]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관리자 2023-01-01 212
790 누가복음 [2022년 성탄 2강]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관리자 2022-12-25 129
789 누가복음 [2022년 성탄 1강]구원의 뿔 돋는 해 관리자 2022-12-18 176
78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7강]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관리자 2022-12-11 190
78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6강]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관리자 2022-12-04 215
78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5강]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관리자 2022-11-27 231
785 시편 [2022년 추수감사절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관리자 2022-11-20 191
78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4강]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11-13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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