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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8-13 (일) 10:12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사도행전_제21강-1.hwp (92KB) (Down: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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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21강]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으니
2023년 사도행전 제21강                                                     이 인구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으니
말씀/ 사도행전 22;30-24;27
요절/ 사도행전 24;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오늘 말씀은 사도바울이 예루살렘 공회와 로마총독앞에서 재판받는 내용입니다. 이때 바울은 자신의 신앙을 증거했는데 그의 신앙, 그가 가진 하나님께 향한 소망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는 믿음입니다. 신자에게 부활신앙은 어둡고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끝까지 좁은길을 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많은 신자들이 나중 죽으면 부활할 것을 믿지만 지금 현실에서 부활신앙은 머리에만 머물뿐 가슴과 손발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도바울같은 부활신앙으로 살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의 부활신앙을 배우고 바울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바울은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마치고 구제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해준 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비젼가운데 로마로 가고자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의 고소로 체포되어 죽음의 위협속에서 천부장에게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바울을 채찍질하며 신문하려다 그가 날때부터 로마시민인 금수저임을 알고는 자신은 돈으로 로마시민권을 산 흙수저로서, 바울에게 유대의 최고법원인 산헤드린 공회앞에서 증언하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믿음안에서 담대한 바울의 첫 마디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바울의 입을 치라 명령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도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지지 않고 대응하였습니다. ‘회칠한 담’은 얼마전 철근이 빠져 무너진 아파트처럼 기초가 안정되지 못해 흔들리지만 겉은 흰 회를 칠해 튼튼한 것처럼 꾸민 위선을 말합니다. 대제사장은 율법에 따라 심판하기 위해 재판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바울이 율법을 어겼는지 따지기도 전에 사적 분노로 바울을 치라고 한 것입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AD 47-58년 재직)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인물로 일반 제사장들로부터 따박따박 철저히 십일조세를 몰수해 재산을 축적하면서, 로마 고관들에게는 아낌없이 뇌물을 바치는 친로마정책을 펴서 권력을 확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에 위협되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어떻게 하든 처단하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살벌한 공회속에서 구성원들을 보니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섞여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해 주류가 사두개인이고 바리새인들은 소수지만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순간 바울에게 번득이는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로써 예수님과 맞서기 위해서 손을 잡았지만 본질상 물과 기름같은 존재였습니다. 사두개인은 모세오경만을 인정하고 부활, 천사등 영적인 것을 배척하는 현세지향적이고 친로마적 집단이었습니다. 반면 바리새인은 모세오경뿐 아니라 부활, 천사등 영적인 것을 인정하고 로마에 적대적으로 율법과 전통에 충실함으로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둘러보면서 외쳤습니다.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6b) 이 한마디에 그들은 거짓된 목적 때문에 불편하게 동거하고 있는 자신들의 실상을 깨닫게 됐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죄수로 잡힌 바울에 비해 사두개인들이 진정 자신들이 맞서야 될 휠씬 강한 주적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바울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비웃는 가운데 몇 용기있는 바리새인들이 일어나 맞섰습니다.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바리새인들이 공개적으로 바울편에 서서 변호하면서 처음으로 바울의 무죄를 선언했습니다. 바울을 사이에 두고 바리새인들과 사도개인들사이의 물러설 수 없는 큰 분쟁이 일어나면서 바울이 중간에서 찢어질 것 같은 위기가운데 천부장이 바울을 빼앗아 로마군대 영내로 들어갔습니다. 바울은 뱀같은 지혜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유대인들의 위협속에서 조금씩 내면의 두려움이 뱀처럼 그를 옭아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에 주께서 환상중에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23;11) 이 말씀은 사방에서 대적자들이 바울을 위협하고 바울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갈때에도 예수님께서 모든 상황을 주도하고 계신다는 약속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많은 시도를 하지만 결국은 실패로 끝날것입니다. 로마로 가는 길이 지체되고 험할지라도 결국 주님의 보호하심가운데 안전하게 도착하게 될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이 말씀을 붙들고 내면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비젼을 보도록 도우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부활신앙으로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직 신약의 말씀이 없는 시대 예수님은 환상을 통해 바울에게 말씀하셨지만 복음의 말씀이 있는 현재 예수님은 신자에게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말씀하시고 인도하십니다.(요14;26) 그래서 평소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가치관을 형성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따를수 있고 예수님은 결국 우리를 영광스러운 부활로 인도할것입니다.
날이 밝은 후 40명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가서 천부장으로부터 바울을 조사하겠다고 데려오면 매복하고 있다 제거하겠다고 암살계획을 밝혔습니다. 생명을 살리는것도 아니고 한 생명을 죽이는데 40명이 목숨까지 바쳐 결의한 것은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사단이 얼마나 집요하고 끈질긴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속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은 바울도 대적자들도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들과 방법으로 바울을 지켜주셨습니다. 바울의 생질 즉 누나의 아들이 우연히 그들의 음모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바울과 또 바울을 잡고 있는 천부장에게 찾아가 암살소식을 전했습니다. 암살소식을 들은 천부장은 바울을 유대인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밤9시에 로마총독이 있는 가이사라까지(약100km) 호송할 군사들을 준비하였습니다. 바울생질이 암살꾼들의 비밀을 듣게 된것도 놀랍지만 천부장이 유대지도자편이 아닌 바울편에 선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천부장은 보병 200명과 보병의 10배의 전력이라는 말타는 기병 70명 그리고 최고의 공격수 창병200명 총 470명을 오직 바울 한사람을 호송하는데 준비시켰습니다. 사실 바울암살단 유대인 40명은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당시 최고의 훈련된 로마군인 470명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현재 대통령도 이렇게 많은 수의 최고 정예군사들을 이끌고 다닐수는 없습니다. 거기에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시민으로 유대인들에게 죽게 된 것을 자신이 구해 보내는것과 또 바울의 무죄까지 밝히는 친서까지 써서 보냈습니다. 천부장의 무죄서신은 앞으로 바울이 마주하게 될 많은 재판에서의 판례가 되었습니다. 바울에 대한 천부장의 극심한 관심과 도움은 바사모(바울을 사랑하는 모임)회장정도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천부장은 바울의 죽음으로 인해 큰 소요가 일어날 것을 원치 않았고 또 자신이 로마시민권자 바울을 심문도 없이 채찍질한 것을 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죄수 한 사람을 위해 이런 어마무시한 방법을 쓴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바울을 지키기 위해 천부장의 마음까지 움직이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통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전까지 절대로 죽지 않을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최근 ‘묻지마 범죄’가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과거 유흥시설등 비행장소에서 범죄에 노출되고 사고를 당했지만 최근 누구나 평상시처럼 길가다 혹은 편의점에서 운이 나쁘면 전혀 모르는 이에게 증오범죄의 대상이 됩니다. 뉴스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회의 어둠만을 보면 나 살기도 힘든데 신자로써 다른이들을 섬기며 희생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 구원받은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어둠(죄)에 속해있지 않고 하나님(빛)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신자의 생명은 우연이나 세상 어둠을 움직이는 세력들에게 달려있지 않고 오직 세상을 선하신 뜻과 섭리로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나의 과거는 하나님의 긍휼에 맡기고, 현재는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고, 미래는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와 함께 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나의 인생을 맡기고 부활때까지 부활신앙으로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24장을 보십시오.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뒷골목 조폭의 방법이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유명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로마총독에게 바울을 정식 고발하였습니다. 그 변호사는 로마법과 유대인 종교법을 꿰뚫고 있는 자로 그 이름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더둘로는 재판할 때 더 둘러대면서 비용은 더불로 받으며 없는 죄도 만들 수 있는 언어의 마술사였습니다. 그는 먼저 총독의 통치를 찬양했습니다. 그의 통치로 인해 유대인들이 태평을 누리고 그의 선견(신적인 예지력)으로 많은 것이 개선되어 크게 감사한다며 눈도 깜짝하지 않고 아부성거짓말을 더 둘러댔습니다. 하지만 실제 총독 벨릭스의 통치기간 수많은 정치적 소요로 인해 민심이 불안했습니다. 유대의 총독 벨릭스(AD 52-60년 통치)는 노예출신으로 자유민의 신분을 얻어 유대의 총독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를 ‘노예의 마음을 가지고 왕의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자까지 동원할 정도로 잔인한 인물이었으며 총독의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과 여자를 탐하였던 탐욕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소요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한편으로 강도떼들을 부추겨 약탈하도록 하여 그 약탈물을 나누어 가졌다고 합니다.(타키투스) 그런데 왜 더둘로는 태연하게 그런 거짓말을 한것입니까? 더둘로의 발언은 아부와 동시에 정치적 압박입니다. 많은 폭동과 잔인한 진압으로 유대총독으로써 자리가 불안한 상황에서 바울 한명을 살리기 위해 정치적 모험을 하지 말라는 정치적 압력입니다. 더둘로는 이어서 바울을 구체적인 죄로 고발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천하의 흩어진 유대인을 소요하게 하는 자이고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이자 성전을 더럽게 하는 자로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전염병같은 자’라 고발했습니다. 얼마전까지 겪은 코로나 때문에 ‘전염병 같은 자’가 얼마나 심한 욕인지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적이유로 바울을 제거하고자 했지만 그들이 고용한 더둘로는 바울을 로마에 대적하는 정치범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왜냐면 로마는 식민지의 죵교문제는 관대했지만 로마에 대적하는 정치범들은 엄하게 처벌했기 때문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겉으로 종교인이지만 실상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이었습니다. 더둘로의 고소이후 함께 고용된 유대인박수부대가 그의 말에 옳다고 소리지르며 박수를 쳤습니다.
바울은 대적들이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앞까지 몰아갔지만 그전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함으로 믿음으로 담대했습니다. 바울은 더둘로의 선동적인 거짓고소에 흥분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지 12일 밖에 안되었다 호소했는데 그중 7일은 결례 기간이었고 5일은 죄수로 갇혀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본 증인도 없다며 무죄를 밝혔습니다. 바울은 ‘전염병 같은 자’라는 고소에는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정말 바울은 전염병같은 전파력으로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파하여 죄의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이들을 살렸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총독과 많은 백성들앞에서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그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24;14,15) 바울은 자신의 신앙이 자신을 고소한 유대인들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믿으며 무엇보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라는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기다리고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유대교 신앙의 뿌리인 죽은 자의 부활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에 대한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유대교뿐 아니라 우리 선조들도 의인이 죽으면 천국에 가고 악인이 죽으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진리가 현재 자신의 삶을 이끌고 지배하는 부활신앙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죽을 날이 멀어서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 증거는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벨릭스 총독, 대제사장 아나니아, 더둘로변호사를 비롯한 바울을 죽이려는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전하는 간절한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 결국 악인의 부활이 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28,29)  많은 불신자들과 악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냥 소멸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나쁜짓을 해도 죽으면 그냥 없어진다고 믿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를 구성했던 원자 분자들이 흩어져 시간이 지나 또 다른 물질이나 생명체를 이루는데 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은 내 몸의 원자 분자들이 운이 나쁘면 바퀴벌레나 하이에나의 몸으로 부활하겠지만 운이 좋으면 금수저나 왕의 DNA를 가진 사람의 몸으로 부활할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은 결국 죽어 부활하여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악인에게 부활은 소망이 아닌 저주가 됩니다. 하지만 의인은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모든 신자들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의인은 평생 죄를 짓지 않고 착한 일만 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 죄사함 받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은 신자를 말합니다. 부활신앙이 있다고 인생에서 고난이나 유혹등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자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안에 있고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으시고 또 모든 문제를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신자가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한다는 것은 신자의 인생이 최후 승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롤러코스트 놀이기구를 탈 때 사망권세로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온몸이 뱅뱅 돌며 내동댕이쳐도 결국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까지 내며 설렘과 기대속에서 롤러코스트를 타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립니다. 이처럼 신자는 최후의 부활의 믿음과 소망이 있을 때 현재 수많은 어려움과 유혹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자신의 인생의 최후 승리,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이라는 Happy ending을 알기 때문입니다. 끝을 알 때 우리는 걱정과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인도하실것인가 설렘과 기대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롤러코스트같은 고난속에서도 바울처럼 예수께서 때마다 주신 말씀을 붙들고 감사와 찬송가운데 예수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신앙으로 최후 승리를 확신하고 현재의 고난과 유혹속에서도 말씀을 붙들며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바울의 애타는 신앙간증에도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코웃음치며 비웃었지만 총독 벨릭스는 귀담아 들었습니다. 수일후에는 자신의 아내까지 데려와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고자 했습니다. 사실 벨릭스는 그의 유대인 아내를 통해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벨릭스는 낮은 출신성분에도 불구하고 3명의 왕족 출신 아내들을 두었는데 3번째 현재 아내는 헤롯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 드루실라였습니다. 헤롯대왕은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예언에 2살 이하의 아이들을 몰살한 왕이었고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한 왕으로 나중 하나님의 진노로 죽었습니다. 이런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난 드루실라는 어릴때부터 미모와 발랄한 성격으로 유명해 15세 어린 나이에 수리아의 작은 왕국의 왕(아시수스)과 결혼했는데 벨릭스는 드루실라에 반해 마술사까지 동원해 드루실라를 설득해 이혼시키고 자신과 결혼하도록 하였습니다.(16세)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일생동안 하나님없이 죄악된 본능대로 불의와 불법으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진실하게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영광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며 사는 바울이 의인과 악인의 부활에 대해 전하자 양심에 찔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길을 듣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불쌍히 여겨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였습니다. ‘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주신 권위로 모든 것을 공정하고 올바르게 다스리는 것이고 ‘절제’는 육신의 욕망과 탐욕을 다스리는 삶입니다. 지금부터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앞에서 의를 행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 때 장차 오는 심판가운데 의인으로 부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 결국 악인으로 부활해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것입니다. 벨릭스는 바울의 애타는 강론을 듣고 두려워하여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며 회개를 피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뇌물을 받으려는 욕심 때문에 바울을 더 자주 불러 대화하였습니다. 바울이 무슨 돈이 있을까 생각되지만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많은 구제헌금을 전달해 벨릭스는 바울의 몸값으로 그 일부라도 얻고자 한 것입니다. 벨릭스는 바울이 무죄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뇌물을 더 받을 욕심으로 석방시키지 않았고 바울이 뇌물을 주지 않자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2년 동안이나 가두어 놓은채 퇴임해버렸습니다. 로마시민인 바울을 놓아주어 문제가 생기면 로마당국으로부터 책임추궁을 받을것이라 2년 동안이나 시간을 끌다 후임총독에게 넘겨주고 퇴임했습니다.(AD 60) 그는 정치꾼으로 스스로 현명하게 처리했다고 자부했지만 2년 동안이나 구원받을 기회를 놓쳤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탐욕과 폭정을 일삼던 벨릭스는 결국 유대 지도자들의 탄원서가 황제에게 전달되어 총독에서 물러나 로마로 소환당했다가 폼페이로 유배당했습니다. 그 후 AD 79년 벨릭스 일가족은 품페이 화산에 덮여 몰살당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끝까지 괴롭혔던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거짓과 탐욕으로 잡은 권세는 영원할 것 같았지만 AD 66년 로마와의 전쟁 때 결국 반대파 유대인들에게 죽음당하였습니다.(요세푸스)
바울은 벨릭스에게 복음을 전하며 로마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가운데 무죄가 증명되어 바로 석방되기를 바랬습니다. 석방되어 예루살렘교회에서 정식 로마선교사로 축복받고 파송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감옥에 갇혀 2년을 보내고 또 새로운 총독을 맞아 기약없는 세월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참된 믿음은 인내를 통해 시험을 받습니다. 신자가 죽음 후 생명의 부활을 한다고 해도 현재 이해할 수 없는 문제와 어려움에 빠지고 매일 수 있습니다. 며칠이나 몇 달도 아니고 몇 년 동안이나 미로같은 좁고 협착한 길위에서 말씀을 보아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기도를 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가? 나를 인도하시는가?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할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불신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묵묵히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좁은길을 가는 것이 믿음이요 부활신앙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것뿐 아니라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음성을 듣지 못해도 믿음으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부활신앙입니다. 바울이 인내할 수 있는 믿음의 근거는 그가 받은 부인할 수 없는 구원의 은혜와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는 약속의 말씀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망길을 달리던 자신을 돌이키시고 ‘택한 나의 그릇’으로 세워주신 부인할수 없는 구원의 은혜와 로마로 인도하시는 약속가운데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한 걸음씩 인도하신 믿음의 체험 때문입니다. 바울은 기약 없는 2년 동안 불신과 두려움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AD 33) 지금까지(AD 58) 쉼없이 달려온 후 바울의 2년은 영적 재충전의 소중한 기간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기간동안 하나님앞에서 자신이 달려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바울은 2년 후 새로운 총독앞에서 가이사황제에게 상소하게 됨으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가게 됩니다. 바울은 처음 자신의 무죄를 밝히고 석방되어 로마선교사로 파송되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은 가장 좋은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군의 철저한 보호를 받게 하심으로 목숨걸고 위협하는 유대인들로부터 가장 안전하게 지키고 이동시키셨습니다. 또 바울이 스스로 로마까지 가기 위해서는 많은 경비가 필요했지만 죄수로 이송되므로 로마정부에서 모든 경비를 충당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로마시민권 죄수로 로마까지 호송됨으로 2명의 총독과 이스라엘왕 그리고 로마간수등 세상의 영향력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온전히 성취되는 것을 체험하며, 더욱 영광의 부활에 대한 소망가운데 약 8년 후 AD 68년 로마에서 순교할때까지 부활신앙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여름수양회 시작하는 날 과거 센타에서 같이 신앙생활했던 학사의 죽음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저의 몇 년 선배분으로 과거 여름 수양회때 기타 듀엣하며 무대에 섰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졸업 후 모임을 나간 후 어떻게 사는지도 몰랐는데 부고소식을 듣게 된것입니다. 최근 계속되는 만성소화불량과 약해진 체력으로 작은 문제에서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데 더욱 죽음의 세력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여름수양회가 시작되면서 쏟아지는 생명의 말씀과 은혜로운 인생간증, 찬양가운데 내면의 사망권세가 물러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코로나 전 수양회에 비해 전문가같은 연극도 만국춤도 없었지만 모든 학생목자와 양들이 예수님을 전하는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섬기는 것을 보고 그 젊음의 생명력을 체험하며 생명의 빛이 사망의 어둠을 순식간에 몰아내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양회이후에도 소화불량이 사라지지 않고 직장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 은혜와 생명력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도바울같은 부활신앙으로 사는 것이 어떤것인가 깨닫게 됐습니다. 결국 나와 함께 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 부활신앙으로 사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제가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생명의 부활을 약속받은 신자로 끝까지 생명의 말씀을 따르며 말씀을 전함으로 생명구원역사가운데 쓰임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와 총독 벨릭스앞에서 재판받으며 생명의 위협속에서도 하나님께 향한 소망인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이 부활신앙으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구원의 은혜 때문이요, 예수님께 받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구원의 은혜가운데 때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부활신앙으로 소망과 기쁨가운데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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