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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7-16 (일) 10:40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사도행전_제19강-1.hwp (85KB) (Down: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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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19강]바울의 밀레도 고별 메시지
2023년 사도행전 제19강                                                         한아브라함

바울의 밀레도 고별 메시지

말씀 사도행전 20장
요절 사도행전 20장 19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

사도행전 20장 말씀은 사도 바울이 3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지도자들에게 전한 고별 메시지입니다. 본문에는 목자와 양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동안 바울이 복음 역사를 어떻게 섬겼고, 양들을 어떻게 돌보았는가 하는 것이 잘 나타납니다. 바울은 우리가 배우고 본받아야 할 좋은 목자입니다. 오늘 말씀이 이를 잘 보여 줍니다. 우리 모두 바울을 닮은 선한 목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1장, 드로아에서(1-12)
  1절을 보십시오.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에베소에서의 소요가 그쳤습니다. 소요 사태를 계기로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고 보았습니다. 바울은 3년간 에베소에서 제자들을 키웠습니다. 이제는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2차전도 여행 때 개척했던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만일 에베소에서 이런 엄청난 소동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에베소 교인들이 바울을 놓아주지 않으려 했겠죠. 제자들이 지금까지는 바울에게 배우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제자들이 자립해야 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리더들이 목자로서 성경 선생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만년 어린양으로 있으면 안 됩니다. 성장 통이 비록 있겠지만 때가 되면 어린양을 돌보는 자립적인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2차전도 여행 때 개척했던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을 돌아봅니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를 차례로 심방하여 여러 말로 제자들을 권하고 복음 진리 위에 굳게 세웠습니다. 그리고 흉년으로 굶주리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구제 헌금을 하도록 권면했습니다.(고후8:1,2)  
  바울은 고린도에서 석 달 동안 있었습니다. 있으면서 전도하거나 말씀 전한 내용이 안 나옵니다. 시간을 허비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바울은 이 때 로마서를 집필했습니다. 로마서는 바울의 복음 신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수 만 명을 전도한 것보다 더 큰 일을 한 것입니다. 로마서로 변화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후 바울은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했는데, 그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바꾸어서 다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이들은 바울이 1, 2, 3 차전도 여행 때 얻은 믿음의 동역 자들이자 각 지역 대표자들입니다. 이들은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아시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위험한 길에 동행하고 있습니다. 구제 헌금을 전달 하고자 하는 것이죠. 예루살렘에서는 바울을 죽이고자 원수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함께 하는 동역 자들은 바울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요? 혼자 가면 힘든 길도 동역 자와 함께 가면 힘차게 갈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내가 교회에 나오는 것이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교회 나오는 것이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어 그가 부르심에 뿌리내리는 계기가 됩니다.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사명에 목숨 거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우리는 한배를 타고 가는 귀한 동역 자들입니다.
  5,6절 보십시오. 그들은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먼저 가서 드로아 에서 바울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지낸 후에 빌립보에 머물고 있던 누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드로아에 도착해서 7명의 동역 자를 만났습니다. 그 곳에서 7일을 머물렀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7절을 보십시오. 그 주간의 첫날에, 즉 이 날은 주일입니다. 초기 기독교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주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고, 이것이 기독교 전통이 되었습니다. 같이 식사할 때 사랑이 오고 가며 관계가 깊어집니다. 예루살렘에 가기까지 50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드로아에서 주일예배 드리고 내일이면 떠나야 하기 때문에 드로아 성도들에게 강론을 시작하였는데,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기 위해 밤중까지 계속되었습니다. 8, 9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함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등불을 많이 켰습니다. 장소가 꽤나 넓었다는 뜻이죠. 이 때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아 있다가 졸다가 삼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방에는 사람이 꽉 차서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청년인 그는 창문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낮에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한 몸으로 말씀을 들었는데, 밤중까지 말씀이 계속됨으로 그만 졸다가 삼층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죠. 저자 누가는 의사입니다. 의학적으로 죽은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유두고의 추락사는 사고입니다. 만일 사고로 마무리되었다면 드로아 성도들은 침울한 상태로 신앙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시험에 드는 사람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언제나 돌발 사고는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세상에서는 꼭 사건이 일어나면 누구의 잘못인가? 잘잘못을 따집니다. ‘왜 난간에 걸터앉아, 졸리면 내려왔어야지. 젊은이가 생각이 없네.’ 또는 ‘바울이 얼마나 설교를 재미없게 했으면 졸았을까?’ 잘잘못을 따져봐야 해결이 안됩니다.
  바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바울은 즉시 내려가서 유두고 위에 엎드려 죽은 사람의 몸을 안았습니다. 마치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말이죠. 그를 소생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주변은 시끌벅적 했습니다. 바울은 떠들지 말라 말한 후 바울이 그를 끌어안았을 때 그의 생명이 돌아왔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죠. 떡을 떼어먹고 오래 동안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즉 간증 집회 말씀 교제를 나눈 것이죠. 유두고 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 그곳에 있던 성도들 모두는 부활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예루살렘 방문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바울과 그 일행에게 부활 신앙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면 유두고 사건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예배가 끝났는데도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목자 바울이 내일이면 떠나기 때문에 더 말씀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 밤새도록 말씀을 듣고 싶어 합니다. 말씀을 배우는 열기가 그곳에 충만 하였음을 봅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 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말씀의 은혜에 푹 잠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말씀이 역사하는 곳에 사람들이 변화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죽었던 유두고가 살아나자 성도들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칩니다. 여기서 위로를 받고 나도 힘차게 일어나는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2장, 밀레도에서 (13-38)
  13절을 보십시오. 누가를 비롯한 일행은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배를 타고 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걸어갑니다. 왜 걸어갔을까요? 드로아 에서 앗소까지는 32km나 되는 거리입니다. 왜 위험한 육로로 혼자 가는 길을 택했을까요? 때는 4월 화창한 봄날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바울은 걸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큰 역사를 섬기신 후에 홀로 산으로 가서 기도했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바삐 살다 보면 자칫 심령이 메마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14, 15절 보십시오. 바울은 일행들과 다시 만나 배를 타고 미둘레네, 기오, 사모, 밀레도에 도착합니다. 각 항구에 도착할 때마다 하루씩 정박하고 다음 행선지로 떠났습니다. 밀레도는 에베소에서 45km 떨어진 거리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 하고자 합니다. 에베소를 꼭 방문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구제 헌금을 전해 주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에 사람을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였습니다. 바울은 평소에 에베소 교회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무척 컸습니다. 에베소 장로들이 사도 바울을 만나기를 얼마나 사모했던지 모두다 밀레도로 달려왔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밀레도에서의 고별 메시지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의 메시지는 대부분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밀레도 고별 메시지는 믿는 자에게 한 설교입니다. 그것도 교회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로서 유명한 말씀이 많이 나오죠. 동시에 바울의 목자생활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설교로서 모든 성경선생들, 양무리의 목자들이 본받아야 할 주옥같은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사도 바울이 어떻게 교회를 섬겼는가는 3가지 단어로 요약됩니다. 겸손, 눈물, 인내입니다. 모든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음식의 맛을 내려면 양념이 다 들어가듯이 교제와 섬김과 구제 등 모든 곳에 겸손이 들어가야 합니다. 자기 의와 교만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겸손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겸손은 외적인 매너를 뜻하지 않습니다. 나를 낮추고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겸손은 주님을 배울 때 우러나오는 것이죠.
  다음으로 눈물입니다. 눈물로 섬겼다는 것은 상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섬겼다는 뜻입니다. 목자의 눈물은 멸망 길을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며 타락한 인생을 살던 탕자 어거스틴이 성 어거스틴이 되기까지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눈물이 있는 곳에 생명이 살아납니다. 변화와 성장의 역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우리는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영적인 자녀인 양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면 양들은 반드시 변화되고 성장합니다. 다음으로 시험을 참고 즉 인내입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반대와 박해를 받았습니다.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죽을 지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원수들과 감정적인 싸움을 하기 쉽습니다. 그냥 다 그만두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시험을 참고 인내하며 주님을 섬겼습니다. 결국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말이 아닙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겸손과 눈물과 인내입니다. 주를 섬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양들을 섬기는데 교회를 섬기는데,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께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이죠.
  20절을 보십시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어디에서든지 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회당에서 설교하였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고, 심방한 에베소 교인의 집이나 브리스길라, 아굴라 집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때로는 일 대 일로, 때로는 그룹 바이블 스터디로, 때로는 회중 앞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메시지의 핵심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했습니다. 사람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떠나 사는 죄의 자리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않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또한 회개와 믿음은 신앙 생활하는 동안 계속 되어야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구원 열차 올라탔다고 다 된 것처럼 생각하고 안일하게 살면서 회개도 없고 믿음도 없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회개가 없으면 변화와 성장도 없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회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아멘!
  22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자기가 성령에 매임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밧줄에 꽁꽁 매였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곳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어 그곳 성도들을 돕기 위해 구제 헌금을 가지고 가는 중입니다. 또한 빌립보 고린도 에베소에서 부흥의 역사를 이룬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다시 한 번 부흥의 꽃을 피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결박과 환란이 기다리고 있다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곳에는 바울을 죽이고자 작정한 열심 당원이 40명이나 있었습니다. 솔직히 바울에게도 이는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바울의 유언적 메시지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가 받은 사명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는 일입니다.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입니다. 나의 생명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이 귀한 생명을 가장 가치 있는 일에 쓰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은 아버지께로부터 왔다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가장 귀한 삶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사명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지 않았습니까? 아기를 낳은 엄마는 아기를 지키고 보호하는 사명에 집중합니다. 엄마는 아가를 위해 자기 생명까지 던지죠. 얼마 전에 아산 병원 흉부외과 대동맥 명의로 알려진 주 석중 교수가 교통사고로 소천 했습니다. 대동맥 박리는 초 응급 질환으로 빨리 수술하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는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집을 얻어놓고 자전거로 출퇴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 대동맥 박리 환자를 살리는 사명에 자기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수많은 환자를 살렸습니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무슨 사명을 받았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통해 이 시대  캠퍼스 영혼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 받은 사명을 나의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고 죽는 그날까지 감당하는 사람은 복됩니다. 나는 참된 사명 인입니까? 첫째. 사명인은 어려울 때도 사명을 감당하는 자입니다. 잘 될 때 재미있을 때는 누구나 다 하죠. 고난이 닥쳐와도 어려움이 있을 때도 변함없이 감당하려 한다면 나는 사명 인입니다. 고난이 오면 멈추고 사명을 감당해온 삶을 후회하면 사명 인이 아니죠. 둘째 사명인은 자원함으로 감당하는 자입니다. 한국 사회 문제 중에 하나가 교육문제입니다. ‘억지로’ 문화입니다. 어려서부터 억지로 공부하고, 억지로 교회에 나오고, 억지로 양치고 억지로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원함으로 내가 좋아서 감당하는 자가 사명 인입니다. 억지로 하는 자는 사명 인이 아닙니다. 셋째 무엇을 바라보는 가입니다. 사명인은 자신을 바라보거나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푯대 되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부름의 상을 바라보고 달려갑니다.  
  25-2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이제부터 더 이상 에베소 성도들을 보지 못할 것이라 말합니다.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 말합니다. 에스겔서 33장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움 받은 자가 경비를 소홀히 하여 백성에게 화가 임하면 그 피는 책임은 파수꾼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파수꾼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따르지 않았다면 그 피는 백성들에게로 돌아갑니다. 말씀을 맡은 사람이 전해야 할 말씀을 온전히 전했다면,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의 영적 생명에 대해 더 이상 책임이 없습니다. 말씀 듣는 자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말씀 맡은 자가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의 영적 생명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지 않음으로 구원받을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지인들. 이웃 캠퍼스에는 전합시다. 전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겠다고 하십니다. 28절 보십시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자기를 위하여 또는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당부합니다. 삼가라는 것은 절제하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절제해야 할까요? 욕심과 정욕을 절제하고, 이기심과 안일을 절제하고 화 분 노를 절제해야 합니다. 감독자와 목자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펴야 합니다. 교회를 어지럽히거나 대적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 악영향을 끼치면 안 되죠.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손보십니다. 선한 믿음의 영향력을 끼쳐서 교회에 덕이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각별히 여기시며 축복하십니다. 29, 30절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이 떠난 후에 외부의 사나운 이리들이 교회 내부로 침투하여 양 떼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즉 교회 내부에서도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초대 교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늘 외적인 공격이 있었고 내적인 시련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각종 이단들이 또 음란하고 물질적인 세상 문화가 양들을 넘어뜨리려 합니다. 교회 내부에서도 모임을 비방하고 지도자를 비방하여 양들을 실족시킵니다. 우리는 양들의 목자로서 교회 안팎의 대적들로부터 양들을 지키고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양 떼들을 지키기 위해 3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습니다. 목자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따라 하도록 권면 합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양 떼들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와 은혜의 말씀에 부탁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말씀을 풍성히 먹이면 양 떼들이 믿음에 굳게 설 것입니다. 말씀이 부족하면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재물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목자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물질로 돌보았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물질 support를 받지 않았습니다. 천막 깁는 일을 하여 self supporting하는 평신도 목자를 고집했습니다. 반대자들로부터 탐욕을 위하여 일한다는 어떤 빌미도 주지 않았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물질 문제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물질생활에서도 깨끗한 본이 되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바울은 주님이 하신 말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실천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선물 주는 것은 귀찮아 하지만 선물 받는 것은 꽤나 좋아합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양을 우리는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지었어도 인기가 있었을까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것입니까? 주는 자가 복됩니다. 물질 뿐만 아니라 말씀을 주고 사랑을 주고 칭찬해 주는 사람은 복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생명까지 아낌없이 다 주셨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6-38 절을 보십시오.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메시지를 모두 전한 후에 무릎 꿇고 합심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에 에베소의 장로들은 다 크게 울면서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목자와 양의 아름다운 이별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말씀전하는 사명을 맏겨 주셨을 때 저는 병원일 하나 하는 것도 벅찬데 어떻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염려가 조금 되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앞세웠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여러모로 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제가 목자 바울의 겸손과 눈물과 인내를 잘 배워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종이되 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양들을 섬긴 목자였습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사명을 중히 여겼던 사명인 이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선한 목자 예수님을 닮은 목자였습니다. 바울의 목자 생활을 잘 배워 우리도 바울 같은 선한 목자, 참된 복음의 일꾼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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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 요한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특강]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관리자 2023-07-30 273
822 누가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관리자 2023-07-23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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